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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공포물
당신은 얼마나 많은 치킨을 먹어왔나
작가 : 아이윙
작품등록일 : 2020.8.29

월, 수, 금 연재. 주말 자유 연재
치킨에 관련된 미스테리를 파해치는 주인공이 광기에 빠져가는 모습을 서술한
코스믹 호러 장르의 제 첫 소설 입니다.
익숙한 소재에서 느껴지는 기이함과 괴이함, 점차 미쳐가는 주인공의 내면을 묘사 했습니다.
제 첫 작품 입니다. 모쪼록 즐겨 주십시오.

아 19금 까지는 아니라도 장르 특성상 약간의 무서운 부분은 등장합니다. 최대한 깔끔하게 서술 했으니,
무시무시한 장면도 포함해서 즐겨 주세요!!

 
XVII 광기의 끝무렵
작성일 : 20-09-27 15:45     조회 : 243     추천 : 0     분량 : 7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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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VII

  억지로 외면해왔던 진실이 최악의 순간에 고개를 쳐들어 자신의 목을 죄어올 때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야기 속 멋진 주인공이라면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정의, 사랑 같은 언령을 내뱉으며 불굴의 의지로 최후의 기지를 발휘해 멋지게 위기를 극복해내지 않을까. 하나같이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적당히 툴툴거리면서 슬쩍 자리를 내빼거나, 다른 방식으로 우회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들겠지. 허나 내게 들이닥치는 광기 어린 태고의 위협은 어물쩍 다른 활로를 찾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니고, 맹목적으로 기피해 왔던 진실이 토해내는 죽음이 서린 위협은 내 정신으로는 차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사납고 흉악했다. 북한산의 괴물들이라면 분명히 내게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숭고한 존재일 것이라고 맹신한, 벌레들에게서 도망치고자 필사적으로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 노력했던 괴물들의 폭력적인 본성이 눈앞에 당도하여 몽매한 내 정신을 향해 무지의 끝은 죽음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청구하고 있다. 맞서는 것도, 도망치는 것도 나란히 최악의 미래만을 가리키고 있기에 절망 속에 잠겨 익사하는 것만이 내게 주어진 유일한 운명이었다.

  우두커니 멈춰선 내 뒤통수 위로 빛나는 하늘은 희뻘겋게 흐물거리는 몽환의 색깔, 내 앞으로 펼쳐진 내리막길은 굶주린 벌레가 꿈틀거리는 역겨운 흙빛이다. 꿈속의 지옥과 육신의 종말이 흉악한 아가리를 쩌억 벌리고 나를 집어삼키려는 괴악한 기세가 백중세를 이뤄 불길한 경계를 이룬다. 부딪히는 광기 사이에서 현실에 섞이지 못하고 애매한 단층을 이루는 불안정한 틈새가 내가 숨 쉴 수 있는 최후의 공간, 가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마지막 찰나의 시간이었다. 언제나 주린 배를 만족시켜 왔던 광란의 치킨은 불경한 벌레들이 인간에게 던져주는 사료에 불과했다. 벌레의 손바닥 안에서 꼬리를 흔들며 맛나게 살덩이를 받아먹은 내 육신은 벌레들의 입맛에 맞게 재구축되어 역겨운 음식으로 전락하라는 형벌을 선고받았다. 산 위로는 날 버리고 떠난 부모가 지독하게 원시인처럼 울부짖고 있으며, 악몽을 빨아먹고 덩치를 불리는 괴물들에게 피를 조공하며 말라 죽어 가는 운명이 나를 옭아맬 준비를 하고 있다. 단지 배가 고파서 입안에서 황홀하게 달콤한 치킨을 사서 먹었을 뿐이고, 몰락한 인생이 피워내는 지옥 같은 무료함에 지쳐 살짝 틈새로 삐져나온 비밀을 향한 얄팍한 호기심을 숨기지 않았고, 죽은 줄 알았던 부모의 흔적을 따라 산 한번 올랐던 일이 얼마나 그릇된 행동이기에 이토록 가혹한 운명에 처했는지 인정할 수 없다. 평범한 소시민이 향유하던 사소한 일상의 변곡점이 몇 번의 악운과 겹쳐 눈덩이처럼 불어나 파멸적인 재앙으로 화해 삶의 마지막을 택하기를 종용한다.

  단지 벌레들이 새로운 피사체를 찾고 있었기에, 가오리 괴물들이 싱싱한 먹이를 찾고 있었기 때문에, 무력한 인간은 아무런 항변도 하지 못하고 끔찍한 처벌을 받아들이는 처지가 된다. 내가 편집증에 시달리지 않았더라면, 치킨집에서 일하지 않았더라면, 정상적인 부모 밑에서 자라났더라면, 치킨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평범한 도시 속에서 미적지근한 삶을 살아가는 정상인이었다면, 이 글을 읽게 될 당신이었다면 이런 해괴한 꼴은 당하지 않았을까? 기실 광기나 비밀과는 관련이 없는 인생을 보내왔다고 해도, 아무런 죄악도 저지르지 않은 성인군자라고 해도, 인간은 아직 죽지 않았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초월적인 존재들의 변덕에 따라 언제든지 불경한 지옥에 던져질 운명인 나약한 죄인이었음을 아프게 깨닫는다. 미천하고 어리석은 존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는 언제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담담히 수용해야만 하는 원죄를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리라. 이제 와서 거듭 후회해봐도 지나간 시간을 붙잡고 다시 써 내려갈 방도가 없다. 단지 기다랗게 자라난 풀숲에 숨어 부질없는 생을 조금이라도 연장하기 위한 최후의 저항을 시도한다.

 

  산 아래가 울리며 시끌시끌하다. 곧이어 협회 직원들이 광기에 찬 괴성을 내지르며 삼단봉 따위의 둔기를 들고 분노와 굶주림에 차올라 맹렬하게 산 위로 향한다. 동시에 산 정상에서 들려오는 퇴행한 원시적인 울음소리. 인간의 뼈와 돌로 된 조잡한 날붙이를 들고, 피골이 삐쩍 틀어마른 원시인 무리가 기괴한 걸음걸이로 산을 훑어 내려온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괴악한 적대심을 펼쳐 날뛰기 시작하는 두 무리. 인간의 군상끼리 만났으나 기본적인 도덕성이나 예의범절, 서로에 대한 이해나 타협을 위한 대화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구시대의 냉병기를 꼬나쥐고 서로를 향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분노하며 상대방을 부수기 위해 격렬하게 돌진한다.

  내가 비록 협회 3층 건물에서 괴악한 고서를 읽어 인류의 탄생이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인지 깨닫고, 그간의 추억들 속에 담겨있는 사람들이 보여준 도를 넘는 폭력성과 잔혹한 광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인간이라는 종 자체에 근원적인 불신을 가지게 되었다고는 해도, 분명 인간은 한낱 짐승과 궤를 달리하는 고결한 지성이나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영혼의 무고함을 완전히 버리진 않았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허나 광기에 찬 두 집단이 보이는 폭압적인 난투극은 인간의 이성의 덧없음을, 우리의 원초적인 본질이 한낱 미물들과 하등 다를 바 없음을 여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그래, 사람을 그저 먹거리로 치부한 벌레 놈들과 가오리 괴물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같은 인간인 내가 바라보기에도 눈앞에서 미쳐 날뛰는 영장류가 이리도 사악하고 미개한데, 나보다 우월한 지능을 가진 존재들이 보기에 인간은 한낱 미개한 짐승, 먹음직스럽게 살찐 식재료일 뿐이리라.

 

  우리나라가 개인이 총기류를 소지하는 일이 불법이라는 사실이 오늘만큼 다행스럽게 느껴진 적이 없다. 광적으로 서로를 죽이려고 날뛰는 놈들이 총까지 쏴대기 시작했다면 필시 오발 된 총알이 내가 힘없이 몸을 숨긴 수풀 따위를 헤치고 내 살점에 틀어박혔을 테니까. 멀쩡한 도시에서 평범한 사람들과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을 협회 직원이 시커멓게 육중한 경비 봉을 온 힘을 다해서 틀어쥐고 눈앞에 도사리고 있는 인간의 머리통을 깨부수기 위해 전력으로 휘두른다. 푸각 하고 힘없이 두개골이 깨지는 소리, 주위를 향해 결결이 조각나 비산하는 뼛조각과 일그러져 주름진 회백색으로 말랑거리는 두뇌 파편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잔득한 피 냄새가 울려 퍼지고 선명한 붉은색이 시야를 찔러 짐승들이 속에 감춰둔 원초적인 잔혹한 야성을 한층 더 뜨겁게 일깨운다. 옆자리 동료의 머리통이 박살 나는 걸 황망히 지켜보던 원시인은, 최후의 망설임을 포기하고 손에 쥔 뼈로 만든 작살을 힘껏 틀어쥔다. 질끈 감은 두 눈과 목구멍 속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새된 괴성. 힘차게 내지를 작살 끝에 사람의 부드러운 뱃가죽이 말캉 뚫리고, 거무죽죽하게 뒤틀린 몸통 속 안에서 꼬물꼬물 주름져 쌓여있는 내용물이 잔뜩 미끄러져 쏟아진다.

  처음에는 둘 다 단순히 도망친 나를 쫓으려는 게 목적이었을 터. 점차 눈앞에서 자신의 친구, 동료, 가족이 처음 보는 이방인의 손에 도륙 나고 터지며 부서지는 광경을 목격하고 나서부터는, 눈앞의 인간이 원래부터 내가 죽여야만 하는 숙적이라고 생각해 버리고 만다. 나를 찌르려 하고, 내 옆 사람을 부러뜨리려 하고, 최후에는 내가 죽여버린 사람이 원래는 아무런 죄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아 버리면 나약한 인간의 정신이 버틸 수 없음이라. 멀쩡한 인간이 피워내는 지옥이 이렇게 참혹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 나는 죄 많은 쓰레기를 마땅히 징벌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향해 최면을 건다. 그렇지 않고서 내가 저지른 살육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악행일 뿐이고, 단지 선량한 시민의 목숨을 빼앗는 잔혹한 원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라고 인정해 버리면 인간의 나약한 이성 따위는 한순간에 미쳐버릴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대 전장에서 쓰이는 발전된 총화기에 비해 평범한 사람들이 다급히 긁어모아 온 조잡한 냉병기의 살상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에 반해서 광기와 신념에 지배되어 완전히 이성의 끈을 놓쳐버리고 폭주하는 육신은 질기도록 끊이지 않는 생명력을 괴괴히 뽐내고 있었다. 투박하게 살을 뚫고 가까스로 뼈를 부수는 폭력. 여기저기 유혈이 흘러넘치고 고약하게 흩뿌려진 체액이 비릿하게 맛깔스러운 향기를 풍긴다. 서로가 흐르는 피를 향해 점차 흥분해가며 미쳐가지만, 눈앞의 사람은 잘 쓰러지지 않고 자신의 목숨 역시 쉬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장장 한 시간여가 흐를 동안 두 무리는 서로의 파멸을 지켜보기 위해 무기를 휘둘러댔다.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만 같던 싸움의 광기가 급격하게 무거워지는 공기와 함께 아무런 의미도 없이 막을 내린다.

  바닥에서부터 시커먼 벌레 무리가 차오른다. 흙, 돌, 나무할 것 없이 괴악하게 꿈틀거리는 지네며 개미의 껍질이 가득 차오르고, 낮게 깔린 하늘 아래 칠흑 같이 굶주린 날벌레 무리가 검은 구름처럼 보일 만큼 수없이 몰려와 기괴하게 붕붕거리는 날갯짓 소리를 흩뿌리며 반쯤 죽어가는 사람들을 향해 몰려들고 있다. 동시에 이미 빛깔을 구분하기 힘든 높은 몽환적인 하늘 끝에서부터 하늘하늘 출렁이는 가오리연 같은 모양새로 자그마하게 꾸물거리는 괴생명체들이 속속들이 모여들어 굶주린 촉수를 사람들을 향해 뽑아낸다. 아직까지도 질기게 숨을 붙어있는 인간들의 육신이 차근차근 소멸되어 벌레와 가오리들의 영양분으로 바뀔 무렵, 압도적으로 괴악한 존재감이 멀리서부터 무겁게 내 이성을 짓눌러온다.

  시커멓게 살찌운 커다란 벌레 무리가 번들번들 빛나는 겹눈과 날카롭게 오물거리는 턱주가리를 흔들고 단단한 벌레 다리를 놀리며 산 위를 향해 힘차게 행군하고 있다. 협회 지하에서 보았던 인간을 수족처럼 부리던 괴악한 벌레 놈들이 잔뜩 굶주린 광기를 숨기지도 않고 격노하고 있다. 약속이라도 한 듯 구름 너머 하늘에서부터 시커멓게 태양 빛을 가리는 거대한 괴물들이 펄렁 펄렁 날아왔다. 기괴하게 넓고 탄력 있는 몸체를 윤기가 흐르는 각양각색의 비늘이 빼곡히 뒤덮고 있고, 몸 구석마다 달린 빠안히 충혈된 눈깔로 연신 주위를 훑으며 광기 어린 굶주림으로 세상을 재단하고 있다. 내 마지막 운명은 벌레와 괴물의 싸움 결과 속에 온연히 달려있다. 치킨으로 튀겨지기 싫어서 괴악한 가오리를 응원해야 하나, 꿈속에 잠들며 피를 빨려 말라죽기 싫으면 벌레들의 편을 들어야 하나. 아니, 애초에 내가 왜 한쪽 편을 들어야 하지? 내가 죽는 운명을 무슨 권리로 놈들이 싸워서 결정하는 거지. 태고의 괴수들이 포효하는 분노 앞에 내 육신과 의지는 너무나도 나약하고 무력하다. 내 죽음의 결과에 대한 선택권마저 내가 지니고 있지 못하는 무력한 체념. 인간의 지성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은 눈앞의 장광을 나약하게 상처 입은 내 이성이 차마 받아들이지 못한다. 결국, 나는 그 자리에서 미쳐버렸다.

  풀숲에 숨어 엎드려 온몸을 애처롭게 떨어대고, 입에서는 가득 토해져 내는 침이 방울방울 흘러내려 땅을 적신다. 손발이 다스릴 수 없을 정도로 미친 듯이 떨려 날뛰고, 눈이 풀려 눈두덩이 속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것 같다. 귓속이 윙윙 울리고 머릿속도 덩달아 흐물흐물 녹아버려 명확히 주변 상황을 인지할 수 없다. 눈물이 쏟아져 내릴 듯 흘러넘쳐 눈이 뽑혀서 빠져나와 땅 위로 데굴데굴 떨어질 것만 같고, 온몸의 근육에서 힘이 빠져 대소변이 가리지 않고 하반신에서 고약한 악취를 풍기며 줄줄 새어 나왔다. 허나 이렇게 절절한 신체의 반응 따위는 부차적인 문제로 여길 만큼, 내 이성과 정신은 산산이 깨져 영혼 속까지 지워지지 않을 흉터를 남기고 말았다. 차라리 아무런 광경도 목격하지 않고 평안히 목숨을 끊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모든 행동과 생각도 텅 비어 미쳐버린 채 가만히 엎드려만 있는 나에게 돌연 사장이 성큼성큼 다가온다. 내 손에 억지로 구형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쥐여준다. ‘자네는 살아남아서 할 일이 있네. 지금부터 한 시도 눈을 떼지 말고, 이 카메라로 주위 모든 광경을 기록으로 남겨주게. 이 광기와 폭력, 죽음을 마지막까지 간직하는 게 자네에게 주어진 소명이라네.’ 한없이 진지한 말투로 마지막 말을 남기고는, 사장 역시 스치듯 내게서 멀어져갔다.

 

  그 뒤로는 망가져 버린 이성 때문에 주위 광경을 명확히 인식할 수 없었다. 고작 제정신을 날려 먹지 않고 유지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미친 듯이 카메라를 놀려 어떻게든 태고의 광기가 남긴 흔적을 담아내려 노력했다.

  벌레 무리 들은 인간의 머리와 벌레의 몸이 융합된 노예를 끌고 와 비정상적으로 커다랗게 자라난 노예의 두뇌에 기다랗게 흉악한 침을 박아 넣고는, 강제로 꿈의 세계를 펼쳐내 날아다니는 정신체들을 제어하려 안간힘을 썼다. 가오리들은 온 정신을 짜내 시커멓게 땅을 뒤엎은 벌레들을 몽환과 광기로 조종하려 시도한다. 정신이 침식된 벌레들은 주위 동족을 향해 날카로운 앞발과 턱주가리를 휘둘러 괴악한 체액을 터뜨리며 발광한다. 노예를 이용해 꿈의 세계에 숨은 가오리들을 현실 위상에 고정하는 데 성공했는지, 거대한 날개가 달린 벌레들이 푸르르 날아올라 꿈틀거리는 가오리 몸뚱아리에 들러붙어 힘차게 갉아먹기 시작했다. 가오리들 역시 몸체에서 돋아난 역겨운 촉수를 휘두르며 벌레들의 단단한 외골격을 감싸고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체액을 빨아먹기 시작했다.

  커다란 벌레가 악질적인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쓰러지고, 드넓은 가오리 몸체가 굉음을 내며 땅바닥에 추락한다. 처박힌 가오리의 발버둥을 향해 자그마한 벌레들이 달려들어 포식하고, 주위를 낮게 비행하던 조그만 가오리들이 벌레들 틈바구니로 날아들어 괴악한 악몽을 퍼뜨린다. 미친 듯이 서로를 향해 난동을 부리는 이성을 잃고 조종당하는 벌레를 향해, 멀쩡한 벌레들이 어떻게든 제압하려 날카로운 이빨을 박아넣는다. 아비규환으로 뒤섞이는 괴수의 싸움판. 분명히 인간보다 고등한 생명체라고는 하지만 악독하게 상대를 물어 죽이려는 지옥도는 방금 전 인간끼리의 지독한 폭력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그래, 결국은 너희도 한낱 짐승이구나. 이 우주에 멀쩡한 이성, 고결한 영혼을 지닌 생명체 따위 존재할 리 없다는 기괴한 확신. 내 폐 깊은 구석에서부터 이 수라장에 어울리지 않는 기괴한 광소가 끝없이 뽑혀 나온다.

 

  정신을 차려보니, 부릅뜬 두 눈에 틀어박히는 벌레의 사체나 가오리 몸뚱이는 하나도 없다. 그저 비썩 말라비틀어지고 군데군데 파먹힌 인간의 시신만이 역겨운 시취를 풍기며 즐비할 뿐. 내가 본 괴수의 난투극은 정녕 환상이었단 말인가? 이렇게 생생하게 내 눈꺼풀에 박혀 있는 광기와 폭력이 한낱 미치광이의 꿈이었단 말인가.

  허나 구형 폴라로이드 카메라에서 뽑혀 나온 사진들 속에 틀림없이 벌레와 가오리 괴물이 사투를 벌이는 장면이 생생히 들어차 있었다. 이제는 그 누구도, 내 기억도 믿을 수 없다. 도망치듯 시체들을 버려두고 북한산 등산로를 따라 달려 내려간다. 멀어져 가는 부패한 악취를 잊어버리며, 더는 광기와 비밀이 내 생을 위협하지 않기를 소망하며.

 
작가의 말
 

 결국 인간도 한낱 짐승, 인간을 지배하려는 고등 외계인도 한낱 짐승.

 서로 물어뜯고, 미워하고, 잡아먹는것이 살아있는 생명체의 본능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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