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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붉은 대문
작가 : 웨인킹
작품등록일 : 2020.8.31

뒤늦게 꿈틀거리는 살인충동을 발견한 남자와 남모를 비밀을 간직한 여자가 만난다.
그들에게 불어닥치는 고통의 소용돌이. 그 끝을 알수없는 불행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것인가?
상황을 바꾸어보려는 정민의 노력앞에 끔찍한 일이 기다리고 있는데....

 
12화. 굴레
작성일 : 20-09-23 03:26     조회 : 300     추천 : 0     분량 : 5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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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여름방학이 시작됐지만, 정민은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오늘은 새엄마도 외출하고, 정혜도 학원에 갔다. 조사관의 가정방문이 있고 난 이후로, 모든 것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듯했다.

 

  여전히 불안한 아빠만 빼면.

 

  하릴없이 휴대폰만 보고 있던, 정민은 문득 친구 영재가 떠올랐다.

 

  심심한데 전화나 해볼까?

 

  “오우 정민아! 웬일이야 네가 연락을 다 하고?”

 

  “그냥 집에 혼자 있자니 심심해서.”

  정민은 겸연쩍어하며 말했다.

 

  “야 그럼 우리 집에 놀러 와. 안 그래도 나 어제 게임기 샀는데 같이 하면 되겠다.”

 

  정민은 게임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알았어! 그럼 지금 출발할게!”

 

  영재는 집은 정민의 집과 불과, 삼백 미터 떨어져 있었다.

 

  영재네 도착하니, 영재와 영재의 부모님이 반갑게 맞이하여 주셨다.

  “오우 정민이 빨리 왔네?”

 

  “어머 네가 정민이구나. 아주 믿음직스러워 보이네. 어서 들어와. 점심 안 먹었지? 우리랑 같이 먹자!”

  영재에 이어, 영재 어머니도 정민을 반겼다.

 

  “아. 네 감사합니다.”

 

  “이야 우리 친구는 아주 듬직하네. 하하하.

 우리 영재가 혼자라 심심하니까 자주 놀러 오너라!”

 

  마침, 휴가 중이신 영재 아버님도 정민을 반겨주셨다.

 

  정민은 경험해보지 못했던, 가족들의 훈훈한 환대에 얼떨떨해졌다.

 

  그런 정민을 영재가 놀리기 시작했다.

 

  “쟤가 덩치만 컸지, 숙맥이에요 아빠! 하하”

 

  “그래? 전혀 안 그래 보이는데?”

 

  뻘쭘해진 정민은 그들을 번갈아 보며, 쑥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영재 엄마의 특기라는 얼큰한 냄새가 풍기는 닭볶음탕이 식탁 위에 먹음직스럽게 놓였다. 그 밖에도 7~8가지의 다양한 반찬이 가득했다.

 

  “차린 건 별로 없지만, 많이 먹어 정민아!”

 

  “엄청 많은데요. 잘 먹겠습니다.”

 

  “간만에 영재, 네 친구도 왔는데, 우리 저 인삼주 한잔 씩만 하자. 영재야!”

 

  “네 아빠!”

 

  웃음이 넘치는 가족들과의 식사. 정민이 늘 꿈꾸던 광경 중 하나였다. 우리도 이렇게 될 수 있을까?

 

  영재 아빠가 주신 인삼주를 3잔이나 마신, 정민은 얼굴이 벌게졌다.

 

  “야 너 그거 마시고 얼굴이 빨개진 거야?”

 

  “원래 한 잔만 마셔도 그래!”

 

  “이런, 이러면 우리가 정민이 부모님에게 욕 들어 먹겠다 허허! 디저트도 먹고 좀 더 놀다 가거라!”

 

  정민과 영재는 이층 영재 방으로 올라왔다.

 영재는 캔맥주 2캔을 따더니, 하나를 정민에게 건넸다.

 

  “아빠한테 허락 받은 거야!”

 

  “너희 엄마 아빠 되게 좋으시다. 영재야!”

 

  영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내게 제일 좋은 친구 같은 분들이시지!”

 

  정민은 갑자기 맥주를 단숨에 들이켜기 시작했다.

 

  “야? 천천히 마셔. 왜 그래?”

 

  “아니 아까 닭볶음탕 많이 먹었더니 갈증이 나서.”

 

  “너 무슨 일 있냐? 정민아?”

  정민의 근심 어린 얼굴을 보고 영재가 물었다.

 

  “아니 무슨 일은?”

 

  순간, 정민은 누군가 대화할 친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냥 털어놓기만 해도 모든 게 후련해질 것 같았다. 그렇게 갑자기, 정민은 영재에게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재혼가정이 된 사연부터, 새엄마가 정혜를 학대한 일, 그리고 일전에 있었던 가정방문 조사까지.

 

  “아. 그랬구나! 난 그런 줄은 몰랐다. 야 그냥 학교 소문으로는 네가 정혜하고 의붓남매고, 정혜를 새아빠가, 그러니까 너희 아빠가 혼내는 정도로 알고 있더라고.”

 

  “뭐 그럴 만도 하지.”

  정민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래도 지금은 좋아졌다니까 다행이다.”

 

  “그래, 고맙다 영재야!, 그리고 오늘 내가 말한 것은 어디 자랑할 게 못 되니까 꼭 너만 알고 있어라!”

 

  “그럼, 그럼” 영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 형사는 배 형사에게 건네받은 CCTV 관련 자료를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피해자가 이동한 동일 시간대에서 움직인 사람들을 근처 상권에서 조사한 후에 CCTV에 자료가 나오면 매치시키면서, 용의자를 특정하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고 고민 중이었다.

  워낙에 물증이 없다 보니까 많은 궁리를 해보다 나온 생각이었다.

 

  동년배의 딸내미를 둔 아빠로서 이번 사건의 범인이 그냥 빠져나가게 둘 수는 없었다. 후덥지근한 여름 날씨에 몇 번씩 허탕을 치면서도 김 형사가 끈질기게 현장 조사를 강행하는 이유였다.

 

  이른 시각의 노래방은 손님이 없었다.

 

  이 인간이 도대체, 정말 모르는 건지, 아니면 비협조적인 건지를 모르겠네. 김 형사는 뿔테 안경을 낀 노래방 사장 아줌마를 보며 생각했다.

 

  “아니 글쎄 우리 집에는 이상한 사람 없었고 다들 노래만 부르고 갔다니까요?”

 

  여자는 괜히 언성을 높였다.

 

  김 형사는 노래방 주인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노래방 주인은 처음부터 김 형사의 눈을 마주치지 못할 뿐 아니라, 신사답게 질문을 하는 김 형사를 과한 감정이 섞인 어조로 응대했다.

 

  오랜 형사 생활로 미루어 볼 때 여자는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뻔하지 불법 영업을 하고 있겠지.

 

  노래방에서 도우미를 쓰는 등의 불법 영업은 어디에서나, 암암리에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김 형사는 잘 알고 있었다.

 

  “사장님이 자꾸 아니다, 모른다고 하시니 할 수 없네요. 그러면 여기 사람 시켜서 불시 단속 좀 자주 나오라고 해야겠네요.”

 

  김 형사의 말을 듣자, 노래방 주인은 째려보듯이 김 형사를 노려보았다.

 

  “그럼 이만 갑니다.” 김 형사가 나가려고 하자

  여자는 포기한 듯, 그를 불러 세웠다.

 

  “형사님!, 잠깐만요.”

 

  그리고는 김 형사에게 장부를 꺼내 보였다.

 

  “그날 우리는 새벽 3시경 문을 닫았어요. 새벽 2시에서 3시 문 닫기 전 있던 손님들은 2팀인데, 한 팀은 여자들끼리 온 손님이었고 또 한팀은 남자 한 분이 오셨어요”

 

  “그 남자 손님은 혼자 온 건가요?”

 

  “네, 그분은 자주 오세요.”

 

  “늘 혼자서 오십니까?”

 

  “아니요 그렇진 않고, 직원들하고 같이도 오세요.”

 

  “근데 그날은 혼자 오셨더라고요.”

 

  “다른 이상한 점은 없던가요?”

 

  “제가 이 동네 장사하면서 아는 분인데 그분은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친절하지는 않아도 일하면서 항상 정확하고 뒤끝 없는 분이세요.”

 

 여자가 말했다.

 

 “그분은 무슨 일을 하시나요?”

 

 “이 동네 읍내에서 재활용 센터 오래 하신 분이라 동네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라면 다 알고 있을 걸요?”

 

  “재활용 센터라고요?”

 

  김 형사가 되물었다.

 

  “네. 재활용 센터 사장님이세요.”

 

  “중간키에 체격 있고, 까무잡잡한 얼굴에 수염 잘 안 깎는 양반 아니신가요?”

 

  “어머 맞아요? 아시나 보네요. 그분이에요. 재활용 센터 사장님. 권 사장님이세요.”

 

  김 형사의 반응에 여자는 갑자기 흥이 난 듯, 덧붙였다.

 

  “평소에는 일 잘하시고 정확하신데, 술만 먹으면 좀 과격해지기는 해요.”

 

 

  다음 날 아침.

 

  막 출근한 김 형사에게 정 순경이 뜨거운 모닝커피를 건넸다.

 

  “앗 뜨거라, 이 사람아, 이 더운데 뜨거운 걸 어떻게 마시라고?”.

 

  “이열치열입니다. 김 형사님”

 

  “내가 정성에 감복해서 마셔준다. 하하하”.

 

  “김 형사님 CCTV 자료 분석한 것하고 PC방, 노래방 등 조사한 것 가지고 보고드리려는데 지금 바로 할까요?”

 

  “오우 일들 좀 하는데?”

 

  김 형사가 탄성을 지르며 말했다.

 

  잠시 후 그들은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우선 밤샘 영업을 했던 PC방 한 군데에서 동일 시간대에 오고 간 사람 명단이 2명 나왔습니다. 명단은 아직 확보를 못 했습니다.

 PC방 CCTV와 방범 CCTV 대조 예정입니다.”

 

  “그리고 당구장 한곳에서 동일 시간대에 움직인 사람이 한 명 있는데 좀 수상한 게, 달리 직업도 없고 가끔 길가는 여자한테 치근덕거리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는 당구장 사장 말이 있습니다. 역시 당구장 CCTV와 사건 발생 장소 부근 CCTV 대조 작업 진행하면 될 것 같습니다.”

 

  “짝짝짝, 와 대단한데. 진도들을 많이 뺐어!”

 

  “나도 어제 노래방 한곳에서 피해자 퇴근 시간과 시간대가 겹치는 사람이 하나 있더라고. 잘하면 성과가 좀 있을지도 몰라.”

 

  “그래요? 김 형사님? 제발 뭐라도 좀 나왔으면 좋겠네요.” 정 순경이 거들었다.

 

  “하여튼 하던 수사는 계속 열심히들 하자고! 그럼 CCTV 좀 볼까?”

 

  김 형사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미옥은 늘 오는, 그 카페를 찾았다.

 

  오늘도 카페에는 사람이 없었다. 미옥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에 완벽한 장소였다.

 그녀는 카페라테 한 잔을 들고, 창밖이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조사를 받는 동안 그녀는 솔직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차라리 모든 것을 밝히고 그에 따른 처벌이 필요하다면 받을 것이라고 결심했다.

 그렇게 되면, 이 일련의 불행한 일로부터 해방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을 품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놈의 조사인지, 취조인지 모를 것이 끝나고 나면,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을 거로 생각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었다.

 

  불안한 남편과의 관계도.

 온몸에 찾아오는 무기력함도.

 밤마다 계속되는 악몽과 가위눌림도.

 

  더군다나, 그 무당 할멈의 불길한 예언이 머릿속에서 자꾸만 똬리를 틀었다.

 

  뿌연 눈으로 미옥을 쏘아보며 던지던 저주의 그 말이.

 

  “너는 두 가지 이유로 죽을 거야”

 

  “첫 번째 이유는 네 남편이야!”

 

  “네 남편하고 같이 있으면 너는 죽어!”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할멈의 말이 떨어지자, 미옥은 자신이 죽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에 경악했다.

 

  “네 딸년 때문에 죽을 거야.”

 

  “그, 그럴 리가요? 왜요? 왜 그런 거죠?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다니.”

 

  매캐한 향냄새가 가득한, 어두운 방 안에서 미옥은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허벅지를 꽉 꼬집었다.

 

  “그게 네 팔자야. 더러운 귀신들이 붙어서 그래, 미안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

 

  “방법이 왜 없어요? 피할 방법이 뭐냐고? 빨리 말해! 빨리 말하란 말이야!”

 

  미옥은 미친 여자처럼 소리를 질렀다.

 

  절규하는 미옥을 바라보던 뿌연 눈의 무당 할멈이 미옥을 보고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가까스로 미옥이 노파의 얼굴에 가까이 가자, 그녀가 속삭였다.

 

  “네가 먼저 그들을 죽여야 해!”

 

  미옥은 망치로 머리를 얻어 맞은듯한 기분에 말문이 막혔다.

 

  할멈이 종을 울리자, 요란한 종소리가 나더니 방문이 열렸다.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망연자실하게, 주저앉은 미옥을 부축해서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미옥의 등 뒤에 대고 할멈이 소리쳤다.

 

  “다른 방법은 없어!”

 

  ‘따르릉~따르릉’

 

  그때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미옥은 하마터면 커피잔을 쏟을 뻔했다.

 

  허겁지겁 전화기를 귀에 대자, 익숙한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정혜 어머님? 김미옥 씨 되시죠?”

 

  “네 그런데요?”

 

  “얼마 전 댁에 경찰과 함께 방문했던 조사관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무혐의 받으셨습니다.”

 

  “그래도 앞으로는 매를 드는 것은 절대 삼가시기 바랍니다. 항상 사랑과 정성으로 아이들을 대해 주세요.”

 

  그리고 여자는 웃으면서 덧붙였다.

 

  “좋으시겠어요! 김미옥 씨!, 따님이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아주 깊더라고요!”

 

  전화기를 든 채로 미옥은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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