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이제는 내가 연락할 방도가 없네. 소반을 가운데 두고 마주한 덕만과 상미는 건조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덕만은 씁쓸한 얼굴로 상 위에 시선을 떨군다. 나지막이 전하는 그의 이야기에 상미는 연신 고개를 끄덕여준다.
“예전에 물어물어 어렵게 호준이 연락처를 알아냈는데 연락하니까 어떻게 자기 번호를 알아냈냐며 불같이 화를 내더군. 그리곤 그 전화번호도 바꿔버려서 이제는 연락해도 모르는 사람이 받아. 그 놈이 나한테 서운한 게 많아서 말이지.”
서서히 해가 저물기 시작한다. 어두워지기 전에 나서야 할 거 같다며 상미가 일어선다. 덕만이 그녀의 차 앞까지 나와서 배웅하자 상미는 차에 오르기 전 아버님, 식에 꼭 오세요라며 담담하지만 굳은 의지가 담긴 말투로 전한다.
“호준이가 그러라고 하더냐?”
“아버님, 다른 날도 아니고 결혼식이에요. 제가 호준 씨 어떻게든 설득해 볼게요.”
해가 기울어 어둑한 하늘을 뒤로 하고 상미의 차가 고속도로 위를 달린다. 먼 거리를 운전한 피곤함이 짙어지며 시간이 갈수록 눈이 더욱 충혈된다. 양손으로 잡고 있던 운전대를 왼손 하나로 옮겨 잡더니 오른손으로 옆자리에 놓인 휴대폰을 주워든다. 잠금장치를 풀고 전화기능을 띄우자 부재중 통화시도 전화번호가 바로 올라온다. 덕만의 집으로 들어갈 때 차에 두고 내린 휴대폰으로 반복해서 연락이 왔었다.
번호를 확인한 후 전화를 걸진 않고 화면을 껐다.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폰의 뒷면을 두 번째 손가락으로 가볍게 톡톡 두드리는 찰나였다.
“애기야.”
벽 하나를 두고 전해져오는 옆방의 텔레비전 소리 같은 선명하지 못한 둔탁한 전달이었다. 상미는 잠시 그 소리가 뭔지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다가 휴대폰의 화면을 바라본다. 부재중 전화번호가 떠 있는 화면에 아무 변화가 없다. 휴대폰에서 무슨 소리가 난 거 같았는데? 상미가 무심코 차의 속도를 떨어트리자 뒤따라오던 차의 운전자가 불평하는 고함을 질러대며 빠르게 옆을 추월해간다. 당황한 얼굴로 다시 앞으로 시선을 두며 운전에 집중하려 했다. 수신 상황이 좋지 않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법한 기묘하게 울리는 소리가 차 안 공간 사이를 비집고 튀어나온다.
“애기야.”
놀란 상미는 본능적으로 급정거를 하며 갓길에 차를 세운다. 다행히 뒤따라오는 차는 없었다. 어둑해진 갓길 자갈 위에 상미의 차가 비뚤하게 멈춰서 있다. 운전자는 급하게 차를 세우며 충격을 받았는지 텅 비어버린 얼굴로 운전대를 잡고 상체를 숙인 채 움직이질 않는다. 잠시 후 정신이 들자 상미는 화들짝 몸을 세우더니 아악, 질겁하는 소리를 내며 거칠게 문을 열고 밖으로 튀어나온다.
양팔로 가슴께를 감싼 채 공포에 질려 차에서 멀리 떨어지기 위해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애써 움직인다. 상미는 누구에게든 연락을 취하려 하지만 휴대폰을 차에 두고 나온 것을 깨닫자 감히 차로 되돌아가지는 못한 채 뒷걸음치며 바라보기만 한다. 숨이 거칠고 머리카락은 바람에 날려 사방으로 흩어졌다. 해가 완전히 저버려 주변에 어둠이 깔린다. 지나가던 사람이 지금 같은 그녀를 얼핏 본다면 귀신이라며 질겁할 만한 모양새다. 자세히 보면 그 모습을 한 당사자가 귀신을 본 듯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