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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오리진
작가 : 시리홍
작품등록일 : 2019.9.23

세상의 상냥함은 껍데기에 불과했다.
그 안에 숨어있던 세상의 진실을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깨달아버린 주인공은,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에게 갑작스럽게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125화 천 년의 대회 (7)
작성일 : 20-09-18 23:46     조회 : 326     추천 : 0     분량 : 5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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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앗.

 "오오. 바로 따라왔군."

  공터에 도착한 실운과 시은.

  인위적으로 땅을 넓혀놓은 것인지, 공터의 규격이 너무나도 딱 떨어져있었다.

  자연스럽게 배치되어있던 나무들과는 달리, 어색하게만 느껴지는 공터의 한 가운데.

 "주변의 것들은 또 뭐지? 비장의 수라도 되나?"

  시은이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실운을 꿰뚫어보듯 쳐다보았다.

  실운은 그런 시선에서 옛 김시은을 느끼는 것인지, 조금 움찔한 것 같았지만, 이내 평정심을 다시 되찾으며 씨익 미소지었다.

 "비장의 수라.. 꼭 그런 건 아니고. 으음.. 다른 쪽에 피해가 가지않게 방어선을 구축했다고 하면 될까?"

 "애초에 다른 이들은 들어오지도 못하게 막아내는 방어선은 아니고?"

 "뭐, 그것도 겸하고 있지! 잘 알면서 뭘 묻나."

  치밀하다면 치밀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었지만, 왠지 시은이는 눈앞의 실운이 굉장히 얄미웠다.

  저 완벽한 이목구비에서 나오는 사악한 미소.

  상당히 큰 키와 어울리는 보기 좋은 황금비율.

  실운의 심성을 모른 채, 오리진의 연예계에 데뷔시켰다면, 그의 겉모습만으로도 떼돈을 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 시은이에겐, 그런 그의 모습 하나하나가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의 앞에서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졌다.

 '시은씨의 영향인걸까.'

  옛 여주인의 이야기를 어느 정도 알게 된 뒤, 실운에 대한 인식이 더 안좋아진 것은 맞았지만.

  애초에 첫인상부터 시은이는, 그를 그리 좋게 보고 있지 않았었다.

  누굴 탓할 것이 아닌, 시은이는 그저 눈앞의 허우대만 멀쩡한 녀석이 그냥 싫은 것뿐이었다.

 "자격지심."

  시은이가 가볍게 툭 던진 말.

  실운은 그 말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라고?"

 "너, 날 보며, 예전의 날 떠올리는 거지? 그럴리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말이야."

  시은이가 가볍게 미소지었다.

  기분 좋은 미소라기보단, 어디 반박해보라는 듯한 미소.

  실운은 시은이의 예상대로 완벽한 눈썹을 상당한 수준으로 일그러뜨렸다.

 "..네년..."

  하지만 실운은 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는 알지 못했다.

  그 당시 김시은이 어떻게 되었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실운은 살아남아 복수하기 위해 지금껏 살아왔었고, 그러던 중, 카르탄에게서 김시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숲을 찾아갔던 것뿐이었다.

  실운이 판단하기엔 지금 눈앞의 시은이는, 김시은 본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상당히 비슷한 외관과 성격, 행동거지를 가지고 있었어도, 본능이 아니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껏 살아오며, 김시은과 비슷한 녀석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 지금의 눈앞의 시은이에게 그 김시은을 투영시켜, 복수를 꿈꾸고 있던 것이었다.

  실운이 내린 결론은, 그녀의 힘을 이어받은 후계자라는 것.

  그 명맥을 끊기만 해도 김시은에겐 적절한 복수가 되리라.

  하지만 지금의 시은이가 던진 말은 어딘가 미묘했다.

  마치, 그녀가 환생이라도 한 것처럼 구는 것이 아닌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실운은 섣불리 판단할 수 없었다.

  자신과 몇몇의 이들이 지금껏 목숨을 부지 할 수 있는 이유도, 각자 다 달랐다.

  그렇게 영생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는 것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곳이 이곳인데, 환생 정도야 그리 어려운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눈앞의 시은이가 일부러 자신의 마음을 흔들려고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저번의 싸움으로 보아, 실력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쪽은 시은이라고 생각 할 수 있었지만, 생각치도 못한 변수 자체를 아예 차단시켜버려 완벽하게 승리를 거두려는 것 같았다.

 '..후우..뭐가됐든 흥분하면 이로울 게 없겠군.'

  이미 몇 수 앞선 계획을 세우기는 했지만, 까딱 잘못하면 그 모든 것이 순식간에 무너져 버릴 터.

  무엇이 되었든, 지금은 중요한 순간이었다.

  400년간 기다려온 순간이, 이제야 찾아왔다.

  지금의 자신의 상태는 최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단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어디 하나라도 하자없는 최고의 상태.

 "아, 한 가지만 물어보자. 검은놈들 주변에 하얀놈들 몇이 보이는 거 같던데. 걔네들은 누구야?"

 "이미 눈치채지 않았나?"

 "그래, 혹시나해서 물어봤어."

  시은이는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서로가 이미 알고 있는, 실운을 따라온 하얀 옷을 입은 이들.

  그들은 왕을 따르는 신하들 중, 장관의 위치에 오른 이들이었다.

  실운조차도 왕이 지금 멀쩡한 상태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대회를 시작함과 동시에 그가 미쳤다고, 아마 그와 연결된 장관들에게 보고 받았을 것이다.

  왕이 시은이에게 전해주었던 현 상황.

  자신의 주변의 장관급에 오른 이들이 전부 실운과 결탁하고 있다는 것.

  다행인 점은, 신하들은 열렬하게 자신을 따르는 이들이기에, 절대 그들의 말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 정도.

 '후우.. 이미 얘기가 다 끝났나보네.'

  하지만 그건 수면 아래 감춰졌던 이야기.

  따로 분장도 하지 않은 채, 이렇게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이제는 알려져도 상관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럼 네 모습도 이해가 가."

  왕을 따르는 이들 중, 치료에 특화된 재능을 가진 이가 없을리가 없었다.

  실운이 이렇게 짧은 사이에 회복을 마칠 수 있던 이유가 있었다.

 "걱정하지마. 나도 그들은 소중한 편이라서, 여기에 데려오진 않았으니까."

  전투 중에 회복할 일은 없다는 듯 이야기하는 실운.

  하지만 시은이는 굳이 저 말을 믿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자기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실운이, 정말 그런 이들을 안 데려왔을리가 없었으니까.

 "말이라도 못하면."

  시은이는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의 대화는 이어가지 않겠다는 듯, 하얀 구름을 사방으로 피어올렸다.

  그 하얀 구름 사이로 쉴틈없이 휘몰아치는 푸르른 기력.

  시은이의 가슴팍에 박혀있는 무한대의 기력 구슬이 시퍼런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오래 끌지 않고 단번에 승부를 보겠다는 시은이의 다짐이 엿보였다.

 "오래도 기다렸구나!"

  끊임없이 차오르는 시은이의 기세에 실운도 기분 좋게 웃음을 흘렸다.

  공간의 일그러짐을 따라, 그의 손에서 기신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드러난 기신의 주변으로, 빠르게 일어나는 섬뜩한 느낌의 검붉은 기력.

  실운도 그에 호응하듯 곧바로, 최후이자 최강의 무기인 진기신을 드러냈다.

  미리 합을 맞춘것도 아니지만, 동시에 각자의 자리를 박차고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푸른 기력을 두르며 한층 더 강력해진 하얀 구름이 실운에게 달려있는 모든 관절에 달려들었다.

 "어딜!"

  실운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허락조차하지 않겠다는 듯.

  초감각 속에서, 하나하나 일일이 하얀 구름의 중심을 이루는 기력을 쳐내는 실운.

  보고도 믿을 수 없는 무위에, 시은이가 처음으로 감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이끌릴 필요는 없었다.

  시은이는 곧바로 다시 한 번 더 하얀 구름을 전개해, 실운에게 다시 한 번 쏟아부었다.

 "소용없다!"

  아까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소멸시켜버린 실운이, 진기신을 시은이의 심장을 향해 뻗어냈다.

  시은이가 포착하지도 못한 순간에 뻗어진 검끝을, 단단하게 압축된 푸르른 기력이 막아냈다.

 "뭐야? 저번엔 잘만 뚫더만. 더 약해진 거 아니야?"

  시은이의 말에 실운의 얼굴이 일순 일그러졌지만, 실운은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 붙잡으며, 다시 공격을 이어나갔다.

  한 번으로 안되면, 두 번. 두 번으로 안되면 세 번 내지를 뿐이다.

  콰각. 콰가각! 콰각!

  계속해서 이어지는 연격.

  시은이가 하얀 구름을 회수하며 힘을 집중할동안 총 72번의 공격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은이의 기력 방어막은 뚫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더 단단해졌어.'

  짧은 시간이었으나, 시은이의 기력을 다루는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가슴팍에서 빛나고 있는 저 구슬.

  아무리보아도 저번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콰아앙!

  힘의 집중을 끝낸, 시은이의 부드러운 주먹이 실운의 어깨를 향해 쏘아졌다.

  연격을 이어가던 초감각속의 실운은 분명 그 주먹을 피했으나, 생각 이상으로 느린 시은이의 공격이 그 시차를 무시하며, 실운의 몸이 공격을 위해 다시 돌아오는 순간, 그의 어깨를 정확히 찍어냈다.

 "크아악!"

  둘 사이의 처음으로 유효타가 터지며, 실운이 곧바로 거리를 벌렸다.

 "나에 비해, 넌 너무 쉽게 부숴지는 걸?"

  시은이는 최대한 어색하지 않게 미소짓고 있었으나, 실운은 이미 시은이의 상태를 눈치챘다.

 "후후..그저 시간이 조금 늘어났을 뿐이군. 딱히 그 때보다 강해진 건 아니야."

  실운은 시은이의 공격으로 자신의 어깨가 나간 것 같았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조금만 더 노리면 부숴지겠어."

  즐거워 미치겠다는 미소를 짓는 실운이, 다시 한 번 시은이를 향해 쏘아졌고, 아까와 똑같은 자리를 다시 찔러대기 시작했다.

  콰직. 콰지직!

 "..역시 쉽지 않아."

  시은이는 최대한 힘을 모아 방어막의 보수를 진행하며, 두 주먹으로 실운의 관절 부위를 하나 둘 찍어냈다.

  실운의 말대로였다.

  시은이는 그 당시보다 강해진 것이 아니었다.

  그저, 조금 더 기력을 효율적으로 다룰 방법을 고안해낸 것.

  그것의 여파로 무한대의 기력 구슬을 조금 더 오래 사용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었다.

  실운이 공격할 곳을 미리 예상하여 기력을 그 부위에 정확하게 몰아넣는다.

  그렇게 공격을 방어하면서, 자신의 공격에 기력을 더한다.

  선택과 집중.

  그렇게 무한대의 기력에서 뿜어나오는 기력을 조절하며, 공방일체를 보여주었던 것.

  실운은 이미 여러 관절이 시은이에게 파괴된 상태지만, 그것말고는 여전히 멀쩡한 상태.

  지금의 상태 정도는 기력으로 억지로 이어놓는다면, 다치기 전 이상으로 육체를 활용할 수 있었다.

  그리 오래 지속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승기를 꺾어내는데엔 크게 일조할 수 있었다.

  파파파팍!

  아무리 부숴내도 움직이는 실운의 기세에, 시은이가 처음으로 뒷걸음질을 쳤고, 실운의 공격이 시은이의 몸에 닿기 시작했다.

  전과는 달리, 시은이의 몸은 진기신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내지 못했다.

  진기신에 의해, 시은이의 몸에서 핏물이 튀기 시작했다.

 "크으읍!"

  신음을 겨우 참아내며, 기력을 운용하는 시은이.

 "크크크! 김시은의 발치도 못따라가는 년이, 어디서 감히 내 앞에서 나대는 거냐!"

  방어막을 뚫었다면 끝이었다.

  애초에 실운이 시은이를 공격하지 못했던 건, 끈질기게 붙어있는 고밀도의 기력 방어막 때문이었으니.

  공격을 허용하기 시작했다면, 실운은 그를 죽일 자신이 있었다.

 '된다! 된다고!'

  전에는 방어막을 뚫어낼 수는 있었어도, 김시은의 몸을 베어내진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최고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실운이 휘두르는 진기신은 본래의 힘을 온전히 끌어낼 수 있었으니.

  그의 무차별적인 검격에, 시은이는 속수무책으로 피를 사방으로 튀길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끝내주마!"

  완전한 회복을 이렇게 짧은 시간내에 이룰 것이라 생각하지 못한 시은이.

  그는 전혀 생각치도 못한 전개에,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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