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보이지 않는 신경전
강현의 놀라운 연애 소식에, 아버지 송 회장에게 빨리 말하는 게 상책이다 싶은 선호는 퇴근 후, 집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후~”
송 회장은 선호의 말을 다 듣고 난 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 어떻게 하실 건가요?”
“내가 먼저 전화를 해서 약혼 말을 했단 말이다... 이제 와서 어떻게 없던 일로 하자고 내 입으로 말을 해?”
연호의 말만 듣고 성급하게 일을 진행한 송 회장은 난처한 얼굴이었다.
분명 연호는 서로 좋아한다고 했는데, 강현은 다른 여자가 있다고 하니, 난처할 수 밖에...
그렇다고 자신이 먼저 약혼 말을 했는데, 이제와서 자식의 거짓말에 속아서 그랬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 민폐가....
그때 연호가 들어왔다.
“오빠 일찍 왔네? 새언니 저녁 다 됐어요?
“연호 이리와 앉거라”
“응, 아빠...왜?”
“왜~에? 이 녀석아 왜라는 말이 나오냐? 너 분명 아버지한테 강현이랑 너랑 서로 좋아한다고 했어, 안 했어?”
“아빠....그게 아니라....”
뜨끔한 연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실 송 회장에게는 강현과 서로 좋아한다고 말 한 연호였다. 그렇게 말해야 일이 빨리 진행 될 것 같아서였다.
또한, 연호는 송 회장에게 자신이 강현을 좋아한다고 강현 부모님께는 그렇게 말하라고 시켰다.
서로 좋아한다는 거짓말을 강현 부모님이 알게 되면 당연히 강현도 알게 되는 건 뻔하니까...
그리고 송 회장에게는 강현이,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 약혼 말을 꺼내기가 어려우니 자신이 강현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강현도 부모님께 말씀드리기가 쉬울 것이라고 둘러댄 것이다.
이 모든 거짓말이 어떻게 들통이 난 건지... 그녀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있었다.
“빨리 말 못해? 강현이는 다른 여자가 있다는데, 너 어쩌자고 일을 이 지경으로 벌린 거야..
어이구... 저걸, 어미 없이 자란다고 오냐오냐 키웠더니...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응?”
“강현 오빠 다른 여자 있데? 아~씨, 어떤 여잔데? 누군데 그 여자!!”
“넌 가만히 있어... 지금 너 때문에 아버지 입장이 곤란해지셨잖아! 그리고 강현이 집에서 이 사실을 알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이제 철 좀 들어라 응?”
“아~몰라... 언니 나 밥부터 줘요, 배고파요”
연호는 강현의 부모님 얘기에 뜨끔했고, 이 상황을 모면하려고 부엌으로 향했다.
그리고 강현이 다른 여자가 있다는 사실에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 여자가 대체 누구야? 설마... 호텔에서 본 그 여자는 아니겠지?-
하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 모습을 본 두 부자는 저 철딱서니를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었다.
“아버지 제가 강현이를 만나서 사과를 하고, 없던 일로 하자고 할게요, 아버지는 그 다음에 그 댁에 연락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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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러고 나가서 연락조차 없는 막내아들이 걱정된 혜진은, 급기야 선호에게 연락을 했다.
선호는 강현과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선호는, 강현이 어머니를 잘 따랐고, 강현이 집에 자주 놀러 갔었다.
선호는 강현을 먼저 만나려고 했는데, 강현의 어머니가 먼저 연락이 와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j호텔 커피숍에서 약속을 한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
“여기까지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어머니... 제가 멀리 나갈 수 없는 상황이라...”
“아니야, 바쁜 사람 불러내서 내가 미안하지...”
“연호랑 강현이 일 때문에 오셨죠?”
“그래.... 원래도 사이가 안 좋은 부자지간인데, 강현이가 아버지랑 싸우고 그 이후로 연락도 없고 집에도 안 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이러다 부자지간 연 끊어질까 걱정도 되고...”
“그렇군요...그렇지 않아도 지난번에 연호 일로 절 찾아왔었습니다”
“그래? 강현이가 무슨 말 했어?”
“약혼 없던 일로 해 달라고요... 그리고 어머니....”
잠시 머뭇거리던 선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 연호가 강현이를 너무 좋아해서 아버지께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고 말했답니다. 그래서 아버지도 성급하게 일을 진행하셔서... 아버님 어머님께는 죄송하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그렇지 않아도 약혼 말이 오고 간 뒤에, 다른 말씀이 없으셔서 걱정하고 있었는데...그럼 약혼은 없던 일로 하면 되겠구나... 그리고 송 회장님께는 괜찮다고 말씀드려라...”
혜진은 안도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여동생이 아직 철이 없어서 그러니 너그럽게 용서해주십시오. 아버님께는 제가 직접 찾아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알았다, 다음에 안사람이랑 집에 한번 놀러 오거라... 너 좋아하는 등갈비 김치찜 해 줄게...지민이 많이 컸지? 우리 강현인 언제 결혼해서 그런 손주를 안겨 주려는지...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바쁜 사람 붙잡고 내가 뭐 하는지... 빨리 올라가봐”
혜진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선호에게 말했다.
“아닙니다 어머니, 그리고 지민이 데리고 김치찜 먹으러 갈게요...”
강현의 어머니를 배웅하고 돌아선 선호는, 이제 한시름 놓은 듯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강현에게 연락을 했다.
선호에게 연락을 받은 강현은, 이제야 답답한 마음이 풀린 듯 넥타이를 조금 풀었다.
선호의 아버지 송 회장이 사업에 있어서는 욕심이 많고 철두철미한 사람이지만, 자식의 일이나 도리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는 분이기에 그나마 일이 잘 풀린 것이다.
“수고했어, 그리고 고맙다”
강현은 일이 쉽게 풀린 게 선호 힘이 컸다는 걸 안다.
“그래...암튼 연호 때문에 미안하게 됐다”
선호는 강현에게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됐어... 술이나 한잔하자”
“그래, 연락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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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프로그램과 행사 프로그램 때문에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지담은, 팔자에도 없는 연애까지 하게 되어 그야말로 눈코 뜰 새가 없었다.
하루 아니 퇴근 후라도 집에서 편히 쉬고 싶었다.
그런데, 하루가 멀다하고 매일매일 찾아오는 강현 때문에, 퇴근 후의 시간은 이제 그녀만의 시간이 아니었다.
덕분에 피곤하긴 해도, 이전에는 느끼지 못한 일들을 새롭게 경험하게 되었다.
남자랑 영화를 보러 가고, 드라이브도 가고, 산책도 같이하고, 운동도 하고.... 이런 소소한 것도 즐겁고 재미있을 줄이야.... 지담은 ‘남들은 이렇게 연애를 하는구나’ 하고 새롭게 느꼈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어느덧, 한 달이 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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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은 두 번째 봉사활동부터는 한 시간 앞당겨 9시부터 진료를 볼 수 있도록, 지담에게 얘기를 해 놓았다.
그녀를 좀 더 일찍 볼 수 있고, 좀 더 세밀하게 진료를 할 수 있기에... 강현은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30분 먼저 도착한 강현은, 사무실로 곧장 올라가려다, 식당에서 얘기 소리가 들려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을 연 순간, 강현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점점 굳어졌으며, 말아 쥔 주먹엔 힘이 들어갔다.
다른 옆자리도 많은데, 지담이 수훈 옆에 앉아서 음식 재료를 손질하고 있었고, 수훈은 그런 그녀를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 선생님 일찍 오셨네요?”
세윤이 먼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아....네, 저는 뭐하면 됩니까?”
그녀의 옆자리는 자신인데, 수훈이 당연히 비켜줄거라고 생각한 게 아무래도 착각인가보다.
수훈을 계속 쳐다보았지만, 수훈은 그런 강현의 시선을 모른 척했다.
강현은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수훈을 쳐다보며 지담의 맞은편에 앉았다.
급격히 기분이 나빠진 강현은 지담과 수훈이 손질하고 있는 채소를 조금 덜어 자신의 앞에 내려놓았다.
한 번도 이런 일을 해보지 않았던 강현은, 지담이 하는 걸 보면서 따라 하는데도 서툴렀다.
“이 선생님은 세윤이랑 진료실 가서 준비하시는 게 좋겠네요...”
수훈은 채소를 다듬는 강현의 서툰 솜씨에 한마디 했다.
“세윤씨, 시간이 아직 괜찮죠?”
강현은 수훈에게 대답하지 않고 세윤에게 질문했다.
“네...아직 10분정도는 여유가 있어요...”
세윤은 미묘한 신경전에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대답했다.
그때, 지담이 벌떡 일어서더니.
“그래요? 그럼 나머지는 여러분에게 좀 부탁할게요, 난, 진료받으실 분들이 오셨는지 나가 볼께요”하며, 손을 탁탁 치며 나가버렸다.
아무래도 이 어색한 분위기가 끝나려면, 자신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한 지담 이었지만, 그건 그녀의 착각이었다.
-이 남자 아직 포기를 안 한 모양이네-
강현은 속으로 생각하며, 수훈을 노려보았다.
-쉽게 포기할 거였으면, 고백도 안 했지...-
수훈 또한 강현을 노려보면서 생각했다.
두 남자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지금부터 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