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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에로스여, 방아쇠를 당겨라
작가 : 그린기린
작품등록일 : 2020.9.16

시공간과 인종, 성별을 넘어 사랑을 다루는 불로의 존재, '에로스'
이들을 모아 교육하는 아프로디테의 학교는 운명에 맞는 임무를 부여하고 '에로스'는 파트너를 지어 임하는데, 우리 이 임무 잘 해낼 수 있을까?

"에로스는 절대 사랑에 빠져선 안돼. 노화와 죽음을 알게 될거야."

납화살과 금화살. 납총알과 금총알.
무엇이 저주이고 무엇이 축복이며 그 누가 먼저 된 신인가.
사랑의 운명은 우리의 손에 달렸다. 에로스여, 방아쇠를 당겨라.

 
첫 임무, 막장이야 (5)
작성일 : 20-09-24 10:10     조회 : 244     추천 : 0     분량 : 5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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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

 

 자정을 너머 결혼식까지 이제 삼일이 남았다.

 즉, 납의 임무까지 이틀이 남은 상황이다.

 

 바테이블의 끝자리에서 그 쓰레기 남자와 아네모네가 만나고 있는 게 정말 일까 싶어 나는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며 그 둘을 가늠했다.

 

 아네모네는 진짜로 그 남자와 관계 맺고자 한 건 아니겠지? 아닐 것이다. 아니여야만 한다.

 

 몇 분을 뚫어지게 관찰한 결과 아네모네가 나 없이 임무를 진행하려 하는 것처럼 보였다.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자정을 넘어있었다.

 

 아직 임무까지 하루가 남았지만 어쩌면 아네모네는 이 밤에 임무를 수행하려 하는지도 몰랐다. 비록 이곳에 여자는 없었지만.

 

 '치사한 놈. 나에게는 아무런 말도 없이'

 

 아네모네가 정녕 나를 파트너로 여기기는 하는지 회의가 들었다. 파트너를 존중하다면 적어도 귀띔이라도 해줬어야지.

 

 남자는 정말 지독한 사랑에 빠져있었다. 몸을 계속 아네모네에게 기울며 그의 옆모습을 빤히 쳐다봤다가 웃었다가 지X도 풍년이라더니. 나는 앞에 놓인 주스와 다르지 않는 칵테일 한 잔 들이켰다.

 

 속이 타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아네모네는 으레 익숙한 듯 굴었다. 남자의 아양같은 더러운 구애행동에 비위좋게 슬쩍슬쩍 웃어주었다. 그의 엷은 미소는 마치 마음을 얇게 저미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그때, 남자와 아네모네가 삿대질을 하며 바깥으로 나갈려는 시늉을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나는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아네모네는 그럴리가 없지만 마치 내가 앉아있는 곳을 스치듯 바라보고 바를 나갔다.

 

 뱃속이 엉킨 것처럼 이상했다.

 

 아네모네가 나를 파트너로 존중해주지 않아 그런건지.

 

 혹는 아네모네의 행동 자체에 무슨 감정을 받았는지.

 

 아니야, 차가운 칵테일을 한번에 들이켰기 때문에 그런 것일거다.

 

 나는 숨을 내쉬며 그들의 뒤를 쫓기를 정하며 바를 나갔다.

 

 -

 

 뒤를 쫓으면서도 내심 아니기를 바란 하나. 그들이 숙박업소까지는 들어가지 않기를 바랐는데 아네모네는 기어이 내 예상을 깨고 한 모텔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아니, 저 또라이가 제 아무리 임무라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나는 머리를 쥐뜯으며 애써 아네모네를 이해해보려 했으나 될 수 있으리가 만무했다. 애초에 이런 막장을 첫 임무로 내게 준 아프로디테가 잘못인거다.

 

 꼬여버린 소원과 운명을 마주하는 건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다.

 

 밤하늘을 보고 답답한 숨을 토해내는 중에 핸드폰에 문자가 왔다.

 

 [들어와. 633호. 남자는 샤워중  아네모네]

 

 아네모네는 다 알고있던 모양이었다. 약오르기도 했지만 그의 무심한 문자를 보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부담을 덜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나는 곧장 아네모네에게로 향했다.

 

 -

 

 내 발자국소리를 들었는지 아네모네는 이미 문을 열고 복도에 나와있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끌고 비상계단 가까운 곳으로 데려갔다.

 

 나는 태평한 아네모네의 얼굴을 보자 모든 긴장이 풀렸다.

 

 "야! 이 또라이새끼야! 임무를 할거면 파트너한테 말을 하고 가란 말이야!"

 

 "미안. 그래도 네가 안 자는 거 알고 나간거니까. 됐잖아. "

 

 에써 변명하던 아네모네는 내게 그 남자의 핸드폰을 넘겼다.

 

 "이건 또 뭔데."

 

 "여자가 알고있던 거 알아?"

 

 "뭐?"

 

 아네모네는 내 목소리가 크다며 자중하라는 표시를 했다.

 

 "아까 따라오면서 못 봤어?"

 

 "대체 뭘.."

 

 "네 뒤에서 남자랑 내 사진 찍고 있었던 사람."

 

 나는 아네모네의 말에 입이 떡 벌어졌다. 세상에 전혀 알지 못했다. 나의 집중과 감각은 온통 남자와 아네모네의 밀회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진짜야?"

 

 "밀테 되게 둔하구나? 첫 임무라 그런가."

 

 "...여자가 심부름센터에 요청이라도 했나?"

 

 "그런거겠지."

 

 "그런데 아네모네 너는 애초에 왜 온거야."

 

 "아, 사실 한 일주일 전부터 남자한테 연락해서 몇 번 만났었거든."

 

 "??!!!..난 꿈에도 몰랐잖아!!"

 

 아네모네의 말은 경악스러움을 주기 충분했다. 그러니까 내가 자는 사이에 아네모네는 계속해서 남자와 컨택하고 있던거랬다.

 

 "오늘은 다른 날이랑 다르게 밀테한테 들킬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소리를 좀 냈지."

 

 "미친놈아.."

 

 "굳이 원망하려면 둔한 너를 탓해. 하여튼 밀테, 납 임무는 오늘로 끝내는 걸로 하자."

 

 "..원망은 개뿔이다. 또 갑자기 임무라니..여자분은 여기에 없잖아?"

 

 "이제 부를거야." 

 

 나는 아네모네의 말에 깜짝 놀랐다.

 

 "자 이제 전화가 울릴거거든?"

 

 아네모네의 말처럼 남자의 핸드폰에 여자의 전화가 왔다. 감히 가증스럽게 ♡를 붙여놓은 꼴이 역겨웠다. 결혼식 이틀을 남겨두고도 뻔뻔하게 바람피는 주제에.

 

 "그래서 내가 이 전화를 받을거고"

 

 "뭐? 야!안돼!!"

 

 "괜찮아. 이미 알고있으니까."

 

 그는 말리려는 나를 쉽게 밀어내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또라이 중의 또라이, 결단력 넘치는 또라이의 좌에 아네모네가 임명되는 순간이었다.

 

 -

 

 "..아 지금요?"

 

 "ㅇㅇ모텔 633호. 오실 거면 오세요."

 

 "그럴리가요. 네.네"

 

 "그럼 끊겠습니다."

 

 아네모네는 여자와 짧고 굵게 통화했다. 나는 꼬이는 속에 그의 팔을 잡고 비틀었다.

 

 "아파. 왜 이래. 밀테."

 

 "꼭 그렇게 극단적으로 해야겠어? 너가 이렇게 행동해서 여자랑 남자한테 남는 게 뭔데. 여자한테까지 상처를 주는 게.."

 

 나는 울컥 치미는 감정에 말을 다 잇지 못했다. 그녀가 결혼한다며 밝게 웃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밀테. 내 말을 들어봐."

 

 "아니, 아네모네. 네 행동은 틀렸어. 이건 아니야. 에로스든 뭐든 사람을 불행하게 하려고 내려온 건 아니잖아? 거기다가 납을 박는 임무날짜까지 아직 하루나 남았잖아."

 

 "아니지. 나한테 이러는 너가 틀린거야. 밀테, 내가 일처리는 빠를 수록 좋다 했잖아. 지령은 어디까지나 지령일 뿐이고 실제 수행 속도는 현장에 나와있는 에로스들이 재량껏 하는 거야. 거기다가 에로스는 언제나 축복의 존재만으로 남을 순 없는 법이야."

 

 "그래서 지금 이렇게 남자랑 뒹구는 게 잘하는 짓이라고?"

 

 나는 아네모네의 멱살을 잡아 끌었고 눈끝을 세우며 서로를 대적했다.

 

 나는 그의 말을 절대 용납할 수 없었고, 그 또한 나의 의견을 용납할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그때 633호 문 안쪽에서 아네모네를 찾는 듯한 남자의 인기척과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네모네의 멱살을 확 밀치듯 놓았다.

 

 아네모네는 품에 꽂아두던 작은 궁과 납화살을 내게 넘겼다.

 

 "너가 쏘든지. 내가 쏘든지."

 

 아네모네의 말은 결국 내가 쏘라는 것이었다.

 

 나는 633호실 문뒤로 사라지는 아네모네를 바라보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

 

 나는 바깥으로 나와 골목어귀에 숨어 숨 죽여 여자가 오는 것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택시에서 초조한 듯 입술을 깨문 여자가 내렸다.

 

 나는 마음이 아파 고개를 숙였다.

 

 아네모네가 남자와 지금 어떻게 엉켜있을지는 몰라도, 또 그녀가 제 아무리 전부터 알고있다 하더라도 필시 이 상황은 그녀에게 커다란 충격과 상처가 될 것이었다.

 

 부디 이 납(미움)화살이

 그녀에게 자책도, 후회도 없는 강한 분노와

 앞을 향하는 힘으로 수용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녀가 모텔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모든 일이 끝나

 

 그녀가 다시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억겁의 시간처럼 도통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아 괴로운 시간이었다.

 

 그때 아네모네에게 문자가 한 통 날라왔다.

 

 [남자랑 여자 지금 같이 나갔어. 아직 쏘지는 마. 나랑 같이 행동해.]

 

 -

 

 아네모네의 문자와 동시에 남자와 여자가 밖으로 나왔다.

 

 일절의 말도 없이 굳어있는 두 사람은 차를 타거나 부르지도 않고 번화가쪽으로 걸어나갔다. 그런 두 사람의 뒷모습에 마음이 자꾸 술렁거렸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아네모네가 나왔다. 나는 그의 잘생긴 얼굴이 더 없이 짜증나게 느껴져 일그러지는 표정을 감출수가 없었다.

 

 "어디로 갔어?"

 

 "저쪽으로 걸어가더라."

 

 "그래? 따라가자."

 

 시종일관 침착하기만 한 그의 태도도 마찬가지로 맘에 내키지 않았다.

 

 나는 그 둘의 방향을 쫓으며 아네모네에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

 

 "아네모네."

 

 "왜."

 

 "아까도 말했지만 아무리 임무라고 해도 네 행동을 이해 못 하겠어."

 

 "알아. 이해하지마."

 

 "...말이 안 통한다니까."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밀테, 너는 모종의 일이 뭐라 생각해?"

 

 "..언제는 나보고 미래의 일은 생각하지 말라며?"

 

 "밀테, 나는 남자와 여자의 결혼식을 백지로 돌리고 싶은거야."

 

 "무슨 소리야. 너가 그렇게 말하던 에로스의 정의는 운명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사랑과 감정의 일순간만을 허락하는 거라더니."

 

 나는 아네모네의 의중이 전혀 짐작이 가지 않고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결혼식을 안하면 모종의 사건도 일어나지 않을테고. 우리는 그만큼 임무를 빠르게 끝낼 수 있고, 일석이조잖아."

 

 "아네모네, 제발 모순되는 말 좀 작작해. 너는 모종의 사건이 뭔지 알아? 알고는 이러는거야?"

 

 "..아직은 모르지. 하지만 오래 일 해본 내 직감이야. 폭력이나 폭행. 과실치사로 발전할 가능성이 농후해."

 

 "뭐?"

 

 "여자는 우리가 생각했던 아주 오래 전부터 남자의 성향부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걸 용납해준 모양이더라."

 

 "그걸 아네모네, 네가 어떻게 아는데?"

 

 "남자가 나한테 이야기해줬지."

 

 "남자가 너한테?"

 

 "응. 전에 여자한테 이야기한적이 있다고, 근데 여자가 괜찮다 그랬대. 대신 여자도 남자가 설마 바람까지 필거라곤 예상도 못했겠지만."

 

 "...뭐야 그게.."

 

 "밀테, 이 결혼은 무의미해. 사랑에 있어 참는 쪽은 반드시 지칠 수 밖에 없지."

 

 "지치는 건 네 말대로 그 사람들 재량이잖아. 아, 진짜 짜증나네."

 

 투닥거리던 우리는 둘이 한 공터에 가로등 아래에 멈추는 것을 확인했다.

 

 여자와 남자는 마주보고 섰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우리는 큰 참나무 뒤로 몸을 숙여 숨을 죽이고 두 사람의 상황을 살폈다.

 

 '납은 대체 언제 쏠 건데.'

 

 '기다려봐.'

 

 우리는 작게 속닥거렸다.

 

 퍽-!

 

 그때였다. 강력한 굉음이 허공에 퍼져나갔다. 우리는 동시에 말을 그쳤다.

 

 "야 이 나쁜 놈아!"

 

 여자가 남자를 마구잡이로 때리고 있는 것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할까. 여자는 나름대로 남자를 봐주는 것처럼 힘을 빼고 때리고 있었다. 물론 엄밀히 따지자면 폭행은 폭행이었지만.

 

 속이 시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자가 경찰에 신고당하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렇게 퍽퍽 대는 소리가 한참을 이어졌고, 가드를 올리고 등을 숙인 채 있던 남자가 갑자기 적반하장 꼴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도! 나도 그러려던 건 아니야!"

 

 저 인간말종은 저걸 변명이라고 하나 싶었다. 여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어디한번 이야기해보라며 팔짱을 꼈다.

 

 이 상황이 뭐냐하면, 개판이었다. 본격적인 개판.

 

 나는 아네모네가 왜 임무를 한시 빨리 끝맺으려 했는지 이해가 갈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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