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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열여덟 스물아홉
작가 : 애플타이거
작품등록일 : 2020.9.30

열여덟, 양양, 한여름, 새파란 바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2주간 전부를 나눈 수현과 진호가 11년 후, 청춘의 끝자락에서 재회한다.

 
3. 양진호
작성일 : 20-09-30 15:34     조회 : 224     추천 : 0     분량 : 7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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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지붕 양쪽 모퉁이에 로프로 단단히 고정된 그늘막이 마당을 지나 대문 양 쪽에 문지기처럼 서 있는 은행나무에 단단히 묶여있다. 대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불구덩이와 파라다이스가 대치 중인 형국이다.

 

  기분 좋은 그늘이 내려앉은 마당 평상에 수현이 팬티 한 장만 입고 낮잠에 푹 빠져있다. 젖살이 남아있는 앳된 얼굴과 달리 지방 하나 허락지 않은 까무잡잡한 근육질 몸매가 뭇 여성들의 침샘을 꽤나 자극시킬 법한데, 멀찍이서 구부정한 자세로 세월아 네월아 걸어

 오던 복순할매가 매가 먹이를 낚아채는 속도로 수현의 낭심을 콱 움켜쥔다.

 

  “고놈 참 실하게 익었네. 우리 손자가 언제 이렇게 컸데?”

 

  무방비 상태에서 당한 일격에 수현이 신음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묵음 상태로 고통에 겨워하다 평상에서 떨어져 마당을 뒹군다. 복순할매는 뭐가 그리 흐뭇하고 좋은지 군데군데 휑한 치아 탓에 남 앞에서 절대 웃지 않는 사람이 소리까지 내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사내새끼가 엄살은. 그나저나 손가락 퉁퉁 붓도록 어망 손질한 보람이 있네. 이렇게 튼실하게 잘 큰 걸 보니.”

 

  “아 할매 진짜! 하지 마. 내가 한두 살 먹은 앤 줄 알아? 몇 번을 말해야 안 건들 건데? 아무리 내 할매여도 이건 안 돼. 소중한 거라고! 할매가 잘못 만졌다가 나 고자 되면 책임질 거야? 미래의 손주며느리한테 원망 받아도 괜찮아?”

 

  “지랄 염병하고 앉았네. 그렇게 만져서 터지면 그게 풍선이지! 고추냐? 정신 차리고 얼른 일어나서 태식이네 호박전 가져다주고 와. 바삭바삭 할 때 먹어야 맛있어.”

 

  “할매는 지금 내 고추보다 그깟 호박전이 더 중요해?”

 

  “미친놈. 이젠 하다하다 호박전이랑 지 고추를 비교하냐? 얼른 안 가!”

 

  결국 복순할매의 매서운 손맛을 보고나서야 수현이 삼선슬리퍼를 우겨 신고 호박전이 든 바구니를 머리에 인다.

 

  “날도 더워죽겠는데 무슨 호박전이야? 이걸 누가 좋아한다고. 시원하게 화채나 비빔국수를 해주든가.”

 

  “요놈 봐라? 사춘기도 조용히 지나간 놈이 요즘 왜 이렇게 말이 많아? 한번만 더 토 달아봐. 아주 그냥 그 잘난 고추만 달고 맨 몸으로 내쫓기는 수가 있어. 어망 손질 갔다가 저녁 늦게 올 수 있으니깐 태식이네서 아예 저녁까지 얻어먹고 와. 할매가 항상 고맙다고 하더라는 말도 꼭 전하고. 알겠어?!”

 

  퉁퉁 부은 얼굴로 서 있는 수현을 밀치고 대문을 나서는 복순할매의 손목을 수현이 확 움켜잡아 대문 안쪽으로 끌어당긴다. 가길 또 어딜 가냐는 엄한 수현의 얼굴에 복순할매는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수현의 손을 매섭게 내친다.

 

  “극성은. 좀 쉬어! 어망 하나 더 고친다고 우리 형편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잖아? 동네 할머니들처럼 여행도 다니면서 일 좀 쉬엄쉬엄 하면 안 돼?”

 

  복순할매가 돈이 아깝다는 이유로 건강검진은 언감생심이고 병원 한 번 간 적 없는 것은 물론이며, 하루하루 진통제와 파스로 버틴다는 것을 수현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몸 생각은 뒷전이고 아침에 다녀온 일을 또 간다는 복순할매의 말에 수현의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올 수 없었다.

 

  “안 돼. 너 대학 졸업 시킬 때까지 절대 안 돼. 핏덩이 같은 널 남겨두고 황망하게 죽은 네 엄마아빠 때문에라도 안 돼. 걔들 만날 날도 이제 얼마 안 남았는데, 칭찬은 바라지도 않지만 원망만은 듣고 싶지 않아. 이까짓 몸뚱이 어차피 죽으면 썩어 없어질 것인데, 뭣 하러 아껴? 너 허투루 안 키우는 게 내 남은 생의 과업이야. 그러니깐 넌 허튼 걱정 말고, 양심의 털이라도 난 놈이라면 공부하는 척이라도 좀 해! 학생이라는 게 책을 펴 본 역사가 없어요 역사가. 내가 잔소리를 안 하려고 해도 안 할 수가 없어.”

 

  “할매 닮아서 머리가 안 좋은 걸 어떡하라고.”

 

  “이 시키가! 한 마디를 안 져 한 마디를!”

 

  자식 앞세운 부모 마음을 누가 알까? 깊이 맺힌 슬픔과 한을 감히 누가 위로할 수 있을까? 수현에겐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 부모지만, 복순할매에겐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들과 딸같이 살가운 며느리였다. 팔자에도 없는 딸이 생겼다며 입만 열면 며느리자랑을 할 정도였다.

 

  일찍이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외아들을 키운 복순할매는 가난한 집에 시집와 구김살 없이 살갑게 구는 수현의 엄마를 복덩이라 부르며 진심으로 아꼈었다. 그러나 수현이 태어난 지 한 달 즈음 되었을 때, 이 행복은 복순할매가 보는 앞에서 산산조각 나버렸다.

 

  복순할매는 모유에 젖은 펑퍼짐한 옷만 입고 있는 며느리를 위해 고운 원피스를 준비해놓고, 아들에게 용돈을 쥐어주며 출산으로 고생한 며느리와 함께 강릉으로 데이트를 다녀오라며 괜찮다는 며느리를 억지로 차에 태웠었다. 그러나 복순할매와 수현의 배웅을 받으며 출발한 아들의 차는 마을 어귀에서 차선을 넘어온 트럭에 부딪쳐 방파제 아래로 추락했고, 아들과 며느리는 바닷물에 퉁퉁 부어 새파랗게 질린 몰골로 건져 올려졌다.

 

  “난 아직도 그날 데이트를 나가던 네 엄마 얼굴이 생생하게 기억나. 어찌나 곱고 예쁘던지. 진즉에 그렇게 해줄 걸. 꽃도 펴보지 못하고, 젖도 때지 못한 자식을 남겨두고 죽었으니... 다 박복한 내 탓이야. 내가 등 떠밀어서 내보내지만 않았어도... 아니다. 우리 집에 시집만 오지 않았어도 남부럽지 않게 살 아이였는데...”

 

  죽을 날을 받아놓은 사람마냥 복순할매는 나이가 칠십이 된 뒤로 부쩍 약한 소리를 하는 횟수가 늘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약한 소리를 할까?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일이나 하러 가. 나 대학 보낸다며~ 졸업까지 시킨다며~ 그러려면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지! 빨리!”

 

  그럴 때마다 수현은 일부러 더 철없는 애같이 굴었다.

 

  “썩을 놈! 안 그래도 지금 갈려고 했어!”

 

  씩씩하게 대문을 걷어차고 나가는 복순할매를 보내고 나서야 수현의 얼굴에 그늘이 내려앉는다. 자신에게 발목 잡혀 쉴 날 없이 고생하는 복순할매에게 언제쯤 편안한 삶을 선물해줄 수 있을지... 당장 해결할 수 없는 현실에 수현의 입에서 나이에 맞지 않는 한숨이 쏟아진다.

 

 

 

 

  뒤축이 푹 꺼진 수현의 삼선슬리퍼가 아지랑이가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도로 위에 귀찮게 닿는다. 한낮의 더위와 닮은 잔뜩 찌푸린 얼굴과 달리 수현의 입에선 연신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오고, 호박전이 든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춤을 추는 모습이 꽤나 안정적이다.

 

  태양의 열기가 닿는 모든 것이 신비롭게 부서진다. 천국처럼 아득한 수평선, 별을 뿌려놓은 듯 은빛으로 반짝이는 바다, 하얀 줄을 그리고 지나가는 배, 새빨간 등대, 얼기설기 쌓여있는 방파제, 말린 생선에 꼬인 초록빛 똥파리, 금 간 아스팔트를 비집고 올라온 잡초, 색 바랜 하늘색 버스, 괴상망측한 낙서로 도배된 버스정류장과 그 앞에 서 있는 진호까지.

 

  “학생! 안 타?”

 

  노상방뇨를 마친 버스기사가 바지춤을 배꼽 위까지 치켜 올리고 버스에 올라타면서 홀로 멀뚱히 서 있는 진호를 재촉한다. 진호는 답 대신 30인치 캐리어에 엉덩이를 걸쳐 앉는다.

 

  “학생, 한 시간 전에도 여기 있지 않았어? 서울에서 왔지? 딱 봐도 서울사람이네. 마중 나오기로 한 사람이 안 나왔어? 전화라도 해보지. 핸드폰 없어? 빌려줘?”

 

  “갈 길 가시죠?”

 

  진호가 귀찮아 죽겠다는 얼굴로 속내를 그대로 내뱉는다. 새파랗게 어린놈의 발칙한 기세에 기사가 일부러 바퀴를 공회전 시켜 모래바람을 잔뜩 일으키고 차를 출발시킨다.

 

  모래에 뒤덮여 까끌거리는 눈을 비비다말고 진호가 단숨에 버스 뒤꽁무니를 쫓아 운전석 창에 다다른다. 깜짝 놀란 기사의 모습에 진호가 짓궂게 웃으며 활짝 열려있는 창문에 매달리려는 순간, 낡은 버스가 철근이 다 뽑혀나갈 것 같은 괴성을 내며 훌쩍 달아난다.

 

  “수없이 어긋난 데도 기다릴게~ 아무리 가슴 아파도 웃어볼게~ 떠나서 안 돼 서둘러 져버리진 마~ 날 밀어내도 깊어지는 이 사랑을 봐~”

 

  끓어오른 전투력을 쓰지 못해 벌겋게 상기된 채 서 있는 진호 앞으로 수현이 계절과 맞지 않는 락발라드에 푹 빠져 이별을 통보하고 떠난 여자를 잊지 못하는 가사 속 남자에 빙의돼 절절하게 노래를 부르며 지나간다.

 

  “야!”

 

  “내 입을 막아도 세상이 다 아는데 왜 너만 몰라~ 왜 널 지킬 남자를 몰라~~~”

 

  바구니를 품에 안고 되지도 않는 바이브레이션 중인 수현 앞으로 은색 캐리어가 덜덜덜 굴러와 길을 막고 멈춰 선다. 그제야 수현이 김샌 얼굴로 캐리어가 굴러온 곳을 돌아본다.

 

  “귀먹었냐?”

 

  누가 봐도 서울사람으로 보이는 진호가 짝 다리를 짚고 삐딱하게 서서 수현을 쳐다보고 있다.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어디 가서 할 생각은 마라. 네 노래 최악이야.”

 

  “저 아세요?”

 

  자연스런 웨이브 머리와 까까머리, 밝은 갈색눈동자와 검정색눈동자, 쌍까풀 있는 큰 눈과 길게 쭉 찢어진 작은 눈, 부드러운 콧날과 직각콧날, 살짝 벌어진 핑크빛 입술과 앙다문 입술, 새하얀 피부와 새까만 피부, 180cm가 넘는 큰 키와 170cm가 넘는 적당한 키, 하얀색 조던 농구복과 색 바랜 시장표 추리닝, 가죽 쪼리와 삼선슬리퍼.

 

  비슷한 또래라는 것 외엔 접점이 전혀 없어 보이는 진호와 수현이 5m 정도 간격을 두고 서서 서로를 위아래로 훑는다.

 

  싸움 직전, 상대의 전적을 살피기 위해 별 다른 행동 없이 주변을 맴맴 도는 맹수마냥 더위에 흐려져 있던 두 사람의 눈빛에 힘이 바짝 들어간다.

 

  “너 거야?”

 

  “그럼 누구 꺼겠냐? 여기 나 말고 누가 있다고.”

 

  “너 나 알아?”

 

  “너처럼 구린 애를, 내가?”

 

  “다행이네.”

 

  말 섞는 것조차 역겨운지 수현이 떨떠름한 얼굴로 캐리어를 진호 쪽으로 밀어낸다.

 

  “야 호박.”

 

  바구니에 든 것이 호박전인지 어떻게 알았는지, 진호가 조용히 지나가려는 수현을 또 도발한다.

 

  “여기 애들은 너처럼 다 그렇게 찌질하냐? 묻는데 왜 대답을 안 해?”

 

  진호가 뭐라 지껄이든 말든 수현이 보란 듯이 끊겼던 노래를 더 크게 부르며 가던 길을 간다. 캐리어에 앉아서 멀어지는 수현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진호의 얼굴에 짓궂은 미소가 어린다. 그리고 단숨에 수현의 길을 막고 선 진호가 마땅치 않은 얼굴로 수현을 내려다본다.

 

  “날도 더운데 왜 사람을 오라 가라 하냐.”

 

  “용건이 뭔데?”

 

  “불 있냐?”

 

  “뭐?”

 

  생각지도 못한 말에 수현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나오는데, 사실 주머니 안쪽에 있던 꼬깃꼬깃한 천원 권 지폐 한 장을 지켜냈다는 안도의 웃음이었다.

 

  “기분 나쁘게 왜 웃냐? 여기선 불이 유머코든가 보지?”

 

  진호 또한 생각지 못한 수현의 반응에 가벼운 농담을 건넨다. 그렇게 둘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풀리려는 찰나,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낸 진호가 한 가치를 입술 사이에 물고 수현을 빤히 쳐다본다. 그리고 진호가 거침없이 수현의 눈앞으로 다가선 순간, 수현의 모든 신경이 얼어붙는다.

 

  그때였을 것이다. 그때쯤일 것이다. 두 남자가 영원의 상태로 묶인 것은. 행복인지 불행인지 모를, 경계가 모호한 관계로 엮인 것은.

 

 

 

 

  뜨나 감으나 별 차이 없는 눈을 질끈 감고 있는 수현을 진호가 팔짱을 끼고 서서 어이없다는 얼굴로 쳐다보고 있다. 괴상하게 노래를 부를 때부터 설마 했지만, 진짜 미친놈인가? 싶은 얼굴이다.

 

  “너 뭐하냐?”

 

  달라는 라이터는 안 꺼내고 뭘 바라는지 눈만 꾹 감고 있는 수현의 꼴에 진호가 참았던 웃음을 터뜨린다.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온 수현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숨기려 뒷걸음질을 치다 돌부리에 걸려 나자빠지고, 복순할매가 식기 전에 얼른 태식에게 갖다 주라고 신신당부한 호박전이 수현의 얼굴과 사방으로 나뒹군다.

 

  “너 정말 가지가지 한다. 불 한 번 얻어 쓰기 더럽게 힘드네.”

 

  진호가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 마지못해 수현에게 손을 뻗는다. 그러나 수현은 안중에도 없고, 얼굴 위로 떨어진 호박전이라도 살릴 생각으로 상의 끝단을 죽 늘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세운다. 티셔츠 위로 호박전 10개가 후드득 떨어지고, 수현이 뒤집어져 있는 바구니를 들어 올려 모래로부터 살려낸 호박전을 담는다.

 

  “그게 뭐라고 그렇게 소중하게 다루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렇게 불이 필요하면 돕든가.”

 

  진호가 할 수 없이 허리를 구부정하게 굽혀 흙 묻은 호박전을 대충 바구니에 옮겨 담는다.

 

  “지금 쓰레기 담냐? 흙 묻은 걸 누가 먹는다고 그렇게 담으면 어떡해.”

 

  “도우라며?”

 

  “불 없으니깐 꺼져.”

 

  수현이 바닥에 떨어진 호박전 중 그나마 살릴 게 있는지 열중한 사이, 진호가 악마의 미소를 지으며 이미 먹을 수 없게 된 호박전을 흙과 버무려 수현이 가까스로 살려낸 멀쩡한 호박전이 든 바구니에 폭탄처럼 투척한다.

 

  “이제 됐지? 불 줘.”

 

  “이 새끼가 미쳤나!”

 

  상황파악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일부로 저러는지 사악하게 웃고 있는 진호의 볼때기로 참고 참았던 수현의 주먹이 날아든다. 아직 젖살이 남아있는 진호의 볼이 움푹 들어가고, 진호의 입에서 만화처럼 피가 툭 튀어나온다.

 

  동급생이 고작 10명에 불과한 시골동네지만 그 안에서 주먹으로 1등을 먹은 수현의 주먹맛을 본 진호가 피 묻은 침을 툭 뱉고 입가를 닦아내더니 아프기는커녕 카타르시스를 만끽한 얼굴로 수현의 품 안으로 달려들어 근육으로 다져진 수현의 몸을 번쩍 들어 올려 바다로 끌고 들어간다.

 

  “이 새끼가 진짜 미쳤나. 야야 잠깐만 잠깐만 잠깐만. 야!!!”

 

  짐짝처럼 진호의 어깨에 얹힌 수현이 사지를 버둥거려보지만 소용없고, 빈틈을 노려 진호에게 코브라트위스트를 시도하기도 전에 처참히 바닷물에 내리꽂힌다.

 

  “상대를 봐가면서 덤벼야지.”

 

  보란 듯이 손바닥을 털어내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서는 진호의 등 뒤로 수현이 물에 흠뻑 젖은 꼴로 튀어 올라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바짝 뒤로 드러눕는다. 허리힘으로 버티고 선 진호와 코알라처럼 휘어진 나뭇가지에 대로대롱 매달린 것 같은 수현의 꼴이 알파벳 소문자 r모양과 닮았는데, 한동안 팽팽하게 이어진 두 사람의 힘 대결은 진호가 수현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바다에 빠지면서 끝이 난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그대로 담은 수면 위로 수현이 머리를 털어내며 올라온다. 출렁이는 물결에 수현의 입 안으로 연신 바닷물이 들어간다. 수현이 손으로 물을 밀어내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어디에도 진호가 보이지 않는다.

 

  “야! 야! 싸가지! 어딨어? 싸가지!”

 

  올라올 때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진호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수현의 얼굴이 점점 파랗게 질려간다. 진호를 찾는 동안 수현의 손이 쭈글쭈글하게 변할 정도로 시간이 지났을 무렵, 갑자기 수현이 물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 흔한 갈매기조차 없는 인적 드문 바닷가에 파도가 주거니 받거니 부딪쳤다 사라진다. 새하얀 모래를 품은 연하늘색 바다는 휘발된 첫사랑의 기억을 불러올 것처럼 아련하게 일렁인다. 바다 끝과 맞닿은 수평선은 미지의 신비로움을 발산하며 정신을 아득하게 만드는데... 그 한가운데로 검은 머리 두 개가 솟구쳐 오른다.

 

  “죽고 싶으면 혼자 죽어!”

 

  사악하게 웃는 진호의 품에서 수현이 간신히 벗어나와 해안가로 미친 듯이 헤엄쳐 나온다. 겁에 질린 수현과 달리, 눈을 덮은 젖은 머리를 쓸어 올리고 멀어져가는 수현을 바라보는 진호는 생기가 넘쳐 보인다.

 

  “덕분에 심심하진 않겠네.”

 

  밀려오는 너울을 헤치며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진호가 수현이 해안가에 안전하게 닿을 때까지 찬찬히 지켜본다. 수현은 그런 진호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번쩍 치켜들고, 오래 전에 개미와 파리 밥이 된 호박전을 포기하고 바구니만 챙겨 진호의 시야에서 쌩하니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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