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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공포물
당신은 얼마나 많은 치킨을 먹어왔나
작가 : 아이윙
작품등록일 : 2020.8.29

월, 수, 금 연재. 주말 자유 연재
치킨에 관련된 미스테리를 파해치는 주인공이 광기에 빠져가는 모습을 서술한
코스믹 호러 장르의 제 첫 소설 입니다.
익숙한 소재에서 느껴지는 기이함과 괴이함, 점차 미쳐가는 주인공의 내면을 묘사 했습니다.
제 첫 작품 입니다. 모쪼록 즐겨 주십시오.

아 19금 까지는 아니라도 장르 특성상 약간의 무서운 부분은 등장합니다. 최대한 깔끔하게 서술 했으니,
무시무시한 장면도 포함해서 즐겨 주세요!!

 
XV나는, 어디로...
작성일 : 20-09-25 23:22     조회 : 274     추천 : 0     분량 : 7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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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V

  죽는 꿈을 꿔 본 적 있는가. 내 경우에는 높은 건물에서 추락해 김빠진 비명을 지르면서 바닥에 충돌하는 악몽을 통해 간접적으로 죽음이란 개념을 경험해 보았다. 한순간에 심장이 콱 움켜쥐는 듯 딱딱하게 멈춰버리고, 세상과의 연결이 급작스럽게 끊어져 나를 둘러싸던 모든 것이 공허해진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꿈속에 멍하니 갇혀있다가 황급히 잠에서 깨어나면 그제야 심장 박동이 느껴지기 시작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실제로 현실에서 죽는 체험을 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깊이 감사하며, 극한의 공포로 스트레스를 받아 발작하듯 겁에 질린 머리통을 익숙한 진정제의 몽롱함을 빌려 조심히 달랜다. 죽어버리는 악몽을 몇 차례 반복해 꾸다 보면 점차 삶이 끝나버리는 악독한 감응에도 무뎌져, 가끔 현실에서 죽을 만큼 무료할 때 신선한 자극을 찾아 죽는 꿈을 다시 한번 꾸기를 기대한 적도 많다.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현실에서 내 인간으로서의 자아는 분명히 죽어 있었다. 아무런 존재감을 함유하지 못하는 공허. 광적인 정신과 의사들의 기괴한 실험으로 상처 입고 부서져 주위의 세상과 소통하기를 포기하고 내 영혼은 미력하게 잠들어 있었다. 허나 극한의 공포스러운 체험을 눈두덩이로 목격해 버렸고, 굶주림에 깨어나 내 뱃속에서 기지개를 켜는 짐승의 살덩이가 함뿍 날뛰는 서슬에 덩달아서 부지불식간에 내 이성이 눈을 뜰 수 있었다. 다시 영혼이 들어차 몽롱하게 새로 되찾은 육신을 이끌고 방법조차 잊어버렸던 숨 쉬는 동작을 처음부터 연습하는 미숙한 감각이 영 익숙했다. 죽는 꿈이 던져주는 공포를 안간힘을 다해 다스려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로 사라지지 않았지만 어둠 속에서 죽어버린 육신의 심연 속에 갇혀있다 깨어난 이성이 다시 한번 제자리를 찾는 기묘한 감상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광기 어린 금단의 비밀이 내포한 폭력적인 위협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는 점, 악의적인 향취가 아른거리는 불경한 비밀을 중독되듯 기대하게 되어버렸다는 점에서 미루어 볼 때, 칠흑 같은 지하실에서 도망쳐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찬찬히 3층 서고를 향해가는 여정은 언제나 내 품에 곱게 간직하던 죽음의 형상과 놀랍게도 닮아있다.

  이전 페스티벌 때 3층 서고를 몰래 방문했을 때는 2층의 실험실에서 생경한 치킨 조리과정을 목격하고 온 직후라 황망히 흐물거리는 정신머리 통에 유심히 이 공간을 관찰하지는 못했다. 오래된 고서들을 보존할 목적으로 층 전체가 불길하게 싸늘했고 공기중에 산소 함량이 극단적으로 부족해서 아주 잠시만 긴장을 풀어도 정신을 잃어버릴 정도로 머릿속이 미친 듯이 어지러웠다. 흑요석 타일이 바닥재로 고풍스럽게 깔려있어 서늘하고 단단한 감각이 신발 아래로 토각 토각 피어오른다. 깊은 밤하늘 빛깔로 맨질맨질하게 닦여있는 바닥에 익숙하지 못한 내 얼굴이 비친다. 침침하게 찡그린 눈매로 타일 표면에 거울처럼 반사된 허상을 뚫어져라 쳐다보지만, 처음 보는 낯선 사내가 기괴하게 뒤틀린 비웃음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홀린 듯이 입가로 손을 가져다 대지만 분명히 내 입꼬리는 과묵하게 굳은 표정만을 지우고 있었다. 누가 몰래 내 뒤를 밟아 얼굴을 내밀고 있다 착각해 다급히 주먹 쥔 손을 내 뒤통수 너머로 거칠게 휘두르지만, 당연히 나를 미행하다 빼꼼 바닥에 얼굴을 비추는 사람 따위 없다. 홀린 듯 재차 바닥을 바라보니 뚱하게 겁에 질려있는 내 상판만이 눈앞에 선명하다. 하도 굶어서 눈앞이 침침해졌나 보다, 오늘의 기묘한 탈출에 성공하면 따끈한 치킨이나 먹으러 가야지 하고 무의식적으로 혼잣말하는 스스로를 향해 미친놈이라고 핀잔을 보내며 내 앞에 줄지어 놓여있는 서고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바닥에 잠자듯이 누워있는 흑요석 빛깔에 맞추었는지 서고를 구성하는 떡갈나무 역시 병적으로 시커멓게 옻칠 되어 있어 괴괴한 어둠을 뽐내며 한없이 높다랗게 직립해있다. 어림잡아 올려다보아도 족히 6~7m 이상은 돼 보임 직한 칠흑의 서고는, 훨씬 더 어두운 시절부터 기록되어왔을 금단의 고서를 책장 품속에 체액을 빨아먹으며 꿈틀거리는 기생충마냥 그득그득 삼키고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책장 하나당 작은 도서관 하나 정도는 너끈히 구성할 수 있는 규모의 고서들이 빼곡히 꽂혀 있으며, 무한히 펼쳐진 서고 안에서 잡초가 자라나는 듯한 기세로 무수히 많은 책장이 버티고 서서 폭압적인 위세를 뽐내고 있었다. 너무나 많이 쌓여있는 고서들이 뿜어내는 압도적인 무게감이, 인류의 발자취 따위가 하찮아 보일 만큼 기나긴 태고의 역사 속에서 수없이 많은 고대 지성체들이 세운 제국이 지구상에서 피어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해 왔다는 사실을 명백히 드러내고 있었다. 서고 중앙에 다른 책장들과는 달리 화려한 보석으로 장식된 치명적으로 눈부신 책장이 티 없이 맑은 광채를 자랑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책장 안에는 이제는 내 눈에도 익숙하게 읽혀 버리는 글씨, 벌레들이 즐겨 사용한 살아 움직여 꿈틀대는 착각이 드는 기묘한 글자로 자기네 문명의 일대기가 자랑스레 적혀있었다. 벌레들의 기록에 따르면 자신들은 지구의 옛 종족들에 비하면 비교적 최근인 1만 년 전 즈음에 처음 지구로 내려왔다. 태고의 생명을 잃고 멸망해가는 자신들의 모 항성계를 탈출해 아직까지도 고대의 맥동하는 야성과 원시의 생명력이 흘러넘치는 옛 지구로 이주해 왔다. 묘하게 인간들의 건국 신화와 비슷한 점이 많은, 선택받은 존재가 창조주의 계시를 받아 지구로 내려왔다는 선민사상 가득한 벌레 놈들의 역사서를 빙자한 자기 자랑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기로 했다. 내가 진실로 궁금한 건 벌레 놈들이 어떤 짓거리로 지구를 택해서 번성했냐 따위가 아니다. 너희들의 치부, 광기가 넘쳐 흐르는 금단의 비밀 앞에서 한낱 미개한 내 육신을 지켜낼 수 있는 한 줌의 희망을 찾아 점점 더 깊이, 금지된 책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또다시 사장 놈이 튀어나와 손목을 잡아채진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이전에 보았던 꿈틀거리는 금줄이 수놓아진 불길한 책장으로 향한다. 살아있는 생물처럼 맥동하는 금줄에 닿으면 필시 좋은 꼴은 못 볼 거라는 확신이 들어, 바닥에 벌레처럼 몸을 쭈그려 조심조심 기어서 책장으로 다가간다. 벌레의 치부를 들추기 위해 벌레의 꼬락서니를 따라 하는 모습이 지금 떠올려보니 퍽 역겨웠으나, 당시의 나는 이런 사소한 망념 따위 신경 쓰지 못할 만큼 죽음의 향연을 피하고자 절박하게 몸부림치고 있었다.

 

  예상대로 이 구역의 고서들은 벌레의 역사에 더해, 내 몽환적인 꿈속에서 보았던 가오리 모양의 괴물들에 관한 기록이 격렬한 증오를 가득 실어 서술되어 있었다. 인간의 과학 기술 따위 어린아이가 모래사장에서 토닥토닥 모래성을 짓는 것처럼 유치해 보일 만큼, 우주에서 온 벌레들은 이미 초고대의 시간부터 극한으로 발달한 찬란한 과학 문명을 뽐내고 있었다. 허나 지나치게 이성적인 사고방식과 세속주의가 극단적으로 점철된 사회구조로 인해 영혼이나 꿈에 관한 본질적인 연구는 발전시키지 못한 벌레들은, 간단하게 옛 지구의 문명을 무력으로 붕괴시킨 것에 비해 꿈과 환상의 영역을 삶의 터전으로 잡는 지구의 고대 괴물들을 제압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 실체화된 믿음을 먹고 살며, 지성체의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몽환 속에서 숫자를 불리는 가오리 때는 물리적인 현실의 세상을 지배한 벌레들의 사회에 너무나 간단히 침입했다. 아무런 정신적 수양이 없었던 벌레들의 이성은 손쉽게 갉아 먹혔고, 영원히 미쳐가며 발작해 죽어가는 벌레들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갈 무렵 벌레 놈들 역시 자신들의 최악의 숙적을 간접적으로나마 인식할 수 있었다. 자신들의 꿈 안에 기생하는 태곳적 존재가 벌레들이 자랑하는 발톱과 이빨로는 대적할 수 없는 종류의 정신체임을, 자신들이 정복해 왔던 문명과는 격을 달리하는 다른 차원을 지배하는 최악의 위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증오스러운 가오리와의 혈투와 함께, 비슷한 시기에 지구에 닥쳤던 대규모 환경변화-자전축의 뒤틀림과 운석 충돌 등-의 막심한 타격으로 인해 문명의 존폐 위기에까지 내몰린 벌레들은 자신들의 힘만으로 지구를 지배하기에 한계가 있음을 절실하게 깨달아 기존에 시도하지 않았던 색다른 활로를 모색했다. 양지의 세상에서 물러나 이면에서 지구 환경을 조작해 어둠 속에서 세계의 주인이 될 계획. 자신들이 직접 가오리 괴물을 상대할 수 없다면 녀석들이 살아 숨 쉬는 꿈속의 세계를 조종하면 될 일이었다. 완전히 자신들을 지상의 세계와 단절시킨 후, 소수의 관리자만 남아서 새로운 지성체를 자신들의 손으로 육성하는 계획에 착수했다. 적절한 짐승을 사육해서 가오리 놈들을 새로운 지성체의 꿈속에 기생시킨 후, 가오리를 머릿속에 가둔 짐승을 지배하면 괴물들 역시 조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획을 수립해, 수천 년간 시행착오를 거치며 커다란 뇌를 지닌 구렁이나 사족보행 하는 물고기 따위를 창조했다 멸종시키기를 반복했다. 원숭이에 벌레의 몸뚱이를 짜 맞추어 만든, 적당히 나약한 인체를 가졌지만 지능만큼은 쓰잘데기 없이 높아 꿈의 세계를 품어내기에 적합한, 이기적인 성품과 종잇장 같은 이성을 지녀 손쉽게 서로를 분열시켜 하나하나 세심하게 지배할 수 있고, 현실의 육체적 고통에 내성이 낮아 허황된 망상으로 도피해 가오리들의 먹잇감이 되기에 적합한 새로운 지성체인 인간을 창조해 낸 후 지상에 풀어놓았다. 인간을 직접적으로 관리하면 자칫 가오리들의 표적이 될 것을 우려해 미리 자신들의 열화된 형태의 노예, 우리가 흔히 보는 벌레들을 지상에 풀어놓아 수족처럼 부리는 철두철미함까지 자랑하며 놈들은 인류가 찬찬히 사회를 이루고 번성하는 모습을 음지에서 조종했다. 나를 비롯해 꿈과 정신에 예민해 이성에 틈이 벌어진 인간에게 가오리의 몽환이 들어차면, 흔히 말하는 정신병의 형태로 발현돼 쉽게 괴물들에게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트리거를 뇌 속에 집어넣는 세심함도 잊지 않았다.

  인간이 스스로가 자유롭고 현명하다는 착각에 적당히 현대 문명을 이룩하고, 인간 사회 전반에 정신병이 수두룩하게 퍼져 가오리가 성공적으로 인간의 꿈에 정착한 것을 확인한 벌레들은 서서히 인간을 완전히 지배하려는 은밀한 두 번째 계획을 시작했다. 말초적인 욕구와 원초적인 광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어리석은 인간들을 근본적으로 제어할 방법, 인간의 육신을 세포 하나부터 재조립해 자신들의 명을 따르는 인형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음식을 통해 간접적으로 자신들의 지배를 우리의 살점에 심어 넣고자 했다. 혐오스러운 육성 계획을 진행하기 위해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장 원하는 식재료, 미쳐 날뛰듯 인간의 육신 속으로 빨려 들여가 스스로의 육체를 구성하는 성분으로 가장 효율적으로 바뀔 수 있는 극상의 고기, 인간이 가장 맛있게 느끼고 가장 효과적으로 섭취할 수 있는 인육을 대량으로 인간에게 먹이기로 마음먹었다. 간단한 실험을 거쳐 지구상에 가장 흔하게 자라는 고기 중 하나인 닭과 인간의 육체를 합성하는 데 성공했고, 밀가루 범벅 기름 속에 던져넣어 치킨이라는 이름의 광적이고 사악한 음식을 암암리에 인간 사회에 유통하기 시작했다. 맛있게 바삭거리는 튀김옷 속에 참을 수 없이 야들야들 출렁거리는 살점, 뚝뚝 육즙이 흐르는 기름기에 환장하며 치킨을 처먹을수록 점차 벌레들에게 지배당하는 파멸적인 운명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어리석은 인간들을 깨달을 수 없다.

  허나 소수의 정신세계가 유난히 발달한 인간들이 자신들 혈액을 흐르는 낯선 짐승의 체액을 인식하고 말았다. 인간 사회가 벌레의 손아귀에 놀아나고 있다는 괴악한 진실을 깨달은 인간들은, 벌레들과 싸워왔던 고대의 존재들이 남긴 잊힌 옛 비밀을 절박하게 연구했다. 이윽고 태곳적 시절부터 살아와 오랜 기간 수도 없이 많은 종류의 지성체에 기생하며 생존해온, 벌레와 대적할 수 있는 정신 속의 괴물, 고대의 괴물인 가오리 놈들을 향해 귀의하기를 택했다. 인간이 놈들과 이렇게 빨리 접촉할 줄은 몰랐다, 순탄할 것만 같던 광기의 지배가 예상보다 더디게 흐르고 있어 벌레들이 한탄하는 기록 역시 찾아볼 수 있었다. 나의 부모님 역시 일찍이 치킨에 중독되어 벌레들에게 지배될 운명만을 허망하게 기다리고 있었으나, 깊은 산속 환상 속에 숨겨진 정신체들의 요람을 가까스로 찾아내 도망치듯 세상을 등지고 북한산에 존재하는 영혼의 관문으로 향했으리라.

 

  부모님의 나를 지키기 위해 잔혹한 감시자들로부터 안타깝게 도망쳤다는 비극의 플롯은 아니라 약간 실망했지만, 벌레들의 역겨운 굶주림에서 벗어날 방법을 얼추 찾은 것 같다. 북한산, 꿈속에서 가오리 동족들과 향했던 환상 속의 성지를 향해 도망친다. 정신에 기생하는 괴물 녀석들이 따로 인간의 육신에 물리적인 위해를 가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이니 그럭저럭 죽지 않고 공생할 수 있으리라. 최소한 닭고기로 변해 치킨으로 튀겨져 모르는 인간 놈들 아가리로 빨려 들어가는 식재료의 꼴로 전락하는 끔찍한 최후의 순간은 피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곳을 빠져나간 후의 목표를 고심하고 있는 사이, 서고 저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장의 목소리였다. 황급히 자세를 낮춰 몸을 숨겼다. 다행히 사장은 나를 찾아 이곳까지 온 건 아닌 듯했다. 협회 다른 간부와 언쟁을 하는 듯, 노기가 서린 날카로운 음색이 서고 벽에 튕기어 메아리쳐 거슬리게 내 고막으로 틀어박힌다.

  ‘내 직원을 멋대로 재료로 가져다 쓰다니, 약속이 다르지 않소!’ 놀랍게도 회장은 내 처우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다. 분명 녀석은 나를 이 광기의 구렁텅이에 빠트리는 게 목적이 아니었나? 왜 내가 치킨으로 생을 마감하는 자연스러운 운명에 대해 불만을 표현하는 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가오리 놈들과 접촉했다고 하더라도 좀 더 온건한 방법이 있었을 터. 애초에 협회의 진면모를 보여주고 우리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새로운 사명을 심어주기로 약속하지 않았소! 벌레들이랑 함께 일하다 보니 당신들 기억력이 벌레 대가리 수준으로 떨어졌나 보군!’ 분노 어린 독설을 날리는 사장의 모습은 너무나 자애롭고 따뜻한, 동네 사람들의 피폐한 삶을 지탱해주고 어려운 사람들을 돌봐주고 거액의 기부를 서슴없이 하는 평소의 모습 그대로였다. 단골손님들에게 한없이 관대하고, 부모님을 잃고 가난하게 사는 나에게 선뜻 일자리를 주며,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넉넉한 인심을 베풀고, 끝까지 나를 광적인 비밀로부터 지켜주려 애쓰고, 최후에는 차라리 협회로 끌어들여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려는 사장을 왜 편집증에 시달려 의심만 하고 말았는지 내 정신을 이해할 수 없다. ‘다시는, 내 허락 없이 내 식구들을 건드리지 마시오!’ 협회 직원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밖으로 나서는 회장의 뒷모습을 멍하니 지켜본다.

  나를 도와주던 모든 사람을 끝끝내 놓쳐버린 끝에 마주한 서슬 퍼렇게 두려운 외로움. 아무런 인간도 믿지 않았던 미쳐버린 낙오자만이 향유할 수 있는 뿌리 깊은 후회가 절망이라는 두 글자를 내 영혼에 낙인찍는다. 이제 뭘 믿어야 할지,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다. 그저 나 혼자 살아남기 위해, 북한산으로 향할 뿐.

 
작가의 말
 

 사실 사장의 태도는 지극히 정상적인 편이죠. 주인공이 편집증에 시달려 멋대로 의심하고 있을 뿐.

 

 아닐지도 몰라요? 그럼요. 이제 아무도 믿을 수 없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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