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화 발가락
그렇게 빨리 올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기다리는 날이 길어지고 있었다. 밭에 아무것도 없으니 일도 없었다. 어차피 먹은 것도 없으니 기운도 없었다. 노미는 때 되면 뭐라도 먹고, 원이 젖을 먹이고, 재우고, 할 일 없이 먼 산을 바라보며 앉았다가, 때 되면 먹고, 원이 젖을 먹이고, 재우고, 자기도 자고, 하는 날들을 반복했다. 태화든 민화든 누구라도 좀 와달라 할 걸 하고 후회도 되었다. 한 달이 넘게 집에 안 갔으니 도련님들 얼굴도 보고 싶었다.
‘윤화 도련님이랑 석이 도련님은 지금 어디를 헤매고 있으려나. 그래도 둘이 같이 있으니 참 좋겠다. 남화 도련님이랑 정화 도련님은 공부 잘하고 있겠지.’
지난 겨울 학생복을 입고 마당으로 들어서던 모습이 생각나 노미는 흐뭇했다. 정화도 이제 열아홉이었다. 뭐든 잘하는 막내는 공부도 잘해서 내년이면 대학에 무난하게 들어갈 거 같았다. 달래가 낳은 새끼를 판 돈이 정화 대학 등록금이 될 것이다.
‘어무이....’
노미는 돌아가신 시어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어머니가 고생했다. 잘했다. 하시는 거 같았다. 좋아야 하는데, 뿌듯하고 자랑스러워야 하는데, 어머니가 부탁하신 일곱 아들을 잘 지켜내었노라 자랑스러워야 하는데, 노미는 마음이 한없이 허하고 두려웠다. 살아온 날들이 험했던 만큼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아득하고 무서웠다.
‘여자 장군은 무슨.... 내 이래 겁보인 것을.....’
노미는 다케짱 얼굴도 떠올랐다. 살 차게 대하긴 했지만 참으로 고마운 사람 아닌가. 남양군도로 발령이 나 떠난 후 다른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다. 전쟁이 어찌 조선사람들에게만 비참한 것이겠는가, 그 전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일본이니 그 백성들 또한 삶이 비참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케짱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전쟁터 한가운데에 간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살아서 오려나, 살 수 있으려나, 혹시라도 살아서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으려나, 또 어느 날 갑자기 아무렇지도 않게 ‘노미짱!’ 하며 집마당으로 들어와 식혜를 달라고 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쌀이 거의 다 떨어졌다. 아무리 아껴 먹어도 하루 이틀밖에는 버틸 수 없는 양이었다. 노미는 아무래도 내려갔다 와야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좀 더 버텨볼 생각으로 노미는 조금 높은 곳까지 산을 올랐다. 소나무 속을 파오기 위해서였다. 가뭄으로 나무들이 거의 다 말라 죽어있었다. 하지만 멀리 벼랑 위에 있는 소나무들 중에 푸르스름한 것이 보였다. 길도 없는 곳을 조심조심하며 겨우 올랐다. 이제 손만 뻗으면 닿겠구나 하는데 그만 발을 헛디뎠다.
노미는 산비탈을 데굴데굴 굴러떨어졌다.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정말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노미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정신이 돌아왔다. 다행히 얼굴도 몸도 크게 다친 곳이 없었다. 그런데 발가락이 자지러지게 아팠다. 왼쪽 엄지발가락이 부러진 것 같았다. 버선을 벗고 보니 발가락이 퉁퉁 부어있었다. 노미는 이를 악물고 손으로 발가락을 꽉 쥐었다.
노미는 아픈 발을 절뚝거리며 겨우 초가집으로 돌아왔다. 잠에서 깬 원이가 혼자 울고 있었다. 금방 다녀온다는 것이 이렇게 되어버렸다. 노미는 얼른 원이를 안고 달래며 젖을 물렸다. 식은땀이 흘렀다. 너무 아파서 까무러치겠는데 아픈 것보다 남편이 돌아와 왜 조심하지 않았느냐고 야단칠 일이 더 걱정되었다.
노미는 그렇게 며칠을 혼자 끙끙 앓았다. 쌀은 다 떨어져 가는데 걸을 수가 없었다. 소나무 속을 파러 다닐 수가 없으니 노미는 그만 꼼짝없이 굶으며 앉아 있어야 했다. 노미는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자기가 그 벼랑에서 떨어져 크게 다치거나 죽기라도 했으면 어린 원이는 어쩔 뻔했겠는가. 누구라도 와주면 다행인데 진화는 어찌 된 일인지 벌써 오고도 남았을 텐데 기별이 없다. 섬찟한 생각이 스쳤다.
‘오다가 탈이 났나?’
요즘은 징용 가는 사람들이 하도 없다 보니 일본군들이 길에서, 밭에서 남자들을 보이는 대로 잡아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여자들 잡혀가는 소식은 끝없이 들려왔다.
‘그럼, 도련님들도?’
집에 있는 도련님들도 안심할 수는 없었다. 전에는 자기 배에 총을 들이대고 협박을 하니 잡혀간 것이지 두 도련님이라면 수십 명이 덤벼들어도 다 때려눕히고 도망칠 수 있었다. 노미는 정말로 그랬나 싶었다. 별별 생각이 다 들며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몸에 열이 나고 몇 번이나 정신을 잃었다 깨었다. 발가락이 아니라 다리 전체가 퉁퉁 부어올랐다. 발가락만 부러져도 이렇게 아픈데 윤화는 그 모진 매를 맞으며 뼈가 부러지고 했을 텐데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분했을까 싶었다.
원이가 나오지도 않는 빈 젖을 빨다 ‘으앙’하고 울었다. 노미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원이를 달랬다.
“원아, 원아, 조금만 참자. 어무이가 지금 너무 아파가 니 달래줄 정신이 없다.”
하며 얼렀다. 그러나 원이는 또 마른 젖을 빨다가 젖이 안 나오니 ‘와아앙’ 하고 운다. 어찌나 울었는지 어린 것 목이 다 쉬었다. 노미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 배 고픈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젖먹이 아들 배고픈 것을 어미가 어떻게 참을 수 있겠는가. 노미도 펑펑 울며 원이를 달래고 또 달랬다. 하지만 아무리 달래도 원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원아, 그만! 그만 울어라! 호랭이가 잡으러 온데이. 늑대가 잡으러 온데이. 자꾸 울면 저 순사들이 잡으러 온데이. 원아, 원아 그만 울어라.”
하며 노미도 같이 울었다. 아이는 제대로 먹지를 못해 그렇지 않아도 큰 눈이 더 휘둥그레져 있었다. 볼이고 팔이고 다리고 살이 하나도 없어서 뼈만 앙상했다. 그것은 노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볼은 움푹 꺼지고 피부는 힘없이 축 쳐져 있었다. 가슴은 바짝 붙어 볼품이 없었다. 이런 몰골이면 신랑이 흉하다고 내다 버려도 할 말이 없는 지경이었다. 노미는 기가 막혔다.
“원아! 제발! 그만 울어라!”
아무리 달래도 원이 울음이 그치질 않자 노미는 원이 머리를 꽉 물었다. 그러자 원이 머릿가죽이 입안에 한 움큼 물렸다. 살이 없으니 그런 것이었다. 노미는 눈물이 쏟아졌다. 아기에게 말할 수 없이 미안했고, 또 자신의 처지가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대로 꼼짝없이 굶어 죽는구나 싶었다.
할머니는 이때의 기억이 사는 동안 가장 처참했다고 하셨다.
“다리는 퉁퉁 부어가 꼼짝을 못하제, 아픈 거는 마 말도 몬하고, 아는 울제, 젖은 안 나제, 쌀 가지러 간 사람은 안 오제, 내가 속이 상해가 아를 앙 하고 물어놓고는 가죽만 입안에 웅큼 잡히니, 내도록 그게 미안하고 또 미안시러버가 둘째한테 더 잘해줘야제 하고 살았다. 그란데 그것도 내 맘대로 안돼가, 갸가 내내 젤로 고생하고 컸다 아이가....”
최악의 가뭄이 두 해가 계속 되었다. 동네마다 굶어 죽는 사람들로 넘쳐난다는 이야기를 끝없이 들었다. 노미는 그게 내 얘기가 될 줄은 몰랐다. 노미는 혼자서 꺼이꺼이 울었다. 답답한 마음에, 또 미안한 마음에 벽에 머리를 박았다. 아프지도 않았다. 항상 아침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하고 기도했었는데 요 며칠 전혀 기도하지 못했다. 감사하지 않았다. 도무지 감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안 감사합니더. 안 감사합니더. 하나도 안 감사합니더.’
하며 노미는 또 어디 계신지 모르는 누군가를 원망했다.
‘이대로 죽으믄, 이대로 아랑 같이 내 굶어 죽은 것을 보믄, 남편이 와가 보고 월매나 심정이 처참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미는 그 와중에도 굶어 죽은 아내와 아이를 보고 심장이 찢어질 진화 걱정이 되었다.
‘내 이래 죽으믄 안되는데... 어떻게든 버티야 하는데....’
노미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렇게 흐릿해지는 노미의 눈에 마당 울타리 옆에 피어 있는 봉숭아꽃이 보였다. 미순이가 산에 피어 있는 것을 보고 예쁘다며 울타리 옆으로 옮겨 심었던 것이다.
‘미순아....’
하고 노미는 미순이 이름을 불러보았다. 금방이라도
‘언니, 불렀어라.’
하고 방실 웃으며 나올 것만 같았다.
‘니는 와 그리 이뻐가 내 맘에서 나오지를 않노.’
노미는 그렇게 미순이가 미웠다. 미순이를 부를 때마다 미순이를 그릴 때마다 그렇게 방실 웃으며 나타나는 그 아이가 참 미웠다. 윤화 품에서 죽었다 했다. 윤화가 미순이를 끝까지 품에 안아주었다고 했다. 참 좋았겠다.
‘미순아, 내도 이제 금방 니 옆으로 가지 싶다.’
하며 노미는 힘없이 웃었다. 봉숭아꽃이, 진분홍빛 봉숭아꽃이 참으로 예뻤다. 그리고 노미는 가슴에 손을 모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노미는 진심으로 감사했다. 봉숭아꽃을 보면서 노미는 미순이를, 그리고 미순이와 같이 있었던 그 소녀들을, 그리고 자기만 살아오고 그 트럭에 붙잡혀간 어린 처녀들을 떠올렸다.
자기는 그래도 꽃 같은 서방님을 만나 더할 수 없는 사랑을 받아봤다. 아들을 둘이나 나았고, 시부모님 사랑도 듬뿍 받았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잘생기고 착하고 고운 도련님들을 여섯이나 만나 참으로 재미있게 지냈다. 살뜰한 부모님 덕분에 맛난 것도 많이 먹어봤다. 돌아보니 자기 삶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어찌 감히 내가 하늘을 향해 나는 억울하다. 나는 안 감사하다 할 수 있겠는가 싶었다. 노미는 엷은 바람에 나풀거리는 그 고운 꽃잎을 보면서 미순이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그 소녀들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지켜주지 못해서, 그렇게 허무하게 빼앗겨서, 이렇게 나만 잘살아서,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할머니는, 노미는 삶에 대한 기쁨과 감사함이 컸던 사람이었다. 돌아보면 사실 별것도 없는 인생인데 할머니는 모든 순간과 자신에게 주어진 귀한 사람들을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셨다.
할머니에게 할아버지 말고, 도련님들 중 누가 제일 예뻤느냐고 물어보면 그때마다 말이 바뀌셨다. 어떤 때는
‘윤화가 제일 예쁘지.’
하셨다가 어떤 때는
‘석이가 진짜 예쁘지.’
하셨다가 어떤 때는
‘누가 뭐래도 남화가 제일 잘났지.’
하셨다가 또
‘태화 잘 난건 두말하면 잔소리지. 세상에 그보다 잘난 사내를 내가 본 적이 없다.’
하셨다가,
‘사람 고운 것으로 따지면 민화가 제일 예쁘지, 민화만큼 고운 사람은 남자 여자 다 통틀어도 없다.’
하셨다가,
‘정화 잘난 거를 도대체 누가 따라가겠나.’
하셨다. 듣다 지친 나는
“그럼, 할아버지는요? 진화는요?”
하고 물으면,
“내가 내 입으로 말하기 뭐 해가 그렇지, 솔직히 니 할아버지가 인물도 제일이고, 인품도 제일이지.”
하셨다. 나는 할머니에게 할머니는 바람둥이 같다고 놀렸다. 할머니는 그 말도 맞다며 웃으셨다.
밤이 되었다. 해가 넘어가고 나니 초여름인데도 날씨가 선뜻했다. 원이는 울다 지쳤는지 축 처진 채 잠이 들어있었다.
그때 싸리나무 문이 덜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 소리가 아니었다. 노미는 혹시 서방님이 왔나 하고 문을 조금 열고 밖을 보았다. 번쩍거리는 인광이 대여섯 개 번뜩거리는 것이 보였다. 늑대였다. 늑대는 원래 인가에 잘 안 내려오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가끔 사람을 몰아 헤치기도 했다. 호랑이가 자취를 감춘 지 오래인 산에 아직 남아 있는 유일한 맹수였다. 노미는 소름이 오싹 끼쳤다. 노미는 순간 진화가 이 밤으로 오면 안 될 텐데 하는 생각이 스쳤다. 혹시 서둘러 온다고 밤으로 오다 저런 늑대들한테 해를 당한 것은 아닌가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무서운 마음에 노미는 원이를 끌어안았다. 그런데 원이가 이상했다. 기운이 없이 축 처져 있었다. 순간 노미는 머리가 쭈뼛하고 섰다.
“원아!”
노미는 원이를 흔들며 불렀다. 기척이 없다. 노미는 숨이 턱 막혔다.
“원아!!”
노미는 원이를 세게 흔들었다. 이대로 아이를 잃는 것인가 싶어 노미는 심장이 뻣뻣하게 굳는 것 같았다. 노미는 원이를 더 세게 흔들었다.
“원아!!!”
그러자 원이가 ‘응아~~!’ 하고 작은 소리로 울음을 토했다. 살았다. 아직 살아있었다. 노미는 원이를 와락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노미는 안 되겠다 싶었다. 젖을 문질러 보았지만 젖가슴은 가슴팍에 탁 붙어 젖이 돌 기미가 없었다. 노미는 일단 먹어야 했다. 아까 아침에 딱 한 그릇 남아 있는 쌀을 씻어 밥을 지어 아랫목에 묻어두었었다. 오늘은 진화가 틀림없이 오지 싶어 오면 줘야지 하고 아껴둔 밥이었다.
‘오면 쌀을 가지고 올 텐데. 그러면 그걸로 밥을 지어주면 되지 나도 참, 뭐 할라고 이 밥을 아끼고 있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미는 얼른 윗목에 밀어둔 간장을 끌어다 밥 위에 찍어 먹었다. 잡곡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하얀 쌀밥을 도대체 얼마 만에 먹어보나 싶었다. 아침에 지은 밥이었지만 아랫목에 묻어둔 덕에 밥은 따듯했다. 얼마나 맛있는지 노미는 눈물이 났다. 순식간에 밥 한 그릇을 다 먹었다. 물도 한 사발 마셨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젖이 돌았다. 노미는 얼른 원이 입에 젖을 물렸다. 젖 냄새를 맡은 원이는 정신없이 젖을 빨았다. 노미는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원아, 이게 마지막 젖이다. 마이 묵어라.”
하며 원이 등을 두드렸다. 노미는 원이 젖을 물린 채로 정신이 아득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