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화 공주마마
1946년 2월, 설이 다가오고 있었다. 해방 후 첫 설이었다. 양력을 쓰는 서양 사람들은 1월 1일이 새해이지만, 음력을 쓰는 동양 사람들은 보통 양력 2월 중순 무렵이 새해 첫날이 된다. 일본은 음력 설을 금지했다. 제사도 금지였다. 조선 사람들 것, 한국스러운 것은 그냥 다 금지였다.
해방된 후, 가을학기부터 대학에 다시 다니게 된 정화와 남화는 오랜만에 감격스러운 대학 생활을 하며 함께 서울에서 지냈다. 가을학기를 함께 보내고 정화는 겨울방학 하자마자 고향에 내려갔고, 병원 일을 하고 있던 남화는 설이 되어 휴가를 받으면 고향에 내려가기로 했다. 이제 며칠 후면 설이었다. 남화는 휴가를 받아 고향에 내려갈 생각에 설레었다.
“그랑께, 여적까지 방선생님은 만주에 계신다고라?”
하고 남화를 향해 징한 전라도 사투리로 말하고 있는 사람은 석이가 아니라 파란 눈에 금발 머리를 한 백인 청년이었다.
“He has no plan yet but he know that he will move somewhere.”
(선생님은 아직 계획이 없으셔. 하지만 어딘가로 움직이셔야 한다는 건 알고 계시지.)
하고 남화는 영어로 대답했다. 미국 사람이 한국말을, 그것도 전라도 사투리로 한굴말을 하고, 한국 사람이 영어로 말하고 있는 이 희한한 광경을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보았다. 두 사람은 지금 서울역 근처에 볼 일이 있어 왔다가 눈에 띄는 한 국밥집에 마주 앉아 있었다.
“워매, 깝깝한거~. 아부지가 벌써부터 방선생님 원제 이리 건너오시나 하든디. 일본놈들 물러강께 이자는 코쟁이들이 설쳐싸니.... 참말로 나가 헐 말이 없소잉.”
하며 백인 청년은 한숨을 쉬었다. 이 청년의 이름은 휴 린턴, 한국 이름은 ‘인휴(印休)’였다.
그의 아버지 윌리엄 린턴은 22세에 한국에 건너와서 48년간 의료와 선교활동을 한 미국인 선교사였다. 그의 가족은 1940년 일본이 미국과 전쟁을 시작하면서 한국에서 추방되었다가 해방이 되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 놀라운 미국인 가족은 한국 현대사와 그 삶을 함께한 위대한 사람들이었다. 휴 린턴의 아버지가 전라도 군산에서 선교활동을 하셨고 휴는 1926년에 전라도 군산에서 출생했다. 그래서 그는 전라도 사투리를 이처럼 징하게 쓰는 백인 소년이 된 것이다. 휴의 아버지인 윌리엄 린턴은 만주에 있는 방 선생님과 가까운 사이였다. 그리고 남화는 휴와 의대에서 함께 공부하는 사이로, 학교에서, 병원에서 함께 하는 일이 많다 보니 둘은 어느새 친한 친구가 되었다.
“How could you talk like that?(어떻게 그런 말을 하니?) 니도 같은 코쟁이 아이가?”
라고 남화가 조금 놀리듯 말했다. 휴는 미간을 지푸렸다.
“그랑께 거시기 하다고요잉. 나가 그딴 취급을 받고 있응께.”
남화는 휴가 정말 한국 사람인 듯 화가 나서 툴툴거리는 것이 여간 우습지 않았다.
“내가 너랑 얘기하고 있으믄 내가 미국 사람이랑 얘기하는지, 우리 석이랑 얘기하는지 알 수가 없다.”
하며 남화는 허허하고 웃었다.
“형이 하도 석이형 야그를 마이 해서 나가 석이형이랑 아는 사이 같당께. 같은 전라동께 원젠가는 함 보고잡네.”
하며 휴도 큭큭 웃었다. 참 볼수록 희안한 광경의 두 사람이었다. 그때 휴가 남화가 앞에 받아만 놓고 마시지 않는 막걸리를 발견했다.
“막걸리 안 마셔라? 내 눈치 보지 말고 드셔요잉. 나는 장로교 신자라 술 마시믄 안되지만 형은 막걸리 좋아한다 안했어라?”
발음 하나 꼬이지 않는 정확한 전라도 사투리로 휴는 남화에게 막걸리를 권했다.
“We are friends. I don’t want to drink without you.”
(우리는 친구니까. 난 너 없이는 마시고 싶지 않은데.)
하며 남화는 실눈을 뜨며 휴에게 막걸리를 짐짓 권했다. 휴는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표정으로 잠시 눈을 깜빡이더니,
“OK, 나가 형 땜시 쪼매 마셔줄랑께. 실은 어릴 때 동네 잔치허면 할매들이 마셔보라고 막 주고 그래가 내 쪼매 마셔봤어라.”
하며 휴는 키득키득 웃더니 막걸리 잔을 들었다. 그리고 남화와 건배를 하고나서 잔을 입에 대고 막거리를 홀짝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는 ‘카아!’하며 술 마신 티를 내더니
“여그 막걸리 유명하다더니 진짜 맛있네요잉.”
했다.
그때였다. ‘와장창’하며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이 년이!”
하며 한 술 취한 손님이 술을 나르던 이 집 아가씨 손목을 획 낚아채더니 손을 들어 때리려 했다. 남화가 번개처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 손님의 손목을 와락 잡아챘다.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술 취한 손님은 덩치는 제법 다부져도 키가 크지 않았다. 키가 머리 하나가 더 큰 남화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내려다 보고 서 있으니 그자는 기가 죽었다.
“이 년이 술을 따르라 했더니 자기는 그런 거 안 한다면서 앙탈을 부리잖소. 니미 술집년 주제에...,”
하며 험한 소리를 했다.
“뭐요?!”
남화는 눈을 더 부라리며 그 사나이를 잡은 손을 더 꽉 쥐었다. 그사이 휴는 쓰러진 소녀를 부축해 좀 떨어진 곳에 앉게 했다. 당황한 소녀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와중에도 고맙다는 눈인사를 했다. 놀라고 분한 소녀는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으며 입술을 앙 물고 있었다. 그때 국밥집 주인이 달려왔다.
“아이고, 손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 년이 아직 천지 분간을 못 하고 지가 아직도 공주인 줄 아는 모양입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며 그 행패 부리던 놈에게 연신 굽신거렸다. 주인이 굽신거리며 자기편을 들자 그놈은 남화에게 잡혔던 손을 획 뿌리치더니
“공주가 술 따라 주는 집이라 해서 왔더니만, 이 멀대같은 놈은 뭐야?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아까부터 양코쟁이랑 혀꼬부라진 소리나 하고...!”
그자는 술에 취해 자기가 더 꼬부라진 혀로 아무 말이나 내뱉으며 뭐든 손에 잡히는 것을 찾아 한 대 치려는 듯 빈 술병을 손에 쥐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소녀 곁에 앉아 있던 휴가 일어나 남화 옆에 와서 섰다. 키가 190이었다. 키가 멀대같이 큰 놈 옆에 키가 더 큰 양코쟁이가 떡 버티고 섰다. 술에 취한 중에도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그 자는 슬그머니 손에 쥔 술병을 내려놓았다.
“에이 재수가 없으려니...!”
하며 그는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남화는 기가 막혀 뭐라고 한마디 하려는데
“아이고! 선생님도 고정하세요.”
하고 국밥집 주인은 남화도 말렸다. 그러더니 아직도 놀란 가슴이 가라앉지 않아 숨만 겨우 쉬고 있는 소녀에게 냅다 소리를 질렀다.
“야! 이년아! 손님이 와서 술 따라라 하면 고분고분하게 술이나 따를 것이지 니가 뭐라고 앙탈이야! 먹여주고 재워주면 밥값을 해야 할 거 아니야! 인물이 반반해서 쓸모가 있을 줄 알았더니 어떻게 된 년이 여자짓을 할 줄 모르냐, 넌!”
하며 포악을 떨었다.
“삼촌, 저 진짜 이런 거 못해요. 설거지랑 청소는 할 테니까 술 심부름은 안 하면 안돼요?”
하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울먹이며 말했다. 그러자 옆에서 팔짱을 꼬고 지켜보고 있던 이 집 안주인이 눈을 팩 뜨며 소녀에게 쏘아붙였다.
“못하긴 뭘 못해? 손님이 손잡자면 은근히 손목도 잡혀주고, 눈웃음도 살살 치고, 요래 엉덩이도 좀 흔들고 해야지! 누가 너더러 몸을 팔래? 너 같은 년이 먹고살라면 딱 두 가지뿐이야. 이래 여자 짓을 해서 장사를 하든지, 부잣집 첩으로 들어가서 조강지처 밀쳐내고 서방을 꿰차고 살든지!”
남화는 두 부부가 쏟아내는 소리를 더는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보시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립니까? 삼촌이시라면서요. 삼촌이 조카에게 그게 할 소립니까?”
남화는 그저 떨고만 있는 소녀를 잠시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눈에 힘을 주고 단호하게 말했다.
“여자 짓이라니요. 언제부터 그런 것이 여자 짓입니까. 여자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가족을 돌보고, 아이를 낳고, 기르고, 딸로, 아내로, 어머니로 한평생을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어찌 사람의 입으로 그런 막말을 담습니까! 당신들은 딸도 없습니까?”
남화는 좀처럼 누구에게 크게 화를 내는 법이 없었는데 지금은 너무 화가 나서 이가 다 덜덜 떨렸다. 남화의 말에 삼촌이라는 자는 뭐라 대꾸도 못 하고 자기 아내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자 그 아내는 짐짓 아니꼬운 표정으로 남화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선생님, 뭐 좀 많이 배우신 분인 모양인데. 요즘 세상에 여자가 여자 짓을 안하고 어떻게 먹고 삽니까? 누가 저런 애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준답니까? 꼴에 이씨 왕손 혈통이라고 지가 아직도 공주인 줄 아는 모양인데, 천지사방에 의지할 데 없는 애를 외삼촌이 돼서 모르는 척 할 수 없어 데려왔더니 이년이 이렇게 뻔뻔스러울 수가 없어요. 어떻게~, 선생님이 데려가시겠습니까?”
하며 뱀처럼 눈짓을 했다. 남화는 어이가 없어 더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야, 이년아! 어서 들어가서 설거지나 해! 으이구! 이 쓸모없는 년아!”
하며 삼촌이란 자가 소녀의 어깨를 획 잡아채 부엌으로 밀어붙였다. 남화는 소녀가 너무 가엾었다. 하지만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휴는 남화에게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형님, 일단 좀 참으셔라. 나가 여기 가끔 와가 저 아가씨 거시기 헌지 봐 드릴텐께. 진짜 나쁜 사람들이네요잉.”
휴는 남화를 달래 자리로 돌아갔다. 깨진 술병을 어린 소년이 빗자루로 쓸어 담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 어려 하는 짓이 영 어설프다. 그러자 주인이란 자가 획 달려오더니 소년의 뒤통수를 냅다 때렸다.
“이 병신새끼! 똑바로 안 해? 으이구! 저건 누굴 닮아 저 모양이야!”
했다. 소년은 잔뜩 기죽은 표정으로 아픈 뒤통수를 잡으며
“아... 아버지....”
했다. 이 집 아들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뒤통수를 맞고 눈물이 맺힌 소년에게 아까 그 소녀가 다가와 쓰레질을 도와주었다.
“권아, 이건 내가 할게. 아버지한테 혼나지 말고 저리 가 있어.”
하며 권이라 불린 열 살 남짓한 아이를 한없이 안된 표정으로 바라보며 자리를 피하게 했다. 아이는 빗자루를 누나에게 건네주고는 그렁한 눈으로 휙 밖으로 달려나갔다. 달려나가며 아이는 남화를 뭐라 말하기 어려운 수많은 감정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더니 휙 지나쳐 갔다.
주인 부부가 다른 손님을 상대하느라 바쁜 걸 확인하고는 소녀는 감자전이 담긴 접시를 들고 남화와 휴가 앉아 있는 자리로 다가왔다. 행색은 남루했으나 자태는 단아한 소녀였다. 소녀는 감자전을 상 위에 올려놓고는 가만히 허리를 숙여 두 사람에게 절을 했다.
“좀 전에는 감사했습니다. 저희 삼촌과 숙모께서 두 분께 큰 실례를 했습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립니다.”
하며 꾸벅 인사를 하고는 서둘러 자리를 피하려 했다. 그러자 남화가
“실례는 두 분이 아가씨에게 했습니다. 왜 참으십니까?”
하며 사뭇 엄하게 말했다.
“그래도, 친척 어른들이시고, 저를 거두어주신 분들입니다. 제가 비록 처지가 이러해도 사람의 도리를 해야지요.”
“사람의 도리가 무언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아가씨만 사람의 도리를 하십니까?”
남화가 꾸짖듯이 말하자 기가 죽을 줄 알았던 소녀가 눈을 빛내며 대꾸했다.
“상대가 내게 사람의 도리를 안 한다고 나까지 사람의 도리를 안 합니까?”
남화는 잠시 소녀를 보았다. 소녀의 말이 맞았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두 사람을 바라보던 휴가 끼어들었다.
“저기요. 아가씨, 이리 잠깐 앉으셔라. 이름이 뭐요? 아니, 성함이 어떻게 되셔요?”
하며 다정하게 물었다. 소녀는 외국 사람이 한국말을, 그것도 전라도 사투리로 유창하게 하는 것이 매우 신기했다. 소녀는 조금 경계를 풀고 웃으며 휴가 권하는 대로 옆자리에 앉았다.
“이가 서현이라 하옵니다.”
곁에서 본 소녀는 정말 고왔다. 잠깐 보여준 눈웃음도 참 예뻤다. 이러니 저자들이 소녀를 그토록 괴롭히는구나 싶었다.
“참말로, 공주님이셔라? 왕손이라 하던디 맞소잉?”
소녀는 부끄러운 듯 얼른 고개를 못 들더니
“아버지께서 철종 대왕님 후손이십니다.”
휴는 깜짝 놀라며 사뭇 신기한 듯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럼, 부모님은, 가족은, 아무도 안 계셔라?”
소녀는 눈시울을 붉혔다. 휴는 괜한 것을 물었구나 싶어 미안해하며 남화에게 ‘어떻게~!’하는 눈빛을 보냈다.
“아무리 의지할 데가 없는 처지라 하나 왜 싫은 일을 억지로 하십니까?”
하고 남화가 소녀에게 조금도 다정하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어떻게요. 숙모 말씀대로 먹여주고 재워주시는데요.”
기백이 넘치던 목소리는 어디로 가고 소녀는 한없이 작은 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내가 싫은 것은 안 하는 것을 권리라 합니다. 애기씨는 자기가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자기 권리는 자기가 지키는 것입니다. 남이 지켜주는 것이 아닙니다.”
소녀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처연한 표정으로 남화를 바라보았다.
“싫은 것은 하지 마십시오. 안 하겠다 하십시오. 삼촌께 말씀하실 수 있겠습니까?”
남화는 소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다짐하듯이 말했다. 소녀는 얼른 뭐라 대답할 수 없었다. 그때 주인 여자가 서현이를 향해 소리를 쳤다.
“서현아! 뭐하니? 여기 손님이 찾으시잖아!”
소녀는 잠시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는 남화와 휴를 향해 꾸벅 절을 하고는 서둘러 부르는 손님을 향해 뛰어갔다. 다행히 그 손님은 고약한 놈이 아니었는지 간단한 주문을 하고는 소녀를 보내주었다. 분이 풀리지 않은 남화는 막걸리를 단숨에 들이켰다. 타일러가 소녀가 놓고 간 감자전을 한 젓가락 먹어보더니
“와! 이거 겁나 맛있네요잉. 형, 이거 좀 먹어보드랑께.”
하며 권하는데, 남화가 애써 웃으며 사양했다. 그러자 휴가 한국식으로 감자전 한쪽을 젓가락으로 쭉 찢어 입 앞에서 흔들었다.
“조선에서는 싫다고 해도 세 번은 권하는 거라믄서요잉.”
하며 웃었다. 남화는 어쩔 수 없이 휴가 집어주는 감자전을 받아먹었다. 생각보다 맛있는 감자전을 씹으며 남화도 휴를 따라 웃었다. 하지만 손님들 시중드느라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는 소녀를 보며 남화는 자꾸 가슴이 답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