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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무협물
후계자는 네가 해
작가 : 박시인
작품등록일 : 2020.8.4

묻혔던 비밀과 얽히고설켰던 사연들이 드러난다. 그 엉킨 매듭을 풀어내라고 등 떠밀렸는데, 맞서는 대적자가 전혀 뜻밖의 인물이라.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으니……. 이 검왕의 아들과 그를 제자로 삼았던 천마의 후예는 결국 대립할 수밖에 없다. 음모에 빠졌을 때에도 갖가지 기연을 만나게 되는 제법 운이 좋은 사내. 또 고난을 겪을지라도 끝까지 의리와 헌신의 관계성을 발전시켜 나가려 애쓰는 올곧은 의식의 소유자, 그런 주인공의 이야기.

 
#20. 남해신궁(南海神宮)의 등장
작성일 : 20-09-28 19:46     조회 : 277     추천 : 0     분량 : 5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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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남해신궁(南海神宮)의 등장

 

 

 

  남붕치의 말은 식자(識者: 지식을 쌓은 사람)의 소견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높은 식견과 뛰어난 분별력을 드러낸 발성이었다.

  천풍도장은 속으로 놀랐다. 그를 힐끗 한번 쳐다본 다음 담담히 말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만력제는 그 청원과 요구를 허락했단 말이야. 오히려 앞으로는 황실의 일에 개입하지 말라는 엄명을 덧붙였지.”

  “과연 권력자들에게 그런 인지상정이 가능하겠소?”

  천풍도장은 대답 대신 여전히 자기 할 말만 이어갔지만, 억양과 어투는 달라져 있었다.

  “만력제가 죽자 결국은 주상락이 황위에 오를 수 있었던 거요. 그러나 그는 한 달도 채 보위에 있지 못하고 급서(急逝:갑자기 죽음)하고 말았어.”

  “그랬다고 들었소.”

  “그의 어린 아들 주유교가 황위를 이어받았는데 칠 년 만에 또 죽고 말았지. 그래서 그의 이복형 주유검이 뒤를 잇고 있는 거요.”

  “내 비록 변방 오지에 살고 있으나 그 정도의 소식은 알고 있소.”

  “더 눈여겨봐야 할 것이 있는데.”

  “무엇을 말이오?”

  “주상민은 황실의 적통 아들이었다는 사실.”

  남붕치가 고개를 한번 갸웃했다.

  “나는 여태 그걸 모르고 있었소.”

  “그랬단 말이지? 하긴 그럴 만도 하지.”

  “뭐가 그럴 만하다는 건지…….”

  “그는 권력다툼의 판이 더럽다는 걸 알았어. 구역질하는 태도였지.”

  “결벽증이 심했구먼. 그 판 더러운 걸 모르는 사람도 있소?”

  “게다가 권력을 잡기 위한 형제간의 골육상쟁에는 치를 떨었어.”

  “그래서?”

  “자기 아버지의 명령도 있었지만, 황위를 잇는 일에 관심을 버렸고. 그래서 지금도 하염없이 강호를 떠돌고 있는 거야.”

  “까닭이 그게 다요?”

  “더 자세히는 나도 잘 몰라. 그러나 그가 전 황제의 아들이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오.”

  “그래서 그게 어떻단 말이오?”

  대들 듯 대꾸하는 말을 듣자 천풍도장의 음색이 다시 차가워졌다.

  “그가 골육상쟁을 피해서 황궁을 떠날 때, 그 혈육지정의 애틋함에 만력제가 이곳을 왕부로 하사했단 말이다. 그런데도 인정하기 싫단 말인가?”

  “어찌 됐든 그건 내게 중요한 일이 아니오.”

  그러면서 남붕치는 슬쩍 말을 돌렸다.

  “저 그림 속의 선비가 검왕 주상길이오?

  “그렇다.”

  “자기가 스스로 그린 것이오?”

  “그렇다.”

  “저 그림 속에 자기 무예의 깊은 비밀을 그려 놓았다는 사실은 아시오?”

  천풍도장이 그림을 짧게 한 번 훑어보았다. 가볍게 탄식하며 말했다.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주인에게 직접 알아봐야겠소!”

  말을 마치자 등옥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정면에 서서 마주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엄낭랑의 차가운 음성이 들렸다.

  “어디라고 감히 비(妃) 전하께 맞대면하려 드느냐? 이 쓸모없는 것아!”

  남붕치가 발끈했다. 자신의 존재가치가 별 볼 일 없다는 말이 그를 열 받게 했다.

  “쓸모없다니? 당신은 지금 내가 그렇게 하찮은 놈이라고 비웃은 것이요?”

  “그렇다. 우선 치도곤(治道棍: 곤장을 쳐서 다스림, 특히 관청에서 징벌을 가할 때의 매질)을 맛보여야겠구나.”

  심하게 꾸짖는 억양의 음성이었다. 무례한 언행이 계속되면 곤장이라도 먼저 내려치겠다는 경고였다.

  “뭐라, 치도곤?”

  와락 대꾸한 남붕치의 몸이 갑자기 부들부들 떨렸다.

  자기 입맛에 맞지 않으면 무시하거나 상대하지 않던 태도와는 전혀 달랐다.

  그의 돌변한 행태가 낯설어서 엄낭랑이 오히려 조금 놀랐다.

  그렇게 분을 이기지 못하는 모습은 여태 내보이지 않던 장면이었다.

  심리적 강박관념 같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속사정을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남붕치의 거친 발성이 이어졌다. 존칭어와 반말이 뒤섞여 있었다.

  과연 타인들은 그 어법조차 예측하지 못할 사람이었다.

  “치도곤이라고 했느냐? 좋소! 그럼 치도곤을 쳐보시오.”

  “못할 것 같으냐?”

  “어디 해보시지? 나는 힘껏 저항하리다. 살인은 물론 방화와 약탈도 사양하지 않겠다!”

  왼손이 오른쪽 허리의 가죽 주머니에 닿았다.

  그다음 내뱉는 말에는 잔인함을 그대로 드러냈다.

  “내가 여기서 몸을 상하면 당신들은 성할 것 같소? 그때 독물을 다 풀어놓으면 아주 대단히 볼 만할 텐데?”

  엄낭랑의 낯빛이 변했다.

  “어찌 인간이 그런 악독한 일을 꾀한단 말이냐?”

  “귀하의 말처럼 이 쓸모없는 인간이니까. 내 독물들이 뛰쳐나오면.”

  거기서 말을 멈추자 엄낭랑이 다그쳤다.

  “그러면?”

  “이곳의 모든 사람은 밥이나 제대로 넘기겠는가? 잠을 자려면 불안해서 깊이 잠들 수도 없겠지.”

  그러자 그때까지 지켜만 보던 주유곤이 나섰다. 얼굴에 피곤함이 드러났다.

  “엄총독께서는 자중하십시오. 여기서 피를 볼 필요는 없습니다.”

  이어서 남붕치에게도 말했다.

  “당신도 삼가시오. 이곳에 독물을 풀겠다니! 그게 어디 사람의 심성으로 할 짓인가?”

  음성에는 차가운 권위가 가득했다.

  엄낭랑은 듣기만 했다. 거역하지도, 대꾸하지도 않았다.

  허리의 단검 주머니 한쪽을 풀었을 뿐이었다. 어깨에 둘러메 묶은 보자기 끈에 단검 주머니 한쪽 끝을 툭 걸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어설픈 짓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이 무언의 동작이 오히려 더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짙은 갈색의 눈동자에 야릇한 살기가 번졌다.

  그러나 그 눈빛에는 철필서생의 그 어찌할 수 없음을 헤아리는 연민이 감춰져 있었다.

  남붕치는 정말 그 심리작용의 움직임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를 관찰하는 초점을 정반합(正反合) 어디에 맞출지 여지를 주지 않았다.

  스스로 자기를 악인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으나, 아직은 악인의 의식세계를 노출하지 않고 있었다.

  그의 자기 존재감은 선악을 미리 단정 짓지 않고 마음끼리, 서로 부딪쳐 보아야 의미가 파악될 것 같았다.

  어찌 됐든 고수와 고수가 격돌할 수도 있는 긴장된 순간이었다. 단 일격에 죽고 죽이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그때 공교롭게도 대청 밖 중문 앞에서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해신궁의 신녀(神女)께서 왕림하셨다. 주인은 속히 나와서 귀빈을 맞이하라!”

  왕부의 중문 앞에서는 누구든 하차해야 했다. 이곳의 규칙이었다.

  그걸 무시하고 중문에 들어서려던 수레는 왕후장상(王侯將相)의 거마(車馬)처럼 화려했다.

  등에 장검을 맨 왕부의 소녀들이 즉시 그 요란한 행차의 앞을 빠르게 가로막았다.

  왕부의 권위가 무시되는 것을 이들이 용납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네 명씩 짝을 지어 열두 명이 세 줄로 잇대어 차단벽을 쳤다.

  그러자 수레 옆에서 낭랑하게 높은 음성이 울려 퍼진 것이었다.

  남해신녀의 방문을 알린 젊은 여성은 상당히 키가 컸다.

  아직 어린 소녀인지, 충분히 제 앞가림을 할 만큼 다 큰 처녀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용모가 큰 몸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게 뭇사람에게 신비롭다는 느낌을 줬다. 오히려 남해신녀를 능가할 지경이었다.

  꼭 그렇다는 법칙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도, 덜떨어진 관찰자의 고정관념에서 보면 그렇게 느껴질 만했다.

  티끌 하나 없는 깨끗한 피부와 균형 잡힌 팔다리, 지혜로 반짝이는 눈빛, 맑은 음성의 소유자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생김새가 그 몸집의 크기와 용모의 조합을 어렵게 만들었다.

  뜻밖의 부분은 또 있었다.

  은연중 눈매에 병약한 기색이 노출되고 있는 것이었다. 표정은 세파에 시달려본 적이 없는 듯 순진하고 단정했다.

  예기치 않은 손님의 방문이었다.

  그 방문을 통보하는 소리에 대청 안의 팽팽했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엄낭랑은 맡은 일에 철두철미했다.

  왕부의 모든 일을 관리하는 실제적 경영인이었다.

  그런 그가 드물게 한 번씩 과격해질 때가 있었다.

  과격해지면 빈틈이 노출될 수도 있지만, 등옥려가 모욕을 받거나 위험에 처하면 그런 건 전혀 따지지 않았다.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막아냈다.

  벌써 이십여 년을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었다.

  남붕치의 도발이 가당찮을 수밖에 없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척결해버릴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도발한 자와 그것을 제어하려는 사람은 둘 다 절정고수였다. 둘이 충돌하면 피를 볼 수밖에 없었다. 서로 죽고 살기로 부딪게 될 게 뻔했다.

  그때 남해신녀의 방문을 알리는 소리가 있었다.

  이것이 두 사람의 충돌을 막는 결과가 됐다.

  남붕치는 엉거주춤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남해신녀? 남해신궁의 태상호법?”

  혼자 탄식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남해신궁 궁주의 진전제자 서문옥연(西門玉硯)과 동행했다면 이건 정말 심각한 일인데?”

  앞에 놓인 식은 찻잔을 집어 드는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바깥의 통보에 몇몇 사람은 앉아서 시선만 돌렸다.

  그러나 군웅들 대부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남해신녀를 영접하기 위해서였다.

  벌써 몇 명은 대청 앞문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세상에 흐르는 처세의 물은 자연스레 그 길이 정해진다. 상대가 지닌 힘의 크기를 찾아서 잘도 흘러간다.

  속 다르게, 죽어도 그걸 인정 못 하겠다는 말들은 하지만, 막상 마주치면 거의 다 그렇게 굴러간다.

  다시 말해서 이건 남해신궁의 존재감과 남해신녀의 신분이 어마어마하다는 뜻이었다.

  거기에다 남해신녀는 중원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종교적 올가미까지 움켜쥐고 있었다.

  남해신궁은 남해 지역의 패권자였다. 그 위상이 신비하고도 지배적이었다. 강호 무림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곳의 감춰진 권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충분히 알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런데 방문을 알리면서 주인이 직접 나와서 영접하라는 통보라니!

  키 큰 소녀가 혼자 제멋대로 말한 게 아니라면 이것은 의도적 도발이었다. 은연중에 드러내는 자기 실력의 과시였다.

  그 통보에 담긴 뜻은 둘 중 하나였다. 도발 아니면 실력 과시.

  만약 도발이라면 문제가 심각했다. 아무렇게나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어찌 됐든 서로의 입장은 대면해보아야 확인할 수 있었다.

  남붕치가 혼자 중얼거렸다.

  “삼음절맥(三陰絶脈)이라면 아직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은 소녀겠지. 치명적 고질과 놀라운 지혜를 겹쳐서 갖고 태어난 존재. 수많은 서책을 외웠을 테고 모르는 학문도 없을 테고.”

  중얼거리는 눈빛이 심각하게 가라앉았다.

  “병약한 몸으로 그 먼 남해에서 북악 적송곡까지 달려왔다면, 이는 반드시 천지침향초를 얻겠다고 온 것이다.”

  그러면서 다시 나지막이 탄식했다.

  “일이 점점 어렵게 돼가는구나. 나는 다만 어쭙잖은 동정심 때문에 왔을 뿐인데.”

  이 중얼거림이 심상찮았다. 한 인간의 사무침이 절절했다.

  “에이, 그 노인네는 돌아가시려면 그냥 가실 것이지, 왜 그런 소리를 남기셨나? 그 말에 놀라며 뭉클했던 내 심정은 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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