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화 다혜
노미는 정화 덕분에 오랜만에 이불빨래를 제대로 해서 마당에 널었다. 새하얀 이불 홑청에, 늘 있는 아기 기저귀에 마당은 무슨 잔칫날처럼 흰 깃발 같은 빨래들로 너울거렸다.
“말씀 좀 물어라.”
기저귀를 꼭 짜서 널고 있던 노미가 깜짝 놀랐다. 꼭 미순이 목소리 같았다. 미순이 목소리인 줄 알았다. 심장이 쿵 하고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노미는 소리 난 쪽을 보았다. 너울거리는 빨래 사이로 싸리나무 문 앞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정말 꼭 미순이 같았다.
“저.... 말씀 좀 물어라.”
경상도 동네에서 전라도 억양으로 말하는 어린 처녀 목소리를 듣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노미는 빨래들을 헤치고 다가갔다.
“예....”
미순이가 살아있으면 딱 저 나이지 싶은 소녀가 남루한 차림으로 때가 꼬질꼬질한 보따리를 부둥켜안고 서 있었다. 행색은 거지라 해도 할 말이 없을 만큼 보잘것없었지만 단정한 맑은 눈에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한 예쁘장한 소녀였다. 다만 오랫동안 길을 헤매며 제대로 먹지 못했는지 피부도 푸석하고 정말 볼품없이 말라 있었다. 노미는 처녀의 행색에 딱한 마음이 들었다.
“무슨 일입니꺼?”
하고 노미가 다정하게 물었다. 소녀는 잠시 망설이더니
“저... 김가 병자 권자 되시는 어른이 혹 이 동네 사시는지요?”
석이 돌아가신 아버지 이름이었다.
“예, 그 어른은.... 돌아가신지 한참 되었습니더. 와예?”
찾는 사람이 돌아가셨다는 말에 소녀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 그라믄.... 그라믄.... 그 분 가족은 다 아직 여기 사시는지요?”
노미는 왠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소녀를 일단 안으로 들어와 앉게 해야겠다 생각했다.
“이리 들어오셔예. 쓰러지겠소. 물이라도 좀 마실래예?”
하며 미처 소녀가 사양하기도 전에 소녀의 손을 잡아 끌어다 마루에 앉히고는 노미는 숭늉을 뜨러 갔다. 맹물보다 숭늉을 마시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숭늉을 한 사발 가져다주니 소녀는 미안해 하면서도 맛있게 마셨다. 한동안 제대로 먹지 못한 듯했다.
“그 집 식구들은 여기 아직 계십니더. 늘 계시는 건 아니고예. 광주에도 집이 있으시니 왔다갔다 하십니더.”
하고 노미가 소녀가 물은 것을 대답해 주었다. 그 이야기에 소녀는 반갑고 안심이 되는지 그제야 긴장했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럼, 다 살아계셔라? 여기 계셔라?”
아무래도 소녀는 석이네 친척이거나 잘 아는 사이인 모양이었다. 사정을 얘기해 주어도 될 것 같았다.
“예, 어무이는 잘 계신데, 어디 볼일 보러 가셨는지 지금은 집에 안 계십니더. 그 집 아드님은 지금 저희 도련님이랑 장사 다니느라 집에 없습니더. 그리고 그 집 따님은.... 몇 해 전에 돌아가셨습니더.”
소녀는 처음 듣는 얘기인지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아, 따님이 계셨어라. 그럼... 그 집 아드님은 집에 안 계시고요이.”
볼수록 미순이를 오묘하게 닮은 소녀를 보며 노미는 보는 내내 마치 미순이가 살아 돌아온 것만 같아 신기했다.
“석이네 친척이십니꺼?”
“석이.... 석이요?”
노미는 석이 이름을 처음 들은 것 같은 이 소녀의 정체가 점점 궁금해졌다.
“예, 김석호. 그 집 아드님 이름이 김석호 입니더. 친척 아닙니꺼?”
소녀는 잠시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지는.... 그러니까 지는.... 김석호님 정혼자여라.”
노미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반가움에 그만 ‘까르르’웃고 말았다. 노미의 웃음에 소녀는 깜짝 놀랐다.
“석이 도련님 정혼자시라고예?”
하며 노미는 또 ‘까르르’하고 웃었다. 소녀는 노미의 반응이 당황스러웠다.
“그라믄, 그러니까, 애기씨가 그 석이 어무이가 받아 줬다는 석이 아부지 친구분 딸입니꺼?”
하고 노미가 물었다. 소녀는 노미가 그 일을 어떻게 아는가 하는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야, 우리 엄니가 말씀해 주셨어라. 지를 김석호님 어무이께서 받아주셨다고...”
노미는 반가운 마음에 소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는 새삼스럽게 소녀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미순이를 생각나게 하는 맑고 선한 눈이 참 마음에 들었다.
“시상에, 결국 이래 보내예. 어무이가 애기씨 찾겠다고 광주까지 다녀오신 거 압니꺼?”
“지를여?”
“예, 결국 못 찾고 돌아오셔가 참말로 섭섭해 하셨습니더. 아들이 혼기가 차가 하루라도 빨리 혼사를 치러야 하는데, 색시를 몬 찾으니 얼마나 안타까우셨는지 모릅니더.”
“그.... 그럼, 그 아드님은... 혹 혼인을 하셨어라?”
소녀는 내내 그것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아니라예. 아직 혼인 안 했습니더. 못 했다 해야 맞지예. 워낙에 세월이 흉했지 않습니꺼. 어려븐 일이 많았습니더.”
노미의 말에 소녀는 안심이 되었는지 얼굴이 발그래해졌다.
“그래, 어떻게 여까지 찾아왔습니꺼? 광주에서 소식을 들었습니꺼?”
소녀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엄니가 그 집 식구들은 경상도 친구분 집으로 가신 거 알고 계셨어라. 마을 이름도 알고 계셔서 때가 되면 지보고 그리 가야한다고, 찾아가야 한다고 하셨어라. 워매, 절 받으셔라. 지는 차가 다혜라 하옵니다.”
하며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소곳하게 노미를 향해 반절을 했다. 노미는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이 그림 같은 소녀를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그리고, 소녀는, 다혜는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소녀의 가족들은 순사들에게 쫓기고 있었고 서울에 피해있었다. 아는 사람 집에 기거하며 지내던 어느 날 믿었던 친구가 밀고하는 바람에 아버지는 경찰에 끌려가셨다. 그리고 모진 고문을 당하신 후 결국 숨을 거두셨다. 살아남은 어머니와 어린 딸은 온갖 일을 겪으며 한동안 서울에서 살았다. 그리고 고향인 진도로 내려왔다. 어머니의 고향이 진도였기 때문이다.
진도는 예로부터 유배지였던 곳이라 문인들의 숨결이 묻어있는 곳이었고, ‘진도 아리랑’과 충성스럽기로 소문난 진돗개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본토와 떨어져 있어 일제강점기에도 비교적 일본의 간섭을 덜 받았고, 창, 풍물, 서화, 제례의식 등 우리 것을 많이 가지고 유지하고 있었다. 진도는 지금도 많은 것들이 보물처럼 감춰지고 지켜지고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다혜와 다혜 어머니도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숨어 살았다.
다혜와 어머니는 숯 굽는 일도 하고, 송이를 따다 파는 일도 했다. 두 모녀는 정 많은 사람들 덕분에 이 숨겨진 보물섬 같은 곳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러다 어머니가 병이 드셨다. 폐병이었다. 병은 점점 깊어졌고 어머니는 딸을 홀로 놔두고 떠나실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래전 약속을 들려주셨다. 혹시라도 그분들이 너를 싫다 하시면 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약속을 귀하게 여기시는 분들이니 찾아뵙는 것이 맞다 하셨다. 어머니는 혼자 된 딸이 남에게 짐이 될까 염려하셨다. 하지만 귀한 인연일지도 모르는데 사람 생각으로 모른 체할 수 없다 하셨다. 무엇보다 딸을 맡길만한 곳이 석이네 뿐이었다.
어머니는 결국 돌아가셨다. 다혜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는 홀로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여자 혼자 그 먼 길을 어찌 왔을까. 경상도 바닷가 마을이라 했으니 바다를 따라가면 석이가 사는 동네가 나오리라 생각했다 한다. 소녀는 그 길을 거의 두 발로 걸어서 왔다. 다행히 오는 길에 경주 쪽으로 이사 오는 가족을 만나 그분들 가족이 되어 근처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소녀가 오는 내내 가장 걱정한 것은 먼 길을 왔는데 혹시라도 여기 안 계시면 어쩌나 싶은 것이었다.
노미는 다혜의 사연이 참으로 기가 막혔다. 그리고 모녀가 겪었을 모진 세월에 가슴이 아팠다.
“홍아! 윤가네 제사를 도와주고 왔는디, 떡이랑 전이랑 좀 얻어왔응께 애들 오거든 같이 묵자잉~.”
하며 석이 어머니가 마당으로 들어오셨다. 말투만 듣고도 소녀는 들어오는 이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소녀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일단 허리를 깊이 숙여 절을 했다. 낯선 처녀가 자기를 보고 인사를 하니 석이 어머니는 어리둥절하셨다. 노미는 석이 어머니를 반기며 한달음에 달려갔다.
“어무이! 이 애기씨가 누군지 아십니꺼?”
석이 어머니는 생전 처음 보는 처녀였다. 그러자 다혜는 석이 어머니 앞에 반듯하게 서더니
“안녕하셔라. 절 받으시어라. 차가 다혜라 하옵니다.”
하고 두 손을 이마에 올리고 큰절을 했다. 서 있다 갑작스레 낯선 처녀에게서 큰절을 받으니 석이 어머니는 더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말투가 전라도 사람인 것 또한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그 잠깐 사이에도 어머니는 노미처럼 소녀에게서 미순이를 보았다. 석이 어머니 눈에 왈칵 눈물이 맺히는 것을 노미는 보았다.
“어무이, 이 처자가 바로 그 어무이 찾아 해매시던 석이 정혼자랍니더.”
노미의 말에 석이 어머니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소녀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뭐? 이 색시가 누구라고?”
“차가 다혜이옵니다. 지 엄니가 김가 병자 권자 어른을 꼭 찾아가라 하셨어라. 지는...”
하는데 소녀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석이 어머니는 두말도 없이 와락 소녀의 손을 부여잡으셨다.
“니가... 니가 다혜라고? 그 애기라고? 니 아부지가 차 수복, 차 수복 맞는가이?”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야, 맞어라. 저희 아부지 성함이 차가 수자 복자여라.”
어머니는 소녀를 끌어안고 엉엉 우셨다.
“아이고, 아이고, 애기가 혼자 여까지 찾아왔냐. 그래, 어찌 혼자 왔냐. 엄니는... 아부지는....?”
노미는 부둥켜안고 우는 석이 어머니와 다혜를 다시 마루에 앉혀놓고 그간의 이야기를 석이 어머니에게 했다. 중간 중간 다혜도 말을 거들며 그렇게 세 여인은 울다가 기가 막혀 한숨을 쉬었다 하며 그간의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석이 어머니는 다혜의 얼굴을 들여다보시며 손을 잡으셨다. 실은 이야기하는 내내 잡은 손을 놓지 않고 계셨다. 무엇이었을까. 요즘 같으면 일단 낯선 사람이면 경계하고 서로 잘 알 때까지 마음 주는데 꽤 절차도 많고 오래 걸리는 법인데, 그 시절에는 참 사람이 귀하다 보니 사람이면, 내 눈앞에 앉은 사람이면 이렇게 금새 내 사람이 되기도 했다. 내 사람이 되는데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많은 이유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때 들에 나가 있던 도련님들이랑 석이 윤화까지 우르르 같이 들어왔다.
“형수님! 형들 왔습니더. 요 앞에서 만났습니더.”
하며 정화가 신나서 제일 먼저 뛰어 들어왔다. 그렇게 우르르 들어오던 도련님들은 마루에 앉아 있는 낯선 소녀를 발견하고 모두 순간 멈칫했다. 소녀는 갑자기 남정네들이 우르르 들어오자 놀라고 부끄러워 석이 어머니 뒤로 숨었다.
“석아! 석아! 야가 그 애기다! 여까지 우리를 찾아왔단다.”
하며 석이 어머니는 석이를 손짓으로 부르셨다. 석이가 멀뚱하니 보고만 서 있으니 석이 어머니는 마당으로 내려가 석이를 향해 한달음에 다가갔다. 그 바람에 숨을 곳을 잃어버린 다혜는 깜짝 놀란 얼굴로 도련님들과 딱 마주치고 말았다. 다혜는 이번에는 노미 뒤로 숨었다. 노미는 자기 뒤로 숨은 다혜에게 물었다.
“누가 석이 도련님 같어예?”
그러나 다혜는 마당 쪽은 쳐다보지도 못하고 노미 뒤에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저 좀 숨겨 주셔라. 지 몰골이 흉해가 지금은 아무도 보고 싶지 않어라.”
하며 진심 당황했다. 노미는 그 말도 맞지 싶어 얼른 다혜를 자기 몸으로 숨겨주었다.
결국 석이가 어머니 손에 이끌려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다혜는 눈으로 잠깐 석이 얼굴을 확인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 노미 뒤로 완전히 고개를 처박고 숨었다.
“다혜야, 다혜야, 야가 석이다. 우리 아들! 잘났지이?”
하며 석이 어머니는 다혜 속도 모르고 웃으신다.
“아, 엄니, 누군데 이 난리를 쳐쌌소?”
석이 목소리를 듣더니 다혜는 더 노미 뒤로 숨었다. 노미는 소녀 하는 짓이 귀여워 큭큭 웃었다.
“야가, 니 정혼자라고! 차씨집 딸! 내가 받아 준 그 애기.”
하며 어머니는 좋아 웃으셨다. 석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지금 뭔소리당가?”
하며 석이는 어쩔 수 없이 노미 뒤에 숨은 소녀를 건너다보았다.
“지금은 보믄 안됍니더. 색시 얼굴을 그래 막 보고 그라는거 아입니더. 멀리서 와가 지금은 행색이 안 좋으니 좀 씻고 단장도 하고 해가 보여드리겠습니더.”
하고 노미가 막아섰다. 그제야 뒤에 섰던 도련님들이 ‘와~!’하며 우르르 달려왔다.
“뭐? 석이 형 색시라꼬?”
하며 정화가 제일 신이 났다.
“석이 형 장가가나?”
하며 태화도 신이 났다.
“부럽다!”
하며 민화가 석이에게 매달렸다. 좋은지 싫은지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윤화가 멀찍이 서서 그저 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표정이 난감한 것은 석이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좋다고 하시는데 석이는 이 상황이 반갑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잘 웃는 석이가 색시가 왔다는데 오히려 표정이 싸늘했다.
노미는 속으로 좀 놀랬다. 아무리 어른들끼리 한 약속이라고 해도 본인들 마음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노미는 색시가 생겼다고 무조건 좋아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석이 마음도 살피고, 어린 소녀의 마음도 살펴주어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