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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아이돌스토리
비꽃이 핀다
작가 : 지현시
작품등록일 : 2020.9.1

아이돌 연하남과의 간질간질 로맨스.

 
내가 남자니까!
작성일 : 20-09-26 16:31     조회 : 293     추천 : 0     분량 : 3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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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해줘 고맙단 말까진 안 바랐지만, 잔뜩 인상을 쓰고 어딘가 화가 난 듯 구는 건 이해할 수 없었다.

  건은 앞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는 이수를 말없이 응시했다.

  “하… 돌겠네, 진짜.”

  그녀가 유미에게 말했다.

  “언니, 얘 데리고 얼른 병원에 좀 가요.”

  “어? 어… 근데, 너도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등에….”

  찢어진 셔츠 사이로 드론에 긁힌 상처가 오롯이 드러나 있었다.

  “다쳤어요?”

  놀란 얼굴로 제 어깨 위에 손을 얹은 건을 그녀는 매서운 눈초리로 바라봤다.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건데.

  “하….”

  이수는 고개를 떨구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 * *

 

 

  “어떻게 오셨어요?”

  “네, 안녕하세요. 이 친구가 손을 좀 다쳐서… 치료 바로 될까요?”

  가까운 병원 응급실을 찾은 이수는 들어서자마자 건부터 챙겼다.

  당신도 다치지 않았느냐고, 한 마디 하고 싶었지만 또 화를 낼까 싶어 그러질 못했다.

  환자 아닌 제 보호자 역할에만 집중하는 이수를 보며 건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안내하는 간호사를 따라 두 사람은 응급실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근데, 보호자분도 다치신 거 아니에요? 괜찮아요?”

  말씀 한번 잘 하셨어요! 딱 그 표정으로 건이 간호사를 올려다봤다.

  “아, 저는 그냥 살짝 긁힌 거라….”

  “살짝은 무슨, 봉합해야 할 거 같은데? 그쵸, 선생님?”

  간호사는 그새 두 사람에게 온 의사에게 이수의 상처를 보여주었다.

  침대 위에 걸터앉아, 건은 미간을 찌푸리고 이수를 바라봤다.

  “가서 치료 받아요. 나 애 아니야.”

  “그래도….”

  “얼른.”

  굳은 얼굴의 건을 보니 더는 고집을 부리지도 못하겠다.

  “이쪽으로 오세요.”

  하는 수 없이, 이수는 자릴 떴다. 건을 향한 걱정 가득한 시선을 제일 마지막으로.

 

  “아!”

  따끔따끔한 바늘이 살갗을 뚫고 지나가는 느낌이 영 거북했다.

  “위에 걸쳐 입을 옷 있어요? 이러고 가긴 좀 그럴 거 같은데….”

  봉합을 마친 의사는 싹둑싹둑 잘라버린 이수의 너덜너덜한 옷가지를 보며 말했다.

  그때 점점 가까워지는 발걸음 소리 뒤로, 눈앞에 검은 티셔츠 하나가 불쑥 들어왔다.

  “이거 입어요.”

  티셔츠를 두 겹으로 입고 있던 건이 얼른 하날 벗어 갖다 준 것이었다.

  무심코 고개를 들었는데, 그가 오른손에 하얀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깁스 했어? 왜? 뼈에 문제 있는 거야? 의사 선생님이 뭐래, 어?”

  “하나씩 물어요, 숨 넘어가겠다.”

  “뭐랬냐고.”

  하, 짧게 숨을 토해내고 건은 표정을 부드럽게 바꾸며 이수의 물음에 답했다.

  “인대가 좀 다쳤대요. 2주 정도 하고 있음 된다니까, 너무 걱정 마요.”

  “2주? 2주면… 생방까지 겨우인데….”

  “피디님은요. 안 아파요? 몇 바늘이나 꿰맨 거야.”

  건의 피디 소리에, 곁에 있던 의료진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아직 데뷔도 하기 전이면서 얼굴은 팔려가지고, 벌써부터 알아보는 사람들이 제법이다.

  “너 가서 수납하고 처방전 받아 와.”

  이수는 건에게 들고 온 지갑을 건네며 말했다.

  그리고는 옷을 갈아입겠다며 커튼을 확 쳤다.

  건은 가려진 커튼 앞에 서 있다, 천천히 걸음을 돌렸다.

  <이건>, 그의 이름이 붙은 티셔츠. 그 옷자락을 집어 올린 이수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얼른 이 병원에서 나가야겠다. 무슨 얘깃거리가 만들어질지 모를 일이니.

 

 

  * * *

 

 

  병원 건물을 나와, 이수는 걸음을 빨리 해 후문으로 나갔다.

  택시를 타고 가려는지 도로 상황을 유심히 살폈다.

  “약부터 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일단 돌아가. 약국엔 나 혼자 갈 테니까.”

  뒤따라 오는 건을 쳐다보지도 않고 내는 퉁명스러운 목소리.

  더는 못 참아.

  건은 결국 한 손으로 이수를 확 잡아 돌려 세웠다.

  “뭐가 문제예요? 왜 이렇게 화가 난 거냐고.”

  입을 꾹 다물고 저를 보고만 있는 이수가 답답해, 그녈 잡은 손에 힘을 한번 꽉 주었다.

  “화난 거 아니야.”

  “그럼 왜 이러는데요. 꼭 화난 사람처럼.”

  “…속상해서 그래. 네가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게.”

  비로소 속엣말을 꺼내 놓는 이수를 잠자코 바라보고 서 있다.

  “너는! 하… 나를 왜 감싸, 네가. 다쳐서 어쩔 거냐고, 이제. 이래가지고 춤이나 제대로 출….”

  “먼저 그랬잖아요.”

  “…뭐?”

  “피디님이 먼저였다고요, 나 감싸준 거.”

  “당연하잖아. 피디가 연기자 챙기는 거.”

  “나도 당연해서 그랬어요. 내가 남자니까!”

  이수는 말문이 턱 막혔다.

  그런 그녀를 쓸쓸한 빛으로 잠시 쳐다보다 건은 도로변으로 다가섰다.

  “택시 내가 잡을게요.”

  멀어져 간 그의 뒷모습을 보며 이수는 혼란에 잠겼다.

  남자, 그 하나로 이 모든 일을 설명하려는 그가 싫다.

  그의 말에 필요 이상으로 동요하는 스스로가 너무도 싫다.

 

 

  * * *

 

 

  택시 안, 행선지를 알린 이후로 대화 한 마디 오가지 않았다.

  운전석 뒤에 앉은 이수는 창밖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그 옆의 건은 힘써 저를 외면하는 이수만 바라보고.

  과속 방지 턱이 있었는지 순간 차가 덜컹거렸다.

  저도 모르게 건은 이수의 등쪽으로 왼손을 뻗었다.

  상처가 닿아 아플까, 그 짧은 사이에도 이수 걱정을 한 모양이다.

  그녀는 말없이 건을 쳐다봤다. 금세 다시 돌려버렸지만.

  그런 이수의 행동에 건은 마음 한구석이 찌르르르 저려왔다.

  “기사님.”

  나지막한 목소리로 건은 기사를 불렀다.

  “저희 차 좀 세워 주세요.”

  “뭐? 왜.”

  그러자 이수가 곧바로 반응을 보였다.

  막무가내로 차를 세운 건이 택시비를 계산하고, 차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나와요.”

  “야.”

  숨을 길게 내쉬더니, 건은 다시 상체만 택시 안으로 구겨 넣어 이수의 팔을 잡아 끌었다.

  “말 더럽게 안 들어, 진짜.”

  “너! 얘가 왜 이래…!”

  기사와 건을 번갈아 쳐다보다, 저항 한번 제대로 해 보지 못하고 이수는 엉겁결에 택시에서 내렸다.

  내린 곳이 다행히도, 센터까지 걸어서 5분 거리였다.

  “뭐 하는 거야, 지금.”

  “기사님 눈치 보여서 나랑 한 마디도 안 섞으려고 하잖아요, 누가.”

  “뭐…?”

  “그러니까 좀 걷자고요. 같이.”

  건이 앞서 걷기 시작하고, 이수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터덜터덜, 그렇게 몇 걸음 걸어가다 나지막이 이수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다시는 그러지 마.”

  “뭘요.”

  “남자니 뭐니, 나 대신 다치고 그러지 말라고.”

  “싫은데.”

  “야, 이건!”

  그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이수 쪽으로 몸을 돌려 뒷걸음질을 치며 중얼거렸다.

  “언제부턴가… 그런 식으로 불러도 하나 무섭지가 않아.”

  그가 지그시 시선을 맞춰왔다.

  “분발해야겠다, 우리 피디님.”

  이 아이와 같이 있는 게 불편해진 이유를 어렴풋이 알 듯도 하다. 어렴풋이….

  “왜, 안 들어가요?”

  건물 입구에서 걸음을 멈춘 이수를, 건은 몇 계단 먼저 올라가다 뒤돌아봤다.

  “먼저 가. 가서 약 타올게.”

  이수는 처방전을 들어 보이며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건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막 몸을 앞으로 돌리려는데, “건아” 이수가 그를 불러 세웠다.

  “네?”

  “너 혹시….”

  물어봐서 맞다 그럼 어떡할 건데. 확인 같은 걸 해서 뭐 어쩔 건데.

  “아니야. 들어가.”

  이수가 먼저 뒤돌아 섰고.

  건은 쉬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묘한 여운을 남기고 간 이수의 뒷모습을 그렇게 잠시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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