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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오늘만 백만번째
작가 : 박재경양
작품등록일 : 2016.8.22

키다리 아저씨 같은 남자를 만나기는 애초에 글러 먹었고, 회사에서 만난 남자친구라는 놈은 등쳐먹고 사기나 치고 다니고. 하는 일 하나없는 여자 나이 서른. 진서는 오랜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 제주도로 내려왔다. 이렇게 된 바에 한살이라도 어릴 때 하고 싶었던 일이나 하면서 엄마옆에 있기로 작정했다. 그런데 웬걸, 차주혁, 할리우드에서는 크리스라고 불리는 뮤지컬 배우가 제주도에 찾아왔다. 그것도 진서의 집에! 왜? 태어나서 처음 보는 잘생긴 남자가 왜 우리 집에 있는거지?

 
옷은 집어 던져 버려요
작성일 : 16-10-24 13:01     조회 : 318     추천 : 0     분량 : 4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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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진서는 마법에 걸린 듯 부드러운 키스에서 헤어나오기 힘들었다.

 입술이 닿아 있는 짧은 순간이 영원처럼 길었다.

 주혁의 입술을 부드러웠고, 그 맛은 계속 탐하고 싶을 만큼 달았다.

 입맞춤은 완벽하게 사랑에 빠진 남자의 그것이었다.

 그리고 옆에서 탄성을 지르며 진서를 부러워하는 여자들이라니... 마치, 로맨스영화의 여주인공이 된 듯 했다.

 ‘어쩜 저렇게 키스를 잘하니… 계탔네 계탔어. 나… 전생에 나라라도 구했나봐.’

 진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땠을지도 모를 전생의 자신을 칭찬했다.

 주혁은 백마탄 왕자 그 자체였다.

 멀리서부터 진서를 향해 달려오던 그 모습은 마치 영화에서나 보는 것처럼 뒤에서 후광이 비추었다.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이라니...

 주혁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구남친 정태진의 이마에는 포크모양의 구멍이 뻥 뚫린 채로, 분수처럼 피를 내뿜고 있었을 거였다.

 포크모양의 구멍 세 개로 끝나는 것이 다행이지, 저런 파렴치하고 뻔뻔한 놈은 없어져야 마땅했다.

 사귀는 동안 잘해준 것도 없고, 잘난 것도 없는 주제에 밥먹고 숨쉬듯 바람피울 궁리만 하던 놈이 이제 와서 뭐?

 ‘주혁씨 때문에 산 줄 알아, 이 자식아.’

 진서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정태진은 온 우주에서 제일 섹시한 남자 차주혁의 키스를 받고 있는 전여친 진서를 멀뚱히 보고만 있었다.

 정말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두 손에 들고 있던 나이프와 포크는 떨어뜨린지 오래였지만.

 주혁은 잠시라도 떨어져 있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진서를 보며,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진서의 어깨에 팔을 감고, 자신의 품으로 진서를 끌어 당겼다.

 근육으로 다져진 주혁의 팔은 단단하고 강렬했다.

 진서는 마치 든든한 갑옷이 자신을 감싸는 듯, 주혁의 품 안에서 안락함을 느꼈다.

 그 품이 얼마나 달콤했던지 정태진에게 복수하려고 주혁이 왔다는 것도 잠시 잊어 버렸다.

 진서는 자연스럽게 주혁의 품 안으로 파고 들었다.

 그 손길이 얼마나 익숙한지 마치 어젯밤에도 그 품속에 파고들었던 듯했다.

 

 점점 더 진서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주혁.

 한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 둘의 몸은 밀착되었다.

 진서의 입술에 단단한 주혁의 가슴이 느껴졌다.

 ‘안돼…’

 와인도 한잔 했겠다, 알딸딸한 진서는 당장이라도 주혁의 셔츠를 박박 찢어버리고 싶은 욕망에 휩싸였다.

 ‘아... 안돼. 진서야, 감옥가고 싶니. 이거 성추행이야... 하아...’

 진서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그 욕망을 억눌렀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소용도 없었다.

 주혁은 진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더욱더 자극적으로 다가왔다.

 주혁의 숨소리는 이미 진서의 귓가를 간질이고 있었다.

 온 우주를 통틀어 가장 섹시하다는 남자의 들숨과 날숨이 생생하게 진서의 귀에 닿았다.

 ‘아… 진짜. 나 왜이러니. 나 왜 이렇게 짐승같니.’

 진서가 강렬한 유혹과 미칠듯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지만, 주혁은 그런 것에 아랑곳 하지 않았다.

 “어때요, 내 등장. 괜찮죠?”

 어머, 이 남자는 무슨 숨소리까지 섹시하니.

 진서는 짐승같은 욕망과 싸우느라 이미 기진맥진했다.

 “이제 끝났으니, 집에 가서 불편한 옷들 집어 던지고, 좀 쉽시다.”

 “뭐, 옷을 집어 던져요? 이 남자 봐라.”

 “불편해 죽겠으니까, 빨리 청바지로 갈아입읍시다. 비싼 옷 걸치고 있으려니까 미치겠어. 이 옷 얼마짜린 줄 알아요?”

 “얼마짜린데요?”

 “가격 들으면 놀랄걸?”

 “집 한 채만 하나보지?”

 “그럼요.”

 “아니 근데 이런 옷도 가지고 다녀요?”

 “어쩌다 생겼어요. 빨리, 내 품에 더 안겨요.”

 진서는 주혁이 시키는 대로 거의 매달리듯 주혁의 품에 안겼다.

 이대로 자리를 뜬다면 서로에게 완벽하게 빠져버린 한쌍의 커플처럼 보일 거였다.

 이런 멋진 모습을 봤으니 더 이상 정태진이 질척거릴 일도 없겠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진서는 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갑시다.”

 주혁은 한 손으로는 진서의 어깨를 감싸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진서의 손을 꼭 쥐었다.

 

 “큭. 하하하하하하.”

 한참동안 이 상황을 지켜보던 정태진은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

 얼마나 웃긴지, 한참동안 배를 움켜잡고 웃던 태진은 눈가에 눈물을 훔치며 말을 했다.

 “요즘은 심부름센터에서 이런 것도 하니?”

 응?

 진서와 주혁은 멈칫했다.

 생각하지도 못한 반응이었다.

 놀란 정태진이 알아서 도망갈거라 생각했던 진서는 의외의 반응에 당황했다.

 “너 저런 남자 별로 안 좋아하잖아. 내가 너랑 지낸 세월이 얼만데 그것도 모를 것 같니? 하하하하하. 아 웃겨. 야… 너 진짜 하하하하.”

 정태진은 당당하게 일어섰다.

 “뭐…?”

 놀란 나머지 진서는 말을 더듬고 말았다.

 ‘젠장.’

 정태진은 주혁이 잡지 않은 다른 팔을 꽉 잡았다.

 “어딜 가? 솔직히 내가 만나자고 했을 때 오케이 한거 보면 진서 너도 나한테 미련이 있는거 아니야?”

 “뭐, 뭐라고...?”

 저 근거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거지?

 진서는 말도 안되는 정태진의 뻔뻔함에 이가 갈렸다.

 정태진은 진서의 한쪽 팔을 조물락거렸다.

 익숙한 손, 익숙한 감촉이었지만 전처럼 두근거리지는 않았다.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태진은 계속 말했다.

 “나도 너한테 미련이 있어. 너 같이 좋은 여자를 놓친 게 너무 후회스럽더라. 우리 같이 걷던 길을 혼자 걸으면... 너무 후회스러워서… 눈물이 다 난다?”

 뭐지, 저 오글거리는 말은?

 진서는 욕이 튀어나오려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렇지 않으면 정태진을 물어 뜯어버릴 것 같았다.

 진서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정태진이 잡은 손을 뿌리쳤다.

 “착각이야. 난 너한테 미련 없어.”

 “그런데 이런 짓을 하니?”

 정태진은 주혁을 손가락질했다.

 천하의 차주혁을 동네 양아치보듯 마음껏 하대했다.

 하긴, 티브이 안보는 걸로 치자면 정태진도 진서 못지 않았으니까 주혁을 못 알아볼 만도 했다.

 그래도 저렇게 잘생긴 남자가 티브이에 나오겠지 제주도에서 심부름센터에서 일이나 하고 있겠냐고!

 주위 시선을 의식하는건가?

 주혁은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나한테는 뭐라고 따박따박 잘도 하면서…’

 주혁의 얼굴은 미동도 없었다.

 ‘진짜… 꼭 내가 나서야겠어?’

 왜인지는 몰랐다.

 그러든지 말든지 구남친 정태진은 엄청난 막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진정한 사랑은 진서 하나 뿐이었다는 둥, 진서가 있으면 세상에 무서울 게 없다는 둥, 저런 하찮은 남자에게 너는 아깝다는 둥...

 진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정태진이 쏟아내는 말들 중에서 가장 기분이 나쁜 건 주혁에 관한 말이었다.

 어차피 헤어진 사이, 진서에 대해서 뭐라고 떠들 든 별 상관은 없었지만, 주혁에 대해서 막말하고 하대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인성면에서도 외모면에서도 주혁은 정태진보다 백만배는 나았다.

 진서는 허공을 향해 길게 한숨을 쉬었다.

 “휴우…”

 “내 말이 맞지? 진서야. 우리…”

 진서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가 고개를 들었다.

 몸을 풀 듯, 목을 한바퀴 돌리더니, 각각 주혁과 태진에게 내주었던 팔을 뿌리쳤다.

 그리고 신고 있던 높은 킬힐을 벗었다.

 진서는 양 손에 킬힐을 들었다.

 “하아... 정말 내가 이 짓은 고등학교 때 딱 끊었는데 진짜…”

 진서는 다시 한번 허공을 향해 한숨을 쉬고는 킬힐을 든 양손을 번쩍 들어 구남친 정태진의 양 어깨에 정확히 내리 꽂았다.

 “으헉…”

 정태진은 어깨를 감싸쥐고 주저 앉았다.

 “네가 뭔데 우리 주혁씨를 하대해? 뭐? 심부름센터? 이것아. 너 티브이도 안보니?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 이게 보자보자 하니까…”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진서는 다시 한번 킬힐을 어깨에 내리 꽂았다.

 “너 따위가 쳐다도 못 볼 사람이야. 무릎 꿇고 사과해. 당장.”

 하이힐을 든 진서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야… 너… 이게 뭐야. 폭행죄로 너 고소할거야… 아… 너무 아파…”

 정태진은 고통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해. 할테면 해!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어? 당장 사과 못해?”

 

 

 한번 더 정태진을 밟아버리려던 진서의 포악질은 멈췄다.

 멈추고 싶어서 멈춘 게 아니라,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꺄아악!”

 여자들의 비명소리가 들리고 뒤이어 민현우가 등장했다.

 “차주혁!”

 민현우는 혼자 온 게 아니었다.

 민현우 뒤로는 매니저 둘, 코디네이터 하나, 그리고 카메라를 든 대여섯 명의 기자들이 함께였다.

 “드디어 만나는구나. 왠지, 너… 제주도에 있을 것 같았는데.”

 진서는 하이힐을 든 어정쩡한 자세로 뒤를 돌아봤다.

 뒤에는 민현우가 서 있었다.

 “민…현우?”

 “거, 참. 나는 누군지 모르더니, 민현우는 단번에 알아보네요.”

 주혁이 비꼬듯 말했다.

 그딴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저기 앞에, 민현우가 서 있는게 중요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아이돌 태풍소년의 리더, 민현우.

 모든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섭외 0순위 민현우.

 전국 백만 소녀들의 연인 민현우.

 할리우드 스타 차주혁과 열애설이 난 민현우…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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