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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불순한 교수
작가 : 퀸카대행진
작품등록일 : 2020.7.31

담임선생님과 풋풋한 첫사랑을 했던 여학생들은 다들 행복했을까? 아니다 지극히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들은 완벽한 비밀 연애를 해야만 한다. 사회적 통념, 친구들의 시선, 부모님들의 반대는 어떻고? 여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한 선생님과 여제자의 사랑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또 그들이 헤어지고 난 후의 이야기가 있다. 카카오톡ID: lov2lovely

 
15. 연적에 대하여
작성일 : 20-09-28 16:24     조회 : 209     추천 : 0     분량 : 8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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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화.

 

 

 

 

 예화는 언제나 처럼 거실 소파에 앉아있는 홍교수와 짧게 인사를 나누고,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자신의 방안 침대 옆 구석에서 자신의 몸을 한껏 웅크리고 있었다.

 

 

 

 "내가 미쳤나봐."

 

 

 

 한참을 그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손목에 길게 난 상처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지나도 옅어져 가지 않는 상처를 바라보며 그가 돌아와도 절대 용서하지 않겠노라 결심한 세월이 5년이었다. 그런데 다시 만나자는 그의 말에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심장이 이미 알았다. 그래서 숨이 가빠워질 정도로 힘들었다. 다시 또 부모님의 마음을 다치게 하면서 까지 그 남자를 만나도 될까. 그를 만난 후의 수십 개의 상황들이 몇 갈래로 나눠지며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매웠다.

 

 

 "생각을 멈춰 멈추면 될 거야."

 

 

 자신에게 읊조리듯 말한 그녀가 힘겹게 침대에 기어 올라가 누웠다.

 

 바뀐 상황 앞에 모든 원망들을 다 재쳐두고 바람 앞의 갈대처럼 세차게 흔들리는 자신이 미워지는 순간이었다.

 

 

 

 

 다음날 아침, 학교로 가는 그녀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결국 잠을 설쳤다. 이미 정해버린 마음과 맞부딪친 암울한 상황을 어떻게 해쳐 나가야 할지까지 생각을 했지만 명확하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잘 잤어? 걱정돼서 일어나자마자 문자부터 보낸다. 오늘도 학교 잘 가고 표정 좀 펴 너 인상 쓰는 게 여기까지 다 보인다.

 

 

 울리는 진동소리에 핸드폰을 쳐다보자 그녀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는듯한 건우의 문자가 와 있었다. '알겠어요.' '네' 같은 간단한 답장을 하려다가 모두 지워버렸다. 아직 이렇게 하자라고 결정조차 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와 문자를 주고 받는 것이 웃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너 어디야?

 

 

 학교에 들어서자 진동소리가 또 들렸다. 그 일까 하여 번뜩 문자를 확인하는데 이번 문자의 주인공은 가은이었다.

 

 

 -교문 들어서는 중

 

 

 예화가 짧게 답장을 보냈다.

 

 

 -너에게까지 200m!

 

 

 -교문 앞에 서 있을게. 빨리 와

 

 

 그녀의 닭살스러운 문자에 예화가 웃으며 답장했다. 어떤 상황에서건 위로가 되어주고 힘이 돼 주는 친구다. 예화는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서 가은이 어서 오기를 기다렸다. 이젠 50m 밖에서 보이는 그녀가 책을 한 움큼 짊어지고 예화를 발견하고 달려오고 있었다.

 

 

 "왜 이렇게 뛰어 천천히와."

 

 "소문 들었어 홍예화?"

 

 

 뛰어온 탓에 숨을 한꺼번에 몰아쉰 가은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무슨 소문?"

 

 "너 잘하면 자연과학대학의 여신으로 우뚝 설수 있겠어."

 

 "그게 무슨소리야."

 

 "우리 학교 축제때 학부끼리 붙어서 한국 대학교 대표미인 뽑는 행사 꼭 하잖아."

 

 "그렇지."

 

 

 예화는 대학교 1학년 축제때 드레스를 입은 여학생들이 각 학부를 대표하고 나와 장기자랑을 하고 무대를 휘젓고 다니는 것을 보았던 기억이 났다.

 

 

 "우리 자연과학 학부가 축제때 다른 대결 종목들은 다 선방하는데, 이 대회만큼은 슬픈 징크스가 있지. 미술대학이고 수의과 대학이고 의과대학이고 다들 한번쯤 학교 여신이 탄생됐는데 우리 학부에서는 단 한명도 뽑힌 사람이 없었어. 그래서 내 남친 민수도 이 대회에 사활을 걸고 있거든."

 

 "그래서?"

 

 

 예화가 슬슬 불안해하며 뒤로 주춤 물러섰다.

 

 

 "우리 예화 키도 크고 작정하고 꾸미고 다니지 않아서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예쁜 얼굴이기도 하고 거기다 우리 학과에서 꽤 이슈 메이커잖아. 그래서 그걸 노린 학생들이 너 내보내자고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추세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소문에 대한 글귀가 하필 대학교 축제포스터에 써져 있는 바람에 여차하면 축제도 오지말까 생각하고 있는 판에 한국대학교 대표미녀의 꿈을 노리다니. 무슨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고 있냐는 표정으로 예화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나는 너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뭐?"

 

 "대표 미녀로 뽑히지 않더라도 자연과학대학에서 뽑힌 미인이라는 게 증명되는 거고 네가 당당하다는 거 보일 수 있는 기회잖아. 네가 숨죽여 있지 않다는 것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

 

 "그리고 내가 후보들 쫙 봤는데 해볼 만해. 간호대학에서 제일 예쁜 언니가 있는데 그 언니 휴학해서 안 나온데 제일 쎈 경쟁자가 빠진 셈이지."

 

 

 가은이 비밀회의를 하듯 예화에게 귓속말로 소곤 거렸다.

 

 

 "아하하 그렇겠네. 그래도 안 해 너 남친 민수에게 똑똑히 전해 나 진짜 안한다고."

 

 "그러지말고 나가보자. 나도 내 친구 여신 만들고 싶단 말이야 내가 메이크업하고 옷하고 다 해줄게!"

 

 

 그녀의 앞뒤 사정 안 가리는 조르기 스킬이 또 한번 발휘되려 하고 있었다. 예화가 더 이상 그러지 못하게 인상을 팍 썼다.

 

 

 "정말 싫구나. 너?"

 

 "알겠어. 다른 후보를 찾아봐야겠네."

 

 "그래 잘 생각했어 친구. 나는 그런데 영 소질이 없어."

 

 "네가 딱인데 너 엉덩이 곡선이 죽여줘서 딱붙는 옷 입으면 진짜 이쁠텐데. 가슴이야 내가 만들어 내면 되고."

 

 

 전신에 노골적으로 꼿히는 시선에 예화가 조금은 빈약한 가슴을 두 손으로 가렸다.

 

 

 "생각하지 마. 견적 뽑지 마 너!"

 

 

 아무리 예화가 거부해도 포기가 쉽지 않은 가은이 입맛을 다셨다.

 

 

 "각 딱 나오는 데에!"

 

 "시끄럽다."

 

 "그래도 너 진지하게 생각해봐 알겠지? 나 지금 수업 들어가야 되거든 이번 수업 끝날 때까지 생각해봐!"

 

 "안한다고!"

 

 "생각해본다고 알겠어."

 

 

 급하게 수업건물을 향해 멀어지는 가은은 예화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했다. 들으려고 하지 않는 걸지도...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일을 벌이려는 시한폭탄 같은 가은을 보낸 후, 예화는 핸드폰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눈이 일찍 떠져 학교에 곧장 왔을 뿐인데 수업시간까지 2시간이나 붕떠 있었다. 축제 끝나고 곧바로 시험기간인 까닭에 예화는 학생들이 잘 지나가지 않는 정원 벤치에 누워 전공책을 꺼내 폈다. 하지만 바로 어제 밤잠을 심하게 설친 탓에 점점 책속의 글자가 멀어져 가고 있었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눈을 부비고 다시 책을 봤을 때에는 그녀가 누워있던 벤치에 그늘이 져 있었다. 갑자기 책을 치우고 햇빛과 그림자를 마주한 탓에 앞에 선 사람의 인영이 거뭇거뭇하게 보였다. 눈을 몇 번을 비비고서야 그 인영이 진희라는 것을 알았다. 예화가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의자에 앉았다.

 

 

 "무슨 일이야?"

 

 

 반갑지 않은 얼굴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너 정건우 선생님하고 아직 까지 만나는 거야?"

 

 

 진희가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서서는 친절하지 못한 말투로 묻고 있었다.

 

 

 "내가 너한테 그걸 왜 이야기해야 하는데?"

 

 "말해."

 

 "계속 못 보다가 최근에 만났어. 그게 너하고 무슨 상관인데?"

 

 "왜 넌 항상 내가 좋아하는 남자 옆에 있어? 선생님 나도 좋아했는데 네가 뺏어가서 싫었어. 그런데 이번에 또 네가 강윤하 교수님 옆에 있잖아."

 

 

 그녀는 대놓고 따지려 여기까지 찾아 온 것임이 분명했다. 예화를 바라보는 시선부터 그랬다.

 

 

 "강 교수님하고는 아무사이 아니라고 저번에도 말했잖아 내가 몇 번을 말해."

 

 

 예화가 말할 가치가 없다는 듯 맞받아 쳤다.

 

 

 "카페에 앉아 둘이 희희 낙락 대는걸 본게 몇 번인데 아니라고?"

 

 "교수님과 학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야."

 

 

 예화는 그렇게 말한 후 윤하를 다시 생각했다. 뭐 그냥 학교 교수라고 하기엔 그동안 의지가 많이 되었던 그였다. 하지만 그와 연인이라니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그림이었다. 물론 아버지 홍교수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지만.

 

 

 "그보다 내가 왜 너한테 이런 대답을 하고 있어야 하지?"

 

 "네가 자꾸 내 신경을 긁으니까."

 

 "하. 신경 긁어서 미안한데, 너도 만만치 않게 그러고 있으시거든요?"

 

 "네가 헤프게 두 남자 근처에서 자꾸 알짱대고 있으니까. 이러는 거잖아. 몇 번을 경고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너는 여전히 못 알아듣는 구나."

 

 

 화가 난건지 그녀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녀는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날카롭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너는 예나 지금이나 내가 그렇게 경고를 해도 못 알아들어. 나한테 매번 당하면서 말이야. 고등학교 때부터 그랬어! 얌전한 척 고상한 척 하면서 뒤에선 헤프게 굴었잖아!"

 

 "뭐?"

 

 "왜 모르는척해 그게 너잖아."

 

 "그럼 이번에도 포스터 너야? 그런 소문낸게 너냐고."

 

 

 고등학교 때 만나는 모습을 제일먼저 보고 알린 것이 진희였고, 학생들을 선도해 강건우 선생님과 자신을 내쫓은 사람도 그녀였다. 그 시절 그녀는 반장을 도맡아 하고 전교회장까지 지내던 우등생이어서 모든 선생님에게 촉망받는 학생이었고, 그의 어머니 또한 학교에 날리는 치맛바람으로는 1등을 차지하는 사람이었기에, 학교에서도 모녀의 의견을 무시하지 못했었다.

 

 

 "뭐 내가 그렇데? 왜 엄한사람을 자꾸 의심해?"

 

 

 그녀가 당황한 듯 말을 얼버무렸다. 하지만 이제와 둔감한척 해봐야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녀의 욕심은 이미 들통 났고 예화는 그녀를 봐줄 생각이 없었다.

 

 

 "넌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아, 사람 무시하고 약점이용해서 끝까지 무너뜨리려 드는 건, 너무 악독해서 말로 담기가 힘들 정도야."

 

 "네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해? 모든 근거는 네가 제공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하냐고?"

 

 "갖지 못한걸 탐내고 질투 같은 거나 하는 너보다는 나아."

 

 "내가 널 질투한다고?"

 

 "응"

 

 "하 웃기고 있네. 나는 네가 꼴사납게 두 남자 사이 오락가락 하는 거 보고 싶지 않을 뿐이야. 주제를 알면 그냥 제발 가만히 수그리고 있으면 안 돼? 난 학교에서 네 얼굴 보는 게 너무 싫은데."

 

 

 참는데도 한계가 다다르고 있었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그녀한테 별소리를 다 듣는다 싶었다. 이 자리에서 듣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듣고 있었다.

 

 

 "미안한데 나 너 얼굴 지겹게 계속 볼 거야. 여기 졸업할 때까지 2년 뭐 혹시 내가 대학원이라도 가면 4년 너랑 나 6년 동안 지긋지긋하게 볼 테니까. 내가 누굴 만나던 뭘 하던 똑똑히 지켜봐!"

 

 

 더 이상 여기 있다가는 이성을 잃고 폭발해 버릴 것 같은 느낌에 예화가 먼저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너무 급하게 움직인 탓에 결국 탈이 났다. 급히 걸어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가방이 떨어지고 손안에 든 책이 바닥을 구르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그녀를 바라봤다. 다리가 아픈걸 보면 넘어진 충격에 무릎이 까진 것 같았다. 하지만 예화는 개의치 않은 채 거칠게 숨을 내뱉으며 짜증스러운 손길로 머리를 쓸어 올리다 결국 헝클었다. 진희의 말이 독이 되어 목에 뭐가 걸린 것처럼 쓰리고 아팠다. 계속 진정되지 않은 숨을 몰아쉬며 내뱉어 봐도 여전히 가슴은 쿡쿡 찔린 듯 아프고 울적했다.

 

 

 창피함에 고개를 한껏 내려 숙인채로 몸을 일으키려는데 누군가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길고 희고 예쁜 손이였다.

 

 

 "괜찮아?"

 

 

 윤하가 꽤나 걱정스러운 얼굴로 예화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괜찮아요."

 

 

 예화는 일부러 그의 손을 잡지 않고 일어섰다. 헤프게 군다는 진희의 말이 상처로 남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무안해진 손이 허공에 잠시 붕떴다가, 허리춤으로 다시 놓여졌다. 그녀의 굳어진 표정에 윤하의 인상이 찡그려졌다.

 

 

 "너 무슨 일 있어?"

 

 

 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마와 목에 핏대가 서있는 예화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피부가 하예서 더 도드라져 보였다.

 

 

 "아니에요. 저 괜찮아요."

 

 

 윤하도 여기서 더 깊은 예기를 할 수 없다 싶었는지 걱정스런 시선을 까진 무릎 쪽으로 돌렸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까치 양호실에 가서 치료 받아. 이거 멍 심하게 들겠는데?"

 

 

 그가 그녀의 무릎을 살피며 말했다.

 

 

 "어이 거기 학생! 좀 도와주지 그래."

 

 

 그리고 지나가는 학생을 불러 세웠다. 그의 부름에 간택된 여학생이 얼굴을 빨갛게 붉히며 둘의 곁으로 다가왔다.

 

 

 "어머!"

 

 

 이름 모를 학생이 예화의 무릎을 보며 놀랐다. 살갗이 찢어진 틈에서 피가 뚝뚝 맺히고 벌써 멍이 푸르스름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제가 데려다 줄게요 교수님."

 

 

 그녀가 웃으며 윤하의 얼굴을 바라봤다. 애정이 담뿍 담긴 눈빛 예화는 그 학생에게서 윤하에 대한 호감을 읽었다. 역시 강윤하 한국대학교의 아이돌답다 싶었다. 콧대 높은 여대생들의 높은 허들을 단번에 무장해제 시키는 것을 보면.

 

 

 이름 모를 친절한 그녀는 예화의 가방과 무거운 책들을 자청에서 들기까지 했다.

 

 

 "그럼 잘 부탁해 학생."

 

 

 윤하의 눈웃음에 그녀가 방긋 웃으며 예화의 몸을 걸어가기 편하게 자신에게 기대게 했다.

 

 

 "고맙습니다."

 

 

 예화가 그녀와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윤하가 붙여준 든든한 가드와 함께 양호실을 향해 걸어가려고 할 때, 뒤에서 익숙한 시선이 느껴져 뒤돌아보니 뒤늦게 정원을 빠져나온 진희가 자신과 윤하를 보고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진희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윤하의 앞에 섰다. 예화는 그녀의 독기서린 말을 듣느라 온몸에 핏줄이 울긋불긋하게 올라올 정도 였는데, 그녀의 얼굴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멀쩡했다.

 

 

 "예화가 많이 다쳤나봐요. 어떻게.."

 

 

 진희는 가식적으로 인상을 쓰며 그녀를 당황케 했다. 이건 뭔가 싶어 예화가 어버버한 얼굴로 진희를 바라보았다.

 

 

 "빨리 양호실 가야 되겠다."

 

 

 "토끼 실험실 물품은 다 갖다 놓고 땡땡이 치는 거야?"

 

 

 전혀 진희의 가식적인 면모를 눈치 채지 못한 윤하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당연하죠. 교수님. 아 저 수업에 대해 물어볼게 있는데 잠깐 시간 되세요?"

 

 

 그녀는 예쁜 쌍꺼풀을 깜박이며 윤하에게 애교를 부렸다. 예화는 당장 임시 가드의 손에 들려있는 책을 뺏어 들어 그녀에게 던지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참을 인자를 세기며 꾹꾹 눌러 담아 참았다. 그 대신에 1초라도 빨리 가드를 재촉해 양호실로 향했다.

 

 

 "까치 치료 잘 받고!"

 

 

 윤하의 친절한 배웅을 뒤로 한 채...

 

 

 

 

 

 

 잠시 후 오른쪽 무릎에 반창고를 크게 하나 붙인 예화가 양호실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다음 수업 시간에 맞춰 나왔다. 어기적어기적 걷기가 힘들다 싶었을 때 소식을 들은 가은이 양호실 문 앞에 나타나 예화를 든든하게 부축했다.

 

 

 "너 대회 나가기 싫어서 시위하는 거지 지금?"

 

 

 가은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눈을 흘기며 예화에게 물었다.

 

 

 "그럴 리가. 그냥 안 나가면 되는데 뭐 하러."

 

 "그렇지? 내 제안이 그렇게 싫진 않은 거지?"

 

 "..."

 

 "그래서 내가 지원군을 데려왔어."

 

 

 그녀는 자신을 미인 대회에 내보내는 것을 포기할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자신의 남친 포함 생명과학과의 임원들을 몽땅 데려온 것을 보면.

 

 

 "예화야 미안한데 네가 나가주면 안되겠니?"

 

 

 민수가 해놓은 폰 화면에 '생명과학과 대표미인 홍예화 축제에 나가주세요~' 라는 말이 어플의 힘을 받아 글씨가 반짝 반짝하며 지나가고 있었다. 아이돌 응원할 때나 쓰는 그 어플을 손수 쳐서 준비 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어쩌자고 이래. 나 무릎 이런 거 안보여."

 

 

 예화가 난감한 듯 무릎 핑계를 댔다.

 

 

 "축제까지 디데이 14일 그전에는 낫지 않겠어?"

 

 

 민수의 곁에 딱 붙어 부추기는 가은이 얄미웠다.

 

 

 

 

 

 

 잠시 후, 예화의 두 손에는 대회에 참가한다는 신청서 사본이 들려있었다. 아이들의 온갖 부축임과 설득과 협박 그리고 사회과학대학의 미인 대표가 박진희라고 되어있는것을 본 순간 살짝 정신이 나갔던 것 같다. 제 손으로 무덤이 될지도 모르는 신청서에 싸인을 하다니! 예화는 수업을 받으며 후회와 자책의 사이의 중간쯤을 오락가락 하고 있었다.

 

 

 아까 온갖 아부와 감언이설에 정신이 없어 참가서에 미처 보지 못한 항목도 있었다.

 

 

 '참가를 신청한 1인은 대회 당일 장기자랑을 준비해오는것에 동의합니다.'

 

 

 "아 진짜. 미쳤지 내가"

 

 

 장기자랑이라니! 서글서글하지 못한 성격탓에 부모님 앞에서도 그 흔한 애교같은것도 부려본적이 없었다. 밀려드는 부담감에 머리를 두 손으로 뜯으며 자책하고 있을 무렵, 옆 강의실에서 수업을 끝낸 윤하가 복도를 걸어오고 있었다.

 

 

 "대회 나가는 거야?"

 

 

 예화의 손안에 든 분홍색 참가 신청서를 알아챈 윤하의 얼굴에 호선이 그려졌다. 특별히 미인대회라고 참가서까지 분홍색이었다.

 

 

 "어쩌다 보니요."

 

 

 예화가 풀죽은 목소리로 응답했다.

 

 

 "야아 내가 알고 있는 학생이 이 대회에 둘이나 나가네 토끼와 까치. 괜찮은 대결인데?"

 

 

 그의 말 속에 있는 진희와 어떤 쪽으로든 엮이는 것이 싫었다. 그는 정말 토끼가 얼마나 여우이고 악독한지 모르는 것일까. 한편으로는 모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양면의 얼굴을 고등학교 때에도 잘 숨기고 선생님들에게 예쁨을 받던 그녀였다. 불현듯 갑자기 서서히 사라져 점이 되어가고 있던 승부욕이 살살 불타오르려하고 있었다.

 

 

 "재, 재미로 나가는 거죠 뭐.."

 

 

 아무렇지 않게 얼버무렸지만 예화의 가슴속 뜨겁게 활활 불타오르는 승부욕은 이미 정점을 찍고 있었다.

 

 

 "스읍 그래도 학부 대표인데 괜찮겠어?"

 

 "최.. 최선은 다해야죠."

 

 

 윤하가 괜찮은 척 하면서 진땀을 흘리는 예화를 기분 좋게 웃으며 바라보았다.

 

 

 "무릎은 괜찮아?"

 

 "많이 나아졌어요."

 

 "괜찮으면 데려다 줄까? 걷기 힘들어 보이는데."

 

 

 윤하가 반창고가 크게 붙어있는 무릎에 시선을 두며 말했다. 예화가 어떻게 할까 3초 남짓 망설이고 있을 때 핸드폰에서 진동이 왔다

 

 

 -학교 끝나고 나와 데리러 갈게.

 

 

 건우가 보낸 문자를 확인한 예화가 핸드폰을 화면을 꺼 본능적으로 문자를 숨겼다. 그가 보지도 못할 것인데도 순간적으로 찔렸다.

 

 소문의 상처에 아파하고 바닷가로 도망갔었을 때 건우와 만나는 것이 좋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던 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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