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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아노케의 힘
작가 : 이타카
작품등록일 : 2020.9.11

악의(惡意)의 시대에 맞선 기석과 마리. 아노케의 힘으로 거대 악(惡)을 넘어설 수 있을까.

 
# 2부 악(惡)의 기운 – 11. 토큐
작성일 : 20-09-26 11:58     조회 : 251     추천 : 0     분량 : 5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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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산책을 하며, 주변의 죽은자들을 살폈다. 산자는 산자 나름대로 바쁘고, 죽은자도 죽은자 나름대로 할 일이 있어 보였다. 서로간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고 각자 세계의 규칙에 따라 살아가는 삶. 나는 그 둘 사이에 걸쳐 있었다. 바지주머니에서 진동이 왔다. 아침부터 누구?

 

 “아 이 선생님, 나 최 의원이에요.”

 

 “아.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시죠.”

 

 “내일 시간 내줄 수 있어요?”

 

 최 의원은 만나기 께름칙한 사람이었다. 주문진의 피 비린내나는 사건은 최 의원이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다. 하지만 김 의원의 사람인데. 관계를 나쁘게 할 수는 없는 거고.

 

 “무슨일이시죠?”

 

 “전화로 말하기는 그래요. 와보시면 알 겁니다.”

 

 무슨 음모일까. 전화로 말하기 어렵다고 하는 게 수상쩍었다.

 

 “제가 요즘 개인 사정 때문에 어디 가고 그러는 게..”

 

 “김 의원님의 관심이 높은 일입니다. 이 선생님이 직접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고. 꼭 나와주셨으면 좋겠네요.”

 

 최 의원은 의원회관에 자기 사무실에서 오후 4시에 보자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내 의사는 신경쓰지 않았다. 마리를 돌아다 봤다. 마리는 고개를 가로저였다. 하지만 김 의원과 같은 배를 탄 처지인데.

 

 최 의원 방에 들어서자, 소파에 앉아 있는 곱슬머리의 검은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아프리카 사람들이었다. 온몸이 경직됐다. 심박수는 올라가고. 지난번 최 의원과 연계된 아프리카 사람은 덴케라의 암살자와 오세이였다. 그럼 이들은..

 

 “아 어서오세요 이 선생님, 여기 두분은 가나 대사관에서 오신 분들입니다.”

 

 무의식 중에 마리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 눈에는 슬픔이 올라 있었다. 그때 거대한 체구의 아프리카인이 일어섰다. 그리고는 손을 내밀면서 악수를 청했다.

 

 “안녕하세요. 가나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토큐입니다.”

 

 엉겁결에 손을 마주 내밀고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UN 기구 이 기석입니다.”

 

 그제야 최 의원이 웃음을 지으며 말문을 열었다.

 

 “기석씨, 사전에 말하지 않고 이렇게 오라해서 미안해요. 기석씨도 알다시피 주문진 사건하고 나하고 연결되 있을 거라는 추측성 보도가 나왔잖아요. 그 기사를 보고 가나측에서 계속 의문을 제기해서 내가 좀 곤란해요. 그때 사망한 오세이씨가 가나에서 꽤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나 봐요.”

 

 가나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아산티 왕의 동생이라면, 충분히 외교적으로 문제가 될만한 일이었다. 아산티 왕의 입장에서 본다면 미칠 노릇이었을 테다. 딸이 죽은지 얼마 않되어 동생마저 죽었으니. 마리가 미끌어 지듯 다가와 속삭였다.

 

 “토큐는 내 연인이었던 사람에요. 아버지가 아노케의 힘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면 결혼할 사람이기도 했고요. 냉정한 듯 보이지만 불같은 성미니까 조심하세요.”

 

 생각이 엉클어졌다. 최 의원의 말은 무시했어야 했는데. 마리의 연인이었다면, 나야 별 생각 없겠지만, 토큐란 작자는 나에 대해 좋은 감정이 있기는 어려울 거였다. 토큐에게서 희미하게 일어나는 잿빛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알았다.

 

 최 의원을 흘끔 봤다. 저 사람은 얼마나 영어를 잘 할까. 아프리카식 영어도 알아 들을 수 있을까. 아프리카 영어의 발음은 영국식 엑센트에 아프리카 특유의 억양이 섞여 있어, 대부분 우리나라 사람은 알아 듣기 어렵다. 영국이라면 모르겠지만, 미국에서 유학 한 사람이라도. 말을 빨리하면 최 의원은 우리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나는 아프리카식 발음을 흉내내어 질문했다.

 

 “무슨 일로 저를 보자고 하셨지요? 토큐 씨.”

 

 “일단, 오세이 씨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서 이 기석씨와 만날 필요가 있다고 판단이 되었고요. 마리 공주의 죽음과도 연관이 된 것 같다는 정보도 있었습니다.”

 

 마리 공주의 죽음이라고 말할 때, 토큐의 몸에서는 검은 기운마저 일렁거렸다. 덩치 큰 아프리카 인에게서 퍼지는 검은 기운은 심리적인 압박을 주었다. 그러나 여기서 위축되면 계속 밀릴 가능성이 있었다.

 

 “내가 굳이 답해야 되나요?”

 

 “오세이 씨는 한국에 오기전에 당신에 관련된 내용을 나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마리공주와 결혼을 했고, 결혼식이 끝난 후 갑작스러운 습격으로 공주가 죽었고. 당신이 아마도 아노케의 힘을 받은 것 같다는 이야기들이였죠.”

 

 최 의원은 우리의 이야기를 알아 듣기위해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었다. 내가 아프리카 현장으로 가서 6개월만에 제대로 알아 듣게 된 아프리카 영어를 최 의원이 과연. 그래도 좀더 빠른 속도로 토큐와 대화를 하는 게 좋을 듯 싶었다.

 

 “뭐 다 알고 왔다니 할 말이 없군요. 어떻게 보면 무척이나 뻔뻔하고. 멀쩡한 사람을 납치하고, 무슨 아노케의 힘인지를 얻기 위해 유부남을 강제로 결혼시키고, 거기에 또 습격까지 받아 죽다 살아났어요. 그런 나에게 무엇을 물어본답니까?”

 

 “아. 잘잘못을 따지러 온게 아닙니다. 우리가 조사한 바에 의하며 이 모든 일은 오세이씨의 음모인 것 같다는 게 현재까지의 추리입니다. 주문진에서 덴케라 암살자와 같이 죽어 있다는 게 그 증거죠. 이 선생님도 엄연한 피해자입니다. 이 부분은 아산티 부족을 대표하여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공주의 유일한 남편인 것도 사실이죠.”

 

 짜증이 가슴에서부터 확 솟구쳤다. 뻔뻔한 족속들. 얼마전 마리와 다튔을 때의 감정이 되 살아났다. 누구 맘대로 남편인데. 당장에 고소라도 해서 응징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마리가 옆에 있으니 이런 말을 할 수도 없고. 온몸에서 활활 검은 불길을 일으키면서 밤낮으로 나를 괴롭히면 답이 없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왔다. 귓바퀴도 뜨뜻했다.

 

 “그래서요?”

 

 토큐의 몸에서 일어나는 잿빛은 가라 앉았다. 그의 목소리도 가라 앉았다.

 

 “결혼에 대해서 크게 의미를 둘 생각은 없습니다. 공주의 남편이란 것도요. 하지만 아노케의 힘을 이었다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게 서아프리카에서는 굉장한 정치적 이슈가 될 수 있거든요.”

 

 오세이와 마리공주로부터 주워 들은 내용이 있어 짐작은 갔지만, 내가 관여할 사항은 아니었다.

 

 “그래서요.”

 

 “우리 아산티는 조만간 아노케의 힘을 이은 사람이 출현한 사실을 공표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서아프리카의 주요 부족들이 요동을 할 것이고, 우리 아산티는 아노케의 힘을 다시 한번 보여줄 생각입니다.”

 

 “그럼 알려주세요. 나는 귀찮게 하지 말고요.”

 

 “예, 그러기 위해서 이 선생님을 만나야 했습니다. 들어 보셨을 겁니다. 황금스툴이라고요. 그 비밀을 밝혀주시고, 예전과 같은 힘을 찾게 도와주시면 간단함니다. 그리 되면 우리 아산티에서 황금스툴의 권위를 빌려 다른 부족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습니다.”

 

 황금스툴의 권위라. 아노케의 힘을 모두 파악하지 못했는데. 황금스툴이 튀어나왔다. 좋지 않았다. 하지만 궁금증도 일었다. 그게 정말 대단한 물건일까. 그렇다고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도 싫고.

 

 “나보러 가나까지 가란 말입니까?”

 

 “아니오. 가나 대사관에 잠시 방문해 주시면 됩니다.”

 

 뇌리에서 마리의 목소리가 울렸다. 황금스툴을 직접 볼 수 있다면 아노케의 힘을 좀 더 알 수 있을거란 내용이었다. 내가 귀찮은 표정을 짓자, 마리의 몸에서 검은 불꽃이 일렁거렸다. 자기 부족을 돕고 싶은 마음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 들어주면 더 귀찮아 질 것 같고.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토큐의 얼구레 화색이 돌고, 굳어있던 표정이 풀어졌다. 일이 쉽게 풀렸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마리가 없었으면 절대 안 갔을 일인데. 황 의원은 뜨문뜨문 이해되는 영어로 인해 눈이 반쯤 감겨 있었다. 졸고 있다고 말해도 될 지경으로. 토큐의 억양에 아프리카 사투리가 섞여 나왔다. 가나 출신과 같이 일해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도특한 발음의 영어.

 

 “혹시 시간이 된다면 지금 당장에 가시는 게 가능하시겠습니까?”

 

 “왜 그렇죠?”

 

 “이 일은 가능한 신속히 처리해야 되고, 그래야지 비밀이 새나갈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뺨이 근질거렸다. 보나마나 마리가 뚫어지게 내 입술을 쳐다볼 터였다. 어차피 할거 바로 끝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루 귀찮음만 참으면 한 동안 평안할 테니. 하지만 최 의원에게 이 일을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지금 말고요. 내가 의원실에 나간 다음 바로 연락 하죠. 그때 같이 가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최 의원의 코에서는 드르릉 소리가 작게 새어나오고 있었다. 눈은 반쯤 떠져 있는데. 나는 손을 뻗어 최 의원의 다리를 흔들었다.

 

 “의원님 일이 다 끝났습니다.”

 

 늘어져 있던 최 의원의 몸이 찰라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 이거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 영어가 익숙하지 않아서요.”

 

 토큐가 나간 뒤 최 의원의 태도가 급격히 변했다. 아랫사람을 바라 보는 눈초리와 아랫사람을 대하는 태도로. 그리고 몸에서는 파란색이 일렁거렸다.

 

 “같은 식구가 되었으니, 별말은 안하겠는데. 내가 주문진 일을 말끔하게 해결했다는 건 기억해 둬요. 꽤나 무리를 해서 말이지. 그리고 저 가나 사람을 당신한테 소개시키라는 건 김 의원님의 부탁이었으니까. 사실 이제는 검둥이를 보는 건 질색야. 머리 아픈일도 많은데 왜 내가 아프리카 일까지 신경을 써야돼. 그러니 이 선생이, 주변정리 잘하세요.”

 

 나는 최 의원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사무실에서 나와 토큐에게 연락을 했다. 나는 그의 차를 타고 가나대사관으로 향했다. 차는 토큐가 직접 운전하고 수행하는 사람은 없었다.

 

 “토큐씨, 황금스툴에 대해 내가 알아야 하는 게 있으면 미리 말씀해주시죠.”

 

 “황금스툴에 대해서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모두 갑작스러운 죽어서요.”

 

 “덴케라의 암살자들한테 말입니까?”

 

 “그것조차 잘 모릅니다. 그렇게 추측만 할 뿐. 다만 예로부터 전해지는 의식은 꼭 챙깁니다.”

 

 “뭡니까?”

 

 “황금스툴은 절대로 맨 땅에 닿아서는 안 되고요. 황금스툴에 앉을 때는 지지대나 지팡이에 의지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요?”

 

 “그게 다입니다.”

 

 “그런데 왜? 땅에 닿으면 안됩니까? 무슨 문제가 생기나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걸 지켜야 하는지도 의문이죠. 대략 100년전 영국군에서 활금스툴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몇 년간 천과 가죽으로 잘 싸서 땅에 파묻은 적이 있었거든요. 거기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기차 철로를 깔던 인부가 발견한 거에요. 땅에 막 굴린거죠. 그 이후에 아산티가 황금스툴을 되 찾았지만, 황금스툴에 대해 의심을 품는 사람이 생겨났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노케의 힘이 다 했다고도 하고요,”

 

 흙바닥에서 이리저리 뒹굴거렸을 스툴이라. 토큐 본인도 의심하는 말투인데. 예전의 권위를 되찾기는 어려울 듯 싶었다. 괜히 참견해 봉변을 당하는 건 아닌지.

 

 “흙에서 뒹 굴었던 황금스툴을 왜 나한테 보여주려는 겁니까.”

 

 “당신이 아노케의 힘을 이었다면, 황금스툴에 힘을 다시 불어넣어줄 수 있겠지요. 다행히 황금스툴의 힘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면, 아노케의 힘으로 그 능력을 보여줄 수도 있겠고.”

 

 “사실 난 아노케의 힘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진실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지금은 아노케의 전설에 기댈 누군가가 필요한거죠. 생각해 보세요. 이 선생님은 동양 신비한 나라에서 온 사람에요. 그리고 부두의 술법이 담긴 약을 마시고도 멀쩡하고. 아노케가 동양에서 환생하지 말란 법은 없죠. 이건 신의 계시와도 같은거죠. 아산티의 영광을 동양에서부터 가져온다. 게다가 한국은 기적을 일군 선진국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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