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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추리/스릴러
49일
작가 : 최극
작품등록일 : 2020.7.31

빈민과 고아들을 보살펴 온 천사가 살해됐다.
사건당일 실명한 캐디, 품격있는 미망인, 사건 당일 입원한 딸.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추악한 비밀이 드러나지만 화려한 49제를 위해 사건은 새롭게 포장되기 시작한다.

작가 이메일 : koveteran1@naver.com

 
21화. 정교한 그물
작성일 : 20-09-30 00:57     조회 : 474     추천 : 0     분량 : 5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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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기태가 서류를 뒤적이며 막내에게 물었다.

 

  “상속받은 지분은 어디 거야?”

 

 막내가 손으로 서류 한쪽을 가리켰다.

 

  “여기 보시면 나와요. 선배님 추측대로 살해된 돈종률 의원이 소유한 골드레포츠 지분 전부예요. 모두 다 양도 받았더라구요. 이건 등기서류인데요. 이제 골드레포츠 대표이사로 변경되어 있습니다.”

  “골드레포츠만 양도 받았나?”

  “아뇨. 서류 파보니까 골드골프장 지분도 30%이상 양도 받았습니다.”

  “모두 다 2주 전에?”

  “네. 한 달 전부터 순차적으로 진행 됐구요, 2주 전 지분양도가 완결됐어요."

 

 기태가 눈을 질끈 감았다.

 역시 만만치 않은 자를 상대하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막내에게 조사를 부탁했는데 직감이 딱 맞아떨어진 것이다.

 

 이럴 때마다 기태는 가슴 쓰린 전율을 느꼈다.

 자신의 직감이 맞아떨어지길 바라면서도 아니길 바라는 미묘한 아이러니.

 

 막내가 말을 이었다.

 

  “살해된 의원이 엄청 신뢰를 했나봐요. 이렇게 자기 전 재산을 다 양도할 정도면요.”

  “그 시점에 피살자는 살해됐지.”

  “예?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기태는 순진하게 자신을 보는 막내에게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뼛속까지 믿어도 와이프에게 재산을 넘기는 남편은 흔치 않아.”

 

 막내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뭐 그렇기는 하죠. 그래도 사랑하니까 이렇게 양도한 거 아닐까요?”

  “사랑일까 아니면 30년 이상을 견뎌낸 보상일까.”

 

 막내가 고개를 갸웃했다.

 

  “보상이요?”

  “그래. 보상. 대가라고도 볼 수도 있겠군.”

  “뭐에 대한 대가라는 거죠?”

 

 기태가 암울하게 말했다.

 

  “피살자가 최혜영에게 갑작스럽게 자기 지분을 양도한 이유는 협박을 받아서일 거야.”

 

 막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협박이요? 아니 누구한테요??”

  “최혜영 씨.”

  “부인이 남편을 협박했다구요?”

 

 기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미망인이 대체 남편을 왜 협박했을까요?”

  “죽은 돈 의원이 양녀인 돈미란에게 그런 파렴치한 일을 벌인 게 과연 처음일까? 아니야. 그건 오랜 시간 능숙하게 여러 번 반복되어 왔을 거야. 그렇다면 처음은 누구였을까. 아마 와이프였겠지.”

  “예?? 맙소사. 그러면 미망인도 피살자에게 폭행을 당하며 살아왔다는 거예요?”

  “아마도.”

 

 막내형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 끔찍하네요. 그리고 그걸 삼십 년 넘게 참고 산 미망인도 아우. 게다가 폭행한 남편을 협박해서 재산을 갈취하다니.”

  “가족이라는 관계가 파괴적일 때는 상상하지 못할 만큼 잔혹하지.”

  “그러면요 선배님. 피살자를 죽인 살해범은 어떻게 되는 거죠? 잡혀 들어온 문용식은요?"

 

 기태가 미간을 찌푸렸다.

 

  "선배님은 최혜영이를 계속 의심하시는 건가요"

 

 기태는 답하지 않았다.

 지금 이 사건은 아주 정교하게 그물이 짜여져 있었다.

 

 이제 이 상황에서는 누구든 살해자가 될 수 있는 동기가 충분했다.

 돈미란은 지속적인 성폭행에 시달려왔다.

 문용식은 그런 돈미란을 보호하기 위해 당일 밤 살해현장까지 쫓아갔다.

 문제는 최혜영도 그 살인현장에 있었다는 것이다.

 

  “아참참. 한 가지 더 있어요 선배님.”

  “뭔데?”

  “문용식의 골드레프팅 채용과정이요. 특채더라구요. 그래서 아까 레프팅 관리자에게 전화해서 알아봤거든요.”

  “근데?”

  “최혜영 씨 추천을 받고 채용했더라구요.”

 

 기태가 이번에는 좀 더 강하게 눈쌀을 찌푸렸다.

 뭔가 자꾸만 더 복잡해져가고 있었다.

 

 대체 뭐가 이렇게 꼬이는 걸까.

 어딘가에 실타래의 매듭이 있을 텐데.

 그 매듭을 찾아야...

 

 - 변 형사님!!

 

 복도 끝 계단에서 김 수사관이 허겁지겁 올라와 기태를 불렀다.

 

  “여기 계셨네요. 한참 찾아다녔어요.”

  “왜? 무슨 일이야?”

  “돈종률 씨 2차 부검결과가 나왔는데요, 좀 이상해서요.”

 

  ***

 

 용식의 자백은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상수는 노트북에 용식의 진술을 입력하는 중이었다.

 

  “저는 행복하고 따뜻한 가정에 입양된 거라 믿었습니다. 미란인 겨우 10살이었고, 저는 14살이었습니다. 그런데 채 반년도 안돼서 짐승 우리에 갇힌 먹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18살 때까지 저는 하루도 쉬지 않고 맞았습니다.”

 

 진술실 문이 조용히 열리고 기태가 들어왔다.

 용식은 멈추지 않고 자백을 이어갔다.

 

  “사랑하는 내 여자를 지켜야 했습니다. 놈은 늘 그녀를 철저히 감시했습니다. 저는 힘을 키워야 했어요. 그래서 언젠가 놈에게서 빼올 날을 숨죽이며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놈의 차를 쫓아갔습니다. 일부러 차 사고를 일으켜 차를 세우려고 했어요.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도리어 제가 병원에 누워있더군요.”

  “그때가 몇 시쯤이었습니까?”

  “밤 열시가 조금 넘었을 거예요.”

  “그래서요?”

  “제 머리와 다리에 감긴 붕대를 풀어버렸어요. 그리고 링거줄도 뽑아버리고 병원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별장으로 다시 갔습니까?”

  “네. 택시를 잡아타고 갔어요.”

  “병원에서 얼마나 걸렸습니까?”

  “한 시간이 조금 안 되서 골드골프장 인근에 내렸습니다. 고장난 제 차가 그대로 세워져 있더군요. 차 트렁크에서 패들을 꺼내들고 별장으로 갔습니다. 그 별장 안에... 그 짐승과 제 동생이 있었죠.”

 

 용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사디스트 돈종률이 미란에게 어떤 짓을 했을지는 상수는 충분히 짐작했다.

 현장에 난무하던 핏자국과 당시 미란의 진료내역이 있었으니까.

 

  “침실 안으로 달려 들어가 놈의 머리통을 패들로 내리쳤습니다. 놈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어요. 스탠드도 박살이 났죠. 맨발인 미란일 무작정 끌고 나와 차에 태웠습니다.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놈이 비틀비틀 나오더군요.”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쫓아가야 했죠. 미란인 말했죠. 오빠 가지마. 그냥 버려둬, 라구요. 하지만 저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놈을 반드시 죽여버려야 했어요. 그냥 두면 그 짐승의 우리를 박살 낼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도망치는 피살자를 쫓아갔습니까?”

  “네. 미란이를 차에 두고 쫓아갔습니다. 패들을 들고 달려갔어요. 놈을 아작 낼 각오로요.”

 

 당시 상황을 진술하는 용식의 눈빛이 짐승처럼 형형했다.

 마치 먹이를 사냥하는 늑대처럼.

 

  “혼비백산해 달아나는 그 짐승을 쓰러뜨리고 놈의 목을 패들로 조였습니다. 놈이 벙커에서 발버둥을 치더군요, 컥컥 피를 토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멈추지 않았어요! 죽어! 죽어죽어!!!”

 

 광기어린 용식의 모습에 상수가 혀를 내둘렀다.

 용식은 마치 연극을 끝낸 배우처럼 제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싼 채 고개를 숙였다.

 

  “피살자를 죽인 뒤 어떻게 했습니까.”

  “패들을 가지고 언덕에서 내려왔습니다. 미란이가 있는 지프차 운전석에 타서 시동을 걸어 병원으로 갔어요.”

 

 상수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미란을 병원에 입원시켜준 의문의 남자는 예상대로 문용식이었다.

 문용식의 진술은 당일 구멍난 상황을, 아귀에 딱딱 맞게 해주고 있었다.

 

  “수고했어요. 문용식 씨. 이제 진술한 내용을 다시 확인만 해주면 됩니다.”

 

 상수가 노트북을 덮고 자리에서 막 일어났다.

 그런데 기태가 한숨을 길게 내쉬며 용식 앞으로 다가왔다.

 

  “문용식 씨. 레프팅 강사보다 배우를 하지 그랬어요.”

 

 고개를 숙이고 있던 용식이 머리를 들고 기태를 봤다.

 

  “무슨 말씀입니까, 형사님?”

  “어머니 최혜영 씨에게 꽤 많은 것을 배우셨군요. 그만큼 많이 사랑해서인가요?”

 

 용식의 눈꼬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대체 지금 제게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형사님.”

 

 기태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 다음 질문이 뭘지도 잘 알겠죠?”

  “허 참. 형사님이 뭘 물어볼지 제가 어떻게 안단 말입니까. 그리고 저는 제가 했던 모든 일을 다 실토했습니다. 한 치의 거짓도 없이요!”

 

 기태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마치 대본을 외운 연극배우 대사같군요. 문용식 씨. 당신이 진술한 내용에는 결정적 구멍이 있습니다.”

 

 기태의 말에 이번에는 상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저러는 걸까.’

 

 기태가 용식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말했다.

 

  “나는 그 뒤에 일어난 일이 더 궁금합니다.”

  “뒤라뇨?”

  “당신이 골프장에서 패들로 피살자를 내려친 뒤, 그 다음이요.”

 

 상수가 참지 못하고 나섰다.

 

  “선배. 또 왜 이래요? 대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기태가 한 손을 들어 상수를 제지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상수에게 내밀었다.

 서류를 살펴보던 상수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용식의 눈빛이 불안하게 쫓았다.

 기태가 용식에게 물었다.

 

  “많이 불안해 보이는 군요. 일부러 빼먹은 장면을 들킬까봐 겁이 납니까?”

  “대체 뭔 소리인지 이해가 안가는 군요.”

  “당신이 피살자 돈의원을 폭행할 당시, 당신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아까 말했잖요. 미란이도 그 별장에 같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란이 부상이 심해서 지프차에 두고 저 혼자 쫓아갔어요.”

  “중요한 한 사람이 빠졌어요.”

  “다른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뇨. 그녀도 그 현장에 있었다고 진술했어요.”

  “아니라구요! 아무도 없었습니다. 맹세해요!”

  “증거가 있습니다. 피살자가 최종 발견된 벙커 주변에 여자의 구두자국이 있었습니다.”

  “그, 그건 누군가 다른 여자가... 골프장 다른 손님이...”

 

 용식이 우물쭈물 하는 사이 기태가 다시 압박했다.

 

  “골프장에 온 손님은 굽이 높은 힐을 신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구두 굽에 장미인장이 찍힌 구두는 흔하지 않죠. 조사해보니 명품 한정구두였습니다. H 백화점에서 이십명의 VIP고객에게만 판매한 신발이었죠.”

 

 용식의 얼굴이 갑자기 창백해졌다.

 

 “그 구두를 구입한 VIP목록에 최혜영 씨의 이름이 있더군요.”

 “아닙니다! 아녜요! 그녀는 골프장에 오지 않았어요!”

 

 그녀?

 상수의 눈동자가 기묘하게 흔들렸다.

 어머니가 아니라 그녀라니?

 

 기태가 상수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다시 문용식을 압박했다.

 

  “문용식. 당신은 차마 끝까지 돈종률 의원을 죽이지 못했어! 피살자의 목 부분에 주저흔이 발견됐어. 당신은 패들로 그의 머리를 내려치고 그의 목을 졸랐지만 결정적 순간에 풀어버렸지. 정작 죽어가는 사람을 눈앞에 처음 본 순간 당황했던 거야.”

 

 용식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아... 아닙니다... 아녜요... 내, 내가 죽여야 했어요, 내가.”

 

 기태가 상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상수가 들고 있던 서류를 도로 내주었다.

 기태가 문용식 앞에 서류를 들이밀었다.

 

  “문용식. 이건 2차 부검결과야. 돈의원은 패들로 질식해 사망한 게 아니었어. 돈 의원은 골프채에 둔기를 맞아 뇌출혈로 사망했어.”

 

 

 -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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