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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열여덟 스물아홉
작가 : 애플타이거
작품등록일 : 2020.9.30

열여덟, 양양, 한여름, 새파란 바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2주간 전부를 나눈 수현과 진호가 11년 후, 청춘의 끝자락에서 재회한다.

 
1. 부고
작성일 : 20-09-30 15:32     조회 : 402     추천 : 0     분량 : 5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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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말보로 레드 하나요.”

 

  책을 보다 말고 바로 뒤돌아서서 익숙하게 담배를 꺼내는 수현을 중년의 남자손님이 유심히 지켜본다. 마치 자신의 아들을 보듯 안쓰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다.

 

  “시험 잘 봤어요?”

 

  손님의 살가운 질문에 수현이 대답대신 멋쩍은 미소를 짓는다. 손님이 카드를 건네고, 카운터 위에 불고기도시락과 카라멜마끼아또를 올려놓는다. 수현이 봉투에 물건을 담아 손님에게 건넨다.

 

  “난 이거면 됐어요.”

 

  손님이 담배만 스윽 꺼내 뒷주머니에 집어넣고 별말 없이 가게를 나선다.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닌지 뜻밖의 선물을 받은 수현의 얼굴에 놀라거나 당황한 기색이 없다.

 

  새벽 두시, 손님이 끊긴 편의점에 홀로 남겨진 수현이 검은 봉투 안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갓 데운 불고기도시락에서 뿜어져 나온 열기가 수현의 메마른 얼굴에 닿는다. 수현은 눈만 깜빡거릴 뿐 표정이 없다. 손님이 남기고 간 온기가 수현의 뻥 뚫린 마음까지 미처 채워주지 못하고 허공으로 흩어진다.

 

  손도 대지 않은 음식이 든 봉투를 들고 수현이 쓰레기통 앞으로 간다. 검은 봉투 아래 뭉개져 있던 9급 공무원 교재가 계산대 위에 덩그러니 펼쳐져있다. 페이지 번호가 적힌 부분이 손때로 누렇게 변색돼 있는 것도 모자라 쥐가 파먹은 것 마냥 닳고 닳아 너덜거린다.

 

  수현이 제자리로 돌아와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긴다. 지극히 의무적이고 습관적인 모습이다. 어느 페이지는 조사 하나 틀리지 않고 암송하는 경지에 이른 그의 모습에서 절로 그간의 삶이 짐작된다.

 

  녹록치 않았겠구나.

 

  수현이 창가에 붙어있는 일자형 테이블에 기대서서 생명력을 잃고 껌뻑거리는 가로등을 멍하니 바라본다. 사람은커녕 자동차 한 대 없는 황량한 거리를 훤히 비추는 수십 개의 가로등 중 유독 그것만 유리까지 깨진 채 방치돼 있다.

 

  수백 마리의 하루살이와 불나방 중 단 한 마리도 그 주변엔 얼씬 하지 않는다. 불필요하게 지나치게 밝은 가로등 아래에만 들끓고 있다.

 

  냉장고와 냉동고 소리만 가득한 가게 안에 핸드폰 진동소리가 묵직하게 깔린다. 수현의 고개가 느릿하게 핸드폰이 놓인 카운터로 돌아간다.

 

 양태식 사망

 빈소: 양양의료원

 주소: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발인일시 : 8월15일 낮 12시

 

  시종일관 표정 없던 수현의 얼굴이 단번에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이 풀리고, 딱딱한 대리석 바닥 위로 핸드폰이 떨어진다. 액정이 쫙 갈라진 화면 위로 태식의 부고 소식이 더 극적으로 보인다.

 

 

 

 

  새벽 2:30. 수현이 텅 빈 시외버스터미널 안을 불안한 얼굴로 오간다. 경비원의 눈을 피해 잠을 청하는 노숙자 외에 승객으로 보이는 이는 아무도 없다. 팔짱을 끼고 개표소 앞에 서서 그 위에 붙은 시간표를 유심히 훑어보던 수현의 시선이 한곳에 머문다.

 

  “여섯시 삼십이분이라...”

 

  양양군 하조대행 첫 버스시간은 새벽 6:32. 앞으로 4시간 2분이나 기다려야 한다. 수현이 버스 시간표에 시선을 고정한 채 바짝 깎인 손톱을 잘근잘근 씹는다. 당장이라도 양양으로 달려갈 기세지만 터미널에 발이 묶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을 소심하게 학대하고 있다.

 

  수현이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낸다. 지폐가 있어야 할 자리에 구겨진 영수증 뭉치와 오백 원짜리 동전 한 개가 한심하게 들어있다. 핸드폰을 꺼내 통장잔고를 확인해보는데... 90,500원이 전부다. 양양까지 택시를 타고 가기엔 턱도 없는 금액이다.

 

  수현의 입에서 자연스레 욕지거리가 튀어나온다. 계절을 잊은 듯 무스탕을 걸친 마네킹이 서 있는 어두컴컴한 쇼윈도에 수현의 추레한 몰골이 비친다.

 

  목 늘어난 티셔츠에 무릎 나온 청바지, 걸레보다 더러워 보이는 흰색운동화까지. 플라스틱 덩어리인 마네킹이 수현보다 더 그럴싸해 보인다.

 

  “그지가 따로 없네.”

 

  수현이 머리를 긁적이다가 돌아선다. 닳아빠진 수현의 운동화 뒤축이 고요한 터미널의 정적을 깨뜨리고, 초라한 수현의 뒷모습이 택시가 늘어선 터미널 밖으로 멀어진다.

 

 

 

 

  주황색 가로등이 드문드문 서 있는 음침한 골목 안쪽으로 수현이 끝없이 들어간다. 너덜거리는 녹슨 대문을 발로 밀어 젖히자마자 수현의 발이 벌겋게 삭은 문틈에 낀다. 수현이 발목에 살짝 박힌 쇳조각을 무심하게 떼어낸다. 하루 이틀 일이 아닌 듯 보인다.

 

  수현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지하계단을 내려가 점멸하는 센서등 아래 서서 가방을 뒤적거린다. 치익 소리와 함께 등이 나가버리고, 열쇠를 구멍에 집어넣기 위해 수현이 핸드폰 플래시를 켜자마자 수십 마리의 바퀴벌레가 쏜살같이 흩어진다.

 

  “그래도 날 반겨주는 건 너희 밖에 없네.”

 

  수현이 문을 열자마자 집안의 습기와 쿰쿰한 곰팡이 냄새가 물에 젖은 습자지처럼 수현의 얼굴에 착 달라붙는다. 창문 하나 없는 방안에 키가 175정도 되는 수현이 간신히 누울 수 있는 싱글 침대와 부엌, 화장실이 숨 막히게 붙어있다.

 

  새벽 3:30. 수현이 바로 화장실로 들어가 몸을 씻는다. 새벽 4:00. 옷장이라고 부르기 궁색한 벽걸이 앞에 수현이 우뚝 선다. 대충 걸려있는 옷가지 사이로 세탁소 포장지에 싸여있는 검정색 정장 한 벌과 하와이안셔츠가 눈에 띈다. 한동안 꺼내 입은 적이 없는지 포장지 위에 내려앉은 먼지가 잿빛을 띠고 딱딱하게 굳어있다.

 

  침대 위에 정장과 하와이안셔츠가 나란히 놓여있다. 바닥에 나뒹구는 세탁소 포장지 옆으로 하얀색셔츠가 널브러져있고, 그 위로 뿌연 먼지가 둥둥 떠다니다 내려앉는다.

 

  수현이 하와이안셔츠 위에 검정색 정장을 갖춰 입고 현관문에 붙은 손바닥만 한 거울 앞에 서서 한동안 떠나지 못하고 자신의 모습을 세심하게 살핀다. 마치 장거리연애를 하는 사람이 오랜만에 연인을 만나러 가는 것 같은 설렘 가득한 얼굴이다.

 

  “이상한가?”

 

  아예 거울을 떼어내서 자신의 모습을 뜯어보던 수현이 자신 없는 얼굴로 단추를 하나 둘 풀어헤치고, 바닥에 뒹굴고 있는 하얀색 셔츠에 팔을 우겨넣는다.

 

  쾅. 현관문이 닫히고. 수현의 구두소리가 순식간에 멀어진 컴컴한 지하공간이 바퀴벌레 소리로 다시 채워지려는 찰나, 핸드폰 플래시와 함께 수현이 정신없이 상의를 탈의하며 지하계단을 헐레벌떡 내려온다.

 

  침침한 방안 형광등이 켜지자마자 수현의 시선이 세탁소 포장지에 싸여 옷걸이에 걸려있는 하와이안셔츠로 향한다. 수현은 밑창이 전혀 닳지 않은 구두를 가지런히 벗어두고 하와이안셔츠를 조심스럽게 꺼낸다. 마치 생명이 있는 것 마냥.

 

  “혹시 모르니깐...”

 

  수현의 탄탄한 몸 위로 하와이안셔츠가 닿은 순간, 수현의 얼굴에 줄곧 서려있던 긴장감이 싹 가신다. 주름지지 않게 바지춤 안에 셔츠 끝단을 조심스럽게 집어넣고 재킷을 걸쳐 입은 수현이 정장 소매 밖으로 나온 하와이안셔츠를 가만히 내려다본다.

 

  처음으로 수현의 입가에 미소가 베인다. 그러나 1초. 2초. 3...초를 넘기지 못하고 툭.

 

  닦을 새 없이 수현의 볼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하와이안셔츠 소매 끝에 닿는다.

 

 

 

 

  대낮같이 훤한 한여름 새벽 6시의 시외버스 터미널은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혼잡하다. 1년에 한번 있는 휴가철답게 세 명 중 둘은 캐리어나 배낭을 들고 있다. 들뜬 얼굴의 사람들 사이로 검은 정장 차림의 수현이 저승사자 기운을 내뿜으며 딱딱한 고딕체로 된 양양 하조대 표지판 아래에 멈춰 선다.

 

  휴양지로 유명한 목적지답게 형광주황빨강 등 화려한 색상으로 복장을 갖춘 사람들 속에 서 있는 수현의 꼴이 흰 셔츠 위에 튄 김치 국물 같이 불편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데, 그나마 검은 정장 속에 입은 화려한 하와이안셔츠가 이질감을 상쇄시켜준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홀로 서 있는 수현에게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려는 찰나, 하조대행 버스가 길게 늘어선 사람들 앞에 정차한다. 치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보잉선글라스를 쓴 기사가 바지를 명치까지 추켜올리며 버스에서 내려와 승차권을 받기 시작한다.

 

  짐칸에 트렁크가 빼곡하게 쌓이고 기사의 손에 차표가 어느 정도 쌓였을 쯤 수현이 구겨져있던 차표를 쫙 펴서 기사에게 내민다.

 

  “안 좋은 일이 있나 봐요.”

 

  기사가 흘리듯 뱉은 말에 푹 숙이고 있던 수현의 고개가 절로 들린다.

 

  “오늘은 날씨가 참 좋네.”

 

  기사가 머쓱한 얼굴로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하늘을 가리킨다. 몇 주 동안 이어진 장마 때문인지 기사 말대로 하늘은 맑았다. 시릴 정도로. 정나미 없이 차갑게.

 

  운전석 바로 뒷자리에 앉은 수현이 승차권을 검수하느라 정신없는 기사를 힐끔 쳐다본다. 왠지 모르게 수현의 얼굴에 내내 드리워졌던 어둠의 장막이 한 겹 벗겨진 모습이다.

 

  ‘안 좋은 일이 있나 봐요.’

 

  대수롭지 않게 내뱉었을 기사의 한 마디가 수현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맴돈다. 사실 수현은 그동안 오롯이 혼자 감내하고 있던 감정을 누군가 알아채 준 것만 같아 왠지 모를 위안을 받은 기분에 사로잡혀있었다.

 

  태식의 부고 소식을 받기 전날, 수현은 9급 공무원시험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후회 없이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시험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3년 연속 불합격.

 

  불합격이란 세 글자는 단지 시험에 국한된 말이 아니었다. 수현에겐 자신이 노력한 지난 3년의 시간을 넘어 그의 인생을 통째로 부정당한 것과 같았다. 평범이라는 범주에 어느 것 하나 포함된 적 없는 삶을 살아온 수현은 그런 삶을 살아보려 집-도서관-편의점을 쳇바퀴 돌며 내가 없이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 그에겐 체념만이 남아있다. 꿈도, 나도, 나를 지탱해 줄 가족도. 그에겐 그 무엇도 없다.

 

  ‘내가 그럼 그렇지.’

 

  희망의 싹을 모두 차단한 체념만이 수현이 현실을 버텨내는 유일한 방법으로 남았다.

 

  ‘욕심은 곧 불행이다.’ 수현이 29년을 살아오면서 체득한 삶의 진리이자 결론이다. 무엇인가를 욕심낼 때마다 얄궂게도 뜻하지 않은 불행과 마주해왔던 그다.

 

  아이들 소리에 시끌벅적하던 버스 안에 적막이 내려앉는다. 잠을 쫓기 위해 방정맞게 껌을 씹는 기사 뒤로 수현이 커튼을 치지 않고 창에 기대앉아 오롯이 햇빛을 받으며 덧없이 지나가는 바깥풍경을 의미 없이 바라본다.

 

  어느새 표지판에 양양이 보이기 시작하고, 100km... 60km...10km... 거리가 가까워올수록 수현의 낯에 묘한 흥분이 어린다.

 

  “아니 그냥.”

 

  애써 잊고 지냈던 음성이 수현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간다. 기대감에 사람을 한껏 부풀어 올렸다가 야멸차게 터트려버렸던 그 말.

 

  유감스럽게도 진호는 이 말을 곧잘 했다. 유독 수현에게만. 이 말을 뱉은 뒤엔 꼭 수현의 눈을 쳐다봤다. 빤히. 그럴 때마다 수현은 먼저 눈을 피했고, 진호는 “그럴 줄 알았어.” 혹은 “네가 그럼 그렇지.”라는 말을 대신한 짓궂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이런 둘 사이의 관계는 전복됐고, 그럴 때마다 진호는 자리를 피했다. 아주 차갑게.

 

  진호의 뒤돌아선 등을 보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수현은 더 간절하게 이 말을 기다렸었다. 혹시나 만약에 단 한번이라도 부풀어 오른 자신의 마음을 진호가 터트려주길 바라면서.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진호와 함께 했던 20여일의 시간 동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절대. 수현의 기억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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