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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열여덟 스물아홉
작가 : 애플타이거
작품등록일 : 2020.9.30

열여덟, 양양, 한여름, 새파란 바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2주간 전부를 나눈 수현과 진호가 11년 후, 청춘의 끝자락에서 재회한다.

 
14화. 그럼에도 아빠와 아들
작성일 : 20-09-30 17:00     조회 : 225     추천 : 0     분량 : 4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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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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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얼굴이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방에 있던 거 아녔어?”

 

 입술 옆에 밴드를 붙이고 나타난 진호를 태식이 멈춰 세우고 놀라서 따져 묻는다.

 

 “유난은. 화장실에서 넘어졌어요. 그런데 애들은요?”

 

 “화장실에서 어떻게 넘어져야 입술 옆에 밴드를 붙일 수 있는데? 그리고 이거 병원에서나 해줄법한 상처치료잖아? 진호야, 무슨 일 있었냐고 아빠가 지금 묻잖아.”

 

 태식이 알면 귀찮게 할 것이 뻔했기에 진호는 뒷문으로 몰래 가게를 빠져나가 근처 병원에서 살짝 찢어진 부위를 세 바늘 정도 꿰매고 오는 길이었다. 그러나 부위가 부위인지라 눈썰미 안 좋은 사람도 알아차릴 정도니 남들보다 눈썰미가 뛰어난 태식인 오죽하겠냐.

 

 진호가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말라는 듯 자신의 팔을 붙잡고 놔주지 않는 태식의 손을 뿌리치고 가게를 나서지만, 태식의 그 뒤를 기어코 따라 나와서 진호를 거칠게 돌려세운다.

 

 “네가 양양에 와 있는 이상, 난 너의 보호자야. 네가 왜 병원까지 가서 치료를 받고 올 정도의 상처를 입었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겠어.”

 

 “웃기네 진짜. 이까짓 상처가지고도 이렇게 호들갑인 사람이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정글짐에서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졌을 땐 왜 안 왔어? 열이 40도까지 올라서 할머니가 내 몸을 닦아내고 닦아내도 열이 내리지 않아서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갔을 때는? 친구가 던진 공에 얼굴을 맞아서 코뼈에 금이 갔을 땐? 13살 때 수학여행으로 제주도에 갔다가 바다에 빠져서 갈비뼈 3대가 나갈 정도로 강한 심폐소생술을 받은 끝에 겨우 살아났을 땐? 중2때 같은 반 친구랑 싸움이 붙어서 정학 맞을 위기를 간신히 넘기고 그 애 엄마아빠가 우리 반으로 찾아와서 선생님이랑 애들이 다 보는 앞에서 내 뺨을 셀 수 없이 갈길 땐? 내가 그때 처음으로 아빠한테 연락한 거 알지? 할머니랑은 가끔 통화하는 것 같아서 할머니 몰래 할머니 핸드폰에서 아빠 이름 찾아내서 내가 연락한 거 기억하지? 그런데 왜 끊었어? 내가 몇 번이나 걸고 또 걸었는데 왜 다 끊었어?”

 

 태식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그동안 태식에게 쌓인 묵은 감정을 기세 좋게 퍼붓던 진호가 갑자기 벽면에 기대서서 온몸을 바들바들 떤다. 평정심이 산산 조각난 탓에 목소리까지 쇳소리가 섞여 제대로 나오지 않는데, 진호가 옆구리를 부여잡고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세워 태식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진호야... 괜찮아?”

 

 “그때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얼마나 외로웠는지 아빤 상상도 못 할 거야. 호적에는 아빠가 있다는데 지금까지 난 할머니랑 단 둘이 산 기억밖에 없어. 학교에 가도 어딜 가도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했어. 할머니랑 산다고. 그게 뭐가 잘못이야? 우리 할머니가 지들한테 해코지를 했어? 돈을 달라고 했어? 우리가 지들한테 무슨 피해를 줬다고. 그런데 어느새 내가 그 손가락질에 길들여져 있던 거야. 중2때가 제일 심했어. 애들 입에서 할머니에 할만 나와도 주먹부터 휘둘렀어. 그 애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오든 나쁜 말이 나오든 상관없었어. 내 심기를 건드리기만 하면 사람이든 물건이든 다 부숴버렸어. 자존감이란 게 없었어. 무슨 일만 있으면 부모를 찾는 학교에 날 위해 찾아와줄 부모는 없었고, 그럴수록 난 멀쩡한 얼굴과 선생님들까지 벌벌 기는 머리만 믿고 갖은 꼰대짓을 해댔어. 그런데 그 날은 달랐어. 학교에서 의도치 않게 짱이 된 나를 전학 온 애가 복도로 불렀어. 난 당연히 나갔지. 그런데 다짜고짜 나를 부모도 없이 큰 불쌍한 새끼라고 부르더니 내 복부를 가격하는 거야. 난 허리도 굽히지 않고 배도 붙잡지 않고 그 새끼 앞에 바짝 다가서서 물었어. 지금 날 뭐라고 불렀냐고. 그런데 그 새끼가 실실 쪼개는 거야. 그러더니 ”너 같은 놈들은 냄새부터 달라. 왜 할머니랑 사는 놈들은 몸에서 청국장 냄새가 날까? 토 나오게.“ 그래서 죽어라 팼어. 내가 잘못한 거야? 잘못은 그 새끼가 먼저 했는데, 왜 나만 처벌을 받고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그런 굴욕을 맛봐야 했던 거야? 그때 아빤 왜 내 옆에 없었어!”

 

 “진호야...”

 

 진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지난 10년 동안 태식은 진호의 존재를 부정해왔다. 명문대의대 진학을 앞둔 전도유망한 학생에서 건설현장을 전전하는 일꾼으로 추락한 자신의 굴곡진 인생을 태식은 모두 진호의 탓으로 돌렸었다.

 

 진호가 절실하게 태식을 필요로 했던 그때, 태식은 서핑에 푹 빠져 호주에 장기간 머물고 있었다. 진호의 연락은 수신거부 리스트에 포함시킬 정도로 귀찮고, 귀찮은, 귀찮기만 한 것이었다.

 

 “짜증나게 내 이름만 부르지 말고 무슨 말이라도 좀 해봐. 변명이라도 좀 해봐. 불쌍한 척 피해자 코스프레 그만하고 바쁜 일이 있었다든지, 너인지 몰랐다든지, 그때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다른 사람이 받은 것 같다든지. 그럴 듯한 이유를 좀 대보라고. 그게 없으면 거짓말이라도 해봐. 사람 열 받게 입 꾹 다물고 그러고 있지 말고!”

 

 “미안하다. 이 말 말고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널 내 아들로 인정하고 받아들인 지 사실 얼마 안 됐어. 양브로샵 누구도, 서핑을 하면서 알고 지낸 사람들조차 내게 아들이 있단 걸 아는 사람이 없었어. 결혼했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답하면, 내가 무슨 말을 따로 하지 않아도 다들 날 당연히 자식 없는 미혼남으로 알고 대했어. 그런 사람들을 붙잡고, 열여덟에 바닷가에 놀러가서 사고 쳐 얻은 남자아이가 있다. 그 놈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의대진학을 포기하고 공사판을 전전하며 돈이 되는 일이란 일은 닥치는 대로 하며 살아왔다. 같은 구질구질한 얘기 따위 하고 싶지 않았어.”

 

 “내가 아빠 인생에 걸림돌이었으니깐. 나만 없었으면 탄탄대로였을 인생이 나 하나 때문에 처참하게 박살난 것도 모자라 회생불가 상태에 이르렀으니깐. 빡 쳤겠지.”

 

 “맞아. 네 말이 다 맞아. 너만 보고 죽어라 8년을 달렸어. 그러다 네가 초등학교 입학하는 날, 입학식이 모두 끝나고 네가 나한테 달려와 안기는데... 온몸에 전율이 돋더라. 폐부를 갈기갈기 찢는 고통스런 전율이.”

 

 “그래서 도망쳤구나. 내 인생에서.”

 

 “응. 비겁하지만, 그땐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어.”

 

 “아니다. 버렸다는 말이 맞겠구나. 나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것 같았어. 내가 죽으면 너랑 할머니는? 그래서 말도 없이 사라져서 연락을 끊고 살았어. 매달 돈을 보내는 것으로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을 대신했었어.”

 

 “그래서 행복했어?”

 

 “...”

 

 “행복했구나... 난 지독하게 불행했는데...”

 

 “미안하다.”

 

 “재수 없으니깐 그 말 좀 그만해. 이 정도면 된 것 같아. 나 이제 서울 올라갈게.”

 

 “진호야.”

 

 “아빠가 보내준 돈 덕분에 할머니랑 부족함 없이 살았어. 그건 인정할게. 나만 바라보는 할머니 때문에 항상 숨통이 조여진 상태로 살았지만... 사실 죽지 않으려고 공부를 시작한 거야. 해야 했어. 할머니 얼굴에 유일하게 근심이 사라지는 순간이 내 성적표를 볼 때 뿐이었거든. 그때가 그나마 내가 집에서 맘 편히 숨 쉬고 발 뻗고 누울 수 있는 시간이었어.”

 

 “할머니한테 얘기 들었어. 이번에 장학생으로 영국 사립학교로 교환학생 간다고.”

 

 “그런데 말이야, 난 할머니가 나를 위해서 지극정성으로 나를 보살핀다고 생각했거든?”

 

 울그락불그락 날뛰던 진호의 감정이 어느새 급속도로 냉각돼 차디찬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진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태식은 알고 있었다. 도대체 진호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곪아 있는 걸까? 자신의 손길이 그 상처를 낫게 해줄 수 있긴 할까? 노란 진물이 흘러내리고 악취가 진동하는 진호의 마음 구석구석을 10년 만에 아빠랍시고 나타난 자신이 달래주기는커녕 찾아낼 수 나 있을까?

 

 “난 그저 아빠의 대용품이었던 거야. 할머니의 전도유망했던 아들 차태식이 이루지 못한 꿈을, 할머니의 꿈이기도 했겠지. 아무튼 그 꿈을 이뤄줄 아바타였어 난. 그래서 몸에 좋은 음식부터 보약까지, 본인은 입에도 대지 않고 전부 나만 먹였던 거야. 돈 아깝다고 만 원짜리 파마도 안하고 숱도 없는 긴 머리를 낡은 비녀 하나로 꽂고, 그 흔한 고쟁이도 함부로 사지 않고 엉덩이가 반질반질 닳아서 떨어질 때까지 입고 다녔던 거야. 그 꼴로 내가 다니는 학교를 쉼 없이 오갔어. 귀한 손주 길 잃을까, 무거운 가방 메고 다니느라 어깨 아프지 않을까, 나쁜 놈들한테 붙잡혀서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까 등등. 난 할머니가 오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는데, 내 체면 따윈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당신의 생각만 중요했던 할머니는 창피한 그 꼴로 항상 내 주변에 머물러있었어. 왜? 당신의 아들이 못 다 이룬 의사의 꿈을 나를 통해 이루려고. 그래서 자신한테는 돈 한 푼 안 쓰고, 내게 다 썼던 거야.”

 

 “할머니는 너를 진심으로 아꼈어. 오해고 곡해야.”

 

 “하... 얘기하고 나면 후련할 줄 알았는데 왜 기분이 더 더럽지? 잘 살아. 용돈은 고등학교 때까지만 부탁할게. 호적에 올라가있는 아들로서 그 정도는 부탁해도 되지?”

 

 “진짜 이렇게 그냥 갈 거야? 진호야!”

 

 진호가 길거리에 태식을 남겨두고 자신의 짐을 챙기기 위해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태식은 더 이상 진호를 잡을 만한 면목이 없기에 넋을 놓고 가만히 서 있다.

 

 “야 여기서 정신 놓고 뭐해?”

 

 산발머리를 하고 담배를 피우러 나온 병진이 멍하게 서 있는 태식의 어깨를 툭 친다.

 

 “어? 일어났어? 몸은?”

 

 “보다시피. 너무 좋지. 그런데 비 맞고 서서 뭐해.”

 

 가랑비에 장시간 노출돼 있던 탓에 태식의 머리부터 몸까지 비에 흠뻑 젖어있다.

 

 “부탁 좀 하나 하자.”

 

 “얼마든지.”

 

 “진호 좀 강릉터미널까지 데려다 줘. 양양은 버스가 끊겼을 것 같아.”

 

 “한 2주 정도 있다 간다 하지 않았어? 갑자기 왜? 서울에 무슨 일 생겼데?”

 

 “아니 그냥. 공부해야지. 여기서 뭐해. 물도 무서워하는 애가 바닷가에서 할 일이 뭐가 있겠어.”

 

 “오랜만에 부자 간의 정을 쌓으면 되지.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어?”

 

 “부탁 좀 하자. 나 승범이네 가게 좀 들렸다 갈게.”

 

 태식이 병진의 어깨를 꽉 움켜쥐고 애써 씨익 웃어 보이고 자리를 뜬다.

 

 “무슨 일이 있구만?

 

 담배를 깊이 빨고 내뱉는 병진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진다. 태식을 알고 지낸지 3년이 다 됐지만, 이렇게 힘든 모습은 본 적이 없다. 끼어들 수 없는 부자 사이의 문제에 병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기에 그저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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