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그러게 왜 깝죽대?
지담의 집으로 찾아온 세윤은 수훈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은 걸 지담에게 얘기했다.
지담은 마음이 착잡했다. 그리고 수훈이가 제일 걱정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어머니 일이기에 더욱 상처가 클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어머니와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이번 일로 사이가 더욱 악화 될까 걱정이었다.
그렇다고 자신을 위해 나서 준, 세윤을 탓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미안....그렇다고 모른 척 가만히 있을 순 없었어... 수훈이도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이라고 생각해... 언제까지 숨길 순 없잖아..."
"........."
아무 말이 없는 지담 때문에 세윤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건 수훈이를 위해서도 말해야 했어... 수훈이가 다음에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그때도 그 어머니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 수훈이는 더 힘들어질 거야”
세윤의 말도 맞다... 그런데도 지담은 마음이 무거웠다.
“그냥 이번 계기로 수훈이가 예방주사 맞았다고 생각하자”
지담의 표정이 풀어지지 않자, 세윤은 걱정 말라는 듯 말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수훈이가 알아서 잘 대처 하겠지...”
“그럼~수훈이가 부모님에게 반항할 나이도 아니고 알아서 잘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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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훈은 본가에서 나온 지 벌써 일주일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가게 근처 오피스텔로 들어간 수훈은 가끔 술에 취하거나 일이 있을 때, 머무는 곳이었다.
진작 독립했어야 했고, 독립할 나이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참에 본가에 들어가지 않고 독립하기로 마음먹었다.
침대에 누워 눈을 팔로 가린 체, 생각에 잠긴 수훈은 지현이가 갑자기 왜 그렇게 자신을 매몰차게 대했는지 이제야 깨달았다. 그때는 미처 몰랐다.
그런 그녀를 얼마나 원망하고 또 원망했던가.... 지현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그땐 지금보다 더 어린 나이였는데, 그걸 감당했을 그녀가 더 안쓰럽게 느껴졌다.
“미안하다 지현아”
이제와서 아무 소용이 없는데, 수훈은 툭 그 말이 나왔다.
그리고는 지담에게 사과를 하고 싶어 전화기를 들었지만, 통화버튼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조차도 너무 미안해서 전화를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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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어김없이 강현은 지담을 만나러 갔다.
오늘은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 데려갈 참이다. 지담에게 뭐든 해주고 싶은 강현은 그녀를 만나는 시간이 즐겁고 설레고 행복했다.
“오래 기다렸어?”
지담이 조수석에 탈 때까지 그는 내려서 문을 열어 줄 생각조차 못하고 걸어오는 그녀의 모습에 정신을 빼앗겼다.
-내가 이렇게 빠졌나... 서지담이 예쁘긴 하지-
마치 여우에게 홀린 듯 넋을 놓았다가, 이내 그는 머리를 가로저으며 이성을 붙들었다.
그리곤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나 당신한테 너무 빠진 것 같아”
“엥?”
지담은 이건 또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하고 미간을 찌푸리며 강현을 쳐다봤다.
“당신도 나한테 좀 빠져 봐”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그런 진지한 얼굴로 오글거리는 멘트는 그만 좀 날려...더 닭살 돋거든?”
지담은 소름이 돋아 양손으로 팔을 빠르게 문질렀다.
그 모습을 본 강현은 지담의 볼에 입을 가져다 댔다.
그의 뜨거운 입김이 볼에 닿아 지담의 볼이 더 빨개졌다.
“하여튼, 내 말은 죽어도 안 듣지...”
못 말린다는 듯 지담은 고개를 저으며, 안전 벨트를 맸다.
“큭큭... 그러니까 내가 장담 못 한다고 했잖아”
강현은 기분 좋게 레스토랑을 향해 차를 몰았다.
모처럼 분위기 좋은 곳에서 맛있는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디저트로 강현은 커피를, 지담은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식사는 어땠어?”
“맛있긴 한데, 양이....”
거기까지 말하는데 지담의 말이 묻혀버렸다.
“오빠? 강현 오빠!”
몸매가 한 끗 드러나는 검은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낭랑한 목소리로 강현을 불렀다.
“어? 아...연호구나”
“여긴 어쩐 일이야? 식사하러 왔어?”
그러고는 강현의 옆자리에 덥석 앉았다. 몸매만큼 얼굴도 귀여운 그 여자는 강현과 무척 가까워보였다.
“일행이 있었던 거 아니야?”
옆자리에 앉은 연호가 못마땅한 강현이 그녀에게 물었다.
“아~ 모임이 있었는데 끝나고 나가는 중 이었어... 근데 이분은 누구?”
연호는 그날 호텔에서 얼핏 보았지만, 강현이 안고 나간 그 여자인 걸 알아봤다.
“아...인사해 연호야, 내 여자친구 서지담씨, 지담씨, 여기...”
강현이 연호를 소개 시켜주려는 순간, 연호가 강현의 말을 자르고 자신이 직접 자기소개를 했다.
“송 연호에요...강현 오빠를 좋아하는...” 물론, 이딴 식으로 ....
“연호야!”
강현의 단호한 언성에 연호는 움찔하긴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지담에게 말을 했다.
“약혼도... 할 뻔한 사이죠”
약혼이라는 말을 하면서 강현의 눈치를 슬쩍 본 연호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이 여자를 흔들고 싶었다.
“아~그래요? 할 뻔한 사이라면, 잘 안 됐나 봐요~음~짝사랑은 힘든데... 쯧쯧”
그러나 당하고 있을 지담도 아니었다.
“뭐라고요?”
연호는 씩씩거리며 일어섰다.
강현이 여자친구라고 당당히 소개하는 모습에 질투가 났었다.
그래서 자신이 강현을 좋아한다고 말했고, 약혼 말도 일부러 흘렸는데 이 여자는 전혀 동요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그녀에게 말려 발끈하게 된 것이다.
“아~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요... 내 말투가 워낙 내 미모를 안 따라줘서 나도 곤란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거든요”
-그러게 왜 깝죽대? 이 철부지 아가씨야-
속으로 이렇게 말한 지담은 아무런 흔들림 없이 묵묵히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뭐 이런 여자가 다 있어? 오빠, 이 여자 머리가 좀 이상한 거 같아”
“그게 이 여자 매력이야”
강현은 흐뭇한 표정으로 지담을 바라보며 말했다.
“뭐?”
연호는 여전히 씩씩대며 그곳을 벗어났다. 더 있다가는 자신이 더 말려들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선호에게 전화를 걸어
“오빠, 강현 오빠 이상한 여자 만나더니, 정상이 아니야”
<“뭐라는 거야?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빨리 집으로 들어가”>
하고 선호는 전화를 툭 끊어버렸다.
“아~씨 오늘 일진이 왜 이래?”
자존심이 팍 상한 연호는 오늘 이 수모를 꼭 되돌려 줄 거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