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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공포물
당신은 얼마나 많은 치킨을 먹어왔나
작가 : 아이윙
작품등록일 : 2020.8.29

월, 수, 금 연재. 주말 자유 연재
치킨에 관련된 미스테리를 파해치는 주인공이 광기에 빠져가는 모습을 서술한
코스믹 호러 장르의 제 첫 소설 입니다.
익숙한 소재에서 느껴지는 기이함과 괴이함, 점차 미쳐가는 주인공의 내면을 묘사 했습니다.
제 첫 작품 입니다. 모쪼록 즐겨 주십시오.

아 19금 까지는 아니라도 장르 특성상 약간의 무서운 부분은 등장합니다. 최대한 깔끔하게 서술 했으니,
무시무시한 장면도 포함해서 즐겨 주세요!!

 
XI 지옥을 목격하다
작성일 : 20-09-20 23:57     조회 : 270     추천 : 0     분량 : 7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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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I

  내가 과학 기술 분야의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종류의 인간이라는 건 명백한 사실이니, 실험실이니 연구실 같은 시설들 따위를 낯설게 느낀다는 사실 자체는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허나 내 배경 지식의 부재와 심장의 테두리를 따라 촘촘히 박혀 있는 긴장감을 감안하고서라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눈에 들어오는 2층의 광경은 눈으로 보기만 해서는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할 만큼 이질적이고 생경한 풍광의 연속이었다. 살아 움직이는 듯 정밀하게 설계되어 시시각각 요동치는 기계장치가 시야를 가득 메우는 2층 동 전체는, 한마디로 거대한 과학 기술의 연결체였다. 구석에서 허연 연기를 내뿜으며 끓어오르는 화학 용제가 순식간에 중앙에 놓여있는 거대한 플라스크로 빨려 들어와 급격하게 형태와 속성을 변화시키는 동시에 다른 장치를 향해 온갖 약품들과 섞여 광속으로 이동하는 일련의 과정이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모습이, 2층 실험실 전체가 사실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의 뱃속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만큼 모든 실험 공정이 유기적으로 정밀하게 조정되며, 사람의 손이 닿지 않더라도 미려한 실험의 순환이 영원히 지속되리라 생각된다. 이곳의 모든 최첨단 장비가 때로 겹쳐지기도, 붙었다가 떨어지기도, 기다란 관을 뽑아 서로를 관통하기도 하며 평범한 인간의 실험실에서 절대 따라 하려는 시도조차 불가능한 형태로 탄성을 자아낼 만큼 극한의 효율성으로 배치되어 있어 바깥의 세상에서 소위 과학자들이라고 자칭하는 작자들이 무참하리만치 하찮게 느껴진다. 실험 구역은 격벽 역할을 하는 통유리 문으로 나누어져 구역마다 각각 독립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구조였으며, 심지어는 유리로 이루어진 방이 통째로 다른 구획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매 순간마다 이 공간 자체가 영원하지 않고 저절로 살아 움직여 무한히 변화하며 진화하고 있었다.

  어쩌면 인간이 이룩해낸 과학 기술을 아득히 초월할는지도 모르는 2층의 연구 시설을 거닐면서, 몰래 협회 건물을 염탐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로 이해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눈부시게 섬세한 기계장치를 황홀한 심경으로 눈에 담았다. 다행히 아래층에서 열리는 치킨 페스티벌 때문에 건물의 모든 인원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듯, 이 층에서 마주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유리 벽마다 약간 채도가 다른 슬라이딩 글라스가 붙어 출입문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고, 사장에게서 받은 카드키를 가져다 대면 낮은 구동음을 내며 매끄럽게 열려 각 실험실 내로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다. 출입문 상단에는 유려한 필체로 소스 연구부, 튀김옷 종합 실험실 등의 치킨 연구소에서 흔히 볼 법한 이름이 적힌 명패가 붙어있었다. 회오리치는 물결을 닮은 글씨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돌연 섬뜩한 위화감이 들었다. 분명 내 눈앞에 보이는 모든 글자는 한국어나 영어 따위의 익숙한 문자가 아니었다. 완전히 순환되는 구조로 이어져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동감이 역력히 느껴지게 꿈틀거리는 각각의 글자는 기존 내가 알고 있던 인류의 어떠한 문자체계와도 궤를 달리하는 혁신적인 방식으로 전개되어 기괴한 두려움과 아름다운 경탄을 동시에 자아냈다. 문법 구조나 서술 방식 역시 심하게 이질적인 글이 가득 적혀 있는 명패를 보고 떠오르는 공포는 두 가지. 하나는 가만히 글자 각각을 뜯어보다 보면 획 하나하나가 눈앞에서 소용돌이치며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이 들어 모든 글자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점, 다른 하나는 분명히 처음 보는 문자여서 머릿속으로 인식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움에도 아무런 문제 없이 모든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만드는 기묘한 익숙함이다.

 

  나를 감시하는 듯 꿈틀거리는 글자들을 뒤로하고,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묘한 불쾌감이 들었던 거대한 플라스크가 버티고 서있는 가장 넓은 2층 정중앙의 실험실로 향했다. 어김없이 나를 가로막는 출입문 상단에 친절하게 휘몰아치는 필체로 ‘육질 종합 연구부’라고 적힌 명패가 나를 향해 박혀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카드키를 가져다 대니 다른 실험실 출입문과 다르게 부취익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주위의 유리문보다 몇 배는 두꺼운 육중한 유리문이 천천히 열렸다. 연구 중인 고기의 신선함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다른 방보다 유난히 싸늘한 온도가 엄습하는 육질 연구실은, 마찬가지로 기묘한 냉기를 가득 품고 있었던 사장의 냉동 창고를 떠오르게 만들어 그날 들었던 역겨운 죽음의 목소리가 귓가에 다시 떠다니는 것만 같았다. 다른 생명의 죽음을 담보로 하는 고기 연구실에 놓여 있는 거대한 플라스크는, 가까이서 보니 중형 트럭만 한 규모의 실로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했다. 플라스크 입구에는 수없이 많은 관이 이어져서 2층 전체로 뻗어 나가 이 공간의 주인은 자신이라 선언하고 있었다. 플라스크 옆에는 반투명한 유리로 제작된 기계장치가 놓여 있었고, 플라스크 아이콘이 그려진 버튼이 속속들이 박혀 있는 기판을 보아하니 이 기계장치가 연구실 전반을 조종하는 핵심 장비임을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었다. 버튼을 눌려보려 기판에 가까이 다가서니 문득 들이치는 위화감, 사람이 혼자 조종하기에는 지나치게 구조가 복잡했다. 겨우겨우 손가락을 뻗어 공들여 노력하면 간신히 조작하는 게 불가능하진 않겠으나, 팔이 한 쌍 더 달려 있으면 딱 알맞게 조작할 수 있는 구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꿈속에서 겪은 것처럼 내 몸에서 벌레의 몸뚱이가 돋아나 한결 여유롭게 기계장치를 조작하는 기괴한 망상에 빠지니 돌연 뱃속이 요동치며 울렁거렸다. 마치 배 속에 기생하고 있는 무언가가 언제든지 튀어나와 팔의 역할을 대신해 줄 준비가 되었다는 듯이.

 

  마침 플라스크 안에 커다란 닭고기가 놓여 있었기에 시험 삼아 버튼을 이리저리 조작하며 이 연구실의 기능을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붉은빛이 감도는 소스를 닭고기에 끼얹기도 하고, 주삿바늘이 튀어나와서 괴상망측하게 꿀렁이는 화학 약품을 닭고기에 주입하기도 하고, 온도를 바꾸고 잘게 썰기도 하며 맛있게 손질되어 가는 계육을 보니 참을 수 없는 굶주림을 느껴 습관처럼 입맛을 다셨다. 튀김 솥이 양각된 황금빛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버튼을 누르니 잘 손질된 닭고기가 커다란 관으로 빨려 들어가고는, 익숙한 지글지글 소리와 함께 초고온으로 단숨에 튀겨진 황금빛 치킨이 티 없이 말끔한 순백의 접시에 담아지고, 매끄럽게 작동하는 기계장치를 따라 순식간에 내 앞에 당도했다. 고소한 누린내를 풍기는 갓 튀겨진 치킨에 어째선지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무언가 제주도에서 느낀 것 같은 위화감, 내 안에서 잔뜩 굶주린 광기를 불러일으키기에는 알맞게 익어 바삭바삭 윤기가 흘러 매혹적인 자태를 뽐내고는 있지만, 치킨이 이 공간에서 차지하는 존재감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기괴한 망상이 뇌를 지배하고, 금단의 비밀을 찾아 손이 바쁘게 기판을 조작했다. 무언가 한결 편안해진 손놀림을 만끽하며 얼마 지나지 않아 Species를 조작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익숙한 닭 모양을 고르니 자그마한 소음과 함께 짧게 닭의 마지막 단말마가 울려 퍼지고, 몇 가지 괴악한 공정을 거쳐 싱싱한 육계가 잘 손질되어 플라스크로 가볍게 톡 떨어진다. 쓰레기통 버튼을 눌러 남은 찌꺼기를 정리하고는, 홀린 듯이 Species를 조작해 찾고 있는 단어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절박하게 리스트를 뒤적인다. 무언가를 기대하는지, 확신하는지, 불안해하는지 스스로의 감정조차 결론 내릴 수 없다. 애초에 내가 가혹한 진실을 찾아내 모든 의혹을 밝혀내고 싶은 것인지, 참혹한 망상이 실존하지 않다는 걸 확인해 광기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는 모순된 감정을 담아 이윽고 Human이라 적혀있는 칸을 찾았다. 질끈 감은 두 눈에 심호흡 한번, 망설임을 잠깐 담아 가볍게 버튼을 누른다. 쑤욱 하고 파고 들어가 작동하는 버튼이 알 수 없이 꼬여있는 전기신호를 플라스크를 향해 보낸다. 속절없이 들리는 아까보다 조금 거칠어진 기계의 소음, 어딘지 익숙한 신음, 괴악한 처리 과정을 지나 투욱 하고 들리는, 아까보다 확연히 묵직해진 파공음. 플라스크 속에는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신선한 송장 하나가 덧없이 누워있다.

  악에 받친 채 눈앞의 시신을 향한 무시무시한 해체 작업에 착수했다. 광기에 빠져 기판의 버튼을 마구잡이로 누른다. 이윽고 한 인격체의 비참한 말로가 토막 나고, 간이 배고, 알맞게 썰리고 튀김옷과 양념이 덧씌워지며 한낱 고깃덩어리로 화한다. 누군가의 가족으로, 친구로, 연인으로 숨 쉬었을 영혼의 껍데기가 보잘것없는 식재료로 전락하는데 필요한 시간은 이다지도 짧구나. 다시금 튀김 솥 버튼을 누르니 플라스크 속에 남은 살코기 한 조각 한 조각이 빨려 들어가며 참으로 바삭하고 알맞게 튀겨진다. 미친 듯이 헛구역질을 일으키며 바닥에 쓰러져 부들부들 몸부림쳤으나, 기이하게 뱃속은 당연한 음식을 먹을 준비를 마쳤다는 듯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평안했고 입안에서 짐승의 육즙이 가득 담긴 침방울이 맛있는 튀김을 좇아 탐욕스럽게 흘렀다. 이윽고 내 앞으로 당도한 튀김은 역겨우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냄새. 분명히 맛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드는 익숙하게 황금빛으로 영롱한 자태가 몸서리치게 낯이 익다. 참을 수 없이 튀어나오는 구토를 가까스로 삼키며 눈앞에서 나를 매혹하는 튀김 쪼가리를 사정없이 짓밟았다. 순간 뇌리를 스치는 굶주린 속마음, 고기가 버려지는 모습이 내심 아까웠다.

  광기가 가득 찬 비명을 내지르며 연구실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보잘것없는 사람 한 마리 정도 사라지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너무나도 여유롭고 평화롭게 제 할 일을 다 하는 기계장치들. 시야가 좁아지는 듯한 격렬한 분노에 휩싸여 근처에 움직이는 아무 기계장치나 붙잡고 두 손으로 내려치고 발로 걷어차 고장 내려 시도한다. 그러나 나 하나 즈음 멋대로 소란을 일으켜도 바뀌는 건 단 하나도 없다고 조롱하듯이, 살아 움직이는 기계장치는 묵묵히 복구되고 불경한 연구와 실험이 이루는 영원한 순환은 멈추지 않았다. 사정없이 부서져 갈라지는 이성의 파편을 붙잡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는 내 머릿속에서 무언가 당연하고 익숙한 기억이 떠오를 듯하다. 이딴 장소가 내 기억에 있을 리 없고, 이런 불경한 실험을 익숙하게 느낄 리 없다고 필사적으로 부정한다. 신뢰할 수 없는 기억에 짓눌려 미친 듯이 소리치며 도망치듯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달리는 와중에 이곳의 만행을 사람들에게 알리려 2층 곳곳을 핸드폰 사진으로 남긴다. 협회는 이대로 멀쩡히 존재해서는 안 된다. 경찰, 무사히 빠져나가서 경찰에 알려야만 한다. 경찰? 단 한 번도 내 말을 믿어 준 적 없는 그놈들이 과연 나를 도와줄까. 이 미친 세상에 나만 혼자 떨어져 있는 것 같다. 아무도 믿을 수 없어서 죽을 만큼 외롭고 두렵다.

 

  숨을 몰아쉬며 엘리베이터에 타고 잠시 갈등한다. 이대로 도망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으나, 좀 더 확실한 증거를 찾아 협회를 완전히 무너뜨리려는 속셈으로 3층으로 향하기로 마음먹었다. 절대로 이 공간이 담고 있는 퇴폐적인 진실이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점차 광기 어린 실험과 끔찍한 비밀을 비루한 일상보다 익숙하게 느낀 탓은 아닐 것이다. 혼란스러운 속마음을 숨긴 채 도착한 3층은 하나의 거대한 서고였다. 하늘을 가릴 듯 빼곡하게 들어선 책장 속에 무시무시한 진실이 담긴 고대의 문서가 촘촘히 눈을 빛낸다. 숨겨진 이면의 역사, 불경한 진실과 금단의 지식이 섬뜩한 증거 자료와 함께 너무나 설득력 있게 서술되어 있어 기존의 정상적인 사회에서 배우던 지식 전반에 대한 불신을 피워낸다. 인류의 광기가 폭발한 전쟁을 사주한 존재, 문자와 권력을 창조한 이들의 정체 등 기존 주류 역사학계의 이론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섬뜩한 진실을 낱낱이 고발하는 광기의 서고. 이곳에서 인간의 이성과 지식은 너무나도 무력하게 부정당해 그 어떤 명망 있는 석학이라도 제정신을 차릴 수 없으리라.

  아연하게 이면의 지식의 담긴 고서를 구경하고 있는데, 저 멀리 서고 구석에 검붉게 꿀렁이는 금줄로 경고 표시를 해놓은 불길한 책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 있는 고서들 중에서도 단연 가장 오래된 축에 속한다고 여겨지는 낡게 삭은 책들 표지에는 처음 보는 문자가 빼곡히 적혀있었다. 2층에서 목격한 기묘한 문자와 달리 한참을 뚫어지라 쳐다보아도 뜻을 이해할 수 없는 문자였지만,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특유의 형태에서 낯익은 모양새를 발견할 수 있었다. 분명히 북한산 중턱에서 발견한 돌탑에 새겨져 있던 문자. 치킨의 비밀과 협회의 광기, 북한산의 어둠과 부모님의 최후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명백한 증거를 향해 떨리는 손을 뻗는다.

  책에 내 손끝이 닿자마자 난데없이 튀어나온 거친 손아귀가 내 손목을 잡아챈다. ‘그만, 관광은 여기까지라네, 자네.’ 사장이 다급하게 튀어나와 내 몸을 황급히 밀치며 금단의 고서에서 거리를 벌리게 했다. 내가 책장에서 멀리 떨어진 걸 확인하자마자, 사장은 조심스럽게 나를 곁눈질로 감시하며 급작스러운 서슬에 흐트러진 고서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불경한 글자에 가까이하기도 싫다는 듯 새끼손가락만 조심스럽게 가져다 대며 금단의 문자와 비밀이 담긴 책장을 원래대로 되돌린다. 사장은 분명히 이 고서를, 기이하게 뒤틀린 문양을 두려워하고 있다. 사장의 손에 이끌려 3층을 나가면서 필사적으로 책 표지에 그려진 문양을 머릿속에 박아넣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1층 로비는 벌레떼같이 모여들었던 사람은 단 하나도 없이 적막하다. 속속들이 행사를 정리한 직원들이 다가와 나를 둘러싸고 튀어나올 듯 눈깔을 부라리며 빤히 위아래로 내 육신을 쳐다본다. 2층에서 보았던 역겨운 진실이 떠올라 짧은 시간에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는 손님들의 행방에 대한 고약한 망상을 자아낸다. 이 미친놈들이 손님들을 모조리 도륙하려고 페스티벌 따위를 열었구나. 밖에 나가서 경찰을 부르면 네놈들 다 끝장이야 라고 고래고래 소리친다. 허나 나를 쳐다보는 직원들은 꿈적하지 않고 오히려 비인간적인 조소를 띄우며 나를 조롱한다. ‘무슨 말인가 자네, 2층에 몰래 올라가서 헛것이라도 본 겐가?’ 인자하게 포장된 조롱으로 나를 몰아붙이는 사장 놈의 말투에 악에 받쳐서 핸드폰으로 찍어놓은 2층 실험실의 증거 사진을 눈앞에 들이민다. 그러나 내 핸드폰 속에서 얌전히 저장되어있는 사진들은, 인간의 살점이나 폭력적인 광기의 연구실 따위 하나도 실려있지 않은 평범하게 하품이 나오는 무료한 사무실의 풍경. 사장이 내 핸드폰 사진을 보고 찬찬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네, 오늘따라 컨디션이 별로인거 같으이. 2층 전체가 협회용 사무실일 뿐, 이상한 시설 따위는 하나도 없다네. 피곤해서 헛것을 본 것 같으니, 어서 돌아가서 쉬세.’ 빙글빙글 웃는 수많은 직원들의 빼곡한 눈 쌍에서 터져 나오는 광기와 비실 비실 입가에서 새어나오는 조롱 앞에, 아무런 증거도 제시할 수 없는 정신병 환자의 나약한 주장 한마디는 처절하게 눈물 흘릴 만큼 가벼웠다. 더는 정신이 견딜 수 없어, 도망치듯 협회 건물을 빠져나와 사장의 차에 올랐다. 조용히 사장의 차에 타서 냄새나는 집으로 끌려 돌아오는 길이 너무나도 멀어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작가의 말
 

 모르는 사람이 따라가자고 하면 어지간 하면 무시하자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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