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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땡글
작품등록일 : 2020.9.27

쓸쓸한 삶과 죽음을 대하는 고귀한 삶과 죽음에 대하여.

 
라면 한그릇
작성일 : 20-09-27 21:24     조회 : 366     추천 : 0     분량 : 5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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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보는 책도 공부하는 자신의 모습도 처음엔 뭔가 어색했지만 곧 적응이 되었다. 퇴근 후 몸이 피곤했지만 조금이라도 책을 들여다보고 자는 것이 오히려 개운하게 느껴졌다. 재미있기도 했다. 내년에 갈 수 있는 대학들을 알아보았다. 무언가 목표가 생겼다는 것이 위안이 되었다.

  2월 구정연휴가 지나고 나서 회사 분위기는 평정을 찾아갔다. 여기저기 쌓인 상품들과 박스들 말고는 늘 같이 일하던 직원들과 관리자들을 볼 새도 없었던 작업장에서 다시 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현상이 형, 태준씨, 현식씨도 여전했다. 그 외에도 익숙한 얼굴들은 그대로인 듯 보였으나 바쁜 와중에도 잠깐씩 얼굴을 내비쳤던 김 주임 형은 보이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출퇴근 시간에 마주치는 일은 좀처럼 없었지만 조원들의 일을 챙기러 잠깐씩 지나다니면서 인사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난 이 태풍 같은 시기가 지나고 나면 김 주임 형과 삼겹살에 소주 한 잔 먹고 싶었다. 그동안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내가 자동차 공부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하려고 했다.

  난 일을 마치고 락커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김 주임 형을 기다렸다. 직원들이 하나둘 들락거렸다. 김 주임 형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난 그를 기다리다가 거의 마지막으로 나가는 현상이 형을 불러 세웠다.

  “저, 저기......... 형!”

  “어?”

  락커룸을 막 나가려던 현상이 형은 놀라며 돌아보았다.

  “김 주임 형........ 혹시 보셨어요?”

  “김 주임 형?”

  “네........ 아, 김찬민 주임님.......”

  내 질문을 되묻는 그에게 난 그의 이름을 말해 주었다.

  “아......... 아니. 김 주임님 그만 두신 거 아냐? 그렇게 들은 것 같은데?”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가 말했다.

  “네? 그만 두다니요?”

  그의 대답이 생뚱맞게 들렸다.

  “나도 잘은 모르겠는데....... 그만 둔 건지, 해고된 건지........ 아무튼 그런 것 같아. 궁금하면 전화 한번 해봐. 난 좀 그래서....... 내일 보자.”

  그는 다소 난처해하는 표정이었다. 그가 락커룸을 나가고 혼자 남아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야간 근무자들이 하나둘 출근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들어오자 난 그제야 회사를 나섰다. 정문을 나오면서 김 주임 형에게 전화했다. 받지 않았다.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무언가 조급해지는 마음에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형, 어디세요? 오늘 회사 안 나오신 거예요? 문자 보시면 연락주세요.]

  버스를 타고 집까지 가는 동안 내 휴대폰은 묵묵부답이었다. 집 앞 정류장에 내려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정류장 벤치에 앉아 휴대폰을 들고 내내 그의 연락을 기다렸다. 연락은 오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전화를 해 보았다. 이번엔 전원이 꺼져 있다는 알림 음성이 들려왔다. 난 불안해졌다. 또다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형, 전화 주세요. 꼭요!]

  대답 없는 휴대폰을 손에 쥐고 벤치에서 일어났다. 몇 걸음 후 풍겨오는 익숙한 냄새에 심호흡을 했다. 난 ‘골목라면’으로 갔다.

  “어서 오세요.”

  “저, 소주 먼저 주세요.”

  사장님의 인사에 난 곧바로 술을 주문하며 늘 앉던 구석자리로 향했다. 자리에 앉아 손에 쥐어진 휴대폰만 바라보았다. 전화가 올 것 같다가도 오지 않을 것도 같았다. 만약 김 주임에게 연락이 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이렇게 불안해진 건지, 지금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맛있게 드세요.”

  혼란스러움을 비집고 사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소주 한 병과 해장라면 하나를 내 앞에 놓고 가셨다.

  “저, 저기! 사장님!”

  난 서둘러 뒤돌아서는 사장님을 불러 세웠다.

  “드세요. 서비습니다.”

  그는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말하며 주방으로 향하셨다.

  “저........ 저기......... 감사합니다.........”

  난 그의 뒷모습에 대고 급히 말하느라 버벅댔다. 내 인사를 그가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소주를 마셨다. 유독 쓰게 느껴지면서 얼굴이 찡그려졌다. 숨을 참고 라면 국물을 마셨다. 뜨거운 기운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빈속을 달래려 젓가락에 면발을 돌돌 말아 크게 한 입 넣었다. 이상했다. 소주도 국물도 면발도 입안에서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쓰고 뜨거웠으며 입 안 가득 씹는 일이 버겁기만 했다. 사장님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난 결국 뜨거운 해장라면에 쓰디쓴 소주 한 병을 다 비우지 못하고 난 집으로 돌아왔다. 김 주임 형에게는 끝내 전화가 오지 않았다.

  오히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얼마 전이 편했다.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굳이 가야할 방향을 제시해 주지 않아도 저절로 흘러가는 시간이 그저 고마웠다. 지각하지 않아도 감각들이 알아서 살아 움직이는 그런 생활이 좋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 분주함이 지금 내 앞에 펼쳐져 있는 ‘자동차산업과 미래’라는 책 앞에 날 데려다 놓았으니까. 아빠와의 추억에 웃음 짓게도 해 주었으니까.

  하루 종일 조용한 나의 휴대폰을 책 옆에 놓고 난 공부를 해 보려 했으나 책 속의 글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며칠 동안 김 주임 형과는 연락조차 안 되었고 현상이 형에게 들은 얘기가 여전히 내가 아는 전부였다. 회사 일이 다시 느리게 돌아기기 시작했지만 난 그걸 견디기가 힘들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김 주임을 모르던 입사 당시의 그 때로. 어차피 시간을 과거로 돌릴 수는 없듯, 한번 몸에 배었던 습관이나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감정들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나 난 시도해 보려 했다. 아빠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깟 일은 별 거 아니라고 여기고 난 엉뚱한 노력을 하기로 한 것이다.

 

  잡념을 떨치기 위한 육체 활동은 어느 때보다 빠르고 정확했다. 여느 때보다도 상품처리량이 증가하고 있었다.

  “승주씨! 잠깐........ 나 좀 따라와 봐요.”

  주어진 포장작업을 마무리 해가고 있을 때쯤 누군가 옆에 와서 조용히 말했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현상이 형이었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머뭇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당황스러움에 나도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그의 작업복 왼쪽 가슴에 새겨진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주임 안현상’

  난 속으로 놀랐지만 모른 척 하고 그를 따라갔다. 그는 날 상차 작업장으로 데려갔다.

  “과........ 과장님 지시야. 승주씨 작업이 일찍 끝나서....... 내일부턴 네 시에 여기서 상차 작업까지 마무리하고 퇴근 하라셔. 작업 끝나면 나한테 와서 보고하고 퇴근하면 돼.”

  그는 벽 쪽에 쌓여 있던 박스들을 만지작대며 설명했다. 내 얼굴을 보지 않고.

  “네...........”

  난 대답했다.

  “그래, 그럼......... 수고해.”

  그는 내 대답을 듣고 나서 서둘러 가버렸다. 난 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김 주임에 대해서 더 이상 궁금해 하지 않으려 했고 사실 궁금하지도 않았다. 현상이형의 이름 앞에 ‘주임’이라는 글자보다는 그가 나를 대하는 태도 때문에 난 다시 잡념에 사로잡혔다.

  어차피 여긴 회사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사회는 그랬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겪었던 일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학교와 군대, 그리고 직접 체험은 아니었지만 늘 사투를 벌여야만 했던 아빠의 생업현장. 알고 싶지도 않은 사회의 일들을 난 불행히도 살짝 맛보았다. 세상에 혼자 남은 내가 어쩔 수 없이 겪게 될 일들이기도 했다. 피할 생각은 없었으니 이 정도라면 얼마든지 괜찮았다. 그저 현상이 형의 떨리던 눈빛과 머뭇거리던 말투, 어색하게 움직이던 손짓이 마음에 걸릴 뿐이었다.

 

  “승주야! 야!”

  퇴근 길, 회사 후문을 빠져 나오는데 누군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내가 서 있던 길 왼쪽 끝에서 현상이 형이 날 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야....... 왜 후문으로....... 휴......... 정문에서 기다렸는데......... 하........”

  그는 숨을 헐떡이며 달리던 속도를 늦추고 말했다. 내가 굳이 후문으로 퇴근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정문 보다는 한적한 후문 쪽이 편했기 때문이었으나 굳이 그에게 설명하진 않았다.

  “하아........ 저....... 저기, 시간 되면 저녁이나 먹고 갈래?”

  그가 물었다.

  “............ 죄송해요. 할 일이 있어서........”

  잠시 생각하다가 난 형의 제안을 거절했다.

  “아......... 그래?”

  그는 뭔가 아쉬운 듯 보였지만 난 꾸벅 목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어....... 그럼, 버스정류장까지만 같이 걷자.”

  그는 뒤돌아선 내게 다가와 다시 내 옆에 나란히 섰다. 이번엔 거절하지 않았다.

  “저....... 저기........ 어떻게 된 거냐면.......”

  그는 얘기를 꺼내려고 했지만 왠지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어렵게 말을 꺼내는 그를 더 이상 거부할 수는 없었다.

  “정규직은 아니야. 아직도 그대로야....... 말만 주임이지, 월급도 거의 안 올랐고........ 정말이야.”

  그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변명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하고 있었다. 난 그냥 듣고만 있었다.

  “위에서 하는 일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나 있겠어? 김 주임 형은........ 거의 해고당한 거야. 해고지 뭐! 김 주임 형이 사직서를 내고 나가긴 했는데 이미 한 달 전에 비정규로 전환되고 연봉도 깎인 상태였대. 요즘 다들 그러잖아. 권고사직 뭐, 그런 건데 참, 말은........ 형도 사정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나봐. 사적인 이유까지는 내가 모르겠어. 김 주임님이랑 5조까지 총 네 명, 주임만 네 명이래. 당장 관리가 어려워지니까 나 같은 만만한 애들 월급 몇 만원 올려주고 주임 달아준 거, 그거야......... 씨발. 더러워서...........”

  그의 말투는 점점 거칠어졌다.

  “너도 어떻게 된 상황인지 궁금해 하는 거 같아서........ 네가 김 주임님이랑 친했던 거 같은데 왠지 미안하기도 하고.........”

  그의 말투가 다시 상냥해졌다.

  “......... 그래요. 저한테 미안해하실 필요는 없는데....... 저는 괜찮아요. 열심히 일만 할 수 있으면 되죠, 뭐.”

  내가 말했다.

  “그래? 그렇다면 뭐........ 일하다가 힘든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알았냐?”

  “네.”

  “어? 버스 온다! 먼저 갈게. 월요일에 보자!”

  멀리서 다가오는 버스를 발견하자 그는 내게 급히 인사하고 버스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난 생각했던 것 보다는 그가 착한 것 같기도 했지만 그의 이야기를 안 듣는 편이 더 나았을 뻔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버스를 타는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는 그렇게 발걸음 가볍게 버스에 올라탔고 그를 실은 버스는 곧 나를 지나친 후 멀어져갔다.

 

  다소 다른 분위기 속에서 보낸 일주일을 ‘골목라면’에서 마무리했다. 늘 똑같은 사장님의 목소리, 똑같은 국물 냄새, 똑같은 이곳 손님들, 그리고 늘 똑같은 나와 나의 저녁식사. 모든 게 그저 똑같기를 바라며 난 해장라면과 소주 한 병으로 언 몸을 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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