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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파혼하고 공작님을 갖겠습니다
작가 : 까몽드
작품등록일 : 2020.8.7

“전 절대 팔려가지 않아요. 아버지.”

죽기보다 싫은 인성 쓰레기와의 정략결혼을 피하고자
도움을 주는 남자를 찾은 백작가의 아가씨, 델리아.
그런데 그 남자가 지나치게 수상하다.

잘생긴 외모, 다정한 성격, 끝장나는 검술 실력까지.
델리아는 불가항력으로 완벽한 그에게 빠져들어 버리는데,

“아가씨의 약점이 되고 싶지 않아.”

평민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거부하는 남자.
……아무렴 어때, 내가 좋다는데!
델리아는 그날부터 지독한 외사랑을 시작한다.

“다신 사라지지 마. 친구로서 부탁이야.”
“……살아계실 줄 알았습니다.”

아니, 당신 평민이라면서요?
그를 알고 있는 제국의 최고 기사단장에다가
존댓말을 하며 고개를 숙이는 귀족들까지.

“귀족이 싫다며, 그럼 이젠 내가 싫어?”

……당신 정체가, 뭐라고요?
이 남자. 사랑해도 되는 걸까?

 
남작가에서 흐르는 시계(2)
작성일 : 20-09-30 11:15     조회 : 246     추천 : 0     분량 : 5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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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델리아를 두고 나온 에녹은 문이 닫히자마자 거친 손으로 제 얼굴을 감쌌다.

 

 벌겋게 달아오른 델리아의 볼이 어느새 에녹의 얼굴로 옮겨온 것 같았다.

 

 ‘…….’

 

 남자와는 다른 가냘픈 어깨가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올랐다.

 

 ‘어깨에 손이 닿기만 하더라도 미끄러질 것만 같아.’

 

 에녹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생각을 애써 멈췄다.

 

 나체를 본 것도 아닌데, 왜 이러는지.

 “……후.”

 

 침실로 오라며 나신으로 유혹했던 여성들도 더러 있었다.

 

 단순히 에녹의 외모에 반해, 또는 쾌활한 성격에 반해.

 

 한낱 욕망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라서 에녹은 콧방귀를 끼고 무시하곤 했는데, 오늘은 뭔가 다르다.

 

 델리아의 얼굴이 품 안에 쏙 안겼을 때, 심장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진 않을까 걱정했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에녹은 한숨을 내뱉으며 방으로 들어와 주섬주섬 옷을 꺼내들었다.

 

 “형님?”

 

 마틴은 침대에 누워있다 쪼르르 내려와 에녹의 곁으로 다가왔다.

 

 분명 씻고 온 것 같은데? 수건하나만 걸치고 온 에녹을 보며 마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새 옷을 놓고 갔거든.”

 

 에녹은 들고 있는 옷을 마틴의 눈앞에 보여주며 씩 웃어 보였다.

 

 흔들-흔들- 앞에서 움직이는 옷을 보고 마틴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

 

 마틴은 갈아입고 있는 에녹의 몸에 시선을 멈췄다.

 

 멈춘 시선을 따라 손을 뻗어 에녹의 상체를 손가락으로 쿡-눌렀다.

 

 “!”

 

 에녹은 깜짝 놀라며 동그래진 눈으로 마틴을 쳐다보았다.

 

 “뭐하는거야?”

 

 그러자 에녹만큼이나 놀란 마틴이 어깨를 들썩이며 대꾸했다.

 

 “운동 좀 하셨어요? 장난 아니네.”

 “그렇다고 건들어?”

 

 생각 외의 몸에 마틴은 저도 모르게 손을 댄 것이었다.

 

 저와 에녹의 검술 실력이 거기서 거기라, 비슷한 몸인 줄 알았는데.

 

 능력을 두고 써먹지 못하는 건가? 마틴은 속으로 큭큭, 웃었다.

 

 “무슨 생각하는지 뻔히 보인다. 야.”

 “에이, 아니에요. 별 생각 안했는데.”

 

 에녹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마틴을 향해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왕년에 잘나갔었거든.”

 

 에녹은 어깨를 으쓱하며 상의에 몸을 쏙 넣었다.

 

 “잘나갔다고 하는 사람치고 정말 잘나가는 사람 못 봤는데!”

 “그러다 한번에 푹 빠진다. 나한테.”

 

 

 어느새 친해진 마틴은 에녹에겐 동생처럼 귀여웠다.

 

 적어도 막 나가는 이카루스보단 훨씬 나으니까.

 

 마틴은 입을 삐죽 내밀며 “저놈의 자신감!” 하며 투덜거렸다.

 

 “푹 빠지게 좀 알려주시던가요?”

 “까분다.”

 

 에녹은 마틴의 눈앞에서 손가락을 튕겨 보였다. 그러고선 구겨진 옷을 툭툭 털어내며 돌아올 델리아를 위해 침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지금쯤 옷을 다 입었을까?

 

 바르는 건 다 발랐을까?

 

 어떤 얼굴로 방에 들어올 것이라는 걸 알기에 에녹의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엉뚱한 표정, 침대에 누우면 또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겠지.

 

 “테오는요?”

 

 생각이 밖으로 들린 줄 알고 에녹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돌아보았다.

 

 “어?”

 “테오는 어디 갔어요? 나간 지 오래된 것 같은데.”

 

 무어라 말할지 고민하던 때,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문이 벌컥 열리며 델리아가 들어왔다.

 

 평소 남작가 안에서의 ‘테오’ 모습으로.

 

 델리아와 에녹의 눈이 마주치고 순간의 정적이 흘렀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생각보다 어색했다. 델리아는 머릿속으로 여러 말들을 떠올렸지만 결국 꺼내지 못하고 입을 꾹 닫았다.

 

 마틴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몸을 움츠렸다.

 

 “뭐예요? 둘이 싸웠어요?”

 

 에녹은 그런 것 아니라며 다가온 마틴을 밀어내었다.

 델리아는 아직은 촉촉한 머리를 매만지며 에녹이 정리해둔 침대 위로 올라가 몸을 누웠다.

 

 그러면서 벽을 향해 돌아누워 질끈 눈을 감았다.

 

 “싸웠네, 싸웠어.”

 

 마틴은 사족을 붙여가며 쯧쯧-혀를 차며 본인의 침대로 돌아갔다.

 

 에녹은 멍하니 델리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뭘……실수했나?’

 

 커슨 백작가의 아가씨인 것을 이따금 까먹는다. 죽어도 까먹을 수 없을 줄 알았는데, 남작가 안에서의 생활에선 계속해서 잊어버린다.

 

 그러면서 자신이 실수하게 될까 봐 에녹은 걱정이 되었다.

 

 오늘처럼 델리아에게 부담을 줄까 봐.

 

 ‘괜히 안았나?’

 

 과한 행동을 한 것 같기도 하다.

 

 에녹은 델리아에게 무엇이라도 말을 건네려 하다 다시 입을 꾹 닫았다.

 

 

 **

 

 

 델리아는 퀭한 눈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어제의 일이 신경 쓰여 잠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을 도와준 에녹은 델리아를 향해 한마디 없이 쿨쿨 잠을 잘 잤지만 정작 델리아는 에녹에 관한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부분이 오히려 델리아를 더욱 생각에 잠기게 했다.

 

 “오늘은 제가 더 잘할걸요!”

 “글쎄? 너나 나나.”

 “형님도 참. 그래도 우위는 있는 법이죠.”

 

 연무장을 향해 걸어가던 에녹과 마틴은 서로 얘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누구는 편히 잠도 못 잤는데 누구는 잘만 대화하고 지낸다.

 

 괜히 심드렁해지는 마음이 들어 델리아는 허수아비들을 세차게 내려치리라 다짐했다.

 

 “뭐야? 허수아비들은?”

 

 생각을 읽힌 것처럼 앞서가던 이들이 허수아비를 언급했다.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자 연무장에 가득 메워져 있던 연습용 허수아비들이 전부 벽 쪽으로 옮겨져 있었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해 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각자 목검을 나누어주며 순서대로 놓여있는 허수아비를 있는 힘껏 휘둘러 때리는 것이 일.

 둘러본 바로는 오늘 해야 할 일들을 건너뛰는 느낌이었다.

 

 목검이 있지 않고 진검 네 자루가 놓여있었으니까.

 

 “드디어 검을 주는 건가?”

 

 어떤 이는 검을 가지게 된다는 희망에 설레발을 치며 말했지만, 모두에게 검을 주기엔 절대적으로 무리라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었다. 증명해주는 듯 놓여있는 검은 딱 네 자루뿐.

 

 서로 생각이 다른 만큼 자연스럽게 그룹으로 나누어졌다.

 매여있는 끈을 풀고 검을 멋지게 검집에서 뽑아 드는 몇과 그것을 지켜보는 몇, 잠자코 기다리는 몇으로.

 

 에녹과 델리아는 마지막에 속했다.

 

 

 “느낌이 안 좋은데.”

 “?”

 “……아냐.”

 

 에녹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하며 눈매를 찡그렸다.

 

 델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담당하는 로렌이 다가와 장난치는 자들을 저지시켰다.

 

 첫날의 모습을 봤던 그들은 변명을 하기보단 곧바로 아무 말 없이 멈출 수밖에 없었다. 네 자루를 모두 모아 전부 로렌에게 가져다주었다.

 

 “궁금하냐?”

 

 주위를 둘러싼 모두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똑같은 건 재미없잖아? 싸움 구경이나 하자는 거지.”

 

 두 귀에 똑똑히 들렸다. 싸움 구경.

 

 돈 좀 있는 자라면 싸움꾼들의 치고받는 것들을 즐기곤 했다.

 

 일반적인 싸움하는 남자들이라면 승자가 되는 한 방을 노려 기사가 되려 한다.

 또는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용병으로 빠지거나.

 그런 걸 마음속으로 항상 원하기에 지원자들은 차고 넘쳤다.

 

 더불어 외모가 출중하다면 밤마다 마음 졸이는 귀부인들이 많은 돈과 함께 침실로 불러내어 더 빠른 길로 갈 수도 있었다.

 

 ‘설마…….’

 

 요즘엔 점점 없어지는 추세지만 알게 모르게 뒤에서 행해지는 것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싸움판 같은걸 우리들에게 시키겠다는 건가?

 실력이 없다면 죽어서 실려 가는 경기를?

 

 “…….”

 

 하하 웃으며 즐기던 자들도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기에 여유로운 표정은 사라지고 모두 창백한 안색으로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누구도 먼저 나서고 싶지 않았다.

 

 만만하다고 첫 타자로 시작된다면 중간도 못가 체력이 딸려 쓰러질 테니까.

 

 하지만 로렌은 모두가 들리도록 목청껏 웃어대었다.

 

 “표정들 풀어! 그런 거 아니니까.”

 

 로렌은 주먹을 쥔 손에서 엄지손가락으로 등 뒤의 허수아비들을 가리켰다.

 

 “매번 박살내는 건 질렸잖아. 체격에 맞게 몇 명만 하자.”

 

 죽음으로 향하는 일방적 매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대부분 하하하! 소리를 내며 웃었다.

 

 델리아는 이런 상황을 즐기는 것 같은 로렌의 태도가 눈에 훤히 보였다.

 

 실력자라고 생각하여 느꼈던 좋은 사람이라는 인식은 어느덧 약자를 괴롭히는 불쾌한 사람으로 바뀌었다.

 

 ‘정말 악취미로군….’

 

 에녹 또한 델리아와 같은 생각이었다.

 

 “재밌어! 아주 재밌어!”

 

 로렌은 눈치만 슬슬 보던 자들을 슬쩍 쳐다보다가 문득 무엇인가 생각났는지 눈을 반짝이며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어떤 생각인지 그의 표정은 너무 재미있다는 듯 감출 수 없는 표정이었다.

 

 시선의 끝엔 긴 머리를 높게 올려 묶은 세실이 서있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빠르게 검술이 늘며 남성들보다 작은 체구이지만 만만치 않은 힘을 뿜어내는 자였다.

 그의 시선이 자신에게 온다는 것을 알자 거부하지 않고서 다른 곳을 바라보던 시선을 마찬가지로 로렌에게 건넸다.

 

 “그래, 세실. 네가 먼저 해봐.”

 

 세실과 똑같이 여자인 자는 이쪽 연무장에는 한 명뿐.

 

 그 한 명과 더불어 다른 남자들도 세실과의 경기는 꺼렸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싸우기 싫다는 듯이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칠 정도니까.

 

 “누가 쟤랑 하고 싶다는 거야.”

 “……괜히 쪽팔리게.”

 

 잘못해서 창피라도 당한다면 선택을 받을 때 크게 작용할 것을 알고 있었다.

 

 세실은 주위의 시선은 상관하지 않고 앞으로 걸어 나가 로렌이 건넨 검을 받아 쥐었다.

 

 어차피 겁쟁이들뿐인데, 적당히 상대해주다 끝내면 되겠지.

 

 자신만만한 세실의 표정에 다른 여자는 울상이 되었다.

 

 모두가 안도하며 숨을 죽인 가운데, 이카루스가 적막을 깨고 나섰다.

 

 “테오가 하죠!”

 

 사람들은 ‘테오?’라고 두리번거렸다.

 머지않아 이카루스가 델리아를 손가락으로 삿대질하자 모두 수긍했다.

 

 “맞네. 체구가 비슷하잖아!”

 “열심히 하던데, 괜찮겠지.”

 

 책임을 넘기는 말투들에서 대부분 동의하는 어조로 변해갔다.

 

 에녹은 당황하며 자신이 하겠다고 손을 들려 했으나 이미 로렌은 델리아로 마음을 정한 것인지 그녀에게 앞에 놓인 진검을 건네주려 팔을 뻗었다.

 

 망할 놈의 이카루스.

 

 물통을 들고 가면 엎지르기는 기본이고 자기 전에 시끄럽게 코를 고는 것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한 가지도 없다.

 

 오늘도 이런 큰 이벤트를 주는구나.

 

 ‘아씨…….’

 

 델리아의 요동치는 심장소리로 인해 주위의 소리들이 윙윙거리며 맴돌았다.

 명확한 사실은 세실과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

 

 여기서 못하겠다고 투정을 부렸다간 왜 온 것이냐며 질책을 받을 것이다.

 주위의 핍박들과 더 나아가 쫓겨날 수도 있는 분위기이기에 델리아는 아무말도 못하고 앞에 들린 검만을 바라보았다.

 

 “뭐해? 안 받아?”

 

 

 로렌의 말꼬리에는 숨길 수 없는 비웃음이 들어가 있었다.

 

 상황을 즐기며 꿈틀거리는 로렌의 광대가 끔찍이도 싫었다.

 별다른 도리가 없는 델리아는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검을 자신의 품 안으로 가져왔다.

 

 “오오우-!”

 “테오! 테오!”

 

 응원하는 목소리로 둔갑한 비아냥거림의 소리가 크게 퍼졌다.

 

 “델, 아니 테, 테오…!”

 

 에녹은 나서서 말릴 수도, 검을 빼앗을 수도 없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마음만을 졸이며 중앙으로 나아가는 델리아의 등 뒤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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