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매일 크리스마스
작가 : 예서
작품등록일 : 2020.8.20

믿었던 전 남자친구에게 통수를 맞은 날 천애고아가 된 소원. 나만 빼고 다 행복한 크리스마스 이브날의 거리에 자살을 결심하는데…… "안 돼!" 누구세요? 어느새 집에 들어온 웬 남자가 자살을 막고 있다. 말하는 사슴까지 데려온 남자는 자기가 나만의 산타라는데.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인간 한 명과 산타 한 명, 사슴 하나(?)의 이상한 동거가 시작된다. 다음 크리스마스까지 이 동거 무사히 끝낼 수 있을까?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잖아
작성일 : 20-09-30 17:12     조회 : 196     추천 : 0     분량 : 7820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다.

 

 짙은 선글라스 때문에 잘못본거라고 넘겼었던, 자신을 지나쳐 뛰어가던 남자와 서있는 남자의 실루엣이 순식간에 눈앞으로 겹쳤다.

 

 머리는 아니라고 판결을 내리는데, 마음은 판결을 뒤집을듯 요동쳤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몸이 더 빨랐다.

 

 "차 세워요! 당장!"

 "네? 왜 그러세요? 달리는 도로 한복판에서 어떻게 차를 세워요 아가씨."

 "빨리 세워요! 빨리!"

 

 얼굴을 뗀 창에는 그녀의 피부에 발라진 파운데이션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당장이라도 문을 열고 뛰어내릴듯이 구는 탓에 기사는 속으로 욕을 퍼부으며 주위를 살폈다. 진짜 이 짓도 못해먹겠네.

 

 주위 차들을 파고 들어 도보쪽으로 차를 돌리자, 항의의 경적이 빗발쳤다. 하지만 자기 밥줄을 생각하면 기사에게 그런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쿵!'

 

 문을 던지듯이 닫은 여인은 이제는 모퉁이에 서있는 대한의 실루엣을 향해 뜀박질을 시작했다. 굽 높은 구두가 속력을 내는 데 방해가 되었다. 사려면 최신 휴대폰 몇 개 가격은 줘야하는 신상 구두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구두를 땅에 벗어 던졌다.

 

 "아가씨!"

 

 차를 대충 주차하고 여인의 뒤를 쫓아온 남자가 구두를 집어들며 그녀를 불렀다. 하지만 여인의 귀에는 전혀 닿지 못했다. 그녀가 달리는 동시에 대한은 걸음을 옮겨 같이 있던 소원과 모통이에서 사라져버렸다.

 

 "기대한! 기대한! 대한아!"

 

 분명 너였다. 새벽마다 잊지 못해 떠오르던 그 얼굴이, 항상 유쾌하게 눈과 입에 호선을 그리며 웃던 얼굴이 네가 아닐 수가 없었다.

 

 모통이에 도착한 여인이 숨을 고를 새도 없이 사방을 두리번거지만 애석하게도 대한은 보이지 않았다.

 

 "기대한!"

 "정말 왜 이러세요. 사람들이 다 쳐다봐요."

 "봤어요? 기사님도 봤죠."

 "뭐를요?"

 "흰 색 반팔티 입은 남자요. 여기있었잖아요."

 "어…… 저는 잘 모르겠는데."

 "아는 게 뭐예요 대체!"

 

 맙소사. 안 그래도 까다로워 비위 맞추기 힘든데 이제는 보라고 한 적도 없으면서 못봤다고 짜증을 낸다. 갑자기 뒷골이 당기는지 기사는 한 손으로 뒷목을 부여잡았다.

 

 "아닌데, 맞는데. 그 애가 맞는데. 분명 대한이었어. 근데 그게 말이 돼? 안 되지. 절대 안 되지."

 

 너의 생 끝자락을 눈 앞에서 지켜본 나인데, 네가 살아있다는 건 말이 안 됐다. 그런데 그렇게 닮을 수가 있나? 기억 속에서 걸어나온 것처럼 쏙 빼닮았 수가 있어? 혼란스러운 머리에 갈 곳 잃은 발이 움찔거렸다.

 

 횡설수설하는 그녀를 지켜보며 기사는, 아무래도 정신병이 생긴 거 같다고 잠정결론을 내리며 이번 달 안으로 사표를 내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

 

 

 관리가 잘 된 물을 머금은 잔디들 사이 돌길을 걷던 그녀는 혼란스러운 머리에 옆에 세워진 돌 조각상을 붙잡았다.

 

 "정신차려. 정신 차리라고 하미정. 살아있을 리가 없잖아. 살아있는데도 나한테 안 왔을 리는 더더욱 없고."

 

 눈을 감으면, 온 세상이 빨갛게 달아오르던 그 날이 펼쳐져서 불면증에 시달리는 자신이었다.

 

 대리석 바닥이 펼쳐진 복도를 걸어 다다른 거실에 그녀의 엄마와 고모가 있었다. 화려한 유리구슬이 달려있는 샹들리에 아래서 커피를 마시던 엄마가 그녀를 발견하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줌마가 백화점 갔다고 하던데 왜 집에 왔어?"

 "미정이구나."

 "안녕하세요. 그냥 일이 좀 생겨서."

 "밥은 먹었어? 아빠한테 한 소리 들었다면서. 그러게 내가 진작에 적당한 놈 잡아다 살랬지. 엄마 말 허투루 들어서 좋을 거 하나 없다니까. 너 그렇게 허송세월 보내서 지금 나이가 몇 개인지를 봐라."

 "안 그래도 머리 아파 죽겠는데 왜 엄마까지 못잡아먹어서 난리야!"

 "어머? 고모보는 데서 다 큰 애가 엄마한테 소리나 지르고 참 잘하는 짓이다 잘하는 짓이야. 왜 아주 집이 떠나가라 지르지."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고 계단을 올라가는 그녀를 불만스럽게 쏘아보던 그녀의 엄마는 다시 금으로 장식이 된 찻잔을 입에 댔다. 당최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쟤가 아가씨를 닮았나봐. 얘가 참 남자쪽에 순진해."

 "그게 무슨 뜻이에요?"

 "아 나쁜 말이 아니라, 그냥 그, 무슨 말인지 알죠?"

 

 멋쩍게 말을 흐리며 웃는 그녀를 보며, 미정의 고모는 속으로 냉소를 삼켰다. 찻잔에 담긴 커피가 동이나자 부드럽게 잔을 탁상에 올려놓은 그녀가 옆에 놔두었던 가방을 집고 일어섰다. 단발이라고 하기에는 긴 그녀의 단정하게 컬이 들어간 머리카락이 다함께 흔들렸다.

 

 "그럼 가볼게요 언니."

 "왜 더 있다가지. 아 맞아. 이번에 미술관 전시회있는데 아가씨도 올래요? 와서 한적하게 작품도 보고 담소도 나누고."

 "저는 됐어요. 그 날 회사 일정도 있고 해서. 그럼 나중에 봐요."

 

 단칼에 거절한 미정의 고모가 걸음을 옮겼다. 아버지가 임종을 앞 둔 사람한테 할 말인가. 따지고보면 자기 시아버지기도 한데 철이 없어도 저렇게 없을 수 없었다.

 

 얼마 안 되는 나이차였지만, 미정의 엄마가 좀 더 많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얼굴을 보았을 땐 눈매에 자리한 주름과 입 주변의 주름이 확연히 미정의 고모가 더 위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심플하면서도 단정한 검은 구두를 신은 그녀가 집을 나서는 것을 확인한 미정의 엄마가 팔짱을 끼고 몸을 돌렸다. 하여간 참 재미 없게 산다니까.

 

 '쿵쿵.'

 

 "엄마!"

 "넌 또 뭐야. 왜 불러 불안하게."

 "엄마 대한이 죽은 날……"

 "야! 아직도 그 놈 얘기야? 아주 내가 그 모자를 집에 들이는 게 아니었는데!"

 "내 말 좀 들어봐. 대한이 죽었을 때 엄마가 나 못보게 했었잖아. 대한이 죽은거 확실해? 엄마가 직접 봤어?"

 "워낙 흉해서 나도 안 봤지만 죽은건 확실하지."

 "그러니까 죽은 걸 직접 본건 아니잖아. 그러면 살아있을 수도 있는거 아니야? 혹시 모르잖아, 죽은 게 다른 사람일지."

 "이건 또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람. 너 허튼 소리 할거면 그냥 올라가. 아주 골이 다 아파 골이!"

 

 한 마디만 더 하면 폭풍우가 몰아칠 걸 예감한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주체 못할 혼란스러움에 광인이 되는거 같았다. 그러고보니 이상했다. 벌써 십 몇 년이 지났는데, 어째서 내가 너라고 생각한 실루엣은 십 몇 년전과 한치도 다름이 없었는지. 하다하다 이제 환각을 보는가 싶어 눈꼬리에 허탈함이 걸렸다.

 

 

 *

 

 

 입사 첫날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가 시작됐다. 점심을 입으로 먹었는지, 코로 먹었는지도 가물가물할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주문 전화를 받고, 장부를 기록하면 되는 일이래서 간단할 줄 알았는데 그건 순전히 착각이었다.

 

 "소원 씨! 내가 카피 부탁한 거 아직 멀었어?"

 "네, 네! 잠시만요……!"

 

 아니 무슨 버튼이 이렇게 많아? 뭘 눌러야 하는 거야. 이건가? 잘못 눌렀다가 고장 나면 어떡하지? 내가 알던 복사기랑 다르잖아!

 

 복사기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와중에 구원의 손길이 나타났다.

 

 "이거 누르면 돼요."

 

 어린 막내가 들어왔다고 반겨주던 남사원이었다. 고마움에 고개가 연신 숙여졌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봐요. 소원 씨 보니까 나 처음 입사했을 때 생각난다."

 

 멋쩍게 웃어보인 뒤 발을 옮겨 카피를 부탁했던 여대리에게 인쇄물을 갖다줬다.

 

 “여기요.”

 “어, 수고했어.”

 

 제 자리로 돌아온 소원이 의자에 앉아 한숨돌리려는 찰나, 어느덧 곁에 온 사장이 소원을 불렀다.

 

 “잠시 얘기 좀 할까?”

 

 옥상 바람에 휘날리는 사장님의 머리칼은 세월을 맞아 희끗했다. 만약 아빠가 살아계셨다면 아빠 머리색도 저러지 않았을까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엄마라는 존재는 추억은 고사하고 기억도 전무했지만 그래도 넘치도록 사랑을 쏟아붓던 아빠덕으로 부족하게 사랑받으며 자라진 않았다.

 

 소방관이라는 직업 때문에 몸에 잔상처를 안 달고 있는 날이 없었지만 아빠는 항상 나에게 불보다 더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을 짓고 세상 더없이 다정하게 ‘공주야, 아빠 소원아’라고 부르면 세상에서 제일 잘난 애가 된 기분이었는데.

 

 “큼.”

 

 헛기침을 하는 사장에 과거 회상에 끝낸 소원이 사장을 응시했다. 뒤늦게 저를 불러내 회사 옥상으로 데려온 의중이 뭔지 궁금증이 일었다. 하루종일 허둥지둥대서 핀잔을 주려고 부른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어깨가 빳빳히 굳었다.

 

 하지만 다행히 사장님의 입에서 나온 건 질책도, 성도 아니었다.

 

 “첫날부터 정신 없지? 원래 이렇게 분주하진 않아. 그동안 아들이 도와준다고 출근했었는데, 대학교 입학 전까지 놀겠다고 하는 바람에 일이 몰렸거든.”

 “아……”

 “대화도 나누고 그랬어야 되는데 오자마자 일부터 시켜서 당황했지?”

 “아니에요. 제가 일이 서툴러서, 얼른 배워야할 거 같아요.”

 

 배우려는 자세가 흡족했는지, 사장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요즘 젊은애들 답지 않게 마인드가 좋네. 이번에 졸업했지? 내 아들이랑 같은 학교 다녔던데. 동급생인데 혹시 아나? 이놈이 학교생활은 나쁘지 않게 하는지 반장도 하더라고.”

 

 안 좋은 예감이 머리를 휘감았다. 목이 뻣뻣히 굳었다.

 

 학교에서 불미스러운 거짓 소문이 자자했는데, 같은 학교를 나왔다니. 득이 될 게 없는 상황이었다. 거기다 반장이라니, 순간적으로 비릿하게 입꼬릴 말아올린 성준이 뇌리를 스쳤다.

 

 설마. 아니겠지, 아니겠지…… 반장이 몇 명인데. 동급생이 몇 명인데.

 

 “이름이 임성준인데. 아나?”

 

 등뒤로 소름이 쫙 끼쳤다. 설마가 비수가 되어 심장에 내리꽂혔다. 기회인줄로만 알았던 편의점 점장님이 주신 일자리는 늪이었다.

 

 입사 최단 기간 사퇴 기네스북, 이런 것도 있나? 있다면 한 번 노려볼 만 한데.

 

 침착하게 들숨, 날숨을 반복했지만 조마조마한 속내를 완벽히 숨기긴 힘들었다.

 

 학창생활을 망친 놈이 이제는 직장생활을 망치려 한다. 끔찍하게 얽히기 싫은 놈인데 이런 식으로 얽히게 돼 상심이 컸다.

 

 답을 채근하듯 ‘응?’하고 되묻는 사장에 소원은 난처했다.

 

 알긴 아는데, 너무 잘 알아서 문제였다. 좋게 얘기할 수도, 나쁘게 얘기할 수도 없는 상황에 꿀먹은 벙어리 신세였다.

 

 한편으로 사장이 저에 대해 성준한테 물어보면 어쩌나 걱정이 됐다. 필시 그 거짓말을 나불거릴텐데, 아빠로서 아들을 철썩 같이 믿을 게 분명했다.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최대한 시간을 벌어야했다. 일단은 대충 얼버무리자는 생각으로 입을 열려는 찰나, 사장의 주머니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네, 사장님. 네. 알겠습니다. 바로 확인해보겠습니다.”

 

 깍듯하게 통화하는 걸 미루어보아, 거래처 사장에게서 연락이 왔나보다.

 

 소원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숨통을 조이던 물음에서 해방됐다는 게 일단은 다행이었다.

 

 금방 전화를 끊은 사장이 멋쩍게 웃었다.

 

 “아무래도 우리 성준이는 모르나보네. 급히 가봐야할 것 같은데. 이제 그만 내려갈까?”

 “네.”

 “내 자식이랑 나이가 같아서 그런지, 꼭 딸 같아. 앞으로 서로 잘해보자.”

 

 격려하듯 어깨를 약하게 두드리는 손짓에 마음에 짐이 생겼다. 잘해볼 수 없을 거 같아요.

 

 우습게도 마음이 무거워질수록 대한이 보고싶었다. 대한의 위로를 받으면 마음을 짓누르는 이 짐이 씻겨져 나갈 것 같았다. 근심도 고통도 사라지는 티없이 맑은 웃음이 간절했다.

 

 

 *

 

 

 금전적인 도움을 주는 별이 나타난 덕에 아르바이트를 할 필요가 없어진 대한은 집에 홀로남아있었다.

 

 소원의 졸업앨범을 꺼내 천천히 넘기던 대한의 손이 멈췄다. 이소원, 세글자 위에 어색하게 입꼬릴 올린 소원의 사진이 있었다. 카메라 앵글을 쳐다보며 긴장한 티가 역력히 묻어나서, 그게 또 귀여웠다.

 

 한참을 흐뭇하게 졸업사진을 보던 대한이 그 밑의 성준을 발견하고 싸늘히 낯을 굳혔다.

 

 소원에게 한 극악무도한 짓들을 그냥 넘겨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하는 게 세상의 이치였다.

 

 당장은 벌을 모면했을지 몰라도 언젠가는 제 행동에 책임을 져야할거다. 그렇게 만들어줄거였다.

 

 대한이 진지한 낯으로 졸업앨범을 덮었다. 지피지기백전불태.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지지 않는다. 자료조사도 끝났고, 실패하지 않을 계획도 있다. 이제는 작전을 개시할 시간이었다.

 

 어디론가 전화를 건 대한이 전화받은 이에게 살갑게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죠?”

 ‘네. 소원이랑 가까운 오빠라고……’

 “만나서 얘기 좀 하고 싶은데, 언제쯤 시간 괜찮으세요? 제가 편하신 곳으로 가겠습니다.”

 

 몇 번의 말이 오가고, 전화를 끊은 대한이 시계를 확인했다. 소원의 퇴근시간까지 한 시간이 남아있었다.

 

 일은 잘 하고 있을지, 회사 사람들은 어떨지, 점심은 맛있게 먹었는지, 일상의 모든 게 궁금했다. 미주알고주알 작은 참새입으로 연신 말해댈 걸 생각하니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다, 갑자기 그 참새입과 제 입이 닿았던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입술이 닿은 채 놀라서 커진 서로의 두 눈이 코앞에 있었던 것까지 그려지자, 청정수 같은 눈망울에 열기가 차는 게 느껴졌다.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너, 정신차려.

 

 속으로 소리친 대한이 벌떡 일어섰다. 가벼운 헤프닝이라고 여겼던 일이 왜 아른거리는지.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잡념을 털어낸 대한이 스스로한테 주문을 걸었다.

 

 ‘동생 상대로 그런 생각하면 사람도 아니다, 넌.’

 

 

 *

 

 

 퇴근할 때 소원은 녹초가 돼 있었다. 돈 버는 데 쉬운 게 어딨겠냐만은, 처음 하는 직장생활은 생각보다 고단했다. 쿠션팩트를 열어 거울에 제 얼굴을 비추자, 아이라인이 눈밑까지 내려앉은 팬더가 있었다.

 

 “이러고 있던거야 나?!”

 

 황급히 팩트를 찍어누르는 와중 거울속으로 한 남자의 팔뚝이 나타났다.

 

 “집에 가요 소원씨?”

 

 복사기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 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강찬승 사원이 있었다. 고개를 꾸벅 숙인 소원이 감사인사를 건넸다.

 

 “네. 아까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뭘요.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 불러요.”

 “감사합니다.”

 “어디로 가요? 지하철이나 버스 안 타는 거 보면 집이 가깝나봐요.”

 “네. 걸어서 갈만한 거리라서요. 이쪽으로 쭉 가면 집이에요.”

 

 손가락을 쭉 펴서 길가를 가르키는 소원에 찬승이 반가운 기색으로 말했다.

 

 “그래요? 나도 이쪽으로 가는데. 앞으로 같이 갈래요?”

 

 도와준 건 고맙지만, 그건 싫었다. 어차피 관둬야 하는 직장이었기에 회사 사람이랑 얽히는 게 부담스러웠다. 별개로 제 마음이 그를 상대로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야박하게 딱 잘라 싫다고 말하기엔 자신에게 그만한 강단이 없었다. 잔뜩 기대하고 있는 눈빛에 거절의사를 표하기도 어려워서 뜸을 들이는 사이 가방 속에서 휴대폰이 부르르 떨어댔다.

 

 “잠시만요.”

 

 가방을 뒤져 휴대폰을 꺼낸 소원의 낯에 화색이 돌았다. 휴대폰 화면에 떠있는 ‘산타아저씨’에 절로 웃음이 났다.

 

 “여보세요?”

 ‘일 끝났어?’

 “끝나고 집가고 있는 중이었어.”

 ‘나 안 보고 싶었어?’

 

 뜬금 없이 이게 무슨 질문이야. 연인들이나 할 법한 말 아닌가? 당황해서 어버버거리는 사이 더 대담한 질문이 들어왔다.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잖아.’

 

 그야 당연히 보고 싶었다. 회사에서 바쁜 와중에도 대한 생각만은 막을 수 없다는 듯이 불쑥불쑥 떠올랐다.

 

 침묵을 지키는 사이, 대한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실망이네, 이소원. 왜 말이 없어. 오빠 안 보고싶었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목에 따뜻한 팔이 둘러지고, 라벤더 향기가 소원을 덮쳤다.

 

 “보고 싶을 줄 알고 데리러 왔더니.”

 

 누구 심장을 죽이려고 이러나. 심장이 폭발 직전까지 치닫은 소원이 뒤를 돌아봤다. 특유의 깔끔한 미소를 지은 대한의 얼굴이 한 뼘 거리에 있었다.

 

 계속해서 뜀박질하는 심장에 소원은 애써 호흡을 일정하게 하려 노력했다.

 

 그런 사이 팔을 거둔 대한이 찬승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회사 사람 같아서 일단은 인사를 하고 본거였는데, 대한의 감은 정확했다.

 

 목에서 거둬진 팔의 느낌에 아쉬워하던 소원이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찬승을 바라봤다.

 

 “일행이 있어서 같이 못갈 거 같아요. 죄송합니다. 내일 회사에서 봬요.”

 “아…… 그래요. 내일 봐요 소원씨.”

 

 꾸벅 배꼽인사를 한 소원이 대한을 향해 환히 웃었다. 좋아도, 어쩜 이렇게 좋나. 모든 피로가 다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한껏 헤실거리며 멀어지는 소원을 뒤에서 찬승이 한순간에 돌변한 얼굴로 험악하게 응시했다.

 

 무언가 쎄한 기분에 대한이 지나온 자리를 곁눈질했지만 제 쪽을 주시하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가정부 아들로 눈치밥먹으며 살아온 세월 탓에 감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다 자부할 수 있는 자신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는 대한에 의아해진 소원이 물었다.

 

 “왜그래?”

 “아냐 아무것도.”

 ‘느낌탓인가.’

 

 금세 없어진 나쁜 느낌에 대한은 제 감이 틀렸다고 판단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7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잖아 2020 / 9 / 30 197 0 7820   
16 가정부 아들 2020 / 9 / 29 216 0 5301   
15 뽀뽀가 이렇게 야한 거였나 2020 / 9 / 29 208 0 5354   
14 집착이 심하시네요. 안 그렇게 생기셔서 2020 / 9 / 24 209 0 7589   
13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거 받아먹지 말랬지 2020 / 9 / 19 226 0 4938   
12 루덜프 아니고 루돌프 2020 / 9 / 16 202 0 6999   
11 세상에서 제일 멋있게 지키러 갈게 2020 / 9 / 14 236 0 5311   
10 가지고 노니까 좋았어? 2020 / 9 / 11 204 0 6493   
9 재밌네 2020 / 9 / 7 212 0 4357   
8 질투해 2020 / 9 / 5 219 0 7135   
7 진짜가 아니라 아쉬워? 2020 / 9 / 2 212 0 4343   
6 네가 왜 거기서 나와? 2020 / 8 / 31 215 0 6246   
5 가난하다는 건 2020 / 8 / 30 214 0 4477   
4 가긴 어딜 가요 2020 / 8 / 27 216 0 6469   
3 지켜줄게 2020 / 8 / 24 247 0 5562   
2 다음 크리스마스가 올 때까지 2020 / 8 / 22 231 0 5670   
1 산타라고요? 2020 / 8 / 20 370 0 6636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