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화 광복(光復) 빛이 돌아오다.

　아침을 먹고 다들 늘어져 잠이 들었다. 서로 또 잃을까 싶어 다들 한방에 모여 부둥켜안고 잠이 들었다. 며칠 동안 모두 다 제대로 잠을 못 잤다. 하지만 태화는 잠든 민화 얼굴을 바라보며 잠을 자지 않았다. 노미도 마찬가지였다. 잠이 들면 이 모든 게 다 꿈이라고 할까 봐. 잠든 사이에 또 민화가 없어질까 봐 태화는 잠을 안 자고 민화 옆을 지켰다.

　비가 또 사르르 왔다 갔다.

　노미는 점심 준비를 하려고 마당으로 나섰다. 그런데 싸리문에 누가 서 있다. 쑥부쟁이 꽃을 한 아름 안고 서 있는 어린 소녀가 창백한 얼굴로 노미를 바라보았다. 나영이었다. 나영이는 이제 열세 살이었다. 일곱 살 아기였던 아이가 어느새 훌쩍 자라 제법 처녀티가 나는 소녀가 되었다.

　“선생님...”

　하고 나영이가 노미를 불렀다. 밤새 울었는지 얼굴이 퉁퉁 부어있었다. 한 아름 안고 있는 쑥부쟁이 꽃이 달달 떨리고 있었다.

　“오라버니가.... 오라버니가 없어예. 동구 밖 나무 밑에 가봤는데 오라버니만 없어예. 누가 데리고 갔을까예?”

　하며 울었다. 노미는 얼른 무어라 대답해주어야 할지 몰랐다. 나영이 마음을 알기에 노미는 아이가 얼마나 속이 탔을까 싶어 얼른 소식을 전해 주려고 다가가려는데 나영이 뒤에 민화가 와서 섰다. 자는 줄 알았더니 그 사이 뒷마당을 둘러보고 오는 모양이었다. 민화는 노미에게 눈짓으로 조용히 하라고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는 가만히 나영이 눈을 손으로 가렸다. 그리고는 소리 안 나게 큭큭 웃었다. 나영이는 깜짝 놀랐다. 도대체 누가 이런 못된 장난을 하나 싶었다. 이 장난은 민화만 나영이에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나영이가 화가 난 목소리로 날카롭게 말했다.

　“누꼬? 내 지금 장난칠 기분 아이다!”

　했다. 역시 우리 나영이는 성격이 그대로다. 꼬장꼬장하시다.

　“누굴 거 같나?”

　하고 민화가 나영이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러자 순간 나영이는 숨이 멎었다. 그리고 자기 눈을 가린 손을 더듬었다. 그리고는 가렸던 손을 획 뿌리치며 고개를 돌렸다. 민화가 ‘놀랐지?’ 하는 표정으로 빙글빙글 웃으며 서 있었다. 나영이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죽었다는 사람이 살아서 서 있으니 기절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하얗게 질린 나영이를 바라보며 나영이 앞에 같이 주저앉은 민화는 속없이 벙긋 웃었다.

　“놀랐나? 니도 내가 귀신같나?”

　나영이는 커다란 눈에 눈물이 담뿍 고였다. 이런 나영이 얼굴을 처음 본 민화도 조금 당황했다. 너무 놀라게 했나 싶어 미안하기도 했다.

　“니도 내 만져볼래? 다들 하도 만져가 볼이 다 터지게 생깄다. 내 안 죽었다. 비 맞고 열이 내리가 살았는 모양이다.”

　하며 민화는 나영이 손을 끌어다 자기 볼에 대었다. 나영이의 손이 민화의 볼에 닿자 나영이는 흑흑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진짜로, 안 죽었습니꺼?”

　하며 나영이가 흐느끼며 겨우 물었다.

　“그래, 내 안 죽었는갑다. 놀랐제?”

　그러자 나영이는 ‘으앙!’하고 울음이 터지더니 두 다리를 버둥거리며 퍼지고 앉아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나영이는 발을 버둥거리며 들고 온 쑥부쟁이 꽃으로 민화를 마구 때렸다. 민화는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할 틈도 없이 꽃으로, 그 좋아하는 꽃으로 계속 맞았다.

　방에 있던 식구들이 나영이 우는 소리에 다들 나왔다. 그리고 이 기가 막힌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아이고, 참말로! 형 또 애기 형수 울맀나?”

　하고 정화가 놀렸다. 민화는 울지 말라고 계속 나영이를 달랬다. 하지만 나영이는 그 쑥부쟁이 꽃이 다 떨어져 나갈 때까지 민화를 때리며 울었다.

　결국, 울다 지친 나영이를 민화가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했더니

　“민아! 니 아프던 아다. 집에 있어라. 내 데려다 주고 올께.”

　하며 태화가 신을 신고 마당으로 나섰다. 그러자 나영이가 얼굴에 묻은 눈물을 쓱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 혼자 갈 수 있어예.”

　그런 나영이에게 민화는

　“내 데려다줄게.”

　했다. 그러자 나영이는 민화를 잠시 바라보더니

　“살았으믄, 살았으믄 됐어예. 오라버니만 살아있으믄 내는.... 됐어예. 드가시소. 내 이제 얼라 아입니더.”

　했다. 그리고는 씩씩하게 싸릿문을 나서 자기 집을 향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 그런 나영이 뒷모습을 민화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한 삼 년은 더 있어야 시집을 오겠지예?”

　하고 어느 틈에 곁에 와서 선 노미가 말했다. 민화는 대답을 못하고 얼굴만 발그레해졌다.

　“내가 첫사랑이라 카더니 그새 정인이 생깄습니꺼?”

　하며 노미는 섭섭한 듯이 말했다. 민화는 그런 노미의 등에 매달렸다.

　“형수님이 내 첫사랑인 거는 안 변합니더.”

　하며 민화는 소리 안 나게 웃었다. 노미도 따라 웃었다.

　노미는 옥가락지 주인이 하나 생긴 것인지 아닌지 아직 알 수 없었다. 어찌 됐든 아직은 한참 더 기다려야 되겠구나 싶었다. 그래, 살았으니, 이제 살았으니, 살 일만 남았다.

　민화는 그렇게 노미 곁에서 오래오래 예쁘게 살아주었다. 그것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노미는 그저 눈앞에 민화가 저렇게 살아서 웃고 자기를 부르고 하는 모든 순간이 다 꿈만 같았다.

　“꿈이... 아니지예?”

　“야, 암만해도 꿈은 아닌가 봅니더.”

　비를 쏟아낸 새파란 하늘은 하얀 뭉게구름들이 둥실 떠 있었다. 민화는 그렇게 내내 노미의 등에 매달려 파란 하늘을, 다시 만난 새 하늘을 바라보았다.

　죽었던 사람이 살아 돌아오더니, 아침의 나라 조선에 절대 오지 않을 것 같던 빛이 돌아왔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터졌다고 했다. 멈추지 않는 탐욕과 폭력을 끝낼 수 있는 것은 더 무서운 폭력뿐이었을까.

　1945년 8월 15일 그렇게 일본은 항복을 선언했다. 그리고 조선은, 대한민국은 38년간의 치욕스러운 일제강점기를 끝냈다.

　상해에 있던 김구는 이 소식이 반갑지 않았다. 김구는 우리의 독립을 우리 힘으로 이루고 싶었다. 그래서 특수훈련 중인 독립군들을 키우고 있었다. 그렇게 키운 우리의 군대로, 우리의 힘으로 나라를 되찾으리라는 원대한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계획은 허무하게 찾아온 일본의 항복선언 앞에 물거품이 되었다. 우리가 우리나라의 독립에 아무것도 한 것이 없으니, 역사와 세계 앞에 내내 남의 힘으로 독립한 나약한 민족으로 평가받을 것을 우려했다.

　김구의 우려대로 독립한 대한민국과 그 백성들은 또다시 혹독하기 그지없는 시간을 겪어내야 했다. 어찌 그 이야기를 다 할까. 이때 김구와 함께 자주독립을 꿈꾸었던 그 독립군 특수부대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이렇게 우리 이야기를 너무나 모른다. 우리가 우리에 대해 이토록 모른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해방되고 난 후, 첫 추석, 동네는 오랜만에 잔치 분위기로 들썩였다.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풍물놀이도 했다. 도련님들은 원 없이 꽹과리, 북, 장구, 징을 쳤다. 색시 앞에서 처음 보여주는 풍물놀이에 석이는 한껏 더 흥이 났다. 자기를 꼭 닮은 예쁜 딸을 얻은 석이는 딸 이름을 순이라고 지었다.

　도련님들의 택견을 보고 싶어 하던 동네 사람들 요청으로 오랜만에 택견도 했다. 정식 결련은 아니었지만, 하늘을 날고, 바람을 가르고, 폭풍이 몰아치고, 벼락이 내리꽂히는 그 대단한 몸짓들을 참 오랜만에 모두 넋을 잃고 구경했다.

　읍내 장마당에서는 씨름판이 열렸다. 상이 황소 한 마리였다. 잘생긴 수놈이었다. 정화는 그놈을 달래 신랑감으로 점찍었다. 그리고는 씨름판으로 뛰어들었다.

　“달래야, 오라버니가 니 신랑 델꼬 가께.”

　하더니 정화는 씨름판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아재부터, 육척 거인들까지 차례로 모래판에 메다꽂더니 결국 일등을 했다. 그 유명한 소년장사의 탄생 순간이었다. 그렇게 정화는 달래 신랑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고, 그렇게 만난 황돌이와 달래는 오래오래 새끼도 많이 낳고, 논밭 일도 잘하며 금실 좋게 살았다.

　노미의 셋째 아들이었던 우리 아빠의 기억 속에 고향에서 키우던 큰 황소 부부는 동네에서 제일 힘 좋고 덩치가 좋았다. 일곱 살 때부터 소 풀을 베다 먹이고 소들을 돌보는 것이 어린 시절 아빠가 해야 하는 중요한 집안일이라 황소들은 아빠에게 제일 싫은 일거리고, 또 제일 좋은 친구였다. 더는 농사일을 못 할 때까지 이 황소 부부는 오래 오래 의좋게 살았다고 했다.

　그렇게 노미는 셋째를 낳았다. 해방된 내 나라에서 얻은 첫 아이였다. 1945년 9월 28일, 우리 아빠가 세상에 나온 날이다. 그 해는 해풍 뒤끝이라 여전히 먹을 것이 부족해 힘들었지만 이제 공출이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어찌나 감사한지. 내가 내 것을 먹는데, 그 당연한 일에 우리 모두 다 말로 할 수 없이 감사했다.

　정화는 이제 대학교로 돌아갔다. 남화도 만주에서 학교로 돌아왔다. 남화는 대학병원 일도 다시 시작했다. 미국으로 간 교수님들과 선교사님들도 모두 차례차례 돌아왔다.

　진화는 세상이 바뀌는 바람에 일이 더 많았다. 산림계에서 일했다고 친일파 취급을 받기도 했지만, 면에서 일하던 실무자들은 대부분 업무를 그대로 유지했다. 물론 진짜 친일파와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의 오묘한 긴장감이 남아 있었지만 이제 막 태어난 나라 대한민국에는 할 일이 많았다.

　그러나 복권이는 우체국 일을 더는 할 수 없었다. 광복이 된 세상에서 복권이네 집은 제 일호 처리 대상이었다. 복권이는 가족들을 데리고 몸을 피했다. 복권이가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진화도 복권이가 무사하기만을 바랬다. 복권이는 아무도 모르게 많은 이들을 도왔다. 그러나 복권이는 공식적으로는 골수 친일파 집안의 장손이었다. 세상이 뒤바뀐 상황에서 결코 무사할 수 없었다.

　노미는 다케짱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아버지에게서 들었다. 부산에 있던 다케가 남양군도로 발령받아 갔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들었었다. 그곳은 미국과 일본이 가장 격렬하게 싸우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다케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리고 어떤 죽음을 겪었을까. 그리고 그곳에 보내진 소녀들은 또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리고 또 어떤 죽음을 겪었을까. 노미는 그들의 삶이 어떠했을지, 그들의 죽음은 어떠했을지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노미는 다케가 남양군도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을 도련님들에게 전했다. 다케를 모두 다 잘 알지 못했지만 태화와 민화, 그리고 정화는 다케에게 목숨을 빚졌다. 진화는 다케가 자기를 친구라고 부르며 얼싸안던 것을 기억했다. 그 해맑은 성품의 일본 소년은 남양군도에서 죽음을 맞았다. 윤화는 다케를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다케가 전사했다는 그 곳은 윤화가 구해주려 했던 소녀들이 간 곳이었다. 다케의 죽음은 그렇게 모두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빠지게 했다. 다케는 우리에게 누구였을까. 일본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그들은 우리에게 적이기도 했고, 친구이기도 했다.

　언제 아팠나 싶게 건강을 회복한 민화는 동네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더 열심히 했다. 그러면서 밤이면 미처 마치지 못한 소학교, 중학교 공부를 했다. 민화는 해방된 나라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광복된 나라 대한민국에서는 일제강점기에 공교육을 받지 못했더라도 일정 시험을 통과하면 학교 교사 자격증을 주었다. 이 소식을 들은 민화는 교사 자격증을 얻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집에 농사일할 사람이 없으니 그 많은 농사일이 다 태화 차지가 되었다. 밭일은 주로 민화가 했지만 논일은 주로 태화 몫이었다. 태화는 어느새 온 동네가 알아주는 노련한 농사꾼이 되어있었다. 태화는 땅을 사랑했다. 모두가 도시로 나가 살길을 찾으려 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태화는 누군가는 고향을, 땅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지켜낸 땅인데, 어떻게 다시 찾은 나라인데, 태화는 흙을 손에 쥐었을 때 가장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