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2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더. 감사합니더. 감사합니더.”

　노미는 감히 진화의 시체라도 꼭 찾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리고 감히 남겨진 가족들이 무사히 잘 살게 해달라 빌었다. 그리고 감히 자기에게도 살아갈 힘을 달라고 빌었다. 그리고 비록 내 기도를 다 들어주지 않으셔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겠다고, 그래도 감사하며 살겠다고 기도했다.

　노미는 삶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맞는지도 잘 몰랐다. 그러나 자기에게 주신 삶이 말할 수 없이 귀한 선물이라 생각했다. 살면서 만난 사람들이 노미는 말할 수 없이 소중하고 또 소중했다.

　‘지가 감히 무슨 복을 더 달라 바라겠습니꺼. 이미 주신 것으로도 차고 넘치는데예.’

　노미는 가만히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훔쳤다. 미움의 눈물도, 원망의 눈물도, 슬픔의 눈물도 아니었다. 감사의 눈물이었다. 수없이 떠나보내야 했던 그 사람이 결국 먼저 저만치 가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별을 노래하는 시를 썼던 윤동주 시인도 생각났다. 그렇게 노미는 기도를 마쳤다.

　이제 저녁을 하러 다시 부엌으로 돌아가야 했다. 노미는 식구들 밥을 해야 했다. 돌봐야 할 사람들이 있는 한, 아직 자기가 움직일 수 있는 한 노미는 누워있을 수 없었다. 노미는 그저 아버지 없이 자랄 아이들이 불쌍하고 안타까웠다. 그리고 덧없이 남편을 잃은 복권이 아내와 아이들도 마음이 쓰였다.

　이제야말로 진화를 영영 보지 못하는가 싶으니 노미는 순간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하지만 노미에게는 현명한 윤화가 있었고, 다정한 민화가 있었다. 언제나 큰 힘이 되어주는 석이와 다혜가 있었고, 말할 수 없이 든든한 남화와 서현이도 있었다. 이제 곧 고향으로 돌아와 곁을 지켜줄 태화와 유림이도 있었다. 항상 제일 먼저 노미를 챙겨주고, 세상에서 형수가 제일 좋다고 하는 정화도 있었다. 아직 건강하신 친정 부모님도, 착한 동생 준이도 있었다. 그리고 내 목숨보다 귀한 홍이, 원이, 주야 그리고 태어날 아기가 있었다.

　이 모든 이들을 만나게 해 준 이가 진화였다. 그저 부모님이 맺어주신 인연이지만 그 누구보다 노미를 사랑해주고 귀하게 대해 준 사람이었다. 진화가 곁에 없더라도 그 사람이 노미에게 베풀어준 사랑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노미는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또 그렇게 내게 주신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갈 것이다. 노미가 강해서도, 대단해서도 아니다. 사람의 삶이란 원래 그렇게 서로 사랑하며 살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어떻게든,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사랑하며 살다 보면 살아지는 것이 삶인 모양이라고 노미는 부엌으로 가며 생각했다.

　부엌으로 향하는 노미를 민화가 말리려 하자 이번에는 윤화가 민화에게 놔두라고 눈짓을 했다. 그러나 넋이 나가 있기는 윤화도 마찬가지였다.

　윤화는 형이 없는 집안을 과연 어찌 꾸려나가야 하나 싶어 막막했다. 집안일로 소소하게 의견이 달라 다투기도 했지만 윤화는 언제나 형의 결정을 존중하고 따랐다. 윤화는 한 번도 형이 없는 세상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징용 다녀온 이후로 웬만한 일로는 그다지 당황해 본 적이 없는 윤화였다. 그러나 형이 없이 집안을 꾸려나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서울에 있는 남화와 정화에게는 일부러 알리지 않았다. 이 소식을 도대체 어찌 전할까, 그 원망을 어찌 들을까 싶어 윤화는 자기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토했다. 이제 해가 산마루에 걸린 모양이었다. 천지가 시뻘겋게 물들어 그렇지 않아도 심란한 마음을 더 어지럽게 했다.

　그때였다. 윤화가 짧게 한숨을 쉬다 그만 멈칫하며 시선이 한 곳에 박혔다. 동생들도 윤화를 따라 싸리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모두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에헴~!”

　부엌으로 향하던 노미는 순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노미야~! 여보~!”

　힘없는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노미는 얼른 돌아볼 수가 없었다.

　“여보~!”

　노미가 겨우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자 진화가 노을을 등지고 싸리나무 문을 붙잡고 서 있었다. 처음에는 노을 때문에 온통 몸이 붉게 보이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진화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빨간 흙을 뒤집어쓴 채 서 있었다.

　“홍.... 홍이 아부지~!”

　노미는 진화를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 덥석 얼굴부터 잡았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노미는 진화 품에 얼굴을 묻고 남편을 끌어안았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눈물이 콸콸 쏟아지는데 정작 울음소리가 밖으로 나오지를 않았다. 그런 노미를 진화는 가만히 가슴에서 떼어내더니

　“내 흙 묻었다. 날이 추버가 씻지를 몬하고 왔다. 목욕물 받아도.”

　하며 멋쩍게 웃었다.

　“우예 된깁니꺼? 경찰들은 당신이 죽었다고…….”

　노미는 결국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

　“내 차차 얘기해 줄게. 흙더미 속에 나흘이나 숨어 있었다. 추버 죽겠다.”

　하며 또 빙그레 웃었다. 동생들은 기가 막혀 눈물도 안 나왔다.

　“형~!”

　태화가 팔을 벌리며 다가오려 하자. 진화가 또 말렸다.

　“내 지금 안으믄 안된다. 내 괘안타.”

　하며 허허 웃었다. 윤화가 진화를 따라 픽 웃었다.

　“하여튼, 내 장가도 안 가고 형수랑 애들이랑 지키며 살라 했는데, 내 이제 장가 갑니데이.”

　윤화의 말에 진화는 반색하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내 살아 돌아온 보람이 있다.”

　하며 껄껄 웃었다.

　그때 방에 아이들 보러 들어갔던 석이가 나오다 진화를 보았다.

　“형님~~!!”

　석이는 진화를 향해 통곡을 하며 달려와 부둥켜안았다. 말릴 틈도 없이 부둥켜안고 우는 석이를 진화가 등을 두드려주자 주춤거리며 서 있던 민화가 눈물을 펑펑 쏟으며 진화에게 와락 매달렸다. 그제야 태화도 통곡을 하며 진화를 끌어안았다. 그렇게 진화를 가운데 두고 둘러싸며 끌어안고 동생들은 또 그렇게 통곡을 하며 울었다. 눈시울이 붉어진 윤화도 그렇게 형과 동생들을 끌어안았다.

　“형수 숨 막힌다. 이제 고마해라.”

　하며 진화가 동생들을 애써 밀쳐내자 진화 품속에 폭 파묻혀 있던 노미가 겨우 숨을 쉬며 얼굴을 내밀었다. 노미 얼굴이 어느새 붉은 흙으로 얼룩덜룩해져 버렸다. 그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동생들은 또 그렇게 울며 웃었다. 마루에 나와 선 다혜와 유림이는 서로 손을 부여잡고 눈물을 훔치며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진화는 그렇게 다시 가족들 곁으로, 노미 곁으로 돌아왔다.

　태화와 석이는 목욕물 준비하러 부엌으로 뛰어가고, 민화는 옷이랑 수건을 챙긴다고 안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노미는 일단 세숫대야에 더운물을 받아 진화 세수부터 하게 했다. 그리고 마루에 걸터앉은 진화의 발을 씻겨주었다. 그런 노미를 진화는 또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 좀 앉아라. 얼굴이 하얗다.”

　진화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노미 손을 잡아 일으켜 자기 옆에 앉게 했다.

　“서방님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데 니는 ‘감사합니더.’ 하고 기도가 나오나?”

　하며 진화가 섭섭한 듯이 말했다. 노미가 기도하는 소리를 들었던 모양이다. 노미는 뭐라 말도 못 하고 그저 진화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얼굴만 씻었는데도 고운 내 낭군 얼굴이었다.

　“그라믄, 내도 델꼬 가이소, 내도 죽여 주이소 할까예?”

　노미는 결국 눈물이 왈칵 쏟아져 볼을 타고 줄줄 흘렀다.

　“이번에는.... 참말로.... 다시는 몬 보는 줄 알았습니더..... 다시는 몬 보나 해가 참말로... 참말로... 무서벘습니더.... 흐흑....”

　노미는 진화의 손을 자기 볼에 대고 비비며 흐느꼈다. 그 모습이 아름다워서, 그 모습이 한없이 안타까워서, 그리고 고마워서 진화는 그렇게 한참을 노미의 우는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내도.... 그게 젤로 무섭더라.... 니 얼굴을... 내 다시는 몬 보나 싶은게....”

　진화는 이제 손으로 노미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훔쳐주었다. 노미는 이제 아기처럼 코까지 훌쩍이며 울고 있었다. 꺼이꺼이 하고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니 아나?”

　노미는 울음을 겨우 삼키며 진화가 무슨 말을 하려나 싶어 진화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니는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참말로 곱다.”

　세상에서 젤로 잘난 서방님이 곱다고 해주니 노미는 말로 할 수 없이 행복하기도 하고 수줍기도 했다.

　“얼굴 말고 마음이....”

　하며 진화는 또 장난스럽게 웃었다. 노미 눈이 동그래지자, 그 표정이 재미있어 진화는 큭큭 웃었다.

　“아니, 마음도.... 마음도 곱다고.... 내 마누라 오노미는 얼굴도 곱지만, 마음이 더 곱다고....”

　노미는 기가 막혀 울면서 웃었다. 그런 두 사람을 윤화는 그저 빙그레 웃으며 바라보았다.

　좋은 날만 있지는 않으리란 걸 알고 있었다. 나의 할아버지 정진화 님은 식구 많은 집 장남이셨고, 집안 종손이셨다. 항상 깔끔하게 씻으시고, 절제하시고,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엄하셨다. 일 년에 아홉 차례나 제사를 지내야 했고, 아이들은 계속 태어났다. 물려받은 재산은 많지 않았지만, 그것을 동생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주셨다. 하늘에서 학이 내려와 사람이 되었다는 칭찬을 받던 존경받는 훈장님이셨고, 소년 시절에는 동네 처녀들이 얼굴 한번 보겠다고 서당 가는 길목에 숨어 있을 만큼 훤칠한 미남이셨다. 그러나 남들 칭찬에 우쭐대지 않으셨고, 검소하고 단정한 옷을 즐겨 입으셨다. 한평생 욕심도 없으셨지만 돈 버는 재주 또한 없으셨다. 늘 바르게 배우고자 하셨고, 또 바르게 가르치고자 하셨다. 정도 많으셨고, 눈물도 많으셨다. 어쩔 수 없는 옛날 사람이라 자식들과 뜻이 맞지 않아 섭섭하게 하실 때도 있었고, 당신 속마음을 밝게 보여주시지 못하실 때도 있었지만, 내 수고는 그저 나만 알면 된다는 마음으로 사셨다. 평생을 진심으로 가족들과 자식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사셨다.

　나중에 할아버지는 할머니 이름을 오 선행(善行)이라고 지어주셨다. 그리고 늘 할머니를 향해 햇살처럼 웃곤 하셨다. 나의 할아버지 정진화 님은 그렇게 자기 아내를 참으로 사랑하며 사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