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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아이돌스토리
비꽃이 핀다
작가 : 지현시
작품등록일 : 2020.9.1

아이돌 연하남과의 간질간질 로맨스.

 
너 나 좋아하니?
작성일 : 20-09-28 17:06     조회 : 286     추천 : 0     분량 : 6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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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이수는 건에게서 떨어졌다.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이수를 보며 건은 제가 도리어 무언가 잘못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먼저 덮친 건 분명 그녀였는데 말이다.

  “그 위에 걸쳐 입으라고요, 검은색이라 피 묻어도 티 안 나잖아.”

  오해를 푸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 반쯤 올라간 티셔츠를 완전히 벗어 그녀에게 건넸다.

  가만히 보고만 있을 뿐, 이수는 받으려 손을 뻗지도 뭐라 말을 보태지도 않았다.

  “아까 세게 맞았어요? 피 나는데 약 같은 거… 발라야 되지 않나?”

  “…가.”

  “네?”

  “나가 달라고. 혼자 있고 싶어 여기 온 거야. 생각할 게 있어서…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런데… 네가 자꾸 이럼, 방해 되잖아.”

  “…알겠어요, 나갈게.”

  제법 진지한 목소리에 건은 티셔츠를 이수의 발치에 살며시 내려놓곤 뒤돌아 섰다.

  막 문고리를 잡아 틀려는데 무덤덤한 그녀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너 나 좋아하니?”

  건은 뒤를 돌아 이수를 내려다봤다.

  그녀는 제가 주고 간 티셔츠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나한테 남자, 그거 하고 싶어? 그래?”

  “피디님.”

  “아님, 아니라고 말해. 그래도 돼. 그냥… 웬 미친 소리냐, 그러고 웃어 넘겨.”

  이수는 천천히 시선을 옮겨 건의 얼굴을 바라봤다.

  “근데… 만에 하나, 혹시라도… 그게 맞는 거면, 그럼….”

  “그 정도 눈치로 피딘 어떻게 해요?”

  “…뭐?”

  “내가 대놓고 피디님 따라다니는데, 대놓고 피디님만 보고 있는데… 그걸 이제야 알면 어떡해.”

  맞다고. 좋아하는 게, 맞는 거라고.

  “그렇다고 부담 가질 거 없어요. 당장 뭐 어쩌자는 거 아니니까. 그냥… 좋은 거니까.”

  그 말을 남기곤 건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캄캄한 어둠 속, 생각에 잠긴 이수를 고요 속에 홀로 남겨둔 채.

  이수는 가만히 손을 뻗어 건이 주고 간 티셔츠를 집어 올렸다.

  이걸로 두 번째인가, 이 티셔츠. 대놓고 그의 이름이 적힌.

  “…내가 이걸, 여기서 어떻게 입으라구.”

 

 

  * * *

 

 

  까마귀 노는 데 가지 말라던 어미의 말을 귓등으로 들은 백로처럼, 혼자만 흰 티셔츠를 입은 건은 팀원들과 안무를 맞추고 있었다.

  “근데 너, 우리 티는 얻다 벗어두고 그 차림이야?”

  “아… 그냥, 뭐가 묻어서.”

  “검은 틴데 뭐 좀 묻음 어떻다고. 의외로 깔끔한 구석이 있네?”

  무강은 괜히 건의 어깨를 툭 한번 치고 지나갔다.

  그때 스윽 문이 열리고 가람이 연습실 안으로 들어왔다.

  “건이 형.”

  어, 그러며 건은 예상 밖의 방문객을 맞았다.

  “이거.”

  “이걸 왜….”

  “서 피디님이 갖다 주래요.”

  가람은 건에게 검은 티셔츠를 돌려주었다. 이수가 시킨 심부름이었다.

  “아… 응… 알았어, 고마워.”

  가람이 나가고, 건은 돌려받은 티셔츠를 손에 꼭 쥐었다.

  “뭐 묻었다더니, 그걸 피디님한테 준 거냐? 너도 참….”

  아무것도 모르는 무강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혀를 찼다.

  이수 생각을 하던 건은 그런 무강을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짓다 말았다.

 

 

  * * *

 

 

  녹화 영상을 확인하는 이수의 노트북에서 미성의 노랫소리가 흘러 나왔다.

  “음색 한번 청아하기도 하지. 민주 얘 노래 부르는 거 듣고 있음,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가 이거구나 싶다니까?”

  지난날 보컬 팀 애들을 모아다 놓고 노래방 기계를 갖고 놀게 한 영상이었다.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 곱슬기 하나 없는 앞머리가 덥수룩하게 이마를 덮고. 민주는 마이크에 스며드는 음성만큼이나 고운 자태로 노래를 불렀다. 미소년, 그 자체였다.

  “그래서, 얘가 선배 고정 픽이에요?”

  “뭐야?”

  “발끈하지 마요, 진짜 같잖아.”

  팔짱을 끼고 앉아 대성에게 조용히 쏘아대는 이수였다.

  “오늘 왜 이렇게 꼬였어? 남의 셔츠를 도적놈처럼 뺏어가질 않나.”

  “산적 아닌 게 어디야. 무강이, 걔 펀치하는 거 봤죠? 선밴, 주먹 한 방에 대기권 밖까지 날아가겠더라.”

  아무래도 머릿속 어딘가 있을 필터가 고장이 난 게 틀림없다. 생각나는 대로 줄줄, 입 밖으로 말이 새는 걸 보면.

  “그거 비싼 거다, 너?”

  “결자해지란 말 몰라요? 내 등짝 피칠갑 만들어 놓은 게 선배니까, 선배 셔츠가 고생 좀 하는 거죠.”

  얘 오늘 진짜 이상하네… 눈을 느리게 껌벅이며 모니터를 보고 있는 이수를 보며 대성은 생각했다.

  “나 세이지 좋아했는데….”

  ‘세이지’는 민주가 속한 보이그룹 이름이었다.

  매년 새로 쏟아진 그룹들에 서서히 파묻혀 간 이름.

  이수는 문득 그의 사전 인터뷰 내용이 떠올랐다.

  ‘데뷔만 하면 끝인 줄 알았어요. 팬들이 기다려주는 무대 위에 서고, 그 좋아하는 노랠 부르며 땀을 흘리고, 행복한 날들이 그렇게 하루하루 이어지는… 연습생들 누구나 꿈꾸는 해피엔딩.’

  그런데 아니었다.

  새드엔딩보다 더 참담한, 열린 결말이었다.

  길어지는 공백기만큼 두터워지는 막막함.

  괜찮단 말을 수백 번 해도 지워지지 않는 불안함.

  다시 연습생으로 돌아가 오디션에 참가하라는 지시에 차곡히 눌러왔던 막막함과 불안함이 곪은 상처처럼 터져버렸을 터였다.

  ‘우리가 지금 그 정도인가, 절망했고 또 창피했어요. 대표님 말마따나, 소중한 기회라고 감사한 제의라고 생각하려 아무리 애를 써봐도 같잖은 자존심이 자꾸 빈정거려서… 그 빈정거림을 다른 사람 눈에서 읽게 될까 봐… 겁이 나더라구요.’

  이 바닥에선 제법 흔한 사연이었다. 슬프지만 특별하진 않은 이야기.

  그런데 이상하게 그만 보면 마음이 짠했다.

  “이 노래, 왠지 <샛별> 같다… 느낌이. 우주 어쩌고 가사도 그렇고.”

  “열성 팬은 따로 있구만, 왜 애먼 사람은 잡아?”

  “이 노래 부르면서… 쟤도 그 생각 했겠죠? 왜 우리 노랜 이만큼 못 떴을까, 음악이 아니라 가수가 문제였던 걸까, 어떻게 불러야 사람들이 좋아해 줄까… 그런 생각 말예요.”

  “글쎄? 했을 수도 아닐 수도.”

  “했을 거야. 눈이 왠지 슬퍼 보이잖아.”

  “뭐야… 시니컬이랑 센치, 둘 중에 하나만 해.”

  그날인가? 오락가락하는 이수를 상대하며 대성은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가설을 세우는 중이다.

  “5년 활동했는데, 이제 겨우 스물셋. …어리다, 참.”

 

 

  * * *

 

 

  저녁 식사를 하러 내려온 건은 겨우 노트북 가방 하날 갖고 아옹다옹인 대성과 이수를 발견했다.

  “무거우니까 선배가 들어요, 좀!”

  “무거우니까 네가 들어야지.”

  그런데 이수가 입고 있는 셔츠, 저건 분명 김 피디가 낮에 입고 있던 건데.

  “난 여자잖아.”

  “아닌데,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있구나?”

  “씨이… 이럴 땐 또 왜 아니야, 열받아.”

  “뭐래는 거야.”

  멀리 사라져가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건은 주먹을 꽉 쥐었다.

  왜….

 

 

  * * *

 

 

  먹는 둥 마는 둥 식사를 마치고, 건은 연습실로 터덜터덜 올라왔다.

  “어….”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쪽 구석에서 무릎을 팔로 안은 채, 새우잠을 자고 있는 이수가 보였다.

  얼마나 피곤할까, 안쓰러운 마음이 들다가도 그녀가 덮고 있는 김 피디의 셔츠를 보니 순간 미워졌다.

  바닥에 대충 접어 둔 제 검은 티를 들고 가 그는 잠든 이수의 고개 사이에 슬쩍 넣어주었다.

  그리고는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앉았다.

  지그시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 끝에 평온히 눈을 감고 있는 이수가 있다.

  ‘나가 달라고. 혼자 있고 싶어 여기 온 거야. 생각할 게 있어서…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런데… 네가 자꾸 이럼, 방해 되잖아.’

  “…생각해야 한다던 일, 그거 혹시 나였어요?”

  ‘건아. 너 혹시… 아니야. 들어가.’

  언제부터였을까, 제 마음을 그녀가 알아주기 시작한 게.

  괜한 물음일까, 제 마음에 그녀가 들어온 게 언제였는지도 모르는 주제에.

  건은 슬쩍 손을 올려 대성의 셔츠자락을 만졌다.

  어쩌면 그녀는… 제게서 멀어지려 애를 쓰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요사이 일부러 피하던 시선도, 구태여 돌려준 티셔츠도.

  씁쓸한 얼굴을 하고선 건은 몸을 일으켰다.

  그의 검은 운동화가 바닥을 밟는 소리가 적막한 연습실이 고요히 울렸다.

  그리고 탁, 문이 닫혔다.

  감고 있던 이수의 두 눈이 스르르 떠졌다. 그가 나가길 기다렸다는 듯이.

  느릿하게 움직여 고개를 바로 한 그녀는 건이 놓고 간 티셔츠를 내려다봤다.

  그런 다음 소중한 물건 다루듯 조심스레 집어 올렸다.

  어느 공포 영화 속, 내다 버려도 자꾸만 돌아오는 인형처럼 이악스럽게도 저를 물고 늘어지는 그의 마음을.

  “하….”

  공포와는 전혀 다른 색의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 말하지 못하고, 때론 싫어하는 걸 좋아한다 말해야 하는… 점잖은 거짓말만 늘어가는 어른이 되면서부터 갖게 된 두려움.

  마음속 소망과 상충되는 현실을 마주할 때 느끼는 갈등.

  “깨 있던 거 맞네.”

  갑자기 날아든 목소리에 놀란 이수가 황급히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왜 자는 척해요. 왜 피해요, 나.”

  그가 있었다. 안 가고 있었다.

  안 가고, 잠든 척 그를 피해 볼 요량이던 절 다 보고 있었다.

  “그런 적 없어. 내가 왜 널….”

  시선을 내리고 우물쭈물 말하는데 터벅터벅 건이 제게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거기 서, 오지 마.”

  다급하게 내지른 소리에 그가 멈칫, 했다.

  그녀가 불편해하지 않는 거릴 지켜줘야 하나, 고민하다 그는 이수의 바람대로 더는 다가가지 않기로 했다.

  “티셔츠 왜 돌려 보냈어요? 김 피디님 셔츠 입을 거였으면….”

  “질투도 하는 거야, 이제?”

  말꼬리까지 잘라가며 이수는 차가운 목소리로 그를 대했다.

  “너희 혈기왕성한 놈들, 한곳에 몰아두고 죽어라 연습만 시켜, 이성에 대한 욕구 불만, 그래 그거… 생길 수 있어. 이해해.”

  “뭘 이해하는데.”

  이수가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건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근데, 하나도 못 알아듣겠는데, 부아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욕구 불만? 하, 왜 그런 식으로 말해요? 그거 아닌 줄 뻔히 알면서 왜 그렇게 말하냐고!”

  “아니, 맞아. 내 말이 맞아. 넌 힘들어 죽겠는데, 내가 옆에서 응원하고 보살펴 주고 챙겨주니까, 좋아하는 거라고 착각하는 거야.”

  이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너만 그런 거 아니야. 한 번씩… 수줍어하면서 지나가는 애들, 있었어. 왜 그런 거 있잖아, 남고에 실습 나간 여자 교생 선생님.”

  “하.”

  자신의 마음을 단순한 호감, 동경으로 치부해버리는 이수가 얄미웠다. 어이없었다.

  “내가 조심했어야 했는데, 무신경했어. 미안해. 앞으론….”

  “근데 왜 화내요?”

  “…뭐?”

  “어린 놈 유치한 객기쯤으로 결론 냈음, 장난스레 웃으면서 토닥토닥, 그럴 사람이잖아요.”

  말을 멈추고 건은 오지 말라고 이수가 그어 놓은 선을 넘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제게로 천천히 걸어오는 건을 보며 이수는 두 손을 꼭 쥐었다.

  “근데 경계하잖아. 동요하잖아.”

  두어 걸음을 남기고 건은 자리에 멈춰 섰다.

  “나한테 모진 말 쏟아내면서, 속상해하고 있잖아.”

  이수가 고개를 아래로 떨구자, 건의 고개가 비스듬히 기울어지며 그 시선을 쫓아갔다.

  “위악이라도 떨어서 나 쫓아내고 싶었어요? 뭐가 그렇게 무서워서?”

  “…건방지게.”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이수는 시선을 올려 건을 똑바로 쳐다봤다.

  “날 얼마나 봤다고 아는 척이야, 뭘 안다고 함부로 좋아한대….”

  그러나 어찌할 새도 없이 차오른 눈물에 그녀의 마지막 저항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만하지, 충분히 다 들킨 거 같은데.”

  “너 진짜 정신 안 차릴래? 여기가 너 연애 놀음하라고 있는 덴 줄 알아!”

  건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끝까지 저를 밀어내려 애쓰는 이수를 화악, 안았다.

  “걱정 마요, 아무것도 안 바랄게. 난처하게 만들려고 좋아하는 거 아니야.”

  소리를 참으며 우는 이수의 등을 토닥이며 달랬다.

  “그러니까, 천천히 와요. 나 있는 데까지, 마음 내킬 때마다 한 걸음씩.”

  토닥토닥.

  우는 아일 달래면 더 크게 운다던데, 이 다독임엔 점점 마음이 차분해진다.

  시원하게 울어 젖혀 얻어내고픈 애정을, 그가 이미 주고 있기 때문일까.

  그래, 그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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