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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노미
작가 : 정진교
작품등록일 : 2020.9.23

1919년에 태어나신 나의 할머니 오노미와 남편 정진화 그리고 그 동생들 윤화, 남화, 석이, 민화, 태화, 정화 이야기.

그때 노미는 열아홉 아리따운 소녀였고, 남편 정화와 여섯 도련님들은 스물두 살부터 열다섯 살 사이의 근동에 소문난 꽃같은 소년들이었다. 그렇게 노미의 꽃길같은 시집살이는 정말 꽃길만 같을 줄 알았다. 그러나 병으로 일찍 돌아가신 시어머니 대신 여섯도련님들의 어린 어머니 노릇을 하며 한명 한명 제짝을 찾아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시대는 일제강점기. 아프고 어두운 시절이었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들과 소중한 사람들을 어이없이 빼앗기고, 또 잃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노미의 가족들은 서로를 지켜내기 위해 매일 매 순간 이를 악물고 버텨야 했고, 어떻게든 살아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시절 누구보다 찬란했고, 아름다웠고, 사랑스러웠으며, 아팠지만 따듯했고, 슬펐지만 행복했다.

공출, 가뭄, 강제징용, 그리고 빼앗긴 소녀들... 아파서 부끄러워서 또 몰라서
아무도 하려하지 않았지만 누군가 해야하는 이야기이기에 감히 시작해보려 한다.

저는 작가 정진교입니다. 지금부터 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제64화 콜레라-1
작성일 : 20-09-29 11:05     조회 : 285     추천 : 0     분량 : 4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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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4화 콜레라-1

 

 1945년이 되었다. 지난해는 그래도 땅이 먹을 것들을 좀 내주었었다. 다혜는 혼인한 그 이듬해 아기를 가졌고, 올해 2월에 딸을 낳았다. 여자 아기를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식구들은 말할 수 없이 기뻤다. 그렇지 않아도 웃음이 많은 석이가 웃음이 가실 날이 없었다.

 

 그러나 슬픈 소식도 들려왔다. 석이가 딸을 얻은 그 날, 일본 형무소에 있던 시인 윤동주가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분명하지 않았다. 그가 형무소에서 매일 수없이 많은 주사를 맞았다는 것만 알려졌다. 아파서 맞은 주사가 아니었다. 일본이 전쟁 중에 이런 식의 생체 실험을 했다는 것은 나중에서야 알려졌다. 지구에서, 아니 전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 실험실의 쥐처럼 죽었다. 별을 노래하던 시인이 먼지보다 못한 죽음을 당했다. 남화의 비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시인을 알던 모든 이들이 가눌 수 없는 슬픔에 빠졌다.

 

 노미가 얼굴도 모르는 시인의 애통한 죽음을 가슴 아파하자 윤화가 어디서 시집을 하나 구해와 한 부분을 읽어주었다. 줄을 쳐주고는 노미 보고 읽으라는 걸 노미가 바느질하느라 바쁜 바람에 옆에서 읽어달라 했더니 세상 귀찮은 사람이 별말 없이 읽어주었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이다.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이상 ‘이런 시’>

 

 노미는 윤화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직도 미순이가 마음에 아프게 있구나 싶어 한없이 안쓰러웠다.

 

 “아직도 그래 많이 아픕니꺼?”

 

 하고 노미가 안타깝게 물었다.

 

 “뭐가예?”

 

 윤화는 생각보다 별 표정이 없이 대답했다.

 

 “그래 아직도 떠난 사람이 어여쁩니꺼?”

 

 노미는 눈물을 겨우 참으며 물었다. 그러자 윤화가 픽 웃었다.

 

 “이거 미순이 얘기 아닙니더.”

 

 “예?”

 

 노미는 흘러내리던 눈물을 안 들키게 닦아내며 윤화를 보았다.

 

 “이거 형수 얘깁니더. 이 시를 딱 보고는 바로 형수 생각이 납디더. 형이 원래 정혼한데랑 그대로 혼인 했으믄, 형수는 내한테 시집올 뻔했다 안 했는교. 영 내 차례 안 올 사람이 형수 말고 또 누가 있는교?”

 

 하며 농담인지 진담인지 혼자 좋아 키득키득 웃었다. 노미는 그만 얼굴이 빨개졌다.

 

 “시 좋아한다 카이 내 시 갖다 준깁니더. 그래 내내 어여쁘시라고요.”

 

 하더니 혼자 계속 킥킥 웃으며 건넛방으로 가버렸다.

 

 

 노미도 지난해 겨울에 셋째가 생겼다. 이번에는 딸이었으면 했는데 꿈에 커다란 복숭아를 본 것으로 보아 또 아들인 모양이었다. 어김없이 입덧이 왔고, 노미는 겨우내 또 진저리만 먹었다.

 

 

 올봄에는 해풍이 닥쳐 봄농사를 망쳤다. 바닷가 마을들은 모두 피해를 심하게 입었다. 보리도 밀도 다 말라 죽었다. 하늘이 이 땅을, 이 백성들을 미워하시는 것만 같았다. 석이는 이번에도 전라도에서 쌀을 가지고 왔다. 온 동네가 살았다.

 

 한가지 기가 막혔던 일을 하나 이야기하고 가야겠다. 석이가 아직 쌀 가져오기 전 도련님들 자고 있는데 한밤중에 태화가

 

 “형! 형! 큰형! 이리 좀 오소! 야 와 이라는교?”

 

 하며 고함을 쳤다. 놀라서 건너가 보니 정화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숨만 겨우 쉬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민화도 태화도 곁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진화도 이유를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정화야! 정화야!”

 

 하고 진화가 부르니 정화는 눈을 겨우 뜨며 정신이 아득했다. 처음에는 전염병에 걸렸나 했다. 하지만 다행히 열이 없었다. 오히려 몸이 차갑다. 배탈이 났나 하고 배를 만져보니 배가 아픈 것도 아니었다.

 

 “야, 낮에 뭐 먹었노?”

 

 하고 진화가 묻자

 

 “내내 진저리만 먹었습니더. 뭐 먹을게 있어야지예.”

 

 하고 민화가 대답했다. 그때 곁에서 보고 있던 노미가 다가와 정화 이마를 짚어보았다. 손도 잡아보았다. 이런 환자를 할아버지 의원에서 본 적이 있었다.

 

 “도련님, 오늘 진저리 말고 뭐 먹었습니꺼?”

 

 하고 노미가 물었다.

 

 “진저리 말고는 암것도 안 묵었습니더.”

 

 하고 정화가 겨우 대답했다. 노미는 알았다고 하고는 부엌으로 가 남은 보리를 싹 다 긁어 보리죽을 끓였다. 그리고 정화를 먹이고 그 밤에 다른 남자들도 먹였다. 오랜만에 먹는 곡기에 모두 눈이 동그래졌다.

 

 그렇게 보리죽을 한 그릇 먹고 나더니 정화가 눈이 돌아왔다. 그랬다. 못 먹어서 그랬던 것이다. 한참 먹성 좋을 나이였던 정화가 며칠이나 제대로 밥을 못 먹어 허기병이 든 것이었다. 노미도 식구들도 모두 참 기가 막혔다. 그렇게 그 다음 날, 윤화와 석이가 쌀을 가지고 집에 왔다.

 

 그리고, 동네 앞 바닷가에 고래가 한 마리 와서 죽었다. 가끔 아주 가끔 커다란 고래가 자기 생을 다 하고 바닷가에 밀려올 때가 있다. 하늘이 내려주신 귀한 양식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달려나가 고래고기를 걷어왔다. 노미는 처음 맛보는 고래고기였다. 도련님들도 어릴 때 먹어보고는 오랜만에 먹어본다 했다. 노미는 속으로 ‘셋째가 복이 많아 뱃속에 있을 때 고래 고기를 다 먹어보는구나.’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렇게 셋째 아들이 좀 특별한 아이가 아닐까 생각했다고 내게 말씀해 주시곤 했다. 그렇게 노미와 식구들은 그 배고픈 시절을 겨우 겨우 견뎌냈다.

 

 

 세월은 유월을 지나 칠월에 접어들었다. 바다 건너 들려오는 전쟁 소식은 일본에 불리한 것들이었다.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밀리고 있었다. 얼마 전 미국에서 일본으로 날아든 어마어마한 수의 B-29 폭격기가 일본 본토를 불바다로 만들었다는 소식도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그것은 일본인들뿐만이 아니었다. 끌려갔든, 배고파 스스로 갔든, 일본에 있던 많은 조선인들도 허무하게 남의 땅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불행은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진짜 무서운 일이 그들을, 노미와 그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콜레라였다.

 

 콜레라가 돌기 시작하자 석이네는 서둘러 광주 본가로 아기를 데리고 피신했다. 원인은 분명하지 않았다. 상한 해산물을 먹었거나 오염된 분뇨나 토사물에 노출된 경우라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부산을 중심으로 경상도 일대에 빠르게 퍼진 것으로 보아 태평양 전쟁이 극심하던 시절이었으니 동남아 등지에서 부산을 통해 콜레라균이 들어왔을 가능성이 컸다.

 

 민화에게 공부하러 오던 아이 하나가 콜레라로 죽었다. 이미 읍내에는 콜라라 환자가 발생하기 시작하고 있었고, 사망자들도 나왔다. 그리고 그 아이 누나도 콜레라에 걸렸다. 아이가 다섯인 집이었는데 둘이 죽었다.

 

 공기감염이 되는 전염병이 아니라 토사물이나 변을 통해 감염되는 병이었기 때문에 손발 꼭 닦고, 반드시 물을 끓여 먹고, 채소든, 해물이든 절대 날것을 먹지 않으면 감염을 막을 수 있었다. 식구들은 가능한 외출을 자제하고 외부 사람과의 접촉도 피했다.

 

 진화는 산림계 직원인데도 방역작업을 하는 데 불려 다녔다. 혹시라도 식구들에게 병을 옮길까 싶어 진화는 직원들 숙소에 기거하며 집에 오지 않았다. 동네 어르신 한명이 구토를 하며 쓰러지셨고, 하루도 못 버티시고 고열을 앓다 돌아가셨다. 그 집 어린 손자도 어이없이 할아버지를 따라갔다.

 

 읍내는 말할 것도 없고, 아랫동네, 윗동네에서도 콜레라 환자들이 나왔다. 도대체 어떤 경로로 감염이 된 것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보통 잠복기가 5일 정도였다. 아무렇지도 않다가도 사람들은 갑자기 쓰러져 구토와 설사를 하고 온몸이 타는 듯한 고열과 갈증, 탈수 증상에 시달리다 열을 견디지 못하면 사망하게 되는 무서운 병이었다. 5일 이상 견디다 살아난 사람도 있다던데 대부분 이삼일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그렇게 사망한 시신들도 관리대상이라서 제대로 장사를 지내지도 못하고 동구 밖 정해진 곳에 두었다가 한꺼번 땅에 묻거나 화장을 해야 했다.

 

 모두 그렇게 이 무서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조마조마하게 지내던 어느 날, 이른 아침,

 

 민화가 쓰러졌다.

 

 언제나 태화가 쓰러지면 달려가 민화가 받아주었었는데 이번에는 쓰러진 민화를 태화가 달려가 받아 안았다.

 

 “민화야!!!”

 

 태화가 소리치는 소리에 식구들이 모두 마당으로 나왔다. 민화는 입에서 거품같은 물을 흘리며 축 처져 있었다. 태화도 쓰러질 때 입에서 거품이 쏟아지곤 했는데 그때와 다른 것은 태화는 쓰러진 상태에서도 몸을 흔들며 온몸이 뻣뻣하게 돌처럼 굳는데, 민화는 온몸에서 뼈가 다 빠져나가 버린 인형처럼 그렇게 축 처진 채 태화의 팔에 늘어져 있었다.

 

 노미는 의식을 잃은 채 창백한 얼굴로 태화 품에 안겨있는 민화를 보자 눈앞이 하얘지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가까이 오지 마라! 형수님! 이리 오지 마이소!”

 

 하며 태화는 민화를 부둥켜 안은 채로 울부짖었다. 그래도 정화가 다가가려 하자 태화가 눈을 부라리며 정화를 향해 소리쳤다.

 

 “오지 마라고! 야는 이제부터 내가 본다. 아무도 만지지 마라!”

 

 하며 으르렁거렸다. 태화는 불덩어리 같은 민화를 끌어안고는 눈에 벌겋게 핏발이 선 채로, 그렇게 총에 맞은 호랑이처럼 피를 토하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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