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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한여름의 치기
작가 : 이소이
작품등록일 : 2020.8.18

사랑이 가장 청량하게 빛날 수 있는 계절 여름, 그리고 그런 여름에 걸맞게 다채로운 선물들을 선사할 하동.

우리 모두가 각자 다른 이름을 지니고 살아가듯 사랑에는, 삶에는 참 다양한 이름이 있습니다. 그저 예쁜 풍경이 좋아서 기대를 끌어안고 향한 여름이와 어디든 먼 곳으로 도망치고 싶어 떠난 제연이처럼요. 그래서 저는 이 글을 읽을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어요. 여태 살아온 삶과는 다른 결의 선택,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에 있는 그대로 반응 하는 것. 이걸 단순히 한여름의 치기라 치부해도 되는 건가요?

여러분은 언제 사랑을 느끼시나요? 또, 여러분의 사랑이 담고 있는 온기와 의미는 얼마나 사랑스러운가요? 한 순간에 지나가버린 여름이 잠시나마 푸르르고 찬란한 기억으로 남기를 바라며 이곳에 제 사랑을 남깁니다.

 
새로운 시작점
작성일 : 20-09-30 21:50     조회 : 248     추천 : 0     분량 : 5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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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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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가기 일주일 전쯤부터 밤마다 조금씩 짐을 쌌다. 보통 여행을 가면 매일 밤마다 입었던 옷이나 썼던 물건들을 정리했는데, 한 달 가량을 보내러 온 곳이라 뒤늦게 짐 정리를 시작한 축에 속했다. 핸드폰 메모장을 켜 버리고 가도 될 것들과 챙겨가야 할 짐을 정리했다. 뒤늦게 받았던 짐들은 다시 박스에 넣어 택배를 부칠 작정이었다. 앞으로 입을 옷들을 제외하곤 박스 안에 전부 넣어뒀다. 씻고 나오면 선풍기를 틀어두고 그 앞에 앉아 빼먹은 것들이 있나 다시 한 번 메모장을 훑어보고, 들고 갈 짐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매일 빨래를 했다. 캐리어를 끌고 왔다면 한결 편했을 테지만, 술 퍼먹고 늦잠자서 백팩 하나 달랑 매고 온 과거의 멍청한 이제연 탓을 할 순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청소도 매일 했다. 사진 찍어뒀던 원래 숙소의 모습을 다시 보며 이동했던 책상이나 의자, 빨래 건조대 이런 것들을 제자리에 놓았다.

  한바탕 오늘 목표치를 다 달성하고 침대에 누운 후 이곳에 왔던 이유를 떠올렸다. 사실 없다. 도망치듯 온 거라 그렇다. 오고 나서 찾으려 했던 이유 또한 실패했다. 빼곡하게 세워뒀던 계획들은 여름과 다니면서 무용지물이 됐다. 거의 심심해서 계획 세운 꼴이었다. 뒤돌아 떠올려 보면 하동에서 지냈던 날들 중 여름과 함께하지 않은 날을 찾기 어려웠다. 온 지 얼마 안됐을 때의 며칠, 다음 학기 수강신청이 있어 시내 피씨방에 갔던 며칠이 다였다. 이 정도면 같이 하동에 온 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마등처럼 여름과 보냈던 날들을 스쳐 지나갔다. 참 엉뚱했던 첫 만남부터 반복된 우연으로 마주쳤던 두 번째 만남, 그 뒤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지금까지의 시간들. 현실성 없게 느껴졌다. 여태까지 살아온 인생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시간들을 보낸 것이기에 더욱 그랬다. 한 편으론 조금 답답하기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내고자 온 곳에서 완전히 색다른 짐을 얻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저조차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 마음을 어떻게 정의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래도 미룰 수 있다면 최대한 미루고 싶었다. 서울에 가서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여기서 여태 지냈던 것처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지금처럼만 있다가 서울에 가서 막막한 마음을 정의 내려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또 하동에서의 하루가 저물어갔다.

 

  제연이 서울로 돌아가기 정확히 하루 전. 아침 운동으로 만났을 때, 여름은 오후 시간대까지는 짐을 챙기고 정리하는 시간으로 비워주겠다 했다. 그리고 곧바로 덧붙였다. 대신 저녁 즈음부터는 본인과 함께 있어야 한다고.

 “짜잔. 솔직히 신나죠?”

  끽해야 저녁이나 같이 먹겠지 했던 생각을 보란 듯이 꺾어버린 여름은 약속한 시간이 되자마자 몸만한 짐을 끌어안고 제연의 숙소로 왔다.

 “이게 뭐야?”

  얼떨결에 짐을 전달받은 제연이 마당 한 구석에 옮겨다 놨다.

 “캠핑해요 우리! 마지막 날엔 이런 도란도란한 거 하잖아요.”

 “누가? 어디서?”

 “수련회 같은 곳에서 안 해요? 중학생 때가 마지막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한데, 캠프파이어 이런 거 하잖아요.”

 “하지. 근데 우린 둘 다 대학생이고, 지금 여기가,”

 “그만! 그냥 즐겨요. 내일부터는 하고 싶어도 못하잖아요.”

  몸만한 짐만 가져온 줄 알았는데, 몸만한 크로스백도 메고 온 건지 낑낑대며 가방을 벗어 냈다. 도대체 뭘 그렇게 챙겨왔나 했더니 가방에서 온갖 물건들이 줄줄이 꺼내지고 있었다.

 “저 텐트는 어떻게 치려고?”

 “아 그건 걱정 마요. 일반 텐트였어도 텐트 치기 장인이라 문제없지만, 원터치 텐트라 완전 금방 할 수 있어요.”

 “겉옷은?”

 “괜찮을 거 같아서 그냥 왔어요.”

  할 줄 안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열심히 지퍼를 열고 텐트를 꺼내며 만지작거리는 모습을 보고 제연은 방 안으로 향했다.

 “입어.”

 “걱정하는 거예요? 고마워요.”

  제연이 건넨 후드 집업을 입고 꼼꼼히 지퍼를 끝까지 올린 후 웃었다. 한결 같은 모습이었다. 제연과 함께할 때면 나타나는 표정은 여전했다.

 

 “유치원에 처음 다녀온 날 집에 오자마자 아빠 옷자락을 붙잡고 텐트를 사자했대요. 유치원에 있는 텐트가 마음에 들었나 봐요. 그래서 유치원 다니던 3년 내내 저희 집 거실엔 항상 텐트가 펴져 있었어요.”

 “그래서 텐트 잘 쳐?”

 “치는 법은 대학 와서 배웠어요. 저희 과에서 꼭 필요한 기술 중 하나거든요.”

 “특이하네.”

 “아무튼 저한테는 좋은 기억이라 그런지 텐트치고 이렇게 있으면 되게 포근한 기분이 들어요. 가끔 특별한 날이면 캠핑가기도 하고 그래요.”

 “텐트 안에 있는 것도 되게 오랜만이네.”

 “언제가 마지막이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였나. 반 애 중에 한 명이 수학여행 못가는 게 억울하다고 난리쳤어.”

 “…”

 “그때 반 분위기가 노는 거 엄청 좋아하고, 흥 많은 편이었어서 다 같이 연휴에 캠핑장 예약해서 놀러갔거든. 아마 그때가 마지막 아닐까.”

  도란도란 대화를 얼마나 이어갔을까 아까부터 몰래몰래 하품하던 여름이 조용했다. 누워서 텐트 천장을 보고 있던 제연이 고개를 돌려 바로 옆에 누워있는 여름을 바라봤다. 엎드린 자세였던 탓에 팔에 얼굴을 파묻고 잠들어 있었다. 행복해하는 모습, 신난 모습, 감격해서 벅차하던 모습, 장난칠 때의 모습, 뾰로퉁하던 모습, 힘들어하던 모습, 완전히 무너져 세상을 잃은 것처럼 울던 모습까지. 수도 없이 많은 모습들을 봤지만, 자는 모습은 낯설었다. 색색 거리며 잠들어 있는 모습이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몸을 아예 옆으로 돌려 팔을 베고 누워 여름을 바라봤다.

 “으음.”

  여름이 뒤척이며 얼굴을 움직였다. 그 탓에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었다. 제연은 조심스레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줬다. 한결 편해진 표정의 여름이 평온하게 잔다. 이 작은 머리에서 나오는 예상할 수 없는 행동들이 저를 복잡하게 만든다. 허공을 배회하던 손이 여름의 머리를 몇 번 가볍게 쓸었다. 다시 손을 천천히 거두어갈 때는 볼을 한 번 가볍게 찔러보기도 했다.

 “잘 자.”

  가슴께까지만 덮여있는 이불을 끌어올려 턱 끝까지 덮어줬다. 그 언젠가 여름이 했던 말처럼 꿈조차 찾아오지 못할 정도로 푹 잠드는 밤이 되라는 인사는 속으로만 건넸다.

 

  제연이 서울로 돌아가는 날 아침이 밝았다. 숙소를 다시 한 번 둘러보며 정리하겠다는 제연의 말에 알겠다 답한 여름은 비몽사몽한 상태로 눈을 비비며 가져왔던 짐들을 챙겼다. 여름은 집에 짐들을 가져다두고, 제연은 마지막 정리를 다 끝마친 후 짐을 챙겨들고 다시 만났다.

 “터미널로 버스타고 갈 거죠?”

 “응.”

  버스 정류장으로 함께 걸어가는 내리막길. 이젠 둘이 이 길을 내려가는 것도 마지막이다. 그 생각을 하고나니 여름은 조금 울컥했다.

 “재밌었어요. 고마운 일도 많았어요. 매번 고맙다고 말하지 못했던 거 같아서 하는 인사예요. 전부 고마웠어요.”

  제연은 여름의 말에 고개를 몇 번 끄덕이며 연하게 웃었다. 참 제연다운 반응이었다. 덤덤하고 담백한 반응.

  어느덧 버스정류장이 있는 도로까지 내려왔다. 멈춰선 제연 탓에 여름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둘은 걸어 내려온 길과 도로의 경계선에 서있었다. 한 걸음만 내딛으면 도로였다. 정류장은 내리막길을 기준으로 왼쪽에 있었다.

 “잘 있어.”

  옆에 멈춰 서있는 여름은 내려다보며 눈인사를 건넨 제연이 그대로 여름을 두고 정류장으로 향했다. 한동안 멍하니 그 뒷모습만 바라보다 달렸다. 곁으로 달려간 여름은 제연의 뒤에서 그대로 제연을 끌어안았다.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서요.”

 “뭐를?”

 “여기서 지냈던 시간들이요. 솔직히는, 우리가 같이 쌓은 추억들이요.”

 “추억?”

 “애정이 담겨있으면, 기억이 아니라 추억이잖아요.”

 “…애정이었던가.”

 “…….”

 “갈게. 볼 수 있으면 다음에 보자.”

  저를 혼자 남겨두고 매정하게 갈 길 가버리는 제연의 모습은, 빌어먹게도 너무 예뻤다. 하필 평소 그토록, 입이 닳도록 질리지 않을 풍경이라고 외치던 길가를 걸어가는 저 뒷모습이 억울하리만치 환상적이었다. 그래서 오기가 생겼다. 아니, 그런 거라고 핑계라도 대지 않으면 저 뒷모습만을 영영 기억하며 살 거 같아서. 그렇게 남기기는 죽어도 싫으니까. 되도 않는 어린 마음이 만들어낸 치기라 해도 소리 내어 외쳤다.

 “그거, 사랑이에요.”

  뒤돌아 걸어가던 제연의 걸음이 뚝 멈춘다.

 “구질구질하게 매달리는 거 같겠지만, 자기감정에 솔직하지 못해서 사랑이 사랑인지 모르는 게 더 구질구질해요.”

  그리고 무슨 의미인지 모를 표정을 한 채 뒤돌아 여름을 바라본다.

 “영화에 나오는 운명 같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거 같은 환상적인 장면만 사랑인 건 아니잖아요.”

  그런 제연에 여름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한 걸음씩 제연을 향해 내딛으며 말한다.

 “쉽게 져주지 않는 사람이 내가 한 번 져준다 이런 마음으로 져주는 거, 티격태격 오가는 대화 끝에 잠깐의 웃음기라도 머금는 거, 당연하지 않았던 함께 보내는 일상이 차츰차츰 당연해지는 거, 나도 모르는 새에 알아간 상대방의 특징에 맞춰서 서서히 바뀌어가는 거. 다른 게 아니라 이런 게 사랑이라고요.”

  어느새 성큼 제연과 여름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세 발자국이면 제연의 앞에 도착한다.

 “좀 알았으면 좋겠는데.”

  셋,

 “서울 돌아가서 이번 학기동안 열심히 생각해봐요.”

  둘,

 “기왕 생각하는 김에 사랑인 거 알아채면 저야 좋고요.”

  하나.

 “제 감정이 뭔지 확실해지면 제대로 된 고백 하라는 말. 아직 유효한 거죠?”

  언제 자기가 억울함을 잔뜩 묻힌 표정으로 사랑을 외쳤냐는 둥 코앞에서 제연을 바라보는 여름의 표정은 평상시 같았다. 사랑스러운 웃음과 휘어져라 웃을 때면 슬로우 모션처럼 싱긋 감았다 떠지는 눈매, 주름이 잡혔다 펴지는 콧대, 슬쩍 파이는 한쪽 보조개, 기분 좋게 올라간 입 꼬리까지. 매번 제연을 마주할 때면 변하지 않던 여름의 기본값과도 같은 표정. 사랑이라 그런 거라는 사실을 제연만 몰랐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결국 속절없이 흘러버린 시간 속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빤히 제 시야에 여름만을 담고 있는 제연의 등살이 떠밀렸다.

 “아저씨, 저희 버스 타요! 잠시만요!”

  …이제 정말 가야할 시간이야.

  인도네시아에서의 헤어짐은 다시 만나는 순간을 기약할 수 없어 이 말을 듣는 순간 그토록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분명 다시 만날 거니까. 내가 다시 찾아갈 거니까. 짐 가방을 함께 버스 안에 얹어주며 제연의 어깨를 가볍게 쓴 여름은 버스를 내리며 작게 안부 인사를 건넸다.

 “잘 지내고, 잘 기다리고 있어요.”

  버스 문이 닫히고, 버스가 떠났다. 작은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오래도록 눈에 담은 여름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털털하게 돌아섰다. 얼른 집에 돌아가서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우리 이야기는 이제야 비로소 진짜 시작점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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