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화 산에서 내려온 친구들
1946년 봄은 노미와 가족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행복한 시기였다. 남화와 태화가 한 달 사이로 장가를 가 가정을 이루었고, 민화는 교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고, 정화도 별 탈 없이 학업에 매진하고 있었다.
태화는 경주 처가에서 일 년을 지내고 나서 장모님을 모시고 구길로 돌아와 살기로 했고, 민화는 교사자격증 공부를 하느라 경주에 자주 왔다 갔다 해야 했다. 그 바람에 집에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서 진화가 면사무소 일을 그만두고 농사일을 다시 시작했다. 내내 무언가 남의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은 공무원 생활이 영 마땅치 않았던 터라 진화는 면사무소 일을 그만둔 것이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 진화는 바쁜 와중에도 밤마다 아이들에게 한문을 가르쳤고, 노미는 한글을 가르쳤다. 배우려는 학생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진화는 가르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윤화와 석이는 본격적으로 시작한 소장사가 매우 잘돼서 집에 있는 날이 거의 없었다. 남화와 정화는 서울에서 꾸준히 소식을 전했다. 공부는 어렵지 않게 잘 해내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시절은 여전히 어수선해서 서울에서 전해오는 소식은 반가운 것만 있지는 않았다. 일본이 물러간 자리에 소련과 미국이 싸우고 있었다. 거대한 두 나라가 왜 이 작은 나라를 남과 북으로 갈라놓고 싸우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윤화의 말대로 이제 우리는 남이 갈라놓은 선을 사이에 두고 우리끼리 싸우기 시작했다.
어느 날, 동네 형들이 우르르 진화네 집으로 몰려와 오랜만에 둘러앉았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얼마 전부터 공산당에 푹 빠져있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열심히 진화를 자기 당으로 끌어들이려고 설득했다.
“그래, 그래, 알았다. 그라믄 그 당에서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는 세상을 만든다 그거 아이가?”
라고 진화가 말하자 공산당원인 그 형은
“그렇지!”
하고 반갑게 맞장구를 쳤다.
“그라기 위해서 재산을 다 똑같이 나눈다고?”
“그렇지!”
“그라믄 일단 다 가져가야 된다 아이가? 일단 다 가져가가 훌륭하신 당에서 다 똑같이 나눠준다는 거 아이가?”
“하하! 그렇다!”
“일단 가져간다는 기네.”
“그렇지. 위대하신 당에서 그렇게 우리를 위해 혁명적 나라를 세우시고 이끌어주실끼다.”
하고 공산당에 제일 열심인 성광이 형이 주먹까지 쥐고 흔들며 열변을 토했다. 진화는 마땅치 않은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일단 가지고 가가 똑같이 나눠준다! 허허, 어디서 마이 듣던 얘기다.”
라고 말하며 진화는 헛웃음을 웃었다. 할머니는 그때의 그 설명하기 힘든 할아버지 표정을 잊을 수 없다고 하셨다.
그들은 모두 그저 친하게 지내던 동네 형들이었다. 진화는 그들을 돌려보내고 나서 노미에게 앞으로 일본놈들 판칠 때 보다 더한 세상이 올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윤화가 걱정하던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공산당 형들이 돌아가고 나자 멀찍이 앉아서 듣고만 있던 윤화가 말했다.
“남의 나라 놈들이 와가 우리 애들 잡아다 죽이던 세상은 끝난 것 같습니더. 그런데 암만해도 이제 우리끼리 우리 애들 잡아다 죽이지 싶습니더.”
윤화를 바라보는 진화의 표정은 그 어느 때 보다 무거웠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가을 추수도 끝나 잠시 농사일이 좀 덜 바빠진 어느 날 밤이었다. 윤화는 장사하러 다니느라 집에 없었고, 민화도 경주에 가 있었다. 모두 잠이 든 한밤중이었는데 누군가 진화가 자는 방문을 두드렸다.
“진화! 진화! 안에 있나?”
목소리가 귀에 익은 것을 보니 아는 이인 것은 분명한데 진화는 얼른 누군지 떠오르지 않았다.
“누꼬?”
그 바람에 노미도 얼핏 잠에서 깨었다.
“내다. 성광이다!”
성광이라면 얼마 전 진화에게 공산당에 들어오라고 권하던 동네 형이었다. 그렇게 여기저기 다니며 공산당에 들어오라고 하더니 경찰들이 공산당을 잡으러 다닌다는 소식에 산으로 도망친 후 소식을 알 수 없었다. 진화는 순간 미간이 찌푸려졌다. 반갑지 않은 손님인 것이다. 노미도 겁에 질린 표정으로 진화의 옷자락을 잡았다.
“괘안타. 내한테 나쁘게 할 사람이 아이다.”
하며 진화는 노미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노미는 불길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홍이 아부지...”
하는데 진화는 옷자락을 잡고 있는 노미 손을 가만히 떼어내고는
“나오지 마래이,”
하더니
“그래, 형! 내 나간다.”
하며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밖에는 성광이 형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얼추 대여섯 명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들이 모두 먼지를 뒤집어쓴 채 머리는 산발을 하고 서 있는데 얼른 보기에도 한 달이 넘게 제대로 씻지도 못한 것 같은 몰골들이었다.
진화는 순간 머리가 쭈뼛하고 서는 것 같았다. 그들은 경찰들이 밤낮없이 잡으러 다니는 공산당원들, 즉 빨갱이들인 것이다. 그러나 그중에는 진화가 아는 이들도 있었고, 진화를 찾아온 성광이 형은 어린 시절부터 가깝게 지낸 막역한 사이였다.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 우리 몰골이 흉하제?”
진화는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니 이발할 줄 알제? 내 머리는 내내 니가 깎아줬다 아이가. 미안스럽지만 우리 이발 좀 해 줄 수 있나?”
“이발?”
진화는 기가 막혔다. 그러나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진화는 달빛 아래서 그들의 이발을 해주었다. 모두 고마워하며 진화에게 인사하는데, 그들은 그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함께 어울려 살던 이웃 친구들일 뿐이었다.
“진짜 미안한데, 식은 밥 좀 있나? 우리가 며칠째 아무것도 못 묵었다.”
진화는 부엌으로 가서 긁어 놓은 누룽지를 가지고 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쌀도 한 말 담아서 성광이에게 안겨주었다. 성광이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고마워했다. 그렇게 그들은 쌀에 고추장 된장까지 얻어갔다. 그들이 모두 돌아가고 나자 진화는 어쩔 수 없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다음 날, 진화가 늦은 아침을 먹고 있는데 이번에는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누군가 밤사이 진화네 집에 빨갱이가 왔다 갔다고 신고를 한 것이다. 일본 순사들처럼 사람을 무조건 잡아다 때리기부터 하는 시절은 아니었지만 잘못 걸리면 고초를 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윤화라도 집에 있으면 어찌해볼 텐데 천지사방으로 다니는 사람이라 어떻게 기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노미는 경주 친정에 일단 소식을 전하고는 이제나저제나 진화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진화 소식을 듣고 민화와 태화가 제일 먼저 달려와 주었다. 하지만 도련님들에게도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경찰서에 잡혀간 진화는 형사에게서 ‘너도 공산당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진화는 자기는 공산당원이 아니고 그저 아는 형들 이발을 해 주고 먹을 것을 좀 주었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공산당에게 먹을 것을 주고 친절을 베풀었다는 이유만으로 진화는 일주일이나 구치소에 갇혀있어야 했다. 그나마 이리저리 손을 쓴 덕분에 더 길게 갇혀있지 않고 나올 수 있었다.
뽀얗던 사람이 볼살이 쪽 빠진 채 새까맣게 되어 집에 돌아왔다. 노미는 기가 막히는데, 진화는 그나마 매실장아찌 밥이 아니라 보리밥에 동치미를 주더라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안가겠다는 민화와 태화를 달래 다시 경주로 돌려 보내놓고 진화는 윤화에게도 일부러 기별할 거 없다고 노미를 말렸다.
여기저기 흉흉한 소문들이 들려왔다. 밤사이 빨갱이들이 일본 순사였던 사람 집에 들이닥쳐 온 가족이 다 몰살당했다는 이야기, 내내 벼르고 있던 어느 동네 인심 사나운 지주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밤사이 불에 타 재만 남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진화네 동네 제일 부잣집인 손가네 집은 밤사이 쥐도 새도 모르게 창고를 털렸다. 그나마 재물을 잃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밤이면 빨갱이들이 내려와 사람을 잡아가고, 낮이면 경찰들이 들이닥쳐 또 사람을 잡아갔다. 예전에는 우는 아이를 ‘일본 순사 온다!’하고 달랬는데, 이제는 ‘빨갱이 온다! 아니 저기 경찰 온다!’하고 달랬다.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사람 잡아가는 일은 계속되었다.
“당신도 어디 좀 피해 있어야 하지 않겠는교?”
하고 노미가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진화에게 권해보았지만, 진화는 냉정하게
“집에 니랑 애들만 두고 어데로 가노? 마, 됐다! 경찰에서도 내 혐의 없는 거 알고 그다지 신경 안쓰이 걱정할 거 없다.”
하며 애써 노미를 안심시켰다.
그렇게 또 한동안 아무 일 없이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어느 날 밤, 반갑지 않은 손님들이 또 찾아왔다.
“진화! 진화! 안에 있나?”
노미는 순간 머리가 쭈뼛 서는 것 같았다. 성광이 목소리였다. 간담이 서늘하기는 진화도 마찬가지였다.
“어! 나간다!”
진화는 문을 열고 나섰다. 밖에는 전에 이발해 주었던 이들과 성광이가 서 있었다. 바로 눈앞도 잘 안 보이는 그믐밤에 횃불도 들지 않은 채 서 있는 검은 형체들은 사람이 아니라 땅에서 튀어나온 귀신들 같았다. 형체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오늘은 분위기는 전과 사뭇 달랐다.
“무슨 일이고? 또 이발하러 왔나?”
하고 진화가 묻자 성광이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오늘은 이발하러 온 것이 아니라.... 니 우리랑 좀 같이 가자.”
순간, 진화는 말문이 막혔다. 그것은 부탁이 아니었다.
“집에 안사람이랑 애들 뿐이라 내 형이랑 같이 몬 간다.”
진화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안다. 잠시만 다녀오믄 된다. 산에 이발해 줄 사람이 필요한데 내 아는 사람이 니뿐이다. 그라고.... 대장이 니를 좀 보고 싶어 한다.”
“대장? 대장이 누군데?”
“가보믄 안다.”
그때 노미가 문을 열고 나왔다.
“안됩니더!”
모두 멈칫하는데 진화가 노미를 향해 낮게 소리쳤다.
“드가라! 내 금방 다녀온다.”
노미는 어느새 눈앞이 눈물로 흐릿해졌다.
“안됩니더! 홍이 아부지! 안됩니더!”
노미는 눈물을 삼키며 애처롭게 진화의 팔을 잡았다. 노미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런 노미의 손을 진화가 꽉 움켜잡았다. 어느새 진화의 손도 식은 땀으로 축축해져 있었다.
“제수씨, 너무 걱정하지 마이소. 이발만 좀 해주고 다시 옵니더.”
그러나 성광이의 목소리는 평소에 노미가 알던 그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차갑게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는 그가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고 있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노미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곁에 섰던 한 사나이가 진화의 팔을 잡아끌었다. 진화는 순간 눈을 부라리며 그의 팔을 획 뿌리쳤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이 진화를 향해 다가오려는 걸 성광이 눈으로 말렸다.
진화는 자기 팔을 움켜쥐고 있는 노미의 손을 가만히 떼어냈다. 노미는 여전히 벌벌 떨며 서 있었다. 진화의 눈은 새카만 밤인데도 반짝거렸다.
“내 걱정하지 마라. 애들 잘 챙기고.... 금방 온다. 알았제?”
하며 진화는 방에서 이발 도구를 챙겨 들고나와 마지막으로 노미의 배를 어루만졌다. 이제 막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노미의 뱃속에는 넷째가 자라고 있었다.
“윤화랑 민화가 곧 올끼다. 몸조심하고.... 뭐든 혼자 할라 하지 말고, 윤화랑 동생들이랑 의논해가 하고.... 알았나?”
노미는 목에 커다란 돌멩이가 걸린 것만 같았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필사적으로 가지 말라고 했지만 노미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국, 진화는 노미의 손을 놓았다. 그렇게 노미는 꽉 잡고 있던 진화의 손을 놓치고 말았다.
진화와 혼인한 이후, 참 많이도 저 손을 놓치곤 했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렇게 그 사람 손을 놓아야 할 때마다 노미는 다시는 저 사람을 못 보면 어쩌나 했었다. 그래도 진화는 어떻게든 다시 돌아와 주었다. 세상 끝까지 갔다가도 돌아와 주었고, 노미가 저승 직전까지 갔을 때도 돌아와 노미를 살려주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느낌이 달랐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그믐밤인데도 어두운 형체들에 둘러싸인 하얀 옷의 진화만이 환하게 보였다. 진화는 잠깐 노미를 돌아보았다. 그 눈이, 그 눈빛이 노미가 보는 진화의 마지막 모습인 것만 같았다. 노미는 이가 다 덜덜 떨렸다.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을 빼앗기고, 잃어야 했다. 그것은 노미 만이 아니었다. 그 당시 여인들은 그렇게 매일 매 순간 사랑하는 이들을 빼앗기고 잃어야 했다. 하늘을 원망할 수도, 땅을 원망할 수도, 사람을 원망할 수도 없었다. 그저 자기 가슴을 쥐어뜯는 것 말고는 그 당시 여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