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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서사모아
작가 : 갑주어
작품등록일 : 2020.9.22

1950년 7월 15일, 우리가 아는 대한민국은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전쟁에서 패한 이들이 망명한 곳은 다름아닌 남태평양 환상의 섬, 서사모아 제도.
그곳에서 50년 전, 태평양 깊이 잠들어있던 대한민국의 한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3화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작성일 : 20-09-22 23:35     조회 : 301     추천 : 0     분량 : 1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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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금 아침의 영광을!"

 "한반도 지상낙원!"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

 찬란한 27대 계보에 빛나는 왕실의 역사가 살아 있는 땅.

 한반도에 자리 잡아 왜적과 중국에 시달리면서도 꿋꿋하게 반만년을 지켜 낸 나라.

 그 영광은 결국 왜놈들에게 짓밟혔다가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한다.

 

 하지만 그 뒤로 시작된 소련의 신탁통치 제안.

 그것을 받아들인 김일성 공산당 파벌과 신탁통치를 반대한 이승만, 김구, 서재필 등등의 자유진영의 대립.

 결국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오히려 한반도 공식국가인 대한민국은 지도상에서 사라지게 되고, 대한민국 헌법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비공식이었던 북한- 그러니까 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적화통일로서 한반도를 차지하게 된다.

 그것이 다른 또 다른 세계의 한반도. 1950년 7월 15일의 통일 한국, 한반도 유일의 통일 국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출발이었다.

 

 이에 반대한 대한민국 국군 잔당세력이 제주도의 서귀포로 가서 항쟁을 시도했으나, 이미 지칠 대로 지치고 보급도 시원치 않았던 대항군은 결국, 남일 대장이 제안한 ‘남조선 섬멸전’ 작전 아래 제주도 서귀포로 출동한 인민군 제2사단에 의해 전멸하였고, 이들을 옹호했던 자들과 서귀포의 민간인들 역시 산 채로 불에 타 죽어야만 했다.

 

 낙원이란 구호를 쓴 그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행위라고 볼 수 있겠다.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편의상 공화국, 조선공화국이라 불리게 된다. 영문표기로는 Republic of Joseon으로 하여 Jo로 공식 명칭화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UN군과 미군은 한반도에서 철수하여 일본을 최전방 기지로 활용하게 되어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세 전범국의 오명을 벗고 자유 진영의 ‘태평양전선’ 최전방 방어선이 되었다. 그로 인해 1947년 5월 시행되었던 일본 평화헌법, 즉 일본 헌법 9조는 시행한 지 3년 만에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 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에 의거한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포기하되, 일본의 평화를 위협할 시에 있어서 행사를 검토할 수 있다.’로 수정되었다. 소련과 중국은 이에 항의했으나, UN에서도 이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함으로 긴장은 더욱 고조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동북아시아에서의 긴장 상태는 당시 조선로동당 비서인 황장엽의 계획으로 1952년 2월 29일 교토회담을 개최함으로 당시 동북아시아 평화유지 회의를 통해 미국과 화해하고, 같은 해 조일 어린이날 합동행사를 개최함으로 냉전을 마치고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온 세계에 널리 알렸다.

 

 세계에 동북아시아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선포함과 동시에 한반도에서는 체제 유지를 위해 조선로동당이 비밀리에 자유 진영은 물론, 본인들에게 반대하는 이들을 완전히 뿌리 뽑기 위한 대대적인 숙청사업이 시작된다.

 

 모두가 아는 눈물의 날, 1950년 7월 16일에 이시영 전 대한민국 부통령 외 477명의 대한민국 정부 요인들이 체포되어 평양으로 북송된다. 그곳에서 그들은 단 6시간 만에 ‘미제와 손을 잡고 전쟁의 빌미를 만든 죄.’라는 판결로 나주에 만들어진 ‘인민정치학습소’로 보내졌다. 이 학습소는 비밀리에 운영되다가 1950년 8월 20일 가결된 ‘정치범 인민 재사회화법’에 의해 ‘인민정치교화소’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당시 나주 인민정치학습소, 인민정치교화소로 이름이 바뀔 때에도 그곳을 책임지고 있던 이현상 소장은 그들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멍청한 놈들! 애초에 공화국에 충성했다면 그런 꼴을 면했을 텐데!”

 하지만 그 부귀영화도 잠시, 열흘 뒤에 이현상 역시 내란음모죄를 받았으며, 모진 고문을 받은 뒤 거짓 자백함으로 자신이 만들고 자신이 책임지던 나주 인민정치교화소에 수용된다.

 통일 전쟁 당시에도 목포, 광주 등지에서 폭동을 일으켜 혼란을 일으키고 의용군을 모아 대전을 공격하는 등, 나름 짭짤한 성과를 올린 이현상도 내란음모죄를 받은 것은 다름 아니라 김일성은 자신만의 독재체제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갑산파를 제외하고는 모두 숙청할 계획을 세워두었기 때문이다.

 

 전국 총기 사유 금지령이 선포되어 조선인민군과 보위부를 제외한 모두의 무장이 해제되고 이를 실수로라도 은닉한 자는 항소 없이 즉각 교화소로 보내졌다. 또한, 이현상과 그의 빨치산을 숙청한 것을 시작으로 김일성의 갑산파는 대대적인 공격에 나서게 되는데, 이 일이 점차 커지면서 자연스레 전쟁영웅이나 다름없던 박헌영과 남로당파가 가장 먼저 숙청을 당했다.

 이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던 방법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 잔당세력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전국에 숨어 지내던 대한민국 잔당세력을 위장하여 접근해 과격시위를 부추기거나 은근슬쩍 무기와 폭탄을 지원하여 그들이 계속된 테러와 납치, 강도, 살인 등등 무장항쟁을 계속하게 하였다. 이를 통해 인민들은 불안한 사회 속에서 점차 조선로동당에 의지하게 되었고, 정보조작과 선동에 능한 김일성은 이때다 싶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여 대대적인 대한민국 잔당세력 색출은 덤, 그를 빌미로 조작된 정보와 선동으로 견제세력의 숙청작업에 들어갔다.

 

 결국, 김일성은 박헌영과 남로당파를 내란 모의로 죄다 숙청하고, 허가이와 소련파 인물들을 회유한 뒤, 당시 의장인 김두봉을 제외한 모든 옌안파를 복종시키는 데 성공한다. 이로써 갑산파가 김일성 중심의 확고한 권력 기반을 구축하면서 1958년, 조선공화국의 정치 구도는 일당체제로 변환되었다. 조선로동당을 외에 군소 야당이 있긴 하지만 인민 모두가 일당체제로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이미 엄청난 차이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기에 국정 지향에 있어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렇게 전국의 수많은 인민교화소에는 전 대한민국 정부 요인과 국군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총부리를 겨누고 싸웠던 인민군 장교나 조선공화국에서 꽤 영웅 대접을 받던 자들과 한 데 뒤섞여 있는 웃지 못할 일도 많이 일어났다.

 

 이후 김일성은 잿더미가 된 한반도를 재건하기 위해 중국과 소련의 손을 많이 빌려오면서 전후복구에 조선노동당 고위간부와 인민무력부, 보위부 요원들을 제외한 모든 인민을 전부 공사장으로 내몰았다. 이를 반대하거나 의문을 갖는 자는 최고인민회의에서 가결한 ‘국가발전촉진법’에 의거 일 하기 싫어하는 반동분자 겸 태만분자로 낙인을 찍어버려 어김없이 교화소에 보내졌기 때문에 아무도 의문을 품지 않았다.

 

 또한, 어느 정도 보복도 했겠다, 이제는 국내외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평화와 화해의 새 시대’를 주장하며 이시영 전 대한민국 부통령과 생존한 대한민국 요인들을 교화소에서 풀어주었으며, 함께 오찬도 갖는 등의 호의를 베푸는 척했다. 목격자들 말로는 그들이 2년 정도 교화소에 있는 와중에 사람 몰골이 아닐 정도로 야위었으며 얻어맞고 혹사당했는지라 ‘평화와 화해의 새 시대’ 계획이 시행되기 한 달 전부터 비밀리에 목욕탕에서 온수로 목욕시키고 침대에서 재우며 고기를 구워 먹이는 등의 선의를 베풀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앞서 말했던 교토회담에서 열린 동북아시아 평화유지 회의에서 미국과의 화해를 성공하고, 수교를 맺고 어린이날 합동 행사를 개최함으로써 김일성의 이미지 메이킹은 그야말로 대성공이라 할 수준이 되었다. 마치 한반도에 세종대왕이 재림한 듯한 이미지 메이킹은 그야말로 김일성 우상화를 위해 황장엽 조선노동당 비서를 포함한 참모진들의 계략이었다.

 

 계속된 숙청으로 민심이 돌아섰을 줄 알았는데, 황장엽 조선로동당 비서와 참모진들의 훌륭한 계략으로 1955년 제2회 최고인민회의 인민의원 총선거 역시 대승을 거두게 되자 자신만만해진 김일성과 조선로동당은 국가주석제를 신설하고 제32차 최고인민회의에 종신 주석제를 건의했다. 이에 찬성 293, 반대 7, 기권 0의 결과로 가결되어 김일성은 손쉽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종신 국가주석에 등극한다.

 

 그 후 김일성은 소련으로부터 산업 발전을 위한 기술과 자본을 빌려 공화국 산업화를 실시했으며, 이로 인해 많은 공장과 항만, 건설현장이 생겨나 인민들을 일터로 몰아붙였다. 다리를 놓는다, 빌딩을 짓는다, 공장을 세운다 등 끊임없이 인민들을 일터로 몰아붙여 실업자 수는 역대 최저를 기록하게 되었다.

 하지만 도시화로 인해 노동 인력이 부족해지는 현상을 겪자, 김일성은 무임금이나 다름없는 교화소 수용자들은 이용하여 대대적으로 농사만을 전념하게 하였고, 이로 3천만 인민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이밥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

 거의 노예를 부리는 것과 다르지 않은 교화소 덕에 조선공화국은 먹을 쌀이 넘쳐나는 나라가 되었고, 옆 나라 일본에 쌀을 수출하는 나라가 된다. 그들이 만든 쌀은 그야말로 조선공화국이 공짜로 먹는 짭짤한 수입원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인원이 부족하다 싶으면 여러 규제를 만들어 적발된 이를 태만분자, 반동분자로 몰아 교화소로 보내곤 했다.

 참고로 교화소에 한 번 들어가면 가족들이 뇌물을 쓰지 않는 이상, 살아서 나올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 교화소에 입소하여 교화를 마치고 나온다 한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못 고쳐 또 죄를 짓고 교화소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광복 20주년인 1965년 8월 15일을 맞이하여 조선공화국의 수도를 평양에서 서울로 변환하고, 본래의 주석궁은 통일전쟁기념관으로 교체, 경복궁 뒤에 신 주석궁을 세우는 등의 보여주기식 화해사업을 계속해서 시도한다.

 게다가 지속된 테러로 인해 김일성의 장남인 김정일이 폭사 당하고 그 영정 차량은 전소되는 등의 사고가 발생하자 오히려 이제는 대한민국 잔당세력의 무장항쟁이 명분 없는 테러이며 폭력의 주범들이다는 생각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에 김일성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자 모든 공화국 인민들의 내재 된 충성심이 강하게 표출되기 시작한다.

 88서울 올림픽 개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해체로 인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자주 독립국 선언, 2002 조일월드컵 공동개최 등등 김일성이 사망하고 나서도 그의 차남인 김정수가 전당대회를 통해 권력을 물려받으면서 그 부자의 우상화는 그야말로 절대적으로 되어버렸다.

 이러한 사업들로 인하여 알게 모르게 이미 모든 한민족의 머릿속에는 김일성에 대한 찬양과 존경심이 깊이 박히기 시작했고, 이것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심화 된다.

 아돌프 히틀러도 이 정도는 못 했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50년이 흐른 지금, 올림픽과 월드컵까지 개최한 국가인 조선공화국이지만 국가별 1인당 GDP는 세계순위에서 베트남을 간신히 앞선 2,500억 5,000만 6,400달러를 찍었다. 몽골,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과 어깨를 겨루며 옆 나라 일본과 중국, 러시아에 비해서는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이 사실이다.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연장으로 인해 부산-모스크바 노선의 덕을 보고 있기는 하지만, 최근 중국의 실크로드 노선 개방으로 인해 중국과의 무역 협정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소련의 붕괴 이후에는 중국과의 운명공동체 선언을 통해 변하지 않는 동맹국이자 형제국임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조선공화국의 인민은 약 7천만 명으로 한반도에 그리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적당한 수준을 기록하고 있으며, 인구구조는 아직 까지는 피라미드형을 유지하고 있어 국가발전에 있어서 긍정적으로 보인다.

 

 공용언어는 조선어라 불리며, 한국어라고 부르는 것은 대한민국을 아직도 못 잊은 반동분자로서 큰 엄벌을 받을 수 있다. 문자 또한 한글이 아닌 조선어자모라 부르며 이는 한자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정의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명분이 그렇다는 것이고, 한자어를 사용하지 않는 글자가 그리 많지 않다는 독특한 모순이 있다.

 

 종교의 자유는 보장하고 있으나 사실상 공화국 자체가 종교를 지양하고 있다. 2002년 공화국 통계청의 조사에서도 7천만 인민 중 ‘종교 없음’이 91%를 기록했고, 무속인을 따르는 민족종교가 8%, 나머지 1%를 불교와 천주교가 차지하고 있으나 무의미한 수치이다. 참고로 개신교는 미국 선교사의 영향이 있었다는 역사적 기록 아래 종파를 막론하고 예배당의 설치를 금지하며, 신도가 되는 것 자체를 암묵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조선공화국의 행정구역은 크게 광역으로 2개 특별시, 8개 직할시, 2개 특별구, 9개 도로 이루어져 있다.

 특별시는 당연히 실질적 행정수도인 서울과 군사적 수도이자 공화국 정신의 수도인 평양이다. 직할시는 공화국 내 특정 또는 주요한 시설과 이를 동반한 기관이 있어 내각의 직접적인 직할하에 있는 도시를 뜻하는데, 인천, 개성, 대전, 광주, 함흥, 대구, 부산, 울산으로 구성된다. 두 개의 특별구는 관광 및 민족정기의 근본이 되는 두 지점을 둔 것으로, 백두산 일대의 양강도 내 백두특별구와 한라산이 있는 제주도 전체로 구성된다. 특별구에는 일반적인 거주목적이 아닌, 관광사업을 위한 관리를 위한 인력과 안전을 유지하는 공화국군만이 거주가 가능하다. 특히, 제주특별구의 서귀포시는 공화국 해군의 근거지라 해도 손색없는 곳으로, 관광객을 포함하여 일반 인민의 출입이 엄격하게 금지되는 군사도시이며, 백두특별구 내 김일성 주석의 생가가 있는 ‘공화국 1호 구역’ 또한 조선로동당 최고위간부만 특정 시기에 출입 가능한 베일의 구역이다.

 

 공화국 내 일반적인 치안은 내각 국무위원회 산하 인민보안부를 설치하고 직할시는 물론 특별구와 도에 보안국을 두어 치안유지 및 반동, 태만분자를 색출하는 경찰사무를 담당하게 한다. 이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경찰이며, 보안국에 공화국 보안대에서 나온 정치경찰이 3~4명씩 배치되어 이들을 관리 감독하는 역할이다.

 

 조선공화국의 군대는 상비군 약 120만 명으로 이루어진 공화국군과 유사시 집결 가능한 약 800만 명의 인민예비군, 그리고 각종 교화소와 교도소에 있는 수감자들이 유사시에 동원되는 형벌부대로 이루어져 있다. 육해공 전력에 특전대와 특무대, 그리고 보안대라 하여 군 내는 물론 공직자와 여러 국내외 주의 인물을 감시 및 관리하는 일종의 정치장교 집단 겸 헌병이면서 국가 정보기관인 부대가 존재한다. 물론 중대급 이상 규모에는 보안대에서 파견된 정치장교가 1명씩 배치되어 지휘관과는 별도로 공화국의 지침과 국가 사상에 부대가 반하지 않도록 지도하는 일을 한다.

 공화국군을 포함한 모든 조선공화국의 군대는 모두 내각 국무위원회 인민무력부의 지시에 따르며, 알다시피 국무위원회의 장은 국가주석이다. 따라서 공화국의 모든 군은 국가주석의 지시에 따른다.

 보통 육군은 두만강과 압록강을 따라 설치된 중국, 러시아와의 국경지대를 중심으로 존재하며, 해군은 제주특별구의 서귀포시를 중심으로 부산직할시와 함흥직할시, 인천직할시에 퍼져 존재한다. 공군은 비행장이 있는 서울특별시와 평양특별시, 그리고 광주직할시와 남포시를 중점으로 존재한다. 특전대는 평양특별시에 본부를 두었으나 소재는 알려지지 않으며, 특무대는 수도방위군과 중앙군으로 나뉘는데, 수도방위군은 이름 그대로 서울특별시만을 수호하는 상비군이며, 중앙군은 평양특별시만을 수호하는 상비군이라 보면 된다. 특무대는 공화국에서 가장 뛰어나고 가장 충성심 있는 자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타 군 혹은 부대와 계급을 같더라도 대우에서 큰 차이가 있다.

 

 조선공화국의 인민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공화국의 보호 아래서 편하게 먹고 자며 생활할 수 있다. 인민은 태어남과 즉시 인민번호가 부여되어 공화국의 인민이 되며, 7세가 되는 때에 인민소학교에 입학하여 인민중급학교, 인민고급학교를 지나 19세가 되면 공화국 인민증이 정식으로 부여된다.

 인민고급학교를 졸업한 후에 ‘인민대학 추천서’를 받지 않은 전체 중 90%의 대다수 인민은 로동현장에 뛰어든다. 각자 특기와 적성에 맞추어 국무위원회 산하로 전국에 위치한 로동관리국의 배치 명령에 따라 일터에 배정받는다. 로동관리국은 해당 인민이 부적합한 로동을 하지 않도록 엄격하고 세세히 검토하여 알맞은 분야로 배치하기에 절대 틀리는 경우가 없다. 그저 행복하게 맡은 일만 하면 평생 걱정 없이 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단, 3번 이상 지각하거나 진료허가증 없이 무단으로 3번 이상 결근하면 태만분자로 간주 되어 교화소에 끌려가게 되기에 인민들은 각자 맡은바 배치된 곳에서 열심히, 그리고 묵묵히 로동해야 한다.

 

 인민이라면 살면서 한 번쯤은 경찰이나 정치경찰에게 체포되어 인민재판소에 설 때가 있다. 이때 인민변호사들이 피고를 무상으로 변호해준다. 공화국에는 검찰이 존재하지 않고 인민보안부의 경찰과 공화국군 보안국의 정치경찰이 직접 증거를 찾고 수색하여 고발함으로 원고가 된다. 즉, 수사권 자체가 경찰에게 있으며 기소권 역시 가지고 있다. 물론 정치경찰에게도 수사권과 기소권이 존재하고, 공화국군 보안국의 정치장교 역시 수사권과 기소권이 있어 수사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견제와 균형을 이루어 공정한 수사가 가능하다.

 인민변호사들이 피고를 무상으로 변호하기에 인민들은 자신이 재판에 서더라도 절대 걱정하는 일 없이, 인민재판관의 판결을 받아들인다. 항소심 제도는 있으나 인민들은 사용하지 않는다.

 

 조선공화국의 인민들은 병이 들거나 다쳤을 때 공화국 내 수 많은 양질의 인민병원을 찾는다. 하지만 꾀병과 같이 태만에 이용될 우려가 있으므로 공화국 인민증이 있는 자는 배치된 로동현장의 관리자에게 가서 진료허가증을 받아야 하며, 이하의 미성년 인민들은 소속된 학교에서 진료허가증을 받아 진료를 받아야 한다. 이를 어길 시에는 태만분자로 간주 되어 몇 번 경고를 받고 경고가 쌓이면 교화소에 보내진다.

 만약 공화국의 인민이 휴가를 가고 싶다면 배치된 로동 기관에 가서 휴가계획서를 작성하고 이를 승인받아야 하며, 이하의 미성년 인민들은 소속된 학교의 방학 기간에만 휴가를 즐길 수 있다. 공화국 로동관리국은 모든 인민에게 1년(365일 기준)에 공휴일을 제외한 20일의 법정 연차를 보장하며, 1년에 3번의 반차를 보장하고 있다. 로동현장의 모든 인민은 친구 혹은 가족과 친지들과 함께 휴가계획을 같이 잡으며 행복한 만담을 즐긴다.

 해외여행 또한 공화국이 자주 독립국이기에 모든 인민에게 보장되고 있다. 공화국 인민증이 발급되는 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여권도 같이 발급된다. 미성년 인민들이 해외여행을 하고자 한다면 마찬가지로 여권이 발급되나 유효기간이 짧은 편이다. 어릴 적부터 자랑스러운 인민임에도 불구하고 공화국에 대한 이해보다 타국을 이해하는 모순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해외여행을 하고자 한다면 먼저 배치된 로동 기관에 가서 휴가계획서를 작성할 때에 거주하는 지역의 공화국 외교관리국에 마찬가지의 서류를 작성해 승인받아야 한다. 외교관리국의 승인이 없으면 공항 및 항만, 육로를 통한 해외여행은 불가능하다.

 사실 많은 인민이 해외여행을 하고자 하나,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타국 화폐와의 환전이다. 미국과 일본을 포함한 미국과의 동맹 국가들은 조선공화국을 시기하기에 높은 환전수수료를 책정해둔다. 예를 들어 일본의 엔화는 100엔이 무려 조선공화국 20,000원에 해당한다. 보편적인 로동을 통해 버는 한 달 인민수당이 80,000원인데, 일본에서 하루 여행하는 데 약 12,000엔이 든다고 가정한다면 조선공화국에서 환전 시 2,400,000원이 된다. 한 달에 아무런 지출도 없이 30달을 저축하면 일본에서 하루 여행할 수 있는 셈이 되는 셈인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므로 인민에게 해외여행이란 동맹국이라 그나마 물가가 비슷한 중국이나 배편을 통한 베트남 정도다. 그나마도 일생에 한 번 정도 갈까 말까 한 수준이며, 비행기는 꿈도 꾸지 못한다.

 하지만 공화국의 인민은 이러한 현실에 불만을 갖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미국이 제국주의를 표방하며 전 세계를 손아귀에 넣으려 하고, 그 밑에 들어간 일본과 같은 식민지나 다름없는 국가들에게는 제재를 적게 하면서 사탕발림을 하고 조선공화국과 같은 자주 독립국에는 무자비한 제재를 가했기 때문이다.

 공화국의 인민들은 그깟 다른 나라 가서 놀고 오자고 미국에 고개를 조아리는 것보다 조금 아쉽더라도 아름다운 공화국의 푸르른 강산을 보며 즐기고 자주 독립국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조금 아쉽고 조금 굶주려도 절대 악의 세력에 굴하지 않는 것, 그것이 공화국의 자랑스러운 인민이자 로동으로 흘리는 땀의 근간이다.

 

 로동현장에 뛰어들지 않은, 이를테면 인민대학 추천서를 받은 인민은 전국 11개 대학에 입학할 기회가 주어진다.

 조선공화국의 대학은 실제로는 12개이지만, 평양에 있는 김일성종합대학은 조선로동당이 직접 세운 민간대학으로 조선로동당 간부와 그들의 자녀만 입학 지원이 가능하기에 인민대학 추천서를 받았다면 전국 11개 인민대학 중 자신의 적성에 맞추어 입학할 수 있다. 입학은 추천서 한 번으로 한 개의 대학만을 지원할 수 있으며, 만약 자퇴하거나 성적이 좋지 않아 3번 이상 유급하는 경우에는 태만분자로 간주 되어 강제 퇴학당한 뒤 로동현장으로 보내진다.

 인민대학은 일본의 제국대학을 본떠 만든 교육기관이다. 평양에 있는 김일성종합대학을 공화국 내 유일한 종합대학이자 공화국 최고의 대학으로 여기며, 각 직할시에 한 가지씩 특성을 가진 인민대학을 설치하였다.

 국가학 서울인민대학, 군사학 평양인민대학, 의학 서대문인민대학, 외교 무역학 인천인민대학, 언론학 개성인민대학, 경제학 대전인민대학, 농학 광주인민대학, 항공 해양학 함흥인민대학, 예술계 대구인민대학, 제1이공계 부산인민대학, 제2이공계 울산인민대학으로 총 11개이다.

 각 인민대학에는 각기 다른 색을 바탕으로 한 특수한 문양이 그려진 교복이 있어 학생들은 교복을 착용하여 멀리서도 인민대학 학생을 어디 소속인지까지도 알 수 있다.

 학사 생활 내 학생부가 존재하며, 외부 압력을 통해 공화국에 헌신적인 청년들로 구성된 일종의 국가 엘리트들이다. 정치 및 전공 분야에서의 고위직을 꿈꾼다면 무조건 해야 하는 일종의 등용문이다. 예를 들어 국무위원회 농수산부에 들어가고자 하고자 한다면 광주인민대학 학생부장 출신이어야 매우 유리하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니 맹신하지는 말라.

 

 이렇게 서울인민대학을 졸업한 인민재판관과 인민변호사, 경찰과 정치경찰이 되고, 평양인민대학을 졸업하여 군 장교와 정치장교가 되며, 서대문인민대학을 졸업해 의사와 간호사가 되고, 인천인민대학을 졸업해 외교관과 통역관이 되는 등, 인민들의 미래는 바로 공화국의 추천을 받은 공화국 내 엘리트 집단이 이끌어간다.

 부모의 등쌀에 떠밀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서 등등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닌, 공화국의 부름을 받아 본인이 원하는 전공을 배워 공화국에 꼭 필요한 전문인력이 되는 영광의 문은 바로 인민대학의 정문을 통해 이루어진다.

 인민대학에 가지 못한 93%의 인민은 이들의 지도와 헌신을 통해 살아가며, 늘 이들에 대한 경외감과 존경심을 가지고 살아간다. 때때로 한여름에 인민대학 교복을 입은 학생이 길을 걸어가면 목을 축이라고 냉수 한 바가지를 떠주는 할머니나 공짜로 태워 줄 것이니 어서 타라고 인력거를 대는 아저씨들을 볼 수 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공화국의 광경인가!

 그 때문인지 인민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은 모두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여 각기 분야를 통해 공화국의 발전을 이끌어나간다.

 

 이토록 모든 인민이 가슴 속에 품은 정신과 행복, 그것은 바로 조선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미국으로부터 간섭받지 않는 지구상 몇 안 되는 자주 독립국이며 한반도의 유일한 한민족 국가라는 점이다.

 아무리 힘들고 고달파도 모든 인민은 그 정신을 품고 힘차게 살아간다. 그것은 인민의 역사에 아주 작은 잠시일 뿐이다.

 

 김일성은 그들에게 태양과 같은 빛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지도자이고, 아버지와 같은 포근한 사람이다.

 그의 삼남 김정수는 똑똑하고 현명하고 훌륭하며 자비로운 청년 주석. 7천만 인민의 아이돌이자 그들의 리더. 그의 천재적인 계획과 화끈한 행동력으로 공화국은 불 꺼질 날이 없으며 인민의 역사는 계속 이어진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인민을 위한 한반도의 지상낙원.

 이곳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작가의 말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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