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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서사모아
작가 : 갑주어
작품등록일 : 2020.9.22

1950년 7월 15일, 우리가 아는 대한민국은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전쟁에서 패한 이들이 망명한 곳은 다름아닌 남태평양 환상의 섬, 서사모아 제도.
그곳에서 50년 전, 태평양 깊이 잠들어있던 대한민국의 한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4화 - 코리
작성일 : 20-09-30 23:14     조회 : 299     추천 : 0     분량 : 9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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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래희망, 광복군.

 좌우명, 대한 광복 만세.

 좋아하는 것, 태극기.

 싫어하는 것, 김일성, 김정수, 조선공화국.

 취미, 태권도와 BB탄 장난감 총 사격.

 특기, 심시티로 만든 대한민국 가꾸기.

 

 참 흥미로운 학생이다.

 

 나는 사모아 우풀루 섬 베이틀에 있는 고등학교 교사다. 교편을 잡은 지 오 년이 되었고, 그간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적지 않은 제자들을 배출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내 제자 중에 인권보호당 소속의 최연소 의원이 있을 만큼 나의 제자 진로설계는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유독 진로설계가 불가능한 학생들이 있다. 바로 코리 학생 중 장래희망을 광복군이라 적어내는 이 학생들이다.

 잊을 만하면 튀어나오는 장래희망 광복군 학생은 교편을 잡은 지 오 년이 지난 지금도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 대대로 이어받아 적기라도 하는 것일까? 장래희망은 무조건 광복군에 좌우명은 하나같이 대한 광복 만세, 좋아하는 것은 태극기에 싫어하는 것은 가문의 원수라도 된 듯 김일성, 김정수, 그리고 조선공화국. 취미와 특기는 그나마 제각각 달라서 다행이다.

 이 학생도 그렇고, 이 학생과 똑같은 답변을 한 선배들도 그렇고, 정말로 독특하기만 하다. 보편적인 학생 중 독특한 장래희망이라고 한다면 UFC선수 혹은 NFL 선수, 나아가 더 락이나 사모아 조, 우마가와 같은 WWE 사모안 계열 선수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장래희망이 광복군이라 하는 코리 학생은 정말 독특한 경우다. 참고로 교편을 잡은 지 세 번째다.

 우리 사모안은 물론, 코리들의 대부분은 의무 교육인 고등 교육을 마친 후에 대학을 가거나 아니면 부모의 직업을 물려받아 바나나나 타로감자, 카카오 농장 주인이 꿈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상 사라진 지 반세기가 되어가는데도 광복군이 되고자 하는 것은 확실히 보편적이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는 사모아 정규군 외에 사설 용병이나 군대를 인정하지 않기에 이는 어쩌면 헛된 꿈일 수 있다.

 물론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오십 년 전에 조국을 잃고 머나먼 이국 섬에 와서 국제 난민으로 망명하여 살아남았다는 과거가 세월 따라 시간을 안주 삼아 잊을 만큼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학생은 명실상부한 코리다. 코리 학생은 보통 학급에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존재하는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남쪽 매니노아와 서쪽의 사바이 섬에는 조금 더 많은 비율이라고도 한다.

 코리 학생들은 보통 공부를 잘 하고 일도 열심히 한다. 코리들 중에 게으른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공부를 못 하는 코리 학생이라 할지라도 부모님의 말씀에 따라 항해와 어업 기술을 배워 바다로 나가거나 농사 기술을 배워 취업하여 돈 버는 데에 열중하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유대인을 빼고 가장 악랄하게 사는 이는 코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리 학생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삐쩍 말랐다. 물론 코리 학생들의 특징이 아니라 코리 전체의 특징이긴 하다. 이들의 미적 기준이 뼈다귀인가 하고 생각할 때가 많다. 거리에 있는 사람 중 검은 머리에 삐쩍 마른 사람은 다 코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사모안은 살집이 많은 체형을 미인으로 삼기 때문에, 날씬한 몸매를 미의 기준으로 삼는 코리는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앞서 말한 장래희망을 광복군이라 적어 낸 이 학생을 소개하자면, 우선 공부를 참 잘 하고, 구기 종목 체육도 꽤 잘 하는 편으로 이른바 문무겸비다. 성적은 2등 아래로 간 적이 없다. 물론 1등인 조나단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1등을 한 적이 없어서 계속 2등에서만 발버둥 치는 희한한 녀석이다. 참고로 조나단의 장래희망은 우리나라의 총리다.

 재밌게도 운동 면에서도 2등인데, UFC 선수 지망생이자 전교 운동 1등인 에드워드가 너무 잘 하기에 운동에서도 역시 2인자로 남는 비운의 학생이다.

 솔직히 이렇게 성적과 운동 골고루 우수한 학생을 그냥 버려두기는 아깝다. 대학에 진학해서 여러모로 우리 사모아에 큰 이바지 할 것으로 보이는 유능한 인재를 방관하는 것은 교육자로서 참된 도리가 아니다. 하지만 이 학생은 이전 두 명의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장래희망이 광복군이다.

 

 사실 이 학생과 일전의 두 학생이 말하는 광복군이란, 오십 년 전에 우리 사모아 우풀루 섬 아피아에 상륙한 코리들 말고 사퓬에 정박한 또 다른 난민들, 정확히 말하자면 대한민국 패잔병 난민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정확히는 대한민국 국군 잔당이므로 민간인은 아니나, 우리나라에서의 취급은 아피아에 상륙한 정식 난민과 동급으로 맞이했었다.

 그들은 우리와 동화되어 마치 본래 사모안인 것 같은 아피아의 코리들과는 다르게 무장 해제되고 난민으로서 우리나라에 정착하게 된 다음에도 ‘광복군’이라는 이름으로 결집하여 체계화된 군인처럼 행동했다. 그들은 본인들이 타고 온 배를 뜯어 사퓬에 터를 잡아 정착했으며, 아피아의 코리와는 다르게 엄격하고 체계화된 삶으로 그들만의 전통이나 관습을 이어 왔다.

 그들은 죄다 남성이었기 때문에 자기들만의 전통과 관습을 지키되, 우리 사모안 여성이나 아피아 코리 여성들과 교류하며 대를 이어갔다. 물론 사퓬을 거점으로 모여 사는 것은 여전하지만.

 사퓬의 코리들이 아피아의 코리들과 가장 대비되는 것은 본래 조국인 대한민국을 그리워하는 정도라고 볼 수 있다. 아피아의 코리들이나 사퓬의 코리 모두 대한민국을 과거의 조국으로서 가슴속에 간직하고 현재 우리 사모아에 만족하며 함께 어울려 살아가지만, 사퓬의 코리들은 한술 더 떠서 언젠가 대한민국을 되찾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진 채 살아간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외형적으로도 사퓬의 코리들은 눈빛부터가 달라 대한민국 이야기가 나오면 불타오르는 느낌이며, 매사에 늘 민족성을 지킨다는 신념으로 진지하고 불춤과 같이 우리나라 주요 명절에 참여하기는 하나 본인들 본래의 명절을 더 깊이 있게 챙긴다. 물론 아피아의 코리들도 본인들 본래 명절을 챙기긴 하지만, 사퓬의 코리들처럼 매년 7월 21일 사퓬 해변에 모여 북쪽을 향해 코리 전통 방식의 제사를 지내는 등, 대대적으로 하진 않는다. 그 사소한 차이가 존재한다.

 

 아무튼, 내가 소개한 장래희망이 광복군이 이 학생은 사퓬 출신은 아니지만 마치 사퓬의 코리들 처럼 대한민국을 가슴 속에 기리고 있으며, 꼭 되찾고 말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친 것은 확실하다는 점이다.

 

 일전의 장래희망이 광복군인 학생 둘 중 먼저가 남학생, 두 번째가 여학생이었다. 둘 다 졸업할 때까지 장래희망을 광복군이라 일관되게 유지하며 지냈다. 그러다 졸업식 날 부모님과 함께 어딘가로 가더니 이내 연락은 끊겼다.

 첫 번째 장래희망이 광복군인 학생 때는 내가 너무 궁금해서 따라 가보려고도 했는데, 학부모께서는 그 학생이 장래희망을 이루게 되었다며 그냥 선생님은 마음속으로 응원만 해 달라는 부탁만 받았다. 다음 두 번째의 여학생 역시 같은 반응이었다. 사실 내가 경찰도 아니거니와 그들만 너무 신경 쓰다가 다른 학생들을 놓치게 될까 싶어, 장래희망이 광복군인 학생들이 떠난 다음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물론 스승으로서 걱정 반 귀찮음 반으로 되게 복잡 미묘했는데, 두 명을 그리 배출하고, 선배 교사들께 여쭈어봐도 그냥 웃으며 모른다, 크게 관심은 없다고 하셔서 나도 이젠 무덤덤하다. 물론 그 뒤의 행적이 궁금한 것은 마찬가지지만.

 

 다시 고개를 돌려 학생서류를 쳐다보았다. 이름이 참 독특하다. 물론 코리들의 이름은 하나같이 발음하기 어려운 독특한 이름이지만, 이 학생은 그나마 발음하기 쉽다. 영문으로 옮겨 적은 그의 이름을 제대로 읽으면 진호 헌트가 된다. 학생들은 이 발음이 어려워 그냥 지노라고 부른다. 이를 진호 역시 딱히 신경 쓰지 않기에 편하게 별명처럼 부른다. 나 역시 편하게 부를 때에는 지노라고 한다.

 의자에 다시 앉아 학생서류를 책상에 내려놓으며 창문 너머의 노을을 바라보았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도 극찬한 낙원과도 같은 땅, 우리 사모아의 저녁노을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과 같다. 장래희망이 광복군인 학생들은 이런 낙원과도 같은 풍요의 섬을 두고 어디서 뭘 하려는 것일까?

 결국, 나는 일전의 장래희망이 광복군인 두 명의 학생 때에는 하지 않았던, 학생 개별 면담을 하기로 마음먹고 지금 그를 기다리고 있다. 지노, 아니 진호 헌트, 17세의 불타는 청춘을 지내는 그가 어떠한 계기로 광복군이란 정체불명의 직업을 원하는 것일까.

 “선생님!”

 마침 언제쯤 오나 연락해보려던 찰나, 교무실 문을 열고 진호 헌트가 들어왔다. 나는 서류를 두고 교무실 가운데에 있는 탁자로 자를 옮겼다.

 “차 마실래?”

 내가 물어보자 진호 헌트는 차가운 것을 달라고 대답했다. 옷차림과 상태를 보니 방금까지만 해도 친구들과 농구를 하고 온 것 같다. 온몸에 땀 흘린 흔적이 있고, 살짝 가파른 숨에 볼 주변이 붉다.

 내가 냉장고에서 찬 코코넛 음료를 꺼내 주자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참, 하나 빼먹은 게 있는데, 물론 우리 사모안들도 모두 착하고 자비가 넘치지만, 유독 코리들은 예의가 깍듯하다. 뭐 대단한 걸 주는 것도 아닌데도 두 손으로 받고, 뭐만 하면 바로 고개 숙여 인사하는 등, 친절이 넘친다. 북반구를 여행했던 나의 여자친구가 말하길, 세계에서 가장 친절한 민족은 일본인과 코리라고 한다.

 아무튼, 나는 진호 헌트의 장래에 대해 면담하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면담을 시작한 나는 우선 초장부터 장래희망에 관해 이야기하기에는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먼저 공부하면서 힘든 것 혹은 운동하면서 힘든 것에 대해 구름 잡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역시 우등생인 만큼 크게 어렵다는 것은 없었다. 그리곤 2차 성징도 지났는데 성적인 발육과 이성을 향한 관심과 그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나갔다. 털털한 성격인지라 본인 발육에 대해서는 그다지 부담이나 걱정 없이 어른이 된다는 것으로 긍정적으로 여기고 있다. 아주 좋은 자세다. 그 후 이성 이야기로 넘어갔는데, 가장 최근의 이성 관련 이야기는 바로 우리 학교에서 가장 예쁘다고 소문난 여학생인 알렐리아 리나 투마타, 통칭 리나가 자신에게 고백했는데, 고민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리나의 고백에 고민이 된다는 건, 마음에 둔 다른 이가 있다는 거니?”

 “아니요, 그렇지는 않아요. 저도 리나가 참 예쁘다고는 생각하는데, 제가 졸업 후 사정이 여의치 않을 것 같으니까요.”

 우리 사모아 전통 음악 공연인 피아피아를 아주 잘 해서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마을에서도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미모의 여학생인 리나의 고백을 거절한 진호 헌트. 그가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이유로 그녀의 고백을 거절했다고 한다.

 졸업 후 사정이 여의치 않을 것 같다라... 드디어 장래희망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가 되었다.

 “졸업 후에 사모아를 떠나기라도 할 거니?”

 “그건 제가 장담할 수 없어요.”

 “그래? 우선 졸업 후의 장래희망에 광복군이라 적었지?”

 “네, 맞아요.”

 “진호 헌트 네가 직접 적었니?”

 “네. 제가 적은 거 맞아요.”

 좋아, 자연스럽게 접근했다. 나는 그대로 장래희망인 광복군에 대해 진호 헌트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그리고 광복군이 되어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근데, 선생님은 광복군이 뭔지 몰라 아리송하긴 하구나. 광복군이 뭐니?”

 내가 질문하자 진호 헌트는 아까 리나의 고백 이야기로 잠시 고민하던 얼굴에서 생기가 확 도는 얼굴로 바뀌었다. 분명 광복군에 대해 많이 알고 있고 그것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선생님, 광복군은 한 마디로 대한민국이 인류 역사의 한쪽에 존재했었음을 알리는 민족 영혼의 군대에요.”

 진호 헌트의 대답은 나의 예상과는 매우 달라 실망이 컸다. 물론 ‘선생님! 광복군은 여기 사모아 공화국에서 전쟁 준비를 한 뒤, 한반도로 몰려가 조선공화국을 멸망시키고 새로 대한민국을 세우려는 비밀의 군대에요!’라는 답변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군이라는 명칭을 쓰는 만큼 무언가 독특한 게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복음 전파와 선교를 위한 구세군과 비슷한 것이니?”

 “네, 맞아요. 제가 알기로 광복군은 현재 전 세계에 퍼져 있어요. 물론 총본영은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사바이섬 사퓬 인근에 있어요.”

 사실 난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저 코리 마을회관이나 자치회관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재미있어진 나는 진호 헌트의 설명을 더 들어보기로 햇다.

 “광복군의 주요 목적은 한국사와 한글 연구, 종묘사직의 승계, 전 세계에 퍼진 한국인에 대한 관리 및 민족성 유지, 자선 사업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50년 전 사퓬에 상륙한 서귀포항쟁의 생존자들로 시작되어 지금까지 큰 발전과 유지를 이루었죠.”

 말 그대로 구세군과 비슷한데 코리에 한정된다는 점이 다른 것이다. 아마 이스라엘이 세워지기 전까지 전 세계를 떠돌던 유대인을 관리하는 집단이 있었다면 딱 이런 느낌일 것이라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오해하곤 하죠. 광복군이라 하면 왜인지 나라를 되찾기 위한 투쟁을 하는 군대처럼 들릴 수 있잖아요. 어쩌면 중동의 알카에다 같은 무장 테러집단과 비슷하게 들릴 수도 있는 것인지라 많이 걱정하는 분도 계셔요. 하지만 절대 그런 집단이 아니에요. 만약 그런 집단이었으면 이미 사퓬에 있는 총본영이 유지 될 수가 없었겠죠.”

 “그, 그렇지.”

 진호 헌트가 설명하며 너무나도 강렬한 눈빛을 내고 있어서 이 학생이 산 세월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살아온 내가 움츠려들었다. 역시 강한 의지를 지닌 코리와 대화하면 꼭 이렇게 불타오른다. 특히 사퓬의 코리에게 대한민국 관련 이야기를 했을 때와 비슷한 반응이다.

 “아무튼, 그래요. 광복군은 나라를 잃고 전 세계에 흩어져버린 한국인들이 마음 한켠에 대한민국을 기억하고 이를 간직할 수 있도록, 또 도움이 필요한데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을 때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친구이자 든든한 친척이자 정체성을 당당히 지닐 수 있도록 반석이 될 가족입니다.”

 진호 헌트의 강렬한 설명을 듣고 있자니 나도 감화되어 그의 연설이 끝나자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노야, 네가 광복군이 되고자 하는 것에 내가 도와줄 건 없니?”

 내가 박수를 마치고 진호 헌트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턱에 흰 손가락을 살며시 대며 교무실 천장을 쳐다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감사드립니다만, 딱히 없어요. 제가 이미 지원서는 작성해둬서 그대로 제출하면 되구요. 부모님께 허락을 이미 받았으니...”

 “그렇구나. 어쩐지, 너 전에도 장래희망이 광복군이라 적었던 학생이 둘 있는데, 그들도 딱히 도울 필요는 없다고 했었어.”

 “아, 혹시 별초형과 경숙누나에요?”

 진호 헌트가 빠르게 두 명의 이름을 말했다. 나는 순간 놀랐다. 사실 위에서 설명하지는 않았는데, 진호 헌트가 말한 두 이름이 진호 이전에 있었던, 내가 담당했던 장래희망이 광복군인 두 학생의 이름이다.

 첫째 학생의 이름은 별초 상이다. 별초라는 이름이 적는 것도 여간 헷갈리는 게 아니고 대단히 발음하기 어려워 다들 베쵸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둘째 학생의 이름은 경숙 김. 이쪽도 발음하기가 꽤 어려운 데다가 비슷한 발음도 찾기 어려워 다들 별명 삼아 그냥 미스 킴이라 불렀다.

 이 둘은 진호 헌트만큼 문무겸비는 아니었으나, 둘 다 체력만큼은 그를 간단히 웃도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베쵸는 애초에 동네서 건드는 이가 없는 유명한 싸움 대장이었고, 경숙은 코리 전통 무술인 태권도와 일본의 가라테를 어릴 적부터 연마한 무도가였다.

 “그 둘을 아니?”

 “알다마다요. 저희 코리 커뮤니티에서 본 적 있어요. 선생님 제자였다지요?”

 “알고 있었구나?”

 “그럼요. 별초형과 경숙누나가 저한테 알려주셨는데요. 참 좋은 선생님이라고.”

 진호 헌트의 말에 문득 머쓱해진 나였다.

 “고맙구나. 아무튼, 지노 너 역시 베쵸와 킴을 따라 광복군이 된다는 거지?”

 “네, 맞아요.”

 “근데 단순히 사비아섬의 사퓬으로 가는 거면 리나의 고백에 고민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니? 아예 사모아를 떠나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내 질문에 진호 헌트는 잠시 턱에 주먹을 대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무언가 말하고자 하는데 이걸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잠시 생각에 빠졌던 진호 헌트는 이윽고 결심한 듯 작은 숨을 토해내면서 입을 열었다.

 “사실은요 선생님. 저는 광복군이 되어 서사모아를 떠나려고 해요. 저희 삼촌도 광복군이신데, 서사모아에 계실 때 들은 이야기로는 서귀포항쟁 마지막에 서귀포를 탈출한 10척의 배가 있었는데, 서사모아 사퓬에 도착한 배는 여덟 척이었다고 해요. 즉, 두 척은 사라진 거죠. 지금 광복군에서 이 두 척의 배의 행방을 늦게라도 추적해서 지금도 대를 이어 살아 있을, 그게 아니라면 좌초된 두 척을 찾아 선조들의 유해를 찾아내려는 거죠. 저는 그 일에 지원하려고 해요. 그래서 저는 아마 광복군으로 활동하게 되면 서사모아를 떠나게 될 거에요.”

 진호 헌트의 일장연설에 또 멍하니 듣고만 있었다. 확실히 나도 얼핏 들은 적이 있는 이야기다. 서사모아에 뉴 코리아 플랜으로 온 이들 말고 사퓬에 상륙한 코리들은 출발할 때 열 척으로 출발했는데, 사고로 인해 두 척을 잃어버리고 세 척만 무사히 도착했다는 이야기.

 진호 헌트는 결국 광복군에 지원해 태평양 한가운데서 50년 전,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해 두려움에 떨며 사라지고 잊혀갔을 그들을 찾기 위해 헌신하겠다는 말이다.

 본인의 우수한 성적과 건강한 체력을 본인의 미래를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민족의 영혼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이 모습에 나는 감격했다. 덧붙여 2천 년 동안 세계를 떠돌았지만, 민족성을 전혀 잃지 않았던 유대인들도 이러한 이가 있어서 유지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대견하구나, 지노. 선생님은 네가 자랑스럽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꼭 광복군이 되어 그분들을 모두 찾아내렴.”

 “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찾아올 거예요!”

 자신감 넘치고 사명감에 불타는 그 눈동자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지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베쵸와 미스 킴도 이렇게 직접 물어볼걸, 이렇게나 좋은 일, 그야말로 도움이 절실한 버림받은 민족에게 영웅이자 구세주로 보일 수 있는 광복군에 대해 더 빨리 관심을 가질 것 그랬다. 그럼 그들에게 큰 응원이 되어 줄 수도 있었는데.

 “사실 네 이전의 두 선배에게는 내가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단다. 그래서 너는 더 응원하게 되는구나.”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래, 그럼 졸업까지 더 열심히 하려무나.”

 “네, 선생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호 헌트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내가 건네주었던 코코넛 음료가 담긴 잔을 들고 나에게 와 반납했다.

 “잘 마셨습니다.”

 “그래. 언제든지 목마르면 오려무나.”

 “네, 선생님.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 조심히 가렴.”

 진호 헌트는 나에게 공손히 꾸벅 인사를 한 후 교무실을 나갔다. 나간 뒤 밖에서 문을 닫을 때 마지막 순간에 멈추어 쾅 하지 않게 하는 센스까지 역시 훌륭한 코리다. 나는 그 문을 향해 아빠 미소를 지으며 멍하니 있었다.

 “별거 아니었잖아.”

 확실히 생각해보니 왜 선배 교사들께서 웃으며 그냥 그러려니 하라고 했는지 이해가 간다. 코리가 아닌 나로서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어쩌면 내가 젊은 마음에 다른 장래를 추천한다거나 광복군에 대해 안 좋게 이야기하면 학생에게 대단히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베쵸의 부모님이 마음속으로만 응원해 달라던 말도 이제는 이해가 간다.

 “화이팅이다.”

 나는 다시 내 자리에 앉아 등받이에 기대 편히 앉으며 저물어가는 저녁노을을 바라보았다. 학교 운동장에는 방금 나와의 면담을 마친 진호 헌트가 교문을 향해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교문 근처 울타리에는 앞서 이야기했던 리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고백을 고민한다 했지만, 그녀를 보자마자 밝게 웃으며 인사하는 진호 헌트. 이윽고 둘은 같이 걸어간다.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여기서는 멀어서 자세히는 안 들렸지만, 한 대화만큼은 똑똑히 들렸다.

 “지노는 말야, 그분들 다 구하면 무얼 할 거야? 광복군 그만둘 거야?”

 “아니. 광복군으로서 대한민국을 되찾을 거야.”

 
작가의 말
 

 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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