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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잉홈
작가 : 땡글
작품등록일 : 2020.9.27

쓸쓸한 삶과 죽음을 대하는 고귀한 삶과 죽음에 대하여.

 
골목라면
작성일 : 20-09-27 21:44     조회 : 358     추천 : 0     분량 : 4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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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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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라면을 끓여본 적이 없다. 수없이 라면을 먹어보긴 했지만 내 손으로 직접 끓여본 적은 적어도 내 기억엔 없다. 어렸을 때엔 가끔 아빠가 끓여 주시곤 했는데 그 때마다 아빤 늘 내게 미안해 하셨다.

  “미안해, 아들. 오늘은 라면이야. 내일은 꼭 밥 해줄게.”

 밤낮 없이 일하던 그는 바쁜 시간을 쪼개어 꼭 밥을 지어 주셨는데 반찬이 몇 개 없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재료 한 가지는 꼭 넣어주려 하셨다. 그러다 도저히 시간이 되지 않을 때 먹었던 게 라면이었다. 혼자 챙겨 먹을 만큼 자란 이후로는 내가 아빠 식사를 챙길 수 있었는데, 아빤 역시 바쁘다는 이유로 끼니를 제대로 챙겨 드시지 못하시거나 라면으로 대충 때우는 일이 잦았다. 고등학교 때 늦게 학교에서 돌아와 보면 아빠가 혼자 라면을 먹고 있는 광경을 가끔 볼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난 아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가 있었던 나는 아빠를 위해 밥과 찌개를 꼭 준비해 놓으려 했다. 그 때에는 라면을 별 영양가 없이 대충 배만 채우려는 간식쯤으로 여겼었다.

  아직도 난 라면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세뇌되어 버려, 라면을 먹는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건 사실이다. 어쩌면 처음 ‘골목라면’에 오게 되었던 이유가 그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구수하고 진한 사골 국 끓는 냄새에 끌려, 가게 앞까지 다가왔는데 고개를 들어 간판을 보니 라면 가게였다. 국물 냄새만으로 영양가 가득한 특식을 연상케 했지만 막상 들어와 보니 정체는 ‘라면’이었다.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라면과는 전혀 다른 비주얼과 내음이었지만 분명 라면이었다. 그 날 소주와 함께 처음 먹어본 그 ‘라면’은, 한동안 소진되어 채워지지 않던 내 육체의 에너지를 채워 주었고 갇혀 있던 영혼을 깨워 주는 훌륭한 영양식이었다.

 

  난 박 지부장님을 이제 찾아가지 않기로 했다. 그 분과 사모님이 꼭 불편하거나 부담스러워서 만은 아니다. 본디 난 외로운 사람이었다. 내게 외로움은 ‘괴로운 것’ 내지 ‘좋지 않은 것’ 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아빠의 유전자 덕인 것 같다. 내 곁에 아빠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있는 걸 상상해 본 적이 없고, 있다 하여도 그 누군가의 곁에 있는 나는 진짜 내가 아닐 것이다. 난 꾸미지 않은 ‘나’로 사는 게 편했고, 편하게 사는 게 ‘사는 것’의 의미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아빠가 곁에 없으니 다시 아빠를 만날 그 날까지 외로운 것은 당연하고 난 그 사실에 만족한다. 아빠를 그리워할지라도, 이러한 생각에 머무르고 나니 살아지는 것 같다. 살만 했다.

 

  “안녕하세요. 라면이랑 소주 주세요.”

  ‘골목라면’을 들어서며 사장님에게 인사와 동시에 주문을 했다. 사장님은 고개를 크게 끄덕하셨다. 아직 손님은 없었지만 그는 분주했다. 사장님의 과묵함은 여전했고 변함없이 국물이 끓고 있었다. 그는 파를 썰고 있었다. 가게 안팎으로 퍼지는 냄새도 그대로였다. 그것이 너무 좋았다.

  금요일 저녁이다. 내일은 출근하지 않는 토요일이고, 난 내일 할 일에 대한 생각을 하며 라면을 기다리고 있다. 한 일 주일 전에 문득 들었던 생각인데, 여행이 나의 주말 계획이다. ‘여행’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적이 있었나 싶게 새삼스럽지만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비록 올 겨울 추위가 절정에 이를 거라는 주말 날씨 예보가 있었지만 공기는 더없이 맑을 거라 했다. 내일 아침 눈이 떠지는 대로 집을 나와 시외버스를 탈 것이다. 무조건 가장 빠른 버스로. 그리고 어느 곳으로든 버스 투어를 하고 적당한 때에, 적당한 곳에서 내려 그곳을 걸을 것이다. 복잡한 곳이 됐든 한적한 곳이 됐든 추위가 잊어질 때까지 걷다가 그 때 떠오르는 생각대로 다음 코스를 정할 것이다. 어차피 난 수원 시내를 벗어나본 적이 없다. 나와 가까운, 내가 모르는 주변을 새로이 살피는 일이 재밌을 것 같다. 혼자 기대에 들떠 있는 동안 사장님이 다가오고 계셨다.

  “좋은 일이라도 있나 보네요.”

  사장님은 느리게 말하며 내 앞에 라면과 소주를 놓고 가신다.

  “아, 아니......... 감사합니다!”

  생각에 빠져 있다가 나의 대답은 사장님의 느린 말에도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다. 빈속에 소주를 먼저 한잔 넘겼다. 달았다. 그래서 국물을 떠먹기 전 한 잔을 더 마셨다.

  곧 라면 한 사발에 소주 한 병을 모두 비웠다. 기분이 무척 말끔하고 좋았다.

  “사장님! 저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어서 오세요!”

  난 사장님에게 소주 한 병을 더 주문했는데, 그는 때마침 가게를 들어오는 손님을 향해 인사를 하느라 날 보지 못한 눈치였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사장님이 있는 주방 쪽으로 갔다. 머리가 잠깐 어질했다.

  “저........ 기......... 사장님, 소주 한 병 가져갈게요.”

  냉장고에서 소주를 직접 꺼내며 난 그에게 말했다. 그는 다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저, 해장라면이랑 소주 한 병 주세요.”

  사장님은 곧 방금 온 손님의 주문을 받으셨다. 난 두 번째 소주를 한 잔 따르고 또 내일 여행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사장님이 어느새 꼬치어묵 몇 개를 내 앞에 가져다 놓으신다. 넋을 놓고 있다가 난 또 인사의 타이밍을 놓쳤다.

  빈 라면사발과 꼬치어묵, 어느새 비워진 소주 병 두 개가 순간 기억의 마지막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손님들이 테이블을 거의 채우고 있었고 시끄럽지 않을 정도의 대화소리와 좀 전까지 들리지 않았던 음악소리, 달그락 그릇소리가 들렸다. 내일 계획에 대해 생각했던 것까지는 알겠는데 어떤 구체적인 계획을 생각 중이었는지 기억나질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전히 분주한 사장님과 아까 가게로 들어왔던 두 번째 손님도 있었다. 그녀의 테이블에도 라면사발과 어묵 꼬치, 소주 두 병이 놓여 있었다. 잠시 그 장면이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렸다. 내가 취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찬물을 가져다 마셨다. 그리고 잔에 남아있던 식은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아직 남아있는 어묵을 보고 한 병을 더 마실까를 잠시 고민했다. 알딸딸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어쩌면 이 느낌을 지속시키고 싶었다. 꼬치 하나를 먹고 나서 소주를 더 주문했다.

  “사장님! 저 소주 한 병만 더.......”

  사장님은 테이블을 정리하시느라 바빴다. 난 다시 냉장고로 가 직접 꺼내왔다.

 

  “아이 참........ 괜찮아요? 정신 차려 봐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가슴이 조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온 몸에 힘이 빠졌다.

  “정신 차려요! 이것 좀....... 이것 좀 마셔 볼래요?”

  간신히 눈을 뜨니, 눈앞에 물병이 보였다. 낯익은 듯 낯 선 여자가 내게 물을 먹이려 하고 있었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지만 이미 내 몸은 내 정신을 따르지 못하고 있었다.

  “집이 근처에요? 근처인 건........ 맞죠? 어디에요? 아이 참........ 경찰을 불러야 하나.........”

  그녀가 내게 묻다가 혼잣말을 하다가 하며 망설이는 모습이 보였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내 몸은 여전히 반응하지 않는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니 문득 생각났다. 그녀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아......... 미안해요........ 그냥 가셔도 되는데......... 아........ 아니....... 저....... 저 좀 도와주세요. 집에 데려다 주세요. 저........ 내일 여행 가야 하는데.........’

  난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것마저 현실이 아닌 내 상상 속 대사임을 깨달았다. 그녀는 나를 알 리 없었다.

 

  눈을 떴다. 꿈을 꾼 것 같은데 기억은 나지 않고 잠을 잔 것이 아니라 어떤 마법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시계를 보았고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급히 생각해내려 했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어떤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내 모습과 날 깨우고 있던 누군가였다. 조금씩 현실감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난 마침내 오늘의 날짜와 요일을 생각해냈다.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함께 두통이 느껴졌다.

  몸을 일으켰다. 외투만 벗은 상태였지만 내 방, 재 이부자리가 맞았고 별다른 흔적도 없어 보였다. 한 가지, 아니, 꽤나 안타까운 건 시간이 이미 오후를 향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난 여행 준비를 서두를 수 없다는 것이다. 몸이 무거웠다. 겨우 이불 속을 빠져나와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셨지만 속이 쓰렸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만큼 힘이 빠졌다. 난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어젯밤 일을 생각하니 머리는 더욱 아파오고 쓰라린 후회와 자신에 대한 원망이 밀려온다. 난 맹렬히 춥고 쾌청한 이 한 겨울의 주말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다시 구상해야 한다. ‘망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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