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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아이돌스토리
네 입술에 닿기까지 0.1mm
작가 : 레오루나
작품등록일 : 2020.8.27

장수 연습생 유카리~! 올해가 마지막 오디션이에요~~
그녀 앞에 나타난 의문의 연습생 레이몬드~~!
"자기 앞가림은 알아서 해 멍청이."
차가운 마성의 그 남자가 그녀의 가슴속에 파고든다.
게다가 어쩌다 호텔방에서 하루 밤을 같이 보내다니~~♡

차가운 절륜남 레이몬드. 발랄하고 상큼한 유카리의 사랑이 지금 시작됩니다. : )

 
14화. 장난스러운 키스
작성일 : 20-09-23 22:09     조회 : 246     추천 : 0     분량 : 6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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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카리야."

 

  진성 오빠와의 연애는 생각보다 그리 달콤한 것이 아니었다.

 

  평범한 얼굴에 평범한 키.

 

  20살에 1세대 아이돌 테이커블의 로드 매니저로 들어온 후 회사에서 악착같은 성실함을 인정받아 본사 스텝 조직인 아이돌 육성팀 맴버로 직무 전환에 성공했고 그 이후는… 뭐 아는 것 처럼 아이돌육성팀의 팀장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시작은 평범했다.

 

  육성팀에서 일하는 그가 아직 팀장 타이틀을 달기 전 그러니까 조금 쭈구리 같았던 그 시절에 말이다.

 

  너무나 평범하고 가슴 설레임 하나 없는 그에게 아주 아주 평범한 고백을 받았고 그렇게 평범한 연애를 시작했다.

 

  "카… 카리야. 나랑… 사귈래?"

 

  No를 할 이유를 찾기가 어려웠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내 똑같은 하루 하루에 그가 건낸 고백은 단비와 같은 이벤트였다.

 

  "오빠… 나랑? 오빠… 다린이 좋아했던 것 아니었어?"

 

  쭈뼛거리는 그는 빨게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런 말이 없었다.

 

  '사귀자'는 말 대신 '좋아한다'는 말이 더 나았을지 모른다.

 

  만약 오빠가 내게 '좋아한다'는 고백을 했다면… 그와의 연애가 그리 무미건조하진 않았을지도…

 

  "카리야. 우리… 사귀자. 너 남자친구 없잖아."

 

  가만히 그의 눈을 바라 보았다.

 

  내게 고백하는 그의 눈에서 달콤한 수줍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내 눈을 피한 채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고 있었고 애석하게도 전기가 찌릿 통하는 그런 순간의 경험을 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그래요. 근데… 우리 회사 데뷔 후 3년 까지 연애 금지 아닌가?"

 

  진성 오빠는 그제서야 놀란 토끼눈을 하고 나를 바라 보았다.

 

  뭐야? 설마 그것도 모르고 나보러 사귀자 한 건 아니겠지?

 

  "비밀. 비밀로 하고 사귀면 되잖아."

 

 

  비밀.

 

  결국 내가 이 무미 건조한 오빠에게 빠져든 건 이 '비밀'이라는 단어가 주는 마법같은 텐션 덕이었을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회사내에 비밀 연애라니…

 

  누구나 이런 로망 하나씩은 있는 것 아닌가?

 

  "그래요. 당연히 사귄다면 아무도 몰라야겠죠…"

 

 

  그는 내 얼굴을 바라보다 앞뒤도 재지 않고 입술을 들이밀어댔다.

 

  "읍… 읍…"

 

  그 순간. 마치 난 괴물이라도 만난 듯 입술을 입안으로 말아 넣고 숨을 참아 버렸다.

 

  아니 이 오빠는 어떻게 사귀고 바로 키스야? 진도가 너무 빠른 것 아니냐고…

 

  무심결에 밀쳐낸 내 손길에 그는 당황한 듯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멍한 눈으로 어색한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듯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카리야… 그게… 한 명은 알 수 밖에 없어…"

 

  "네?"

 

  진성 오빠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그 날 본 모습 중 가장 수줍게 발그레한 볼을 하고는 그녀의 이야기를 꺼냈다.

 

  "다린이… 외롭다고 노래를 한 내게 너랑 잘 어울린다며 연애상담을 해줬거든…"

 

  "다린이가요?"

 

  내 친구 다린이.

 

  힘든 연습생 생활을 버틸 수 있게 해 준 내 친구이자 동료…

 

  다린이가 추천해준 남자라면… 왠지 신뢰감이 100은 상승하는 기분이랄까?

 

  "맞아. 나 사실 다린이 좋아했었어… 하지만 다린이와 이어지기는 쉽지가 않아서… 아.. 그렇다고 네가 대타라는 건 아니야…"

 

  대타네…

 

  대타가 맞지. 그나저나 사귀기로 한 직후 이런 이야기는 좀 최악인데…

 

  "너랑 잘 만나보고 싶어. 나도 연애를 너무 오래 쉰 것 같기도 한데… 앞으로 잘 만나자."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연애랍시고 소꿉장난같은 장난스러운 만남을 제외하면 누군갈 정식으로 사귀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그 과정이 내가 처음 기대했던 그런 멋진 장면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평범한 이 진성 오빠는 언젠가 나를 영화 속 주인공으로 만들어 줄 왕자님이 될 것이라 생각했었다.

 

 

  영화 속 주인공…

 

 

  * * *

 

  그와의 연애가 1년만에 끝이 났다.

 

  말이 연애지 늦은 밤 연습을 마치고 떡볶이 몇 번 같이 먹은 게 데이트의 전부였다.

 

  그의 팀장 승진 때 아껴둔 돈으로 넥타이를 선물한 것이 그나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심지어 내 생일도 기억하지 못한 채 지나가 버린 그는 뒤 늦게 내가 말을 꺼내자 부랴부랴 드럭스토어에서 립글로즈 하나를 선물한 게 다였다.

 

  '영화 속 주인공은…무슨…'

 

  그렇다. 1년간의 그 평범하고 무미건조한 연애는 평생 기억에 남을만큼 강렬한 피날레를 안겨주고 마무리가 되었다.

 

  "휴… 영화 속 주인공 맞지. 다린이와 다정한 그 장면 하나가 내 1년치 눈물은 다 쏟게 만들어 버렸으니… 슬픈 영화 속 주인공 마냥 그렇게 울었더랬지…"

 

  집으로 오르는 언덕배기가 그 날 따라 유독 가파른 듯 하다.

 

  "그래… 결과적으로는 잘 된거야. 그다지 행복한 마음 따위 없었거든…"

 

  혼자서 주절주절 혼잣말을 해대며 아무도 없는 캄캄한 밤 집으로 향하는 언덕을 올랐다.

 

  아마 오디션까지 이대로 마무리가 되었다면 답답함이 가득했을 이 거리가 선선한 공기와 맞물려 기분 좋은 퇴근길이 되고 있었다.

 

  "진성 오빠 따위 알게 뭐야~! 난 이제 자유롭고 행복한 유카리인걸~!"

 

  언덕 위 조그만 공원에 선 나는 가쁜 숨을 내 뱉으며 반짝이는 서울의 밤을 미소 가득 품은 채 내려다 보았다.

 

  "자유롭고 행복한 유카리양은 조금만 똑똑해지면 더 좋을 것 같은데 말이지…"

 

  "으악~!"

 

  진정 깜짝 놀랐다.

 

  동굴 속에서 말하는 듯한 저음의 목소리. 등 뒤에서 울리는 정체불명의 그 목소리에 난 그만 놀라 바보같은 표정을 지어 버렸다.

 

  '누구지? 이 목소리는…'

 

  뒤돌아 바라 보니 역시 그.

 

  달빛에 반짝이는 푸른 눈의 레이몬드.

 

  "도대체… 언제부터 따라온거에요? 정말 깜짝 놀랐다구요."

 

  하얀 셔츠 차림의 그는 오늘따라 조금 더… 뭐랄까…

 

  색기가 넘친달까?

 

 

  "이거 주려고…"

 

  그의 팔목에는 어디선가 많이 본 머리끈이 마치 팔찌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아… 내 머리끈…"

 

  머리끈에 시선이 꽂히자 많은 생각이 마치 주마등처럼 스쳐지났다.

 

  '저게… 왜 저 사람 손에 있는 거지? 아… 그날 그 호텔에서 놔뒀구나. 근데 고작 이거 주려고 여기까지 날 쫒아 온거야? 뭐야 저 사람…'

 

  나는 손을 뻗어 머리끈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는 잠시 내게 보여준 오른 팔목을 다시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는 날 빤히 바라보았다.

 

  또 저 눈빛…

 

  "이리 주세요~! 그거 주려 왔다면서요."

 

  나는 아둥거리며 다시 팔을 뻗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피식 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뜬금없는 말을 해댔다.

 

  "이 시기 밤 공기 정말 좋지 않냐?"

 

  "네? 밤 공기랑 팔찌… 아. 아니 내 머리끈이 무슨 관계인데요?"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산책이나 좀 하자구. 팔찌… 아니 네 머리끈은 산책 마칠 때까지 인질이라 생각해."

 

 

  * * *

 

  산책.

 

  이라기 보다는 산행?

 

  "후… 후… 저기요. 몬드씨. 저도 여기 산이 있는건 알지만 처음 와 본다구요. 이렇게 높은 산을 쉬지도 않고 그렇게 가는 건…"

 

  큰 숨을 몰아 쉬며 레이몬드에게 따져 물었다.

 

  머리끈 돌려 준다며 산책을 하자 하더니 동네 뒷산에 밤중 등산을 시키다니…

 

  레이몬드는 옆으로 힐끗 내 얼굴과 왼손에 찬 시계를 번갈아 보더니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이제 딱 10분 왔어. 그렇게 가파른 것도 아니고 계단 몇 개 걷는데 뭘 그리 힘들어 해. 그나저나 동네 좋네. 집 근처에 이런 산도 있고 말이야."

 

  후… 죄송하지만 처음 와 본다구요. 산과 저, 초면이란 말입니다.

 

  "어디까지 오를 샘이에요? 불빛도 없이 너무 어둡기도 하고… 어?"

 

  어느 순간 우거진 나무의 끝에 비취는 불빛들.

 

  달빛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자그마한 벤치와 울타리.

 

  그리고 그 너머 그림처럼 펼쳐진 서울의 야경.

 

 

  "우와…"

 

  나는 생각보다 멋진 풍경에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그의 말이 맞았다.

 

  나 생각보다 좋은 동네 살고 있었잖아. 이런 풍경이라니…

 

 

  문득 곁에 선 그의 표정이 궁금했다. 설마 이 장소, 이런 풍경. 알고 올라 온 것도 아니고… 그도 감탄을 하고 있겠지?

 

  저 풍경에 감탄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리고 슬쩍 고개를 돌려 바라본 그의 얼굴.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그는 멋진 서울의 밤하늘 대신 빠지면 나오지 못할 것 같은 그 푸른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

 

  또 저런다. 저렇게 바라보는 건 반칙인데…

 

  창백하기까지한 하얀 얼굴에 붉은 입술.

 

  헝클어진 반곱슬 머리는 바람에 하늘거리며 나부꼈고 그의 말처럼 선선한 기분 좋은 바람이 우리 앞을 지나고 있었다.

 

  "풍경이… 멋지지 않나요?"

 

  잔뜩 숨죽이게 만드는 그의 미친 미모가 더 이상 나를 잠식하기 전 뭐라도 말을 꺼내야 했다.

 

  침묵하는 그의 얼굴은 조금씩 내 입술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점점 다가올 수록 그의 짙은 향기가 전해져 안 그래도 뻣뻣한 내 몸은 더욱 경직되어 가고 있었다.

 

  티끌하나 없는 순백의 셔츠.

 

  그리고 풀어진 윗 단추 사이로 보이는 넓직한 가슴 근육…

 

  갈 곳 잃은 내 시선은 그의 뽀얀 속살에 고정되어 버렸다. 다가오는 눈에 눈을 맞추었다가는 그대로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으니까…

 

  그는 마치 멈춰버린 것 같은 이 시간을 천천히 음미하듯 서두르지 않고 즐기고 있었다.

 

  [꿀꺽…]

 

  더 이상은 한계다.

 

  나는 그만 소리를 내어 침을 삼키고 가만히 두 눈을 감아 버렸다.

 

  '키스라니…'

 

  어째서인지 눈을 감으니 더욱 선명히 그의 새빨간 입술이 캄캄한 내 대뇌 앞 스크린에 비춰지는 듯 했다.

 

  1초… 2초… 3초…

 

  '왜… 입술이 닿는 느낌이 없는 거지?'

 

  조바심이 난 나는 실눈을 떠 눈 앞의 상황을 확인하려 했다.

 

  '어맛…'

 

  바로 코 앞까지 온 그의 얼굴.

 

  말 그대로 분자 알갱이 하나 지날만치 가까워진 우리 둘의 입술…

 

  그 거리는 0.1mm도 되지 않을 것이다.

 

 

  '키스… 하고 싶어…'

 

  그와의 키스가 기대되었다. 그리고 또 설레이고 있었다.

 

 

 

  "유카리"

 

  그의 목소리에 난 잠에서 깬 공주마냥 감았던 눈을 다시 뜨고 말았다.

 

  그는 저만치 떨어진 얼굴로 그제야 밤하늘 서울 야경을 바라보며 말하고 있었다.

 

 

  "유카리. 잘 할 수 있겠어? 오렌지 블라섬?"

 

  방금까지 닿을듯 했던 그와의 간극은 또 다시 이만큼 거리를 넓혔다.

 

 

  "해봐야죠.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해야죠."

 

  오렌지 블라섬도 중요하지만… 왠지 뭔가 중요한 한 가지가 빠진 듯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는 왜… 나와 키스 직전 고개를 돌린 것일까?

 

  내가… 싫은가? 여자로서… 매력이 없는가?

 

  "중요한 문제야. 유카리가 꼭 성공했으면 하거든…"

 

  알아요. 그건 저도 마찬가지거든요. 저도 제가 꼭 성공했으면 합니다.

 

  근데 지금 이 순간 궁금한 건 당신의 마음이에요.

 

  도대체 왜…

 

 

 

  "너에게 꽤나 많은 걸 걸었어."

 

  찬연히 부서지는 달빛에 비친 그의 얼굴은 늘 보던 그 서늘한 기운의 차가운 표정이 아니었다. 장난기 가득한 입술…

 

  설마…

 

  "뭘 걸어요? 몬드씨가 왜 저에게 걸어요?"

 

  그는 한숨을 쉬며 또 다시 고개를 저었다.

 

  "유카리… 자꾸 멍청한 질문하지마. 자꾸 네가 무슨 강아지 마냥 귀여워 보이려 하니깐…"

 

  웃음을 참는 저 표정…

 

  레이몬드. 설마 아까 키스… 장난치려 했던 건 아니겠지?

 

  "자꾸 멍청하다 하지 마요. 저… 똑똑해요."

 

  왠지 점점 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거면 그런 미묘한 분위기나 조성하지 말지…

 

  어느 순간 그의 입술만 바라보고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이 남자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마치 이런 날 놀리기라도 하는 듯 웃음을 참고 있다.

 

  화가 났다.

 

  이제는… 자리를 박차고 집으로 떠날 시간이다.

 

 

  "저 이제 갈게요…"

 

 

 

 

  그의 큰 손이 내 팔목을 잡아 끌었다.

 

  어느 순간 다가온 그의 입술은 부드러운 소프트아이스크림처럼 내 입술에 녹아 내렸다. 심각한 펌프질을 해대는 내 심장 소리를 듣기라도 한 듯 그의 다른 손은 내 뒷목을 받치고 있었다.

 

  '장난… 아니었던 거야?'

 

  눈을 감으려 했던 내 계획은 갑작스러운 그의 돌진에 무산되어 버렸다. 그덕에 난 두 눈을 뜬 채 그의 감은 눈과 얼굴을 바라볼 수 있었다.

 

  부드러운 그의 입술과 혀는 마치 흐물거리는 말미잘처럼 나란 바다 속에서 유영하고 있었다.

 

  뜨거워진 내 귓볼 위로 어느 새 그의 손이 얹어지자 머리 가득 아득함이 몰려오는 듯 했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하지만 결코 루즈하지 않게 가을밤 산속이 주는 묘한 분위기를 잘 버무려 하나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와의 키스가 꽤나 당황스러웠지만… 이제는 제발 멈추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이상해… 이 남자…'

 

  귀밑 목덜미를 하프 줄을 뜯듯 간지럽히자 온 몸이 짜릿해지며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아…"

 

  레이몬드는 그제서야 기나 긴 키스를 멈추었다.

 

 

 

  "장난아냐."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키스… 장난치는 거라 생각했어요."

 

  난 혼나는 어린애 마냥 약간 화난 듯한 그의 얼굴에 어쩔 줄 몰랐다.

 

  그는 그 푸른 눈으로 날 가만히 바라 보았다.

 

  그리고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내게 있어서 꽤나 큰 모험을 걸었어. 너에게…"

 

  "제가… 오렌지 블라섬이 되어야 한단 말이신거죠?"

 

  "능력이 있잖아. 노력도 다른 이들에 비해 부족하지 않고… 도와줄테니 끝까지 가보자."

 

  안다. 그가 내게 얼마나 큰 도움을 준건지 말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최종 오디션에 떨어져서도 아쉬움이 하나도 남지 않을 뻔 했다는 것도…

 

  "왜… 제게 왜 이렇게 잘 해주는 거죠?"

 

  레이몬드는 가만히 내 머리를 쓸어 넘기며 아련한 눈빛을 보냈다.

 

  "글쎄… 이유를 나도 모르겠어... 그냥 마음이 이끄는 대로…"

 

 

 

  묘한 기시감.

 

  오늘 처음 보인 레이몬드의 그 장난스러운 표정이 문득문득 얼굴에 비췰 때마다 드는 이상한 환청.

 

 

  '반드시 널… 찾으러 갈게.'

 

 

  뭐지? 왜 저런 말을… 그것도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미국 슬럼가 출신 빈민 고아 레이몬드와 나는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을텐데… 어째서 익숙한 느낌이 드는 걸까?

 

 

 

  레이몬드는 그 아련한 눈빛으로 말했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가다 보면… 그 곳에 언제나 네가 있어. 마치… 내 몸이… 내 머리가… 꼭 널 찾으려는 것 처럼 말이야."

 

 

 

  선선한 바람이 다시 그와 나의 사이를 스쳐 지났다.

 

  그리고 이런 저런 생각을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그의 달콤한 입술이 또 다시 내 입술에 맞닿아 있었기에…

 

 

 

  난 머리끈 따위 기억에서 잊은 채 두근거리는 가을밤을 설렘 가득 지나고 있었다.

 

 
작가의 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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