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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어떤, 세상의 끝에서
작가 : 어쩡
작품등록일 : 2020.9.23

점점 커져가는 세계의 부패.
그것이 빛을 집어삼키기 위해 올라오고 있었다.
한 세상에서부터 부패를 피해 다른 세계로, 또 다른 세계로.
그렇게 살고 싶어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세계의 끝자락을 찾았고…
그것이 이 땅이었다.

 
어떤 미래에서
작성일 : 20-09-23 09:32     조회 : 347     추천 : 0     분량 : 3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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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멀리로 거대한 투기장 같은 공간이 보였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그곳을 둥글게 둘러싸고 모여있었다.

 가운데로 갈수록 깊어지는 그 땅 가운데, 사람 수십명을 합친 크기의 거대한 머리가 있었다.

 귀 아래부터 몸이 없는 거대한 머리에는 알 수 없는 언어가 빼곡히 쓰여있었다.

 뿌드득 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거대한 머리의 목 아래로 무언가 움직이고 있었다.

 목 아래를 비집고,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자그마한 손이 튀어나왔다.

 우오트 들루오 톤’ 이스.

 우오트 들루오 톤 라에.

 수십의 머리를 둘러싼 사람들이 그것을 외고 있었다.

 뿔이 달린 아이가 겁먹은 얼굴로 제 어미의 손을 꼭 붙들었다.

 하늘에 검게 물든 구름들이 몰려왔다.

 이내 구름의 가장자리부터 얇게 퍼트러져, 태풍같은 모양을 띄기 시작했다.

 거대한 머리는 목 아래로 새살을 돋우고 있었다.

 검붉은 그 살이 툭툭 튀어나올 때 마다 머리는 고개를 위로 치들었다.

 돋아나는 살덩이들 가운데, 작은 소녀가 그것들을 밀어 치우며 튀어나온 작은 손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우오트 틀라스 톤’ 엘림스 에로미나!

 우오트 틀라스 톤’ 이르크 에로미나!

 우오트 틀라스 톤’ 에디흐 에로미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다.

 주문을 외는 듯한 수백의 목소리가 바람의 소리를 눌렀다.

 어미의 손을 붙든 아이가 제 어미를 따라 말하고 있었다.

 이윽고 검붉은 살무더기 속에서 자그마한 손에 딸린 소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찾아갈게. 꼭 다시 찾아갈거야.”

 거대한 머리의 살무더기 앞에 선 소녀가 말했다.

 소녀는 고기의 비린내가 진동하는 소년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는 뒤로 물러섰다.

 사람들의 머리 위로 새까맣게, 무언가의 입처럼 하늘에 구멍이 뚫렸다.

 틀라스 온’ 이로우 에로미나!

 우오트 틀라스 루페캡!

 거대한 머리가 눈을 떴다.

 거대한 머리의 입이 열리고, 우렁찬 비명이 흘러나왔다.

 창문의 틈으로 세차게 새어 들어오는 바람소리 같았다.

 성난 새들의 울음소리 같기도 했다.

 양과 염소가 우는 소리같기도 했다.

 소가 길게 내빼는 소리 같기도 했다.

 늑대의 울려퍼지는 울음 소리 같기도 했다.

 여자의 절망에 찬 신음소리 같기도 했다.

 남자의 단말마 같기도 했다.

 세상의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같은 날 같은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거대한 무언가가 신음하는 듯한 소리가, 메아리로 울려 퍼졌다.

 *

 

 

 

 종말이란 건 어쩌면, 아주 허무한걸지도 모른다.

 악마라고 알고 있던 사람들이 그저 병든 세상을 피해 온 뿔 달린 ‘사람'들이라면 어떨까.

 이제는 그런 걸 더는 생각 할 필요가 없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면 아니까.

 뿔 달린 아저씨가 하나, 전철의 출입문에 기대 졸고 있었다.

 벌건 얼굴로 짐작컨대 힘든 하루를 술로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길 실패했던 것이겠지, 이른 아침 첫차에서 졸고 있다는 건.

 이런 아저씨의 훨씬 이전 세대인, 몇 백살을 먹은 사람도 있었다.

 피난을 온다는 게 그런 늙은이들도 가능한 일이었던건가.

 뿔 달린 사람들은 마법을 쓸줄 안다고 한다. 그것도 옛날엔 대부분 그랬지만 지금은 나이 많은 할아버지들이나 할 줄 안다고 한다.

 TV에서는 마법이란 게 존재하긴 한다는 걸 인정했지만 과학적으로는 어떻게 작동되는건지 정확히 입증하질 못했다.

 하지만 마법이 세상을 구해주질 못해서 도망쳐 온다는 건 분명 영화에서나 보던 멋드러진 마법은 아닌가보지.

 [이번 역은 낙원역, 낙원역 입니다. 내리실 문은···]

 전철의 문이 열리고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힘겹게 비집고 카키색 비닐옷의 소녀가 하나 나왔다.

 소녀는 주변을 살피다 사람들 키에 가렸던 출구 표시를 찾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마우솔레움 3번 게이트.

 주머니에 들어있던 종이에 적힌 한 마디가 전부였다.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난 직후라 사실 소녀는 어디를 가게 되든 좋았다. 그저 어딘가 하수구에 자리라도 깔고 누워도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계단을 오르다 발걸음을 멈췄다.

 흰 바탕에 웃고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그려진 광고가 있었다.

 [낙원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낙원이란 게 무슨 뜻일까, 소녀의 머릿속으로 생각이 지나갔다.

 언제까지고 행복할 수 있는 건 없는데.

 아주 오래전에, 몇 살이었는지 기억은 하지 못하지만 어릴 때 할아버지께 그런 것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우리는 지금 지옥에 살고 있느냐고.

 성경을 읽고 나서 든 생각에 한 질문이었다. 할아버지는 소녀에게 왜 그렇게 생각을 하느냐 물으셨고, 소녀는 성경에서 읽은 지옥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뿔 달린 악마들이 있으며, 사람들의 비명 소리로 가득하며.

 할아버지는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주셨다. 그리고 다신 성경을 읽지 말라는 말도 붙이셨다.

 소녀가 살던 동네는 유독 비명소리가 잦았다. 절도, 강도, 살인, 방화, 자살 따위의 일들로 말이다. 무엇보다 동네를 이루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뿔이 달린 사람들이었다.

 할아버지가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깨달은 건 중학생이 되고 나서였다. 지옥이라 부른다면 못할것도 없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굳이 그 사실을 생각하고 싶지 않아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가끔은 정말 지옥같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진로상담을 할 때.

 “좋아하는거라도 적어서 내야지, 아주 빈칸으로 휙 던져내면 어떻게 하라는거니. 4반에 채영이는 돈 많이 벌어서 마우솔레움에서 살겠다고 적어서 냈더라. 그러면 적어도 선생님이 이렇게 머리 아플 일은 없잖아?”

 다들 꿈, 꿈, 꿈을 가지고 살라고 말한다. 꿈이 없는 사람이라도 좋아하는 것은 있다고 말한다. 소녀는 그 둘 중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했다.

 “됐습니다. 열여덟인데, 적어도 먹고 살 생각은 하겠지요. 다음주엔 직업이라도 하나 적어오게 할 테니 오늘은 그만합시다. 선생님도 쉬셔야지요.”

 옆에서 가만이 듣고 계시던 할아버지가 말했다.

 할아버지가 휠체어 바퀴를 밀며 문으로 향했다. 담임 선생님은 뒤따라가며 문을 열어드렸다.

 “혜원아! 할아버지 나가시잖아.”

 소녀는 할아버지의 휠체어 밑둥을 가만히 바라보다 그만 종이를 들고 일어섰다.

 하고싶은 게 정말 없냐고 할아버지가 물으셨다.

 모든 사람들이 혜원에게 그렇게 물었다. 수십 번, 수백 번, 어쩌면 수천 번. 정말 없다는 말을 하면 다음으로는 말도 안된다며 웃거나 적어도 좋아하는 것은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런 뻔한 대화에 지쳐버려서 더는 대답도 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퍽.

 “아우, 미안합니다.”

 혜원의 등에 부딪힌 남자가 사과를 하며 지나갔다.

 우울한 생각을 자른 부딪힘이었다.

 돌아본 자리에 같은 광고는 더 이상 나오고 있지 않았다.

 마우솔레움. 지하철에서 나오기 전부터 하늘 끝에 닿을 듯이, 멀리 떨어진 거리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여기서 제일 큰 건물이라는 것을 여실없이 뽐내고 있었다.

 낙원시의 지리는 처음이니까 버스를 타서는 마우솔레움을 찾기 힘들 것 같았다. 택시를 타면 좋을까.

 인도 변두리로 나아가 멀리서 다가오는 택시에게로 손을 흔들었다.

 “어디까지 갈거에요?”

 “마우솔레움이요···어, 잠깐만요.”

 옷의 모든 주머니를 더듬어봤지만 주머니에 지갑이 만져지지 않았다. 아뿔싸. 아까 부딪혔을 때 가져간걸까? 얼마 되지 않는 돈이 전부 그 안에 있는데. 신분증도 없다.

 탈 거냐 말거냐는 택시기사의 질문에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손을 저어 택시기사를 그냥 보냈다. 이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지.

 종잇조가리라도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겨준 것이라 가보려고 했었다. 근데 이제 생각해보니 딱히 그럴 필요가 있었던가. 그저 처음 생각했던 대로 아무 골목길에나 주저앉아버리면 그만일지도 모른다.

 길 건너에 남자들 둘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골목이 보였다.

 한 남자의 입에서 가래침이 튀어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더럽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돌려버렸다.

 친척들을 찾아가지 않는 것은 짐 떠안기 싫어할 표정이 뻔히 보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반은 그저 남에게 의지하고 싶지 않은 제 고집이었다.

 걸어서는 저 빌딩까지 얼마나 걸릴까.

 혜원은 천천히 인도를 따라 걸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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