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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노미
작가 : 정진교
작품등록일 : 2020.9.23

1919년에 태어나신 나의 할머니 오노미와 남편 정진화 그리고 그 동생들 윤화, 남화, 석이, 민화, 태화, 정화 이야기.

그때 노미는 열아홉 아리따운 소녀였고, 남편 정화와 여섯 도련님들은 스물두 살부터 열다섯 살 사이의 근동에 소문난 꽃같은 소년들이었다. 그렇게 노미의 꽃길같은 시집살이는 정말 꽃길만 같을 줄 알았다. 그러나 병으로 일찍 돌아가신 시어머니 대신 여섯도련님들의 어린 어머니 노릇을 하며 한명 한명 제짝을 찾아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시대는 일제강점기. 아프고 어두운 시절이었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들과 소중한 사람들을 어이없이 빼앗기고, 또 잃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노미의 가족들은 서로를 지켜내기 위해 매일 매 순간 이를 악물고 버텨야 했고, 어떻게든 살아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시절 누구보다 찬란했고, 아름다웠고, 사랑스러웠으며, 아팠지만 따듯했고, 슬펐지만 행복했다.

공출, 가뭄, 강제징용, 그리고 빼앗긴 소녀들... 아파서 부끄러워서 또 몰라서
아무도 하려하지 않았지만 누군가 해야하는 이야기이기에 감히 시작해보려 한다.

저는 작가 정진교입니다. 지금부터 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제53화 아침밥
작성일 : 20-09-29 10:50     조회 : 67     추천 : 0     분량 : 7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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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3화 아침밥

 

 노미는 진화가 이렇게 술에 심하게 취한 것을 처음 보았다. 워낙 술을 안 하는 사람이라 누가 권해도 그저 입술만 축이고 마는 정도였고, 조금만 술을 마셔도 귀부터 빨개지다 얼굴이 다 빨개져 버리곤 했었다. 그런 서방님이 지금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만큼 취해서 계속 목이 터져라 타령을 불러대고 있었다. 노미는 처음 보는 진화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했다.

 

 “도대체, 술을 얼마나 마신 겁니꺼?”

 

 하는 노미의 볼멘소리에 복권이도 다케도 미안해 하고 있는데 진화는 노미를 발견하자 와락 달려들며 매달렸다.

 

 “아이고! 우리 마누라! 여보! 홍이 엄마! 노미야! 내 술을 쬐금 먹었다. 이 일본 친구가 아~~주 사람이 좋더라. 내가 맘에 아주 쏙 들어가 술을 아주 쬐금 먹었는데~ 이래 되뿟다.”

 

 하며 키득키득 웃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노미에게 매달려 볼을 비비고 있는 서방님을 어찌해야 하나 하는데 서방님 몸에서 냄새가 났다.

 

 “이기 무슨 냄샙니꺼? 당신 토했는교?”

 

 하는데 진화는 또 토할 것 같은 얼굴이다. 진화가 토하려고 마당 구석으로 가는 것을 남화가 달려와 부축했다. 동생들은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이 광경을 보고 있었다.

 

 “실은...”

 

 하며 복권이 난감한 표정이다.

 

 “실은... 진화가 다케짱을 끌어안고 토해가 다케가 옷을 다 버렸다.”

 

 다케가 아까부터 엉거주춤 서 있었던 이유가 그것이었다. 노미는 너무 민망하고 미안해서 다케에게 다가갔다.

 

 “우야믄 좋노? 괘안습니꺼?”

 

 하고 조선말로 물었는데 용케 알아듣고는 다케가

 

 “다이조부~”

 

 한다.

 

 “일단 옷부터 벗으시소. 갈아입어야겠습니더.”

 

 하며 노미가 도련님들을 바라보니 민화가 달려와 다케짱에게

 

 “이리 들어오이소. 갈아입을 옷을.... 줄께예...”

 

 했다. 참 오랜만에 묘하게 다시 만난 두 사람이다. 민화가 피식 웃자 다케짱은 반가운 표정이다. 민화를 따라 다케가 방으로 들어가고 마당 한구석에서 마저 다 토한 진화는 이제 축 쳐졌다. 그런 진화를 정화가 척척 다가와서는 번쩍 들어 둘러업더니 방으로 가 눕혔다. 하여간 힘이 장사다. 처음 보는 남화와 복권이 서로 눈인사를 했다. 남화는 복권에게

 

 “아무래도 밤이 늦었는데 술기운도 있으시고.... 주무시고 가시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꺼.”

 

 하고 권했다. 복권은 노미를 보았다.

 

 “주무시고 가시는 거야 어렵지 않은데.... 댁에서 걱정하시지 않겠는교?”

 

 하고 노미가 복권에게 말하자 복권은

 

 “집에는 이미 이야기하고 왔다. 친구들만 데리다주고 오겠다고 했더니 안사람이 오랜만에 친구들이 모였는데 자고 가라 하시거든 자고 와도 된다고 허락을 해줬다.”

 

 하며 멋쩍게 웃었다.

 

 “근데 진화 자는 와 저리 술이 약하노? 소주 딱 두 잔 마셨다. 지 말로도 두 잔은 첨 마셔본다 카더라. 니는 자보다는 술 세나?”

 

 하고 복권이 물었다. 그러자 노미는

 

 “내는 막걸리 한 말을 마셔도 안 취합니더.”

 

 했다. 노미는 술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오동섭씨 딸이었다. 복권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노미는 어깨를 으쓱했다.

 

 

 

 민화를 따라 건넛방으로 들어온 다케는 방안을 두리번 거리며 어색하게 서 있었다. 군복이 아니라 양복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전에 보았던 그 카리스마 넘치는 일본군 대령의 모습이 아니었다. 저 사람이 그때 부산에서 자기 부하들을 호령하던 그 사람이 맞나 싶었다. 민화는 자기 옷을 꺼내 다케에게 건네주었다.

 

 “갈아입으시소.”

 

 하고 민화는 손짓으로 옷을 벗으라는 시늉을 했다. 다케는 알아듣고는 더러워진 겉옷을 벗었다. 속에 입은 셔츠까지 더러워져 있었다. 다케는 색시처럼 부끄러워하며 옷을 벗고 대충 민화가 준 한복을 걸쳤다. 그때 문을 벌컥 열고 태화가 들어왔다. 그리고는 다케가 바지에 다리를 넣고 저고리를 걸치는 것까지는 했는데 그다음을 어찌하는지 모르는 것을 보고는 망설이지도 않고 아이 옷 입혀주듯이 바지 허리를 여며주고, 저고리 고름을 매어주었다. 그렇게 입고 서 있으니 다케는 영락없는 조선사람이었다. 민화랑 태화는 다케가 한복 입은 모습에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방에서 웃는 소리가 나자 다들 방으로 우르르 들어왔다. 방으로 들어오며 정화가

 

 “형수가 이눔아 옷 달란다.”

 

 했다. 못 알아듣는다고 한참 형에게 이눔아라니 그런데 다케가

 

 “이눔아 아니무니다. 형이무니다.”

 

 했다. 정화가 깜짝 놀랐다.

 

 “아! 조선말을 하... 합니꺼?”

 

 하고 물었다. 다케는

 

 “조금...”

 

 이라고 대답했다. 정화는 눈으로 웃으며 혀를 내밀었다. 정화는 얼른 다케가 벗어놓은 옷을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다들 다케를 가운데 앉혀놓고 둘러앉았다. 그러자 다케가

 

 “일본사람 처음 구경하므니까?”

 

 하며 웃었다. 다케의 유창한 조선말에 모두 ‘와!’ 하고 웃었다.

 

 다들 잘 생각도 안 하고 건너방에 둘러앉았다. 어느 틈에 석이도 와 있었다. 좋은 구경 났으니 오라고 정화가 데리고 온 모양이었다. 석이는 당연히 일본사람을 마땅치 않게 여겼다. 그러나 다케는 동생들 목숨을 구해준 사람 아닌가. 어떤 사람인지 보고 싶었다.

 

 복권이까지 남자 일곱이 옴닥옴닥 모여앉아 무슨 이야기가 그리 재미있는지 계속 ‘와!’ 하고 웃음 소리가 터졌다. 다케짱 옷을 더운물로 빨면서 노미는

 

 ‘세상에, 내가 다케짱 옷을 빨게 될 줄이야.’

 

 하며 혼자 기가 막혀 웃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희안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했다. 무슨 인연으로, 무슨 이유로, 다케는 이렇게 노미 곁에 와 있는 것일까. 그저 어린 시절 노미를 참 좋아해 주었던 고운 마음의 소년이었다. 노미는 속으로 세상에는 참 여러 가지 인연이 있구나. 참 여러 가지 마음이 있구나 싶었다. 다케도 복권이도 노미에게는 소중하고 귀한 사람들이었다. 노미는 귀한 손님들에게 귀한 아침밥을 만들어 주리라 마음먹었다.

 

 

 다음 날 아침, 노미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동도 안 텄는데 혼자 아침기도를 올리고는 서둘러 아침준비를 했다. 손님들이 왔다고 해서 더 낼 것도 없었다. 그저 늘 식구들 먹던 대로 잡곡이 왕창 섞인 밥을 짓고, 황태를 참기름에 볶아 물을 넉넉히 붓고 끓인 후에 계란을 풀어 뿌리고 대파도 썰어 넣어 황태해장국을 끓였다. 다케가 매운 것을 잘 못 먹을 것 같아 고춧가루는 넣지 않고 따로 상에 올렸다.

 

 그리고 남은 황태에 양념을 발라 기름에 지져냈다. 겨울이라 나물거리가 없었다. 노미는 마른 호박을 불려 참기름에 볶았다. 동치미도 꺼내 썰어 얼음이 둥등 뜬 채로 먹기 좋게 담았다. 배추김치, 총각김치도 있는 대로 꺼내 놓았다. 진화랑 민화는 배추김치를 좋아하고, 태화랑 정화는 총각김치를 좋아했다. 남화는 뭐든 다 잘 먹었다. 복권이랑 다케는 무엇을 좋아할지 몰라 집에 있는 김치를 있는 대로 꺼냈다. 늘 안 빠지고 오르는 마늘장아찌도 담았다.

 

 늘 하던 일인데도 노미는 오늘따라 손도 바쁘고, 마음도 바빴다. 그러다 인기척이 느껴져 돌아보니 마루에 다케가 나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노미는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도련님들 중 한 명이 나와 앉은 줄 알았다. 민화 옷을 입고 있으니 처음에는 민화인가 싶었는데 다케짱이었다.

 

 “다이조부?”

 

 하고 노미가 물었다. 다케는 배를 쓸며

 

 “배가... 조금 아파.”

 

 하고 조선말로 대답했다. 노미는 다케가 조선말은 인사말 정도만 하는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깜짝 놀랐다. 도대체 언제 조선말을 저렇게 배웠나 싶었다.

 

 노미는 얼른 따끈한 꿀물을 타서 다케에게 주었다. 하얀 그릇에 담긴 꿀물은 은은한 황금빛이 감돌며 달콤한 향이 올라왔다.

 

 “あ、はちみつ?”

 (아, 하치미츠?)

 ‘아! 꿀이야?’

 

 

 하며 다케는 향을 한번 맡더니 꿀물을 마셨다. 그리고는 속이 좀 풀리는지 얼굴이 발그레해지며 웃었다.

 

 “아, 조아요~!”

 

 하고 다케는 조선말로 대답했다. 노미도 조금 웃어주었다. 노미가 웃어주니 다케는 더 활짝 웃는다. 한 번도 노미에게 나쁘게 한 적 없는 한없이 착하고 여린 소년이었다. 노미가 웃으면 그렇게 늘 더 환하게 웃어주던 아이였다. 노미는 그래서 일본사람들은 다 다케짱 같은 줄 알았다. 그래서 노미는 일본이 조선에 한 일들이 지금도 믿어지지 않았다. 노미는 여전히 노미를 향해 속없이 웃고 있는 다케를 보며 마음이 어지러웠다. 노미는 바쁜 척 하며 부엌으로 들어와 하던 일을 했다. 그러자 다케가 부엌문 앞까지 따라와서는

 

 “手伝おうか? “

 (테츠다오우카?)

 ‘도와줄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노미는 손사래를 치며

 

 “아이고! 됐슴니더. 추분데 드가시소.”

 

 하고 자기도 모르게 조선말로 말했다. 그리고는 일본말로

 

 “男は台所に入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

 (오토코와 다이도코로니 하이루 모노데와 아리마센.)

 ‘남자는 부엌에 들어오는 거 아닙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다케는 실망한 표정으로 부엌문 앞에 그저 서 있었다. 그때 민화가 부엌으로 들어오며

 

 “아이고, 형수님, 벌써 밥을 다 했습니꺼. 일찍도 인나셨네예.”

 

 하며 가마솥을 열어 막 다 된 밥을 주걱으로 술술 풀어놓았다. 그때 정화가 바로 부엌으로 들어오며

 

 “형수! 인나셨는교? 내도 꿀물 줄랍니꺼?”

 

 하며 노미 등에 매달렸다. 노미는 등에 매달려 있는 정화를 그대로 매단 채로 그릇에 더운물을 담아 꿀을 떠넣고 휘휘 저어서는 정화 손에 쥐여주었다. 정화는 꿀물 한 사발을 받아 들고는 나서는데 민화가

 

 “그거 너 먹지 말고 큰형한테 쫌 갖다 주고 온나.”

 

 한다. 그러자 노미는

 

 “형은 일어나거든 주믄 됩니더. 그거는 막내도련님 드셔예.”

 

 했다. 정화는 형수 허락이 떨어지자 좋아서 꿀물을 단번에 다 마시고는 그릇을 노미 손에 다시 쥐어주었다. 노미는 그 그릇에 얼른 꿀물을 하나 더 타서 민화 앞에 내밀었다. 민화는 빙긋 웃더니 받아 마셨다. 그때 태화가 부엌으로 들어섰다. 태화는 들어오자마자 아궁이부터 살피더니 부엌문 앞에 그저 서 있는 다케를 향해

 

 “세수, 세수 할라능교?”

 

 하며 손으로 세수하는 시늉을 했다. 다케는 분명 노미가 남자들은 부엌에 들어오는 거 아니라고 해서 안 들어가고 있었는데 이집 남자들이 마구 부엌에 드나드는 것을 보고는 좀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태화가 계속 다케에게 세수하겠느냐고 눈짓을 하는데 얼른 대답을 못하고 멀뚱하니 서 있으니 태화는 세숫대야에 더운물을 떠서 찬물이랑 섞더니 들고 나간다. 그리고는 다케에게

 

 “언능 이리 오쇼. 다들 깨면 세수하기 어렵소. 언능!”

 

 하며 다케를 불렀다.

 

 태화는 마루 위에다 세숫대야를 올려놓고는 다케가 세수를 하는 걸 보고 섰다가 수건까지 건네주었다. 얼굴은 화난 사람처럼 무뚝뚝한데 하는 행동은 친절하니 다케는 처음에는 좀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태화가 지금 자기 세수하는 걸 챙겨주고 있다는 것에 고마웠다.

 

 “감사하므니다.”

 

 하고 다케가 태화에게 인사를 하니 태화는 그저 어깨를 한번 으쓱 하고는

 

 “드가 계시소. 상 차리면 마 건너오시고.”

 

 했다. 그리고는 세숫대야에 있던 물을 저 멀리 내다 버리고는 이제 자기 세수한다고 물을 담아 나와서 세수를 했다. 그저 늘 있는 아침 일상이었다. 그러나 다케 눈에는 이 모든 광경이 그저 신기하고, 또 아름다웠다.

 

 다케 옆에 남화가 나와 섰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꺼?”

 

 하고 남화가 다케에게 인사를 건네자 다케도

 

 “네, 안녕히.... 주무시었...스므니까?”

 

 하고 조선말로 인사했다. 남화는 또 그렇게 물항아리를 지고 나섰다. 날이 추워 동구밖 우물이 얼었을 것이다. 추운데 나서는 남화가 걱정되었는지 정화가 따라나섰다.

 

 “형! 단디 입고 가라. 춥다!”

 

 정화는 방에서 목도리를 찾아들고 나와서는 자기 목에도 두르고 남화를 쫓아 뛰어가 목에 둘러주었다.

 

 그때 작은 방 문이 벌컥 열리며 진화가 얼굴을 내밀었다. 지난밤 많이 힘들었는지 눈은 퀭하고 얼굴이 하얗다 못해 누렇게 떴다.

 

 “여보! 내 인났다. 꿀물 도!(꿀물 줘!)”

 

 했다. 노미는

 

 “알았어예!”

 

 하더니 얼른 꿀물을 타서 들고 진화에게 갔다. 꿀물을 받아 벌컥 벌컥 마시는 진화를 노미가 안쓰럽게 바라보고 섰다. 진화는 꿀물을 반만 마시고는 나머지를 노미에게 주었다. 노미가 사양하자 진화는

 

 "많다."

 

 하며 남은 꿀물 반을 노미에게 마시라고 주었다. 진화는, 우리 할아버지는 항상 그랬다. 뭐든 마시거나 먹다가도 나머지 반동가리를 할머니 먹으라고 주셨다. 그러면 할머니는 늘상 그랬던 것처럼 할아버지 주시는 것을 받아 드셨다. 두 분은 내내 그렇게 사셨다.

 

 “꿀물이 내 차례까지 오나?”

 

 하고 언제 일어났는지 복권이 마루 위에 서서 말을 하니 민화가 얼른

 

 “형님 인나셨습니꺼? 여 있습니더.”

 

 하며 꿀물을 또 한 사발 타다 복권이에게 주었다. 민화는 세수 마치고 앉은 태화에게도 꿀물을 얼른 한 사발 주었다. 복권이는 곁에 서 있는 다케를 툭치며 진화 얼굴을 보라고 눈짓을 하더니 킥킥 웃었다. 진화는 마루에 서 있는 복권이와 다케에게 힘없이 눈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한복을 입고 서 있는 다케가 우스워서 힘이 없는 와중에도 킥킥 그저 웃었다. 다케는 이 모든 광경이 다 신기하고 좋았다. 물길어다 붓고 앉은 남화에게는 정화가 꿀물을 타주었다. 추운데 다녀와 마시는 따끈한 꿀물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오늘 꿀 한통을 다 먹었지 싶다.

 

 “형님들 기침들 하셨어라!”

 

 하며 석이가 또 무언가를 들고 마당으로 들어왔다. 아침을 같이 먹으려고 건너온 것이었다.

 

 “오늘은 또 뭐 가져왔는교?”

 

 하고 노미가 반기자 석이는

 

 “엄니가 어제 약과를 좀 하셨어라.”

 

 하며 환하게 웃었다. 노미 입이 귀에 걸렸다.

 

 “약과~!”

 

 석이는 노미가 약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형수가 저리 좋아하니 석이는 또 더 좋았다.

 

 

 노미는 아버지가 오늘은 누룽지죽을 드시고 싶다 하셔서 누룽지죽까지 끓여 아침상을 차려냈다. 아버지는 다행히 오늘은 좀 기력이 나시는지 인사하러 들어온 다케와 복권이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렇게 다케와 복권이는 노미네 식구들과 함께 아침상 앞에 앉았다. 다케는 내내 ‘맛있다!’ 와 ‘오이시!’를 연발하며 참 맛있게 밥을 먹어주었다. 다케가 밥을 맛있게 먹어주니 노미는 흐믓하고 기분 좋았다.

 

 “내가 노미가 차려준 밥을 다 먹는구나. 참, 좋다.”

 

 하며 복권이도 좋은 마음을 숨기지 않고 웃었다.

 

 “노미가 모꼬? 형수다!”

 

 하고 진화가 호칭 정리를 하자, 복권이는

 

 “제수씨다!”

 

 하고 맞섰다. 그러자 진화는

 

 “뭐, 그라든지!”

 

 했다. 진화가 너무 빨리 수긍을 해서 모두 또 ‘와~!’ 하고 웃었다.

 

 그 많은 식구들이 둘러앉아 복작거리며 먹었던 그 날의 아침밥을 다케는 아주 오래 오래 기억했다. 그리고 아주 오래 오래 고마웠다. 노미가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아서, 노미 남편인 진화가 참 좋은 사람인 것을 보아서, 노미가 살고 있는 동네가 참 아름다운 곳인 걸 보아서 말이다.

 

 아침밥을 다 먹고 후식으로 약과를 나눠 먹으며 다케는 홍이를 안아보았다. 감격에 겨워 눈물까지 흘렸다. 홍이는 이제 삼촌이 백 명이 더 와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착한 홍이는 다케의 코도 잡고 웃어주었다.

 

 밤새 다케의 옷이 제법 마르긴 했지만 입고 갈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다케는 도련님들 옷을 얻어 입고 나섰다. 다케는 입고 있는 한복을 어루만지며 귀한 선물이라고 고마워했다. 다케는 도련님들과 일일이 악수를 했다. 민화와 태화 정화는 다케의 손을 잡고 눈으로 깊이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남화의 고마움 또한 각별한 것이었다. 남화는 다케가 진심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석이는 다케가 손을 내밀었을 때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나 애써 마음을 누르고 다케의 손을 잡았다. 다케는 석이에게 많이 미안했다. 드디어 진화 차례가 되었다. 다케는 진화를 부둥켜안았다. 어느새 많이 친해져서 다케는 이제 노미보다 진화가 더 좋았다.

 

 “고맙스므니다. 친구! 노미를 잘 부탁하므니다.”

 

 하고 다케가 조선말로 진화에게 말했다. 진화는 다케의 마음을 오빠가 누이를 생각하는 마음이라 여겼다. 정말로 그런 마음이었다.

 

 “걱정마이소. 다케짱도 몸조심 하이소. 내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으리다.”

 

 그것은 진화의 진심이었다. 옆에서 복권이가 통역을 해주려 하는데 다케는 벌써 눈물이 얼핏 고였다. 알아들은 거 같았다. 다케가 마지막으로 노미 앞에 섰다. 그리고는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하고는 가만히 노미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케는 그저 또 그렇게 환하게 속없이 웃었다. 노미도 그렇게 그저 웃어주었다.

 

 “몸조심 하이소.... 오라버니....”

 

 오라버니라는 말을 다케가 알아들었다.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결국 눈물이 고였다. 다케는 짧게 ‘하이!’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복권이와 함께 차를 타고 떠났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다케는 그 다음 달에 남양군도라 불리던 남태평양의 작은 섬인 사이판으로 발령을 받아갔다.

 

 
작가의 말
 

 글을 쓰면서 제게 생긴 좋은 일 중 하나가 오랫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던 초등학교 동창들과 다시 연락하게 된 것입니다. 나를 싫어하는 줄 알았던 장난꾸러기 동무가 실은 나를 좋아해서 나를 괴롭힌 거라고 하더군요. 참 오랫동안 미워했던 그 친구를 이제는 소중하게 대해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이야기가 좀 길었습니다. 다케짱을 그냥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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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제58화 발가락 2020 / 9 / 29 316 0 6262   
58 제57화 살아남은 사람들 2020 / 9 / 29 326 0 6390   
57 제56화 저희가 영원히 슬플것이요. 2020 / 9 / 29 321 0 6299   
56 제55화 복이 있나니 2020 / 9 / 29 307 0 5003   
55 제54화 슬퍼하는 자는 2020 / 9 / 29 350 0 4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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