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과 사건, 지명, 인명은 모두 허구임을 밝힙니다.’
22화. 이'범' 새끼
“이런 시......바....”
사람이 너무 당황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최범진은 불구덩이가 빚어낸 이 붉은 ‘범’을 어떻게 해야 할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몇 초간 정지 상태였던 그의 뇌가 잠깐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린 뇌가 명령을 내린 것은 본능에 가까운 것 이었다.
“도...도망쳐!”
최범진과 그를 따라 왔던 3명의 초록색 방호복을 입은 전투 부대원이 뒤뚱뒤뚱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40kg에 달하는 방호복의 무게 탓에 걷는 것 조차 힘든 상황.
뒤에서 사람들을 부축하던 다른 처리반 대원들은 갑작스럽게 뛰어 가는 몇 사람을 보며 의아해 했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붉은 범’의 위용을 마주하자 그들 또한 하던 것을 멈추고 헐레벌떡 뛰기 시작했다.
몇몇은 뛰면서 방호복을 벗어 던졌다.
그렇게 사람들이 도망칠 동안 ‘붉은 범’ 주변의 불길은 모두 사그라 들었다.
불길을 자신의 피부, 몸에 간직한 범은 고개를 좌우로 젖혔다.
“크르르르르....”
낮은 울음을 낸 다음 그는 앞발을 천천히 내딪었다. 앞에 보이는 시야에선 초록색 동물 같은 것들이 뒤뚱 거리며 뛰고 있었다.
좋은 사냥감.
붉은 범은 본능이 시키는 대로 사냥을 시작했다.
범의 네 발이 힘차게 도약을 시작했다. 도약을 시작한 잔디밭의 흙이 무너져 내렸고 무너진 흙더미에선 연기가 피어 올랐다.
착지하는 발끝과 만나는 지면에선 충격파가 울려 퍼졌다.
쿵! 쿵! 쿵! 쿵! 쿵! 쿵!
처리반 대원들이 수 십 미터를 달려갔지만 범에게는 몇 초면 충분한 거리였다.
제일 가까운 거리의 한 명을 짓뭉갰다. 40kg에 달하는 보호구도 맹수의 거친 손아귀에서는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으...으아아아악!... 살...살려줘!!”
폭발물 처리반 대장 최범진의 목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대장에게서 비명소리를 들은 대원들은 더욱 공포에 질렸다.
붉은 범은 빠르지만 서두르지 않으며 한 명씩 사냥을 했다.
강력한 턱의 힘에 대원의 사지가 찢겨져 허공에 떠올랐고, 범의 화기(火氣)에 눌려 피부가 타 버린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을 사냥하던 범의 시야에 바리케이트를 친 다른 인간들이 보였다.
“저...저게 뭐야... 호랑이....?”
국회의사당의 잔디밭을 포위하고 있던 군인들이 웅성웅성 거렸다.
순식간에 수 십 명의 사람들을 물어뜯고 죽이는 것을 본 군인들의 머릿속에 공통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은..
... 공포 였다.
총구를 겨누고 있는 손이 덜덜 떨렸다.
붉은 범은 크게 포효 했다.
“으르렁 크와아아아아아악!!”
그 포효와 함께 엄청난 바람과 충격파가 바리케이드 최전선 앞에 들이 닥쳤다.
군인들은 바람과 충격파를 이겨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몇몇은 몸을 수그려야 했고, 바리케이트 뒤로 숨었다.
그때 다시 일정한 박자의 소리가 그들의 귓가에 들렸다.
쿵..쿵....쿵..쿵..
범이 대지를 박차고 바리케이트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최전선의 지휘관은 달려오는 호랑이를 보며 대원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정신 차려 이 새끼들아! 전열 맞추고 발포해! 어서!!”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많은 총탄이 범에게 쏟아졌으나 범에게 만들어진 푸른 보호막에 의해 모두 막혔다.
펑 펑펑펑펑펑펑펑펑펑펑펑펑펑펑펑!!
보호막은 이범이 인간이었을 때보다 더 강하고 두꺼워 보였다.
범은 그 총들에 아랑곳 하지 않고 더 속도를 높였다.
쿵쿵..쿵쿵..
다급해진 지휘관이 명령을 내렸다.
“수...수류탄 투척해! 수류탄 투척!”
명령에 따라 수 십개 의 수류탄들이 하늘에 던져졌다.
수류탄들이 붉은 범에게 날라들었다.
쾅! 쾅 콰콰앙! 펑퍼퍼퍼펑 펑펑펑! 펑 펑!! 퍼퍼퍼퍼퍼펑!
고막을 찢을 듯한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고, 앞을 한 치도 구분할 수 없는 연기와 흙들이 튀겨 있었다.
‘해치웠나?’
지휘관은 고개를 숙였다가 연기 쪽을 바라보았다.
뒤의 사병들도 함께 고개를 들었다.
서서히 바람이 불면서 연기가 걷어져 나갔다.
바람이 연기를 걷어 가면서 먼저 보이는 것은 새빨간 맹수의 레이져 같은 빨간 눈이었다.
“이..이런...씨발... 저건 도대체...”
지휘관의 말은 다 끝마칠 수가 없었다.
맹수의 입에서 나온 거대한 불구덩이가 뿜어져 나와 지휘관에게 발사 되었다
불구덩이는 일직선으로 날아와 지휘관의 몸 전체를 태워 버렸다.
살수차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범에게서 나온 화염포가 바리케이드를 모조리 태웠다.
“으아아아아악!....”
“으아...뜨거!!!!!”
“살....살려줘!!!!...”
솟구치는 불길
거대한 연기
사람들의 비명소리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오직 보이는 것은 붉게 빛나고 있는 맹수의 붉은 눈 뿐이었다.
***
“여기는 바..바리케이트 최..전선...모두 초토화 되었다..지원...지원 바란.. 으아아아아아악!!!”
최전선에서 지원하고 있던 통신병의 목소리가 단말마에 끊어졌다.
“뭐야? 최전방에서부터 교신이 전부 끊어져? 빨리 상황 파악해서 보고해!”
육군참모총장 황서환은 지휘실에서 밑의 지휘관들을 닦달했다.
그때 한 명의 군인 하나가 급하게 달려와 알렸다.
“참모총장님 지금 즉시 화면을....”
부하 군인 한 명이 즉시 화면을 틀었다.
화면에서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붉은 호랑이는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물어뜯고 찢고 있었다.
입에서는 무지막지한 불이 뿜어져 나와 모든 것을 태우고 있었고, 아비규환이 된 현장의 모습이 흘러나왔다.
마지막으로 카메라의 화면은 붉은 두 눈의 맹수에게 초점이 맞춰졌다.
붉은 범은 카메라 화면을 향해 그 큰 입을 벌렸다.
커다란 불길이 치솟으면서 화면은 치직-거리며 꺼졌다.
지휘관들 아무도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참모총장 또한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30년 넘게 군 생활을 했지만 이와 같은 공포는 처음 느껴보기 때문이었다.
얼마간의 침묵 뒤 참모총장은 어렵게 입을 뗐다.
“……전차, 헬기, 가능한 모든 병력, 기기 다 투입해..”
“예?”
“못 들었어?! 지금 여의도 뚫리면 대한민국 국민 전부 죽는다. 가까운 병력부터 모두 이쪽으로 투입해!.”
“예! 알겠습니다!”
잠깐 머뭇거리던 지휘관들이 정신이 돌아온 듯 명령을 하달하러 나갔다.
그 다음 그는 수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단도직입적으로 서늘한 말을 했다.
“……대통령님 현무4를 여의도에 쏴야할 수도 있습니다.”
참모총장은 전략을 상세히 대통령에게 이야기했다.
가용가능한 모든 자원 총동원.
공군과 협조해 F-35, F-22 등 전력 투입, 이마저도 여의치 않을 경우 미사일을 다 쏴야 한다.
만약에..상상하기도 싫지만..
이 모든 작전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대한민국은 사람이 살 수 없는 폐허가 될 수도 있다. 는 말까지 덧붙였다.
대통령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 잠깐 동안의 침묵 후 대답했다.
“…알겠네... 모든 자원을 총 투입해서라도 서울에서 막아 보세..”
***
서울에는 소개령이 내려졌다. 언론사의 화면을 통해 나오는 붉은 범의 위용을 확인한 사람들은 앞 다투어 서울을 나가려 했다.
동시에 군인, 전차 들이 여의도를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지방의 하늘에선 전투기, 헬기들이 항공의 공기를 찢으며 서울로 날아가고 있었다.
간간히 들리는 폭팔음,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이거야 말로 진짜 개죽음 아니냐? 국회의사당 주변에서 먼저 있었던 군인들 전부 그냥 다 죽어버렸다면서..”
완전 군장을 한 채 육공트럭에 몸을 실은 수도방위사령부 아래 있는 52보병대 군인 한 명이 조용하게 말을 했다.
“그냥 튀는 게 낫지 않을까? 지금 앞으로 가면 타서 죽는 것은 명확하지만, 튀면 진짜 운 나쁘면 죽는 거고, 아니면 영창 가는 거니 살긴 살 수 있잖아..”
“그럴까.. 우린 시간 벌기용이야 시발..그냥 고기 방패라고...”
병사들의 사기가 바닥을 치고 있었다. 전투에서 전력이 비슷하거나 약간 차이가 난다면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 시키거나 희망을 보여 줄 수 있다.
하지만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선 모두가 의욕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라고 하면 계란의 입장에서 누가 앞서 나가 깨지려 하겠는가.
들려오는 절망적인 소리, 언론의 화면을 통해 전해지는 붉은 범의 파괴적인 위용은 병사들의 사기를 꺾기에 충분했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목숨이 파리처럼 없어지는 것에 그들이 ‘탈영’을 생각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트럭 안에서 웅성대며 도망치는 것에 대한 공포가 커질 때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군인 한명이 눈을 뜨지도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저 범 새끼 지금 여기서 막지 못하면 대한민국에 누가 어디에 있든지 죽는 것은 내일 죽냐, 한 달 뒤에 죽냐 차이만 있지 다 똑같아.. 그리고 우리 가족들 모두..”
뼈를 때리는 그 팩트에 웅성대던 트럭 안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그들이 여기서 범을 잡지 못한다면 서울을 넘어 경기 등 모든 곳으로 가서 국토를 유린 할 것이었고, 그렇게 된다면 안전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탈영을 운운하던 군인들은 입을 닫았다.
트럭은 오직 엔진소리와, 덜컹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그렇게 침묵과, 두려움을 가득 실은 군용 트럭 수 백 대 들이 서울 여의도를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
“후..후퇴! 여의도 밖으로 후퇴 한다!”
개인 화기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 것을 본 군인의 사기는 이미 다 떨어졌다.
도망치며 뒤로 총들을 난사 했지만 범의 보호막을 뚫지는 못했다.
총구의 소리가 범을 더 자극했다. 1차 저지선은 모두 뚫려서 와해되어 붕괴 되었고 2차 저지선인 9호선 국회의사당 역까지 후퇴하고 있었다.
그때 군인들 위로 거대한 굉음이 몰려왔다.
[후두두두두두...]
“아..아파치 헬기다!”
“와... 다행이다!!”
“다 날려버려 시..시발!!”
한 군인이 하늘을 향해 소리치자 다른 군인들은 안심이 된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한 대가 동시에 16대의 전차를 파괴할 수 있다는 공격력.
18대가 모이면 1개의 기갑여단을 파괴시킬 수 있다는 위력.
아파치 헬기 3대가 빌딩사이를 가로 지르며 날아오고 있었다.
이내 더 나아가는 것을 멈추고 각자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빌딩 사이에서 대기 했다.
헬기는 붉은 범과 대치하고 있었다. 범은 하늘을 나는 헬기가 신기 한 듯 더 이상 사람 좇는 것을 그만 둔 채 하늘에 뜬 그 거대한 기계를 바라보았다.
더 가까이 보려는 듯 주인 없이 문만 열려있는 차를 즈려밟으며 올라갔다.
아파치 헬기가 붉은 범의 시선을 끄는 동안 군인들은 무사히 2차 저지선 밖으로 후퇴할 수 있었다.
헬기가 떠있는 몇 초가 아주 길게 느껴지는 순간.
아파치 헬기 조종사는 상관에게 현재 상황을 전달했고, 상부에서는 바로 명령이 내려 왔다.
[발포, 사살]
발포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그는 지체 없이 아파치 헬기의 공격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지옥에나 떨어져라 이 ‘범’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