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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무협물
후계자는 네가 해
작가 : 박시인
작품등록일 : 2020.8.4

묻혔던 비밀과 얽히고설켰던 사연들이 드러난다. 그 엉킨 매듭을 풀어내라고 등 떠밀렸는데, 맞서는 대적자가 전혀 뜻밖의 인물이라.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으니……. 이 검왕의 아들과 그를 제자로 삼았던 천마의 후예는 결국 대립할 수밖에 없다. 음모에 빠졌을 때에도 갖가지 기연을 만나게 되는 제법 운이 좋은 사내. 또 고난을 겪을지라도 끝까지 의리와 헌신의 관계성을 발전시켜 나가려 애쓰는 올곧은 의식의 소유자, 그런 주인공의 이야기.

 
#18. 아프냐? 나도 아프다.
작성일 : 20-09-23 20:01     조회 : 249     추천 : 0     분량 : 5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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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아프냐? 나도 아프다.

 

 

 

  냉추하가 즉시 달려든 것이었다.

  이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랐으면서도 주유곤은 맞대응하지 않았다. 이리저리 피하기만 했다.

  그러나 소녀는 집요했다. 그의 팔뚝 곡지혈과 어깨 견정혈을 끝내 움켜쥐려 했다.

  예측하지 못했던 돌발 상황이었다.

  군웅들은 이 장면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그중에서도 학창포를 입은 유생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하나 가득해졌다.

  화산파에서 온 이 사람은 소년 소녀의 손속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러더니 냉추하의 손속에 맞춰서 섭선을 손바닥에 탁! 탁! 부딪혔다.

  소녀는 소리를 듣는 순간 번뜩, 무엇을 깨달은 표정이 됐다. 손길이 점점 느려졌다.

  지켜보던 군웅들은 갑자기 간담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처음에 냉추하가 빠른 손길을 뻗칠 때는 대부분 그다음 수법을 예측해볼 수 있었다. 그런데 손길이 느려진 지금은 아무도 그 손가락의 범위를 벗어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산봉우리를 손안에 가둬 천천히 움켜쥐거나 후려쳐버릴 힘의 노출!

  눈앞에서 화산파의 절기 건곤일원수(乾坤一元手)의 진수가 발휘되고 있는 것이었다.

  이상했다.

  이 수법의 격식이 소녀의 몸으로 펼치기에는 무거워 보였다. 그것을 속도의 조절로 이겨내고 있었다. 놀랍게도 거기에 비설관죽의 발도술이 적용되는 중이었다.

  더 놀라운 장면도 보였다.

  주유곤은 여태껏 이리저리 멀리 피하기만 했다. 그런데 그 피하던 동작을 거두는 부드럽게 절제된 몸짓이 나타났다. 모습이 요란스럽지 않았다. 작은 범위의 공간에서 냉추하를 향해 몸을 돌렸을 뿐이었다.

  이어서 오른쪽 검지 중지를 모아 어깨 앞으로 내밀었다. 그 손가락 끝에서 은은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사방 어느 곳의 침략도 즉시 꿰뚫어버릴 기운이었다.

  순간 군웅들은 또 정신이 아득해지고 말았다.

  조금 전에는 냉추하의 수법을 보며 간담이 서늘해졌는데, 이번에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만약 군웅 중에서 누가 장법으로 상대한다면 그 손바닥 가운데가 뚫려버릴 것 같다고 느꼈다. 권법이라면 그 주먹 한가운데가 부서질 것이었다. 지법으로 덤벼든다면 그 손가락을 모두 꺾어 부러뜨려버릴 기세였다.

  군웅들을 이 수법이 화산파의 감춰진 절기 건곤지법(乾坤指法)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확실하다고 단정 짓지는 못했다. 어쩌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절기 같기도 했다.

  누구도 이 무예의 실체를 알지 못했다.

  다만 이 정도 수준으로 제자를 가르칠 수 있는 화산파의 실력만큼은 새삼 실감하고 있었다.

  이 소년의 사부는 화산이검 조태민이었다.

  그때 냉추하의 뺨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점점 붉어졌다.

  주유곤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도 상대의 곡지혈과 견정혈을 끝내 움켜쥐어서 조금 전의 모멸감을 풀어야 할지, 아니면 여기서 멈춰야 할지 생각하는 눈치였다.

  만약 이 일을 끝까지 실행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무런 은원관계도 없는 사람과 생사박투의 험악한 싸움을 하는 꼴이 된다.

  그렇다고 여기서 멈추기도 꼴이 어쭙잖았다.

  자신은 이미 여러 사람 앞에서 비도문의 소문주라고 공인받은 사람이 아닌가. 사태가 이렇게 됐으니 사문의 체면도 생각해야 했다.

  사실은 약이 올라서 불쑥 공격한 자신이 더 문제였지만, 그건 이미 아무 상관이 없을 일이 되고 말았다.

  주유곤의 이마에 땀방울이 돋았다. 긴장하고 있었다.

  상대가 계속 손을 쓴다면 점점 치명적인 수법으로 다그쳐올 것이 분명했다.

  자신도 그걸 무찔러버릴 수단을 써야 할 테니, 말하자면 절기의 격돌이 되는 것이었다.

  둘 다 중상을 입거나 생명을 잃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소녀의 사소한 자존심과, 이를 부추겨 슬쩍 절기를 전수하는 수단으로 삼은 어른의 장난기가 만들어낸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등장만으로도 분별력을 되찾게 해주는 사람은 존재하는 법.

  등옥려가 웃음을 담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머! 얘야. 네가 비록 표독(慓毒: 지나치게 사납고 독살스러움)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제법 앙칼지구나. 아무렴, 그래야지. 한 문파를 이끌어가려면 그런 면도 필요하다.”

  자기를 인정해주는 말이었다.

  인정받으면 존재감이 상승한다. 마음에도 여유가 생긴다.

  그래서였을까. 냉추하의 얼굴에 흠모의 정이 함께 번졌다. 손을 거두어들였다.

  복잡한 눈빛으로 주유곤을 한번 바라보더니 곧 얼굴을 돌려 예를 표했다.

  “미련한 제자가 사이모(師姨母: 스승의 자매)님 앞에서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이제야 문후를 여쭙니다. 꾸짖어주소서.”

  “오냐, 괜찮다. 어서 이리 오너라.”

  따뜻한 억양이었다. 여태 주변에 무심했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소녀에게 깊은 관심을 표시했다. 말과 태도가 부드러웠다.

  “네 사부께서는 안녕하시냐?”

  “두문불출 수양 중이신데, 심사에 깊은 고뇌가 있으신 것 같았습니다.”

  등옥려가 가볍게 한숨을 한번 내쉬었다. 그 까닭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내뱉는 말투는 단정했다.

  “네 사부의 심사에는 번뇌가 많을 것이다. 그건 그럴 수밖에 없다.”

  “그걸 어찌 아시는지요?”

  “오늘 이 자리에 오지 않은 것을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소녀는 말씀의 뜻을 잘 모르겠습니다.”

  “더 알려 하지 마라. 네 마음이 상한다.”

  “하오나 소녀는 사부님의 침잠(沈潛: 가라앉아 헤어나오지 못함)이 너무 걱정됩니다.”

  등옥려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이어지는 음성에는 안타까움이 섞여 있었다.

  “너는 그 까닭을 꼭 알고 싶으냐?”

  “사부의 고뇌를 헤아리는 것도 제자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네 생각이 기특하다. 그러나 심사는 괴로워질 텐데 괜찮으냐?”

  “소녀에게 알려주소서.”

  “좋다! 잘 들어라.”

  “네.”

  “오래전에 네 사부는 모함하는 술수를 썼다.”

  “네? 어떤 술수를요?”

  “자기 사문의 선배를 몰아내려는 비열한 수단.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또박또박 말투를 끊어서 말한 등옥려는 엄낭랑을 한번 쳐다봤다. 그다음 냉추하를 쓰다듬듯 바라보면서 무겁게 다시 말했다.

  “그랬으니 네 사부에게는 자기가 후대를 훨씬 더 비약발전 시켰다는 명분이 필요했다.”

  “소녀는 알지 못하는 일입니다.”

  “네가 어찌 알겠느냐? 거기에는 시기심이 포함돼 있었는데.”

  “더 자세히 알려주소서.”

  “네 사부가 도리를 저버린 첫 번째 까닭을 말해주겠다.”

  “그게 무엇이옵니까?”

  “네 사문에는 갖가지 제약이 많지?”

  냉추하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그걸 잘 알고 계시는지요?”

  “안다. 그리고 네 사부는 그걸 허물어내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끝내 그렇게 하지 못했지만.”

  “제 사부님이 괴로워하는 원인이 그것입니까?”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게 가장 큰 부분이다. 지금은 자신의 함량 미달을 한탄하고 있을 것이다.”

  냉추하는 자신이 알지 못했던 사문의 일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감히 더 캐묻지도 못하는 표정이 처량해졌다.

  묶여있는 굴레 위에서 나락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자기 사부가 등옥려와 엄수수 이야기를 할 때면 말끝을 돌리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때 주유곤이 등옥려를 향해 공손하게 말했다.

  “어머니, 그만하시지요. 이곳에는 외부인들이 많습니다. 저 낭자는 물론 엄총독까지 마음이 상하고 비도문의 위신까지 손상될까 걱정스럽습니다.”

  등옥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냐, 알겠다. 네 아량과 배려가 제법이다.”

  그다음 소녀를 향해 가만히 물었다.

  “아프냐?”

  “소녀는, 소녀는.”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나도 아프다.”

  그때 학창의를 입은 유생이 나섰다. 엄낭랑을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

  그러나 엄낭랑은 마주 웃지도, 눈길을 피하지도 않았다. 눈빛에 잠깐 간절함을 드러냈을 뿐이었다.

  그러자 유생의 냉정한 말이 이어졌다.

  말투에는 그 생각의 올곧음과 대담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무릇 어설픈 그릇에는 보배를 담지 않는 법!”

  깜짝 놀라는 대꾸가 이어졌다.

  “무슨 당치않은 말씀을 하시려고요?”

  유생은 들은 척 만 척하며 엉뚱한 걸 물었다.

  “총독 엄수수는 어떤 사람인가?”

  등옥려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 기량과 성품과 안목은 한 문파의 수장이라 한들 조금의 손색도 없습니다.”

  “그 정도란 말이지? 좋다. 그렇다면 그 안목으로 이 아이를 볼 때마다 어떤 심정이었겠느냐?”

  “이 보배가 아까워서 어쩔 줄 몰랐을 것입니다.”

  “그럼 한번 생각해봐라.”

  “무엇을요?”

  “입장을 바꿔 봐.”

  “어떻게요?”

  “만약 사매가 그 당사자였다면 어찌했겠느냐?”

  “아주 훤히 읽으시는군요?”

  “분명히 대답해! 이 보배가 더 긁히거나 상하지 않을 조처를 했겠는가, 안 했겠는가?”

  “그런데 사형은 왜 또 나섰대요?”

  엉뚱한 대답이었는데, 이건 다 알면서 뭘 또 묻느냐는 뜻이었다.

  “나는 이 보배가 들어앉을 그릇을 마련해주고 싶을 뿐이야.”

  “여전히 오지랖은 넓으시군요?”

  “사매야, 그게 뭐가 어떻단 말이냐?”

  “문제가 생기면 어쩌시려고요?”

  “그때는 비도문주가 직접 와서 내게 따지라고 해라.”

  등옥려는 학창포를 입은 유생에게 뾰족한 눈길을 보냈다.

  “사형은 이제 뜻을 이루셨다는 건가요?”

  “아니, 하나밖에 못 했다.”

  “저 아이에게 슬쩍 절기를 전하셨잖아요. 하나밖에 못 하셨다니요?”

  화산사검 팽두영은 싱겁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만두기 아쉬운 게 있다.”

  “끝까지 하시려고요? 지나치신데요?”

  이들의 대화를 들으며 대청의 군웅들이 가볍게 놀랐다. 막연했던 무림의 비밀 하나가 밝혀진 것이었다.

  검왕부의 비(妃) 등옥려가 알고 보니 화산파 출신이었더라!

  화산사검의 웃음소리가 쾌활했다. 목소리가 맑았다.

  “처음부터 나는 아무 걱정도 하지 않았다. 사매가 이 자리에 있지 않은가?”

  “그래도 너무 하셨어요.”

  “아니야. 무릇 일세(一世)의 정애(情哀)를 박투(搏鬪)로는 지울 수 없는 법. 그러니 어쩌랴.”

  “여전히 뜻 모를 말씀만 하시는군요.”

  “그만해라. 저 소문주에게 초식을 전했으니 반은 내 뜻대로 됐다.”

  “그래서요? 더 뭘 원하시는데요?”

  “저 둘이 손속을 겨루면서 현질은 무슨 깨달음을 얻었을지 궁금하다. 도대체 저 속을 알 수가 없구나.”

  “둘째 사형도 그렇게 말씀하십디다. 저 또한 그 속을 잘 알 수 없고요.”

  “그래? 그나저나 둘째 사형은 많이 좋아지셨는지.”

  “이제 움직이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공력을 붙들어놓기만 했을 뿐 사용하지는 못합니다.”

  등옥려의 어투가 엄숙해졌다.

  그 둘째 사형의 상태를 설명하는 표정은 지극히 공경하는 태도였다.

  화산사검의 안색이 다시 밝아졌다.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됐다. 그렇다면 나는 저 소문주에게 하려던 일이나 마무리해야겠다. 그다음의 매듭은 사매가 알아서 짓도록.”

  말을 마치자 냉추하를 손짓으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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