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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파혼하고 공작님을 갖겠습니다
작가 : 까몽드
작품등록일 : 2020.8.7

“전 절대 팔려가지 않아요. 아버지.”

죽기보다 싫은 인성 쓰레기와의 정략결혼을 피하고자
도움을 주는 남자를 찾은 백작가의 아가씨, 델리아.
그런데 그 남자가 지나치게 수상하다.

잘생긴 외모, 다정한 성격, 끝장나는 검술 실력까지.
델리아는 불가항력으로 완벽한 그에게 빠져들어 버리는데,

“아가씨의 약점이 되고 싶지 않아.”

평민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거부하는 남자.
……아무렴 어때, 내가 좋다는데!
델리아는 그날부터 지독한 외사랑을 시작한다.

“다신 사라지지 마. 친구로서 부탁이야.”
“……살아계실 줄 알았습니다.”

아니, 당신 평민이라면서요?
그를 알고 있는 제국의 최고 기사단장에다가
존댓말을 하며 고개를 숙이는 귀족들까지.

“귀족이 싫다며, 그럼 이젠 내가 싫어?”

……당신 정체가, 뭐라고요?
이 남자. 사랑해도 되는 걸까?

 
남작가에서 흐르는 시계(1)
작성일 : 20-09-30 10:59     조회 : 257     추천 : 0     분량 : 5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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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의외로 델리아의 생활은 간단했다.

 

 남들보다 이르게 일어나 서둘러 세수를 하고 몸과 얼굴 전체에 어두운 크림을 바르는 것이 불편할 뿐 특별한 것은 없었다.

 

 오전엔 단체로 움직이는 체력훈련이 전부였고 추가로 주어지는 일은 없었다.

 

 “……아오!”

 

 평소에 관리와 체력유지 차원에서 운동했으나 아침부터 계속해서 뛰어다니는 것은 처음이었다.

 

 저절로 곡소리가 울렸고 델리아의 얼굴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다.

 

 “테오.”

 “헉, 헉…!”

 “조금만 힘내.”

 

 그녀는 매번 헉헉대며 뒤처지기 일쑤였고 앞서가던 에녹이 거짓으로 거친 숨을 내뱉으며 슬쩍 뒤로 와서 그녀를 끌어주었다.

 

 “다들 하나씩 들어!”

 

 오후에는 총인원을 반절로 나누어 각각의 연무장에서 검술을 연습했다.

 

 수업의 첫날에는 주먹만 쓰던 길거리의 싸움꾼들이 유명한 글 속의 주인공들을 따라 한답시고 검을 뽑아들어 아무렇게나 허공에 휘둘러댔다.

 

 연무장을 담당하는 남작가의 사병 중 한 명인 로렌은 찰나의 순간으로 그들을 순식간에 저지시켰다.

 

 검에 대한 예의를 갖추라면서.

 

 가차 없는 그의 태도에 배움을 임하던 자들은 침을 꼴깍 삼켰다.

 

 ‘나름대로 실력 있는 자가 있긴 한가 보네.’

 

 며칠간 로렌의 가르침과 실력을 보고 느낀 에녹의 생각이었다.

 

 돈으로 무엇이든지 살 것처럼 행동하던 루드 남작이 적어도 쓰레기만 고용한 것 같진 않았으니까.

 

 덕분에 델리아는 느리긴 했지만 배움에 모범적으로 따라갔다.

 

 또 검을 잡아봤던 경험 때문인지 막무가내인 놈들보단 좀 더 반듯하고 올바른 자세를 만들어냈다.

 

 저녁에는 남작가의 사병들이 사용하는 검을 닦거나 남작가 사람들이 이용하는 연무장을 청소하는 것과 같은 잡일들을 돌아가며 행했다.

 

 아니나 다를까, 무료로 일꾼들을 써먹겠다는 심보가 두 눈에 훤했다.

 

 아직 정식으로 입단한 것이 아닌데도 사람들이 군소리 없이 행하는 것을 보면 후에 자신이 들어갔을 때 열심히 일했던 자라는 명목으로 잘 보이기 위함일 것이다.

 

 “생각보다 남작과 멀리 있어서 문제인걸.”

 “그러니까요. 기사들도 너무 많고…….”

 

 계속해서 좋은 점만 있을 수는 없었다.

 

 에녹과 델리아의 위치는 주된 목적인 루드 남작이 거주하는 본관과는 먼 끝자락에 있었다.

 

 야밤에 몰래 가려 해도 어두워지면 눈을 번쩍 뜨고 지키는 호위 기사들이 있기에 다가가기엔 무척 어려웠다.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어 에녹과 델리아의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 갔지만 그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둘째 날의 밤은 빠르게 저물어갔다.

 

 **

 

 남작가에 들어온 지도 사흘째가 되는 밤.

 

 델리아는 뜨거운 물을 깨끗이 닦인 자신의 몸에 끼얹었다.

 

 포근한 느낌이 듬과 동시에 그동안 쌓인 노고가 전부 풀리는 듯 몸이 나른해짐을 느꼈다.

 

 평소라면 대충 닦고서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버텼겠지만, 사흘째인 오늘은 도저히 목욕 없이는 버틸 수가 없었다.

 

 만만의 태세를 갖추고서 먼저 씻는 여자들부터 이후 남자들까지 한 명, 한 명 밖에서 수를 세었다.

 

 수가 맞아떨어질 때 맞춰서 들어왔으니 누가 들어오지도 않을 것이다.

 

 “……하.”

 

 혼자 씻어본 것이 언제였는지.

 매번 제나의 도움을 받았기에 그녀의 빈자리가 제법 느껴졌다.

 

 동시에 이곳에 뭘 하고 있는지에 대한 한탄도 이어졌다. 굳이 어려운 길로 돌아가는 걸까.

 

 그저 가만히 테오에게 맡겼었어야 했을까.

 

 온갖 의문이 들었지만 이제 와서 답은 없다.

 

 “…….”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럿이 공용으로 사용하는 욕실이라서 그런지 공간이 지나치게 넓었다.

 

 이럴 돈이 있으면 방이라도 개인별로 주지. 델리아는 루드 남작을 떠올리며 가볍게 혀를 찼다.

 

 텅 빈 욕실에 홀로 있으니 더욱더 외로움이 크게 감돌아 제나가 생각났다.

 

 고개를 내젓던 델리아는 또다시 물을 끼얹고 무표정으로 무릎을 세워 감싸 안았다.

 

 그리고 얼굴을 무릎에 대고서 느긋하게 눈을 감았다.

 

 

 오늘은 길을 잃은척하며 한번 본관으로 들어가 볼까? 에녹 말대로 기다려야 하나?

 

 …에녹이 없었다면 자신은 어떻게 했을까.

 

 

 검을 배우는 것도 나름대로 답답한 생활에서 벗어난 나름의 즐거움이었지만 조급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무거운 눈꺼풀을 늘어트리자 아득함이 밀려왔다.

 

 ‘어느 정도 피로가 풀렸으니 조금만 있다가 일어나야지…….’

 

 

 그때였다.

 

 드르륵-!

 

 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감고 있던 델리아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 자세, 그대로, 몸이 굳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누구? 누가? 도대체?

 델리아의 머릿속은 쉴 틈이 없이 재빠르게 돌아갔다.

 

 몸을 돌려서 누구인지 확인하기엔 상의를 전부 탈의하여 몸이 그대로 드러나 있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저벅저벅 걷는 소리가 들리고 큰 기둥 뒤에 델리아가 있는지 모르는 자는 그녀와 거리가 있는 큰 욕탕에 들어가 몸을 누웠다.

 

 “으…….”

 

 참방거리는 소리와 낯선 신음이 울려 퍼졌다.

 

 델리아는 손으로 상체를 가리고 소리가 나는 쪽을 곁눈질로 슬쩍 바라보았다.

 

 짙은 수증기 탓에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화가 난 근육들이 달라붙어 있는 것이 델리아의 눈에 똑똑히 들어왔다.

 

 “……!”

 

 혹시라도 매서운 눈이 마주칠까 싶어 황급히 고개를 다시 제 쪽으로 가져왔다.

 

 ‘수……수건! 수건!’

 

 도대체 수건을 어디에다가 두었는지, 아무리 찾아보아도 눈에 띄지 않았다.

 

 이럴 수가.

 

 망연자실한 상태로 침착하게 머리를 굴렸다. 자신은 언제 벗어날 수 있는가.

 

 저 남자가 몸을 씻고 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해? 델리아는 끔찍함에 몸서리치며 입을 떡 벌렸다.

 

 물을 끼얹은 바구니라도 이용해 가릴까?

 나를 아는 얼굴이면?

 지금 바른 것도 다 지워졌는데!

 

 설상가상으로 적당한 크기가 아니라서 완벽하게 다 가려지지 않을 것 같았다.

 

 델리아는 제 머리를 쥐어뜯으며 기둥 뒤에 바짝 숨었다.

 

 ‘조금만 참을걸! 왜 괜히 씻겠다고!’

 

 델리아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거기.”

 

 탕 속의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동시에 쿵! 델리아의 심장이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거기. 누구 있어?”

 

 분명했다.

 자신이 숨어 있는 쪽을 바라보고 하는 말이 틀림없었다. 손끝은 떨려오고 차게 식는 것이 느껴졌다.

 

 쿵쾅쿵쾅 델리아의 심장이 크게 울리며 바깥으로 터져 나올 듯이 뛰었다.

 

 “뭐야? 아무 말도 없고.”

 

 델리아가 숨을 죽이며 있는데도 불구하고 남자는 옅은 그림자를 빤히 쳐다보며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르륵- 몸에 맺혔던 물이 욕탕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는 델리아의 숨을 졸라매는 듯, 호흡을 가빠지게 만들었다.

 

 그가 머지않아 다가올 것이다. 눈에 띄는건 한순간이다. 얼굴이 창백해진 델리아는 연실 속으로 비명을 외치며 기겁했다.

 

 ‘제발!’

 ‘제발요!’

 

 누구라도 제발 도와주기를 바랐지만, 허황한 걸까.

 

 드르륵-!!

 

 그때였다, 아까보다도 더 큰 소리로 황급히 문이 열렸다. 소리는 남자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테오!”

 

 익숙한 목소리, 분명 에녹이었다.

 알아차린 델리아는 그제야 박차는 숨을 내쉬었다.

 

 “저기 뒤에 누가 있나 봐.”

 “……저기?”

 “네가 찾는 테오? 일수도 있겠군.”

 

 남자는 심드렁해 하며 다시 욕탕 안으로 들어갔다.

 

 에녹은 테오가 뜨거운 건 잘 못 견디는데…라고 혼잣말을 내뱉고선 숨어있는 델리아에게로 향했다.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자 이윽고 몸을 웅크리며 기둥에 바짝 숨어있는 델리아를 마주했다.

 

 에녹은 안도감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금방 온다더니.”

 

 명확한 입 모양과 에녹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델리아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상체를 웅크리고 눈동자만 올려서 구세주인 그를 쳐다보았다.

 

 상의를 탈의하여 훤히 보이는 가슴팍과 배, 하의는 수건으로 가린 에녹의 모습이 델리아의 귀를 빨갛게 달아오르게 했다.

 

 요즘 옆에 누워 같이 잠드는 남자라서 그런지 더욱 당황스러웠다.

 

 의외의 근육질인 에녹의 몸을 보며 멍하니 있다가 이내 한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렸다.

 

 “가려고 했어요……!”

 

 델리아가 더욱 웅크리며 작게 속삭였다.

 

 달궈진 델리아의 양 볼, 한쪽으로 내려진 밝은 금발 머리가 에녹의 눈에 들어왔다.

 

 머리카락이 위치한 작고 가녀린 어깨는 희다 못해 투명했다.

 

 자신과 다른 곡선의 몸에 에녹은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

 

 “큼! 큼!”

 

 자신도 모르게 멍하니 바라보던 에녹은 빨개진 얼굴로 시선을 돌리며 헛기침을 하였다.

 

 에녹은 델리아를 감쌀 수건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내 욕실 밖의 탈의실에 놓인 뽀송뽀송한 수건이 생각나자 잠시 머뭇거리다 자신의 하체에 둘린 수건을 풀기 시작했다.

 

 손가락 사이로 몰래 보던 델리아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뭐, 뭐, 뭐하는…!”

 

 델리아는 기가 찬 모습으로 에녹을 바라보다 그가 고개를 돌리라 손짓하자 에녹을 향한 시선을 거두었다.

 

 이윽고 큰 수건이 상체 위로 감싸졌다.

 

 “진짜……, 손이 많이 가는 아가씨네.”

 

 에녹은 델리아만 들리도록 귓가에 속삭였다. 이윽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델리아의 몸을 꽁꽁 싸매고선 소리쳤다.

 

 “이럴 줄 알았어! 테오! 일어나!”

 “……?”

 “아, 이것 참!”

 

 탕 속의 남자가 들리도록 크게 외치던 에녹은 무릎을 구부려 델리아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애써 시선을 두지 않던 델리아는 실눈으로 에녹의 뻗은 팔을 보고서 놀란 눈으로 답했다.

 

 “…네?…왜요? 왜!”

 

 에녹의 배꼽 아래로는 절대로 시선을 옮기지 않았다.

 

 자신과 다른 남자의 몸에도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델리아의 나름의 명예이자 귀족으로서의 본분이었다.

 

 “얼굴. 가려야지. 잠깐 실례.”

 

 두 팔로 델리아를 가볍게 안아들은 에녹은 자신의 품으로 그녀의 얼굴을 가려주었다.

 

 “꽉 잡아! 가자. 테오!”

 

 문을 향해 성큼성큼 내딛는 에녹은 여전히 과한 연기를 하며 욕탕의 남자를 의식했다.

 

 ‘……크다.’

 

 자신보다 훨씬 큰 체구가 실로 와 닿는 순간이었다.

 

 델리아는 목을 빼 그의 몸에 자신의 얼굴이 위치하도록 했다.

 

 남자의 품 안에, 그것도 맨살에 안겨있으니 델리아의 심장은 터질 듯 움직였다.

 

 쿵쿵거리는 심장 소리가 자신의 것인지 에녹의 것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그동안은 정말 몰랐는데, 근육들이 보기 좋게 달라붙어 있었다.

 …원래 운동을 했나?

 

 명예이자 귀족으로서의 본분은 취소.

 델리아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에녹의 상체를 감상했다. 손을 뻗어 만질 뻔한 것을 노력으로 간신히 참아내었다.

 

 하나하나 눈으로 보는데, 흉터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작고 크고의 문제가 아닌 너무 많은 수의 흉터.

 

 드르륵-

 

 문이 닫히고 에녹은 자신을 볼 수 없도록 델리아를 돌려 내려놓았다.

 

 에녹은 바닥에 놓인 수건으로 황급히 자신의 몸을 감싸고 델리아가 몸에 바르는 크림을 건네주었다.

 

 “아……고마워요.”

 

 에녹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인 델리아를 바라보던 에녹은 피식- 헛웃음을 지었다. 조금 더 조심하라고 말하려던 것을 꾹 참고 탓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위험했다는 건,

 그 누구보다도 잘 알 테니까.

 

 “난 방에서 갈아입을게.”

 

 에녹은 겁먹은 아기 새처럼 풀죽은 그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델리아는 아직도 두근거리는 심장을 품으며 자리를 나서는 에녹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문이 닫히고,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도 에녹의 모습이 보이는 것처럼 아른거렸다.

 

 ‘뭐야 진짜?……왜 이래?’

 

 델리아는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제 뺨을 찰싹 때리다가도 자신을 보고 미소 짓던 에녹의 얼굴이 떠올랐다.

 

 ‘미쳤나 봐 진짜.’

 

 델리아는 속으로 욕을 내뱉으면서도 에녹이 쓰다듬은 머리를 자신도 쓰다듬어보았다.

 

 물에 젖은 상태라 평소보다도 푸석해진 감각이 손에 느껴졌다.

 

 창피해.

 

 델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표정을 찡그렸다.

 

 창피해? 왜? 그가 뭐라고!

 델리아는 다시 표정을 풀었다.

 

 하지만 이내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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