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상하지 않았어? 라파엘이 그랬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었나? 난 그걸 본 적도 없었는데, 단지 신의 명령 한 마디에 라파엘이 끌려가고 재판 과정도 엉망이었다는 거 너도 알잖아.”

　가브리엘의 그 말에 미카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가브리엘을 조용히 응시할 뿐이었다. 가브리엘도 미카엘의 그런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맞받아쳤다.

　미카엘의 얼굴에 서서히 평정이 깨지기 시작했다. 미카엘이 가브리엘에게 쏘아붙였다.

　“신께서 뜻이 있으시겠지.”

　“하……!”

　가브리엘은 미카엘이 뭐라고 말하는지나 보자, 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미카엘의 대답을 듣고는 곧바로 비웃음을 내뱉었다.

　“그놈의 신의 뜻. 미카엘 너는 얼굴도 모르는 그분께 메시지로만 명령을 받는데도 정말 명령을 잘 따른다. 나는 이유도 모르겠는 명령을 단지 신의 뜻이라는 이유로 행하는데 질렸어.”

　그 말을 듣자마자 미카엘의 두 눈에 분노가 일었다. 미카엘이 주먹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진심으로 분노를 누르지 못하는 얼굴을 한 채로 가브리엘에게 말했다.

　“가브리엘, 너도 타락해서 악마로 추락하고 싶은 거야?”

　그 말을 듣자마자 가브리엘의 눈빛이 마치 야생 짐승의 것처럼 바뀌었다. 그가 이를 악물며 미카엘의 멱살을 거칠게 잡고 그녀를 밀어붙였다. 곧이어 미카엘의 등이 책장에 부딪혔지만, 그녀는 시리도록 차갑게 가브리엘을 응시했다. 가브리엘만이 눈에서 불꽃이 튀는 것 같은 적의를 보이며 낮게 으르렁댔다.

　“전에 경고했지, 쓸데없는 소리 하면 그땐 나도 참고만 있지 않는다고.”

　“놔.”

　“하…….”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미카엘의 태도에 가브리엘은 질린다는 얼굴로 손을 놓았다. 미카엘이 구겨진 옷깃 부분을 털어내며 정리했다. 그녀가 말했다.

　“내가 뭘 틀린 말을 했지? 신을 불신하는 자는, 악마가 되는 타락의 벌을 받는다. 그걸 특히 네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

　“물론 네 말대로 나도 라파엘이 형벌을 받을 때, 비리의 정확한 증거는 보지 못했어. 하지만 신은 모든 걸 보는 분이잖아. 그분이 그러셨다면 그게 맞겠지.”

　가브리엘은 더는 미카엘과는 말이 통하지 않을 걸 예상하고 뒤를 돌았다. 떠나려고 하는 가브리엘의 등에다 대고 미카엘이 계속해서 말했다.

　“라파엘은 질문이 많은 천사였지. 불신의 시작은 의심이잖아. 어쩌면 그는 그거에 대한 벌까지 받는 거일지도 몰라.”

　문을 닫고 나가기 전, 가브리엘이 뒤를 돌아 미카엘을 똑바로 바라보며 차갑게 대꾸했다.

　“넌 정말 단순해서 모든 게 쉽겠군.”

　쾅-

　잠시 멍하니 서 있던 미카엘은 헝클어진 자신의 머리칼을 다시 깔끔하게 묶기 시작했다. 흐트러짐이 조금도 없이 완벽한 모습으로 돌아온 그녀는 허공에 대고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이게 믿음이라는 거다, 대천사답지 못한 놈.”

　*

　그렇게 다툰 뒤로, 함께 일을 하는 동안에는 엘리야는 철저히 키리안을 파트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대했다. 숙소 안에서는 엘리야는 키리안에게 절대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침묵에 휩싸인 숙소 안에서 키리안은 데자뷰를 느껴야 했다.

　지금 이 상황은 파트너로 함께하던 초반에, 엘리야가 키리안에게 경계를 풀지 않던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키리안은 자신이 최근에 비비안에게 자신만만하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요즘은 저희 관계가 많이 좋아졌다고 느끼는 중이에요. 역시 저희가 헬퍼로 엮인 이상 좋은 관계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고.…….’

　키리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렵게 신뢰를 쌓아서 이제야 헬퍼다운 관계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신이 그동안 한 실수로 엘리야와의 신뢰가 무너진 기분이었다. 키리안은 자신에게 냉랭하게 대하는 엘리야를 적응하기 어려웠다.

　처음에 키리안이 엘리야가 자신에게 냉랭해도 ‘저 선배는 성격이 원래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키리안은 이제는 알았다. 그녀가 얼마나 섬세하게 다른 이를 챙길 줄 알고, 다정한 미소를 지을 줄 아는지.

　그는 엘리야가 자신에게 보여주곤 했던 미소가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키리안은 곧바로 엘리야가 요즘 자신에게 보여주는 무표정을 떠올렸다. 그 순간 그는 가슴 한쪽이 뻐근하게 아파오는 걸 느꼈다. 그 통증을 느낀 키리안은 진지하게 고민하는 얼굴이 되었다.

　‘내가 지금 엘리야 선배와 거리가 멀어진 게 아쉬운 건, 헬퍼라는 동료로서 슬픈 건가?’

　‘그게 아니면…….’

　이때 키리안은 엘리야가 자신에게 보여주었던 여러 모습을 떠올렸다. 자신을 공격해오는 무소속 악마를 능숙하게 상대하던 엘리야,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총알을 검으로 다 막아내던 엘리야의 그 뒷모습을. 마냥 강한 선배라고만 생각했는데 엘리야는 아픈 상처를 혼자 끌어안고 있는 악마이기도 했다.

　키리안은 흑마법에 걸려 악몽을 헤매던 엘리야의 손을 잡아줬던 일도 떠올렸다. 악몽을 꾸면서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보며, 그는 속으로 엘리야가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랐다.

　‘키리안 네가 내 헬퍼라서 다행이야.’

　눈물 고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하던 엘리야를 떠올린 키리안이 얼굴을 붉혔다.

　뒤이어 그녀가 어색한 솜씨로 요리를 열심히 만들던 모습도. 자신에게 넥타이를 똑바로 매주던 모습, 콧잔등에 상처가 났다며 자신의 얼굴을 걱정 어린 시선으로 살펴주던 모습까지 떠올랐다. 이 과거 회상들이 끝나자 키리안은 속으로 생각했다.

　‘나…… 설마, 엘리야 선배를…….’

　평소 대리석처럼 흰 그의 얼굴은 지금까지 붉은색이었다. 키리안이 두 손에 자신의 얼굴을 묻고 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엘리야 선배를 단단히 서운하게 한 것 같은데.”

　*

　둘이 여전히 숙소에서는 말을 하지 않는 날이 지속될 때였다. 엘리야와 키리안에게 미카엘의 호출이 떨어졌다. 자신의 집무실로 곧바로 온 그들에게 미카엘이 보고서를 건넸다. 보고서를 읽은 엘리야와 키리안은 충격에 빠진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두 번째 천사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게다가 시신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는 것까지 전의 사건의 범행방식과 같았다. 안색이 하얗게 질린 둘을 향해 미카엘이 말했다.

　“천사를 대상으로 한 살인이 두 번째로 일어났어.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범행 수법이 같은 걸 보니 범인이 같을 가능성이 커.”

　“두 번째 천사 살인이라면……!”

　“그럼 이게 연쇄 살인일 가능성이 있다는 건가요?”

　동시에 말한 키리안과 엘리야는, 잠시 서로를 보았다가 금방 다른 방향으로 각자 시선을 돌렸다. 그런 둘을 보면서 미카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그녀는 호기심을 누르곤 금방 냉정한 얼굴로 돌아와 말했다.

　“첫 번째 살인은 피해자에 대한 정보가 거의 극비 처리가 되어 있었지. 그래도 이번 두 번째 피해자는 달라. 그러니 수사하는데 좀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야.”

　엘리야는 이 중대한 사건이 왜 수사대가 아닌 자신들에게 맡겨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등을 돌리는 미카엘을 향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이게 만약 같은 범인이고 연쇄살인이라면, 저희가 수사할 사건이 아닌 것 같습니다. 수사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그 말을 듣자마자 미카엘이 피곤하다는 얼굴로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녀가 손을 들어 엘리야가 더 말하려 하는 걸 저지했다.

　“그럴 수 있다면 진작에 그렇게 했겠지. 그러지 못하는 내부 사정이 있다.”

　답답하다는 얼굴로 이번엔 키리안이 말했다.

　“그 사정이 뭔지 저희는 알 수 없는 건가요?”

　미카엘도 더 이상 숨기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한숨을 쉰 뒤 입을 열었다.

　“……수사대에게 이 일을 맡기지 말라는 것이 신의 명령이었다.”

　‘신의 뜻이라고?’

　키리안과 엘리야는 속으로 동시에 생각했다. 여전히 의구심이 가득한 엘리야와 키리안의 눈빛을 보고 미카엘이 서둘러 지령을 마무리했다.

　“아무튼 두 번째 피해자에 대한 정보는 메신저로 다 보내놓을 거야. 이번에도 부탁할게.”

　신의 뜻이라는 말에 엘리야와 키리안은 더 반박하지 못하고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

　 미카엘의 말대로 모든 게 비밀로 싸여 있던 첫 번째 피해자와 달리, 두 번째 피해자는 키리안과 엘리야에게 신상 정보가 꽤 자세히 주어졌다.

　피해자는 키리안도 알고 있는 천사였다. 그는 이 회사에서 꽤 권위 있는 재판장을 맡고 있는 천사였다. 피해자를 알고 있는 건 키리안 뿐만이 아니었다. 수사를 하면서 이 천사가 누군지 파악하게 된 엘리야는 속으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천사……! 라파엘 선배가 받은 재판을 담당한 판사였잖아.’

　엘리야는 라파엘이 헬레네에게 행운을 몰아줬다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아야 했던 일을 떠올렸다. 재판은 회사의 지하에서 비공개로 이루어져 엘리야는 재판을 방청할 수 없었다. 그저 건너들은 소식으로는, 재판이 몇 분도 안 되어서 진행되었다는 것이었다.

　라파엘이 시간의 형벌에 갇히는 판결을 받은 건,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천사가 내린 판결이었다. 그 순간, 엘리야가 의아하게 여기던 일들이 한꺼번에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악마 부서에서 실적 1위인 자신이 헬레네를 조회할 수 없는 것.

　첫 번째 피해자인 천사의 악마 파트너와 그 천사가 담당한 인간이 누구인지 극비였던 것.

　이 사건에 수사대가 관여하면 안 된다는 것.

　그게 신의 뜻이라는 것.

　엘리야는 라파엘 선배가 갑자기 수사대에게 끌려갈 때도, 수사대 천사들이 신의 뜻이라고 말했던 걸 기억했다. 그녀는 파트너로서 라파엘 선배가 헬레네에게 행운을 몰아주고 있다는 낌새를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 수사대는 엘리야에게 신께서 라파엘의 비리를 알았기에 체포 명령이 떨어진 거라고 말했다. 신이 그렇다고 하시면, 엘리야는 라파엘이 자신 몰래 비리를 저질렀나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라파엘 선배의 판결문의 마지막 문장도 아마 ‘신의 뜻으로 이루어졌다.’고 적혀 있을 것이었다. 그 순간 엘리야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건에 왠지 헬레네가 연관되어있을 것 같아.’

　그 추측을 하는 순간 엘리야는 몸서리칠 수밖에 없었다. 몇백 년 전, 헬레네는 이미 천계의 일과 연관이 되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 그녀가 환생했다면, 헬레네만큼은 인간 세상에서 잘 지내고 있어야 했다. 그녀를 또다시 천계의 일과 엮이게 할 순 없었다.

　엘리야가 첫 번째 피해자에 대한 보고서를 서랍장에서 다시 찾았다. 그녀는 대부분의 정보가 극비 처리가 되어있는 첫 번째 피해자의 보고서를 계속해서 읽으며 생각했다.

　‘첫 번째 피해자 천사의 신원만이라도 알 수만 있다면, 이 사건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신은 그들에게 그 정보에 접근하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엘리야의 떨리고 있는 어깨 위로 키리안의 손이 얹혔다. 키리안의 손길이 닿은 어깨부터 시작해서 엘리야의 몸 전체까지 헬퍼가 줄 수 있는 따뜻한 기운이 퍼졌다.

　몸이 떨리던 게 멎으면서, 엘리야는 자신의 마음이 진정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키리안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엘리야 선배 괜찮아요? 자료 읽고 표정이 많이 안 좋아 보여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