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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붉은 대문
작가 : 웨인킹
작품등록일 : 2020.8.31

뒤늦게 꿈틀거리는 살인충동을 발견한 남자와 남모를 비밀을 간직한 여자가 만난다.
그들에게 불어닥치는 고통의 소용돌이. 그 끝을 알수없는 불행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것인가?
상황을 바꾸어보려는 정민의 노력앞에 끔찍한 일이 기다리고 있는데....

 
14화. 여자의 변신(1)
작성일 : 20-09-23 22:12     조회 : 293     추천 : 0     분량 : 5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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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미옥은 아이들과 함께 백화점에 나왔다.

 애들에게도 새 옷을 좀 사입히고, 자신도 여름옷을 몇 벌 살 예정이었다.

 

  정혜는 연신 웃음을 지으며 한 손에는 새로 산 옷과 가방이 든 쇼핑백을 들고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앞서가는 둘을 바라보는 정민은 새엄마가 갑자기 달라진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정혜의 바람대로, 새엄마가 이젠 정상으로 돌아온 것일까?

 

  2미터쯤 뒤처져 어슬렁거리며 따라오던 정민에게 미옥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정민아 너도 빨리 사고 싶은 것 좀 사. 날도 더운데 우중충한 것 좀 입지 말고 이제 시원하고 산뜻한 거로 좀 골라봐.”

 

  미옥은 손을 들어 대형 스포츠 코너를 가리켰다.

 

  정민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미옥이 가리키는 매장으로 향했다.

 

  한 사람당 쇼핑백 한 개씩, 손에 쥔 가족들은 백화점 내 카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정혜는새로 산 분홍색 가방을 꺼내서 지퍼를 열어보고, 뒤집어 보고 난리다.

 

  정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미옥이 입을 열었다.

 

  “엄마는 밑에 층에 가서 엄마 옷 좀 보고 올 테니까 너희는 여기서 쉬고 있을래?”

 

  “그래요. 엄마 천천히 다녀오세요.”

 

  “네 엄마. 예쁜 거 많이 사 오세요.” 정혜도 앙증맞게 대답했다.

 

  새엄마가 자리를 뜨자, 정민이 정혜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혜야 그렇게 좋아?”

 

  “응 오빠. 이제 엄마가 안 아프고 다시 예전처럼 돌아온 것 같아? 그렇지?”

 

  정혜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정민에게 되물었다.

 

  “그래 그런 것 같다.”

 

  “그거 봐!. 내 말이 맞지?”

 

  정혜는 우쭐하며 말했다.

 

  “그래그래 네 말이 맞는다” 정민은 대답과 동시에 정혜의 양 볼을 꼬집는다.

 

  정혜는 까르르 웃으며 오빠의 손을 밀어냈다.

 

  “오빠 나 저기 좀 가서 구경하고 올게.”

 

  정혜가 디즈니 캐릭터 모형들이 있는 완구 코너를 가리키며 말한다.

 

  “그래 구경하고 와, 오빠는 여기서 짐 보고 있을게”

 

  “내가 금방 갔다 올게 오빠!”

 

  정혜가 뽀르르 달려 나갔다.

 

  어릴 적 TV에서 아이들이 엄마, 아빠와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정민은 자신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아빠에게 맡겨진 정민은 늘 혼자였다.

 혼자가 아닐 때는, 아빠의 몽둥이와 주먹질이 그를 괴롭혔다.

 

  그래서 지금 가족들과 함께하는 이 정도의 일상조차도 실제인지 실감이 안 날 정도였다.

 

  한동안 물끄러미 정혜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정민은 쇼핑백에서 새로 산 신발을 꺼내 들었다.

 신고 있던 것을 벗은 정민은 새 신발을 신어 보기 시작했다.

 

 

  미옥은 여성복 층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미 양손에 든 쇼핑백에는 새로 산 옷들로 가득했다.

 

  어떤 브랜드 코너 앞에 전시된 마네킹에 미옥의 눈길이 갔다.

 

  가슴이 움푹 패인 체형이 드러나는 의상을 한참 바라보던 미옥은 점원에게 말을 건넸다.

 

  “저기 입은 거랑 똑같이 한번 입어 볼 수 있을까요?”

 

  “네 고객님 잠시만요.”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온 미옥은 거울 앞에 섰다.

 

  부스스한 머리에 창백한 얼굴을 한 여자가 서 있었다.

 

  가슴은 빈약해 보였고 화장도 안 한 얼굴에는 휑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변화가 필요했다.

 

  계획이 필요했다.

 

  무당 할멈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냥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거울 앞에 창백한 여자는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

  계산을 마친 미옥은 점원에게 물었다.

 

  “여기 속옷 매장은 어디죠?”

 

 

  저녁 후 설거지를 마친 미옥은 식탁에 앉아

 TV를 보며 웃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관 소리가 들리더니 대진이 들어왔다.

 거실로 성큼 들어온 대진은 식탁에 앉아 있는

 미옥을 곁눈질로 힐끗 보더니, 정민에게 빨래가방을 건넸다. 이제는 대진과 정민이 주고받는 일상이 된 듯한 동작이었다.

 

  “식사는 하셨어요?” 정민이 묻자 대진은 귀찮다는 듯이 대답한다.

 

  “먹고 왔어!”

 

  그리고는 미옥이 앉아 있는 식탁은 쳐다도 안 보고 욕실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새벽 1시.

 

  대진은 거실 바닥에 깔아놓은 이부자리 위에 누운 채 TV를 보고 있었다.

 

  TV에서는 아프리카 동물 관련한 다큐멘터리가 나오고 있었다.

 

  암사자들이 잡은 새끼 얼룩말이 내장이 다 나온 채로 사자 무리에게 먹히고 있는 장면이었다.

 멀리서 잡아먹히는 새끼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고 있는 어미 얼룩말의 모습이 화면에 클로즈업되었다.

 

 그때 안방 문이 열리면서 미옥이 나왔다.

 

  미옥이 거실 쪽으로 걸어오는 것을 확인한 대진은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했다.

 

  미옥은 머리를 단정하게 묶어 올린 채 하늘하늘한 란제리를 입고 대진 앞에 섰다.

 

  여자에게서 나는 향긋한 꽃냄새가 대진의 코를 자극했다.

 

  누워있는 그의 옆에 조용히 앉은 미옥은 대진의 손을 부드럽게 잡고 속삭이듯이 말했다.

 

  “여보 요전 날에는 내가 너무 미안했어요.”

 

  “앞으로는 내가 좀 더 노력할게요.”

 

  미옥의 숨결이 느껴졌다. 하지만 대진은 눈을 뜨지 않았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어서 방에 들어와서 자요.”

 

  대진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다.

 

  미옥은 대진의 얼굴과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리고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방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돌아가는 발소리가 들리자, 대진은 살며시 고개를 돌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찰칵’.

  안방 문이 닫히고 여자가 들어가는 소리가 났다.

 

  잠시 후. 대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불과 베개를 주섬주섬 챙겨 든 그는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더니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김 형사와 배 형사는 CCTV 화면을 몇 번씩 돌려보고 있었다. 당구장 남자는 피해자가 퇴근하던 동일 시간대에 다리 쪽으로 향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다만, 첫 CCTV에서 피해자를 뒤따라 다리 쪽으로 향하던 남자가 두 번째 카메라에서는 다리 쪽으로 가지 않고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CCTV 없는 쪽으로 돌아서 갈 수 있었기에 조사해 볼 필요는 있었다.

 

  경찰의 부름에 순순히 응한 그 남자는 정 순경과 함께 서로 오는 중이었다.

 

  김 형사가 염두에 두고 있는 또 하나의 인물은

 권대진이었다.

 

  노래방 사장 말에 의하면 그가 한 잔 더 마시겠다고 하며, 나간 시간대와 피해자의 퇴근 시간대가 거의 일치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조회를 해보니 비록 미수에 그쳤지만, 권대진은 성폭행 전력이 있었다.

 

  다만 문제는 CCTV 어디에서도 그의 모습이 포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선은 당구장 남자를 먼저 조사해 본 후에 권대진을 찾아가 알리바이를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김 형사님 박달호씨 모시고 왔습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정 순경과 수염이 듬성듬성 지저분하게 난 남자가 서 있었다.

 

  김 형사는 박달호와 마주 앉았다.

 

  며칠을 안 씻었는지 남자에겐 생선 썩는 듯한 냄새가 났다.

 

  “이렇게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동네 바보형처럼 보이는 박달호였지만 김 형사는 예를 갖추어 말했다.

 

  “다른 게 아니라 14일 새벽일에 대해서 좀 물어볼 게 있습니다.”

 

  “14일 새벽 3시경 당구장에서 나오셔서 집과는 반대 방향 쪽으로 가시던데 왜 그 시간에 그쪽을 가신 건가요?”

 

  “당구장에서 놀다가 PC방 가려고 갔는데요.

 

  PC방이 문을 닫아서 집으로 갔습니다”

 

  남자는 누가 들어도 덜떨어진 사람처럼 어리숙하게 말했다.

 

  “집에는 몇 시쯤에 들어가셨죠?, 어머니께서는 주무시느라 몇 시에 들어왔는지 모르시던데.”

 

  김 형사가 물었다.

 

  남자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집에 가자마자 누워 자서, 시간은 잘 모르겠는데요?”

 

  남자는 사안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고 있는 듯했다. 김 형사는 피해자 신유라의 사진을 박달호에게 보이며 물었다.

 

  “혹시 그날 새벽에 이 여자를 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그날 새벽에 거리에 여자는 없었어요!” 남자가 말했다.

 

  “그럼 혹시 다른 사람은 보았습니까?”

 

  김 형사의 질문에 남자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 한 명 봤어요. 남자 한 명이 걸어가는 거 봤어요 하하하”.

 

  “남자요? 얼굴 보면, 알아볼 수 있겠어요?”

 

  “아니요, 제가 눈이 나빠서요.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게 있기는 했어요. 그 남자가 신발을 묶어서 목에 걸고 맨발로 가더라고요. 하하하”

 

  “미친놈인가 생각했지요.”

 

  “남자가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는 기억납니까?”

 

  “그건 잘 모르겠어요.”

 

  박달호는 다시 머리를 긁적거렸다.

 

 

 

  남자를 보내고 김 형사와 배 형사는 다시 회의실에 앉았다.

 

  “아무래도 저 사람은 범인이 아닌 것 같습니다. 김 형사님. 전과도 없이 깨끗하고요.”

 

  “네가 보기에도 그렇지?”

 

  “그런데 신발을 벗고 그 시간에 거기를 걷고 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러게요. 그 사람이 범인일 확률이 높은 것 같습니다!”

 

  배 형사가 말했다.

 

 “꼬르륵” 김 형사의 배에서 소리가 났다.

 

 시계를 보니 벌써 9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야 밥 먹고 들어가자”

 

  김 형사는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캔커피를 손에 쥔, 익준이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자 귀에 익은 여자의 음성이 들렸다.

 

  “어머 안녕하세요 익준 씨? 오랜만이에요.”

 

  김미옥이었다.

 

  “앗, 형수님! 가게 오랜만에 나오셨네요?”

 

  익준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익준 씨도 알다시피 제가 근래 몸이 좀 안 좋았거든요. 간만에 나와 보니 여기가 아주 돼지우리나 다름없네요.”

 

  “그러게요. 형수님. 그렇게 됐습니다.”

 

  익준이 멋쩍다는 듯이 말했다.

 

  등 뒤에서 문소리가 들리더니 대진이 양손에 음료와 샌드위치를 들고 나타났다.

 

  “아 형님”. 익준은 형수 쪽을 눈으로 가리키며 연신 윙크 질을 해댔다.

 

  “이 새끼가 뭘 잘 못 먹었나? 눈은 왜 깜빡여?”

 

  대진은 웃으면서 말했다.

 

  “오늘 사무실이 너무 지저분해서 내가 와이프한테 부탁했어. 와서 청소 좀 해달라고.”

 

  “아 네 그러셨군요” 익준이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여보 우리 이거 좀 먹고 합시다.”

 

  대진이 미옥에게 상냥하게 말했다.

 

  “두 분 오늘 보니까 아직 신혼이신데요?”

 

  익준이 놀리듯이 말했다.

 

  “어머 익준 씨도 참!”

 미옥이 쑥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참 익준 씨 요즘 만나고 있는 아가씨랑은 잘 돼가고 있는 거 맞아요?”

 

  “아 네 분위기 좋습니다. 우리도! 하하하. 내년 봄에 식 올리려면 열심히 벌어야 해요.”

 

  “어머 잘됐어요. 익준씨! 언제 한번 익준 씨 여자친구 불러서 우리 같이 식사 한번 해요.”

 

  “저야 좋지요, 고맙습니다. 형수님!”

 

  “그래 인마, 저번에 식당에서 한번 보고 나도 한 번도 못 봤네. 너하고 네 여자친구 같이 있으니까 완전히 미녀와 야수 수준이더라 익준아!”

 

  대진이 킥킥거렸다.

 

  “뭐 형님은 안 그렇고요?” 익준도 받아쳤다.

 

  셋은 그렇게 한바탕 웃고 있었다.

 

  “이제는 나가봐야 할 것 같은데요 형님”

 

  “그러자. 여보 조그만 치우고 들어가 날도 더운데.”

 

  “알겠어요. 여보 조심해서 갔다 와요?”

 

  미옥이 대진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계획대로 잘 돌아가고 있어!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완벽하게 해야 해!

 

  미옥은 그들이 나간 출입문을 한동안 바라보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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