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순간이였다.
파란 눈의 고양이를 보고 달려나간 로마와
전속력으로 달려오던 포르쉐 자동차가 부딪힌 것도
빵! 하고 로마의 배가 터져 버린 것도
"아악!!" 노래 부르던 여학생의 비명소리와 슬픈 울음소리도!
나는 이 순간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단지 슬피우는 여학생을 보면서
'왜 나의 고양이가 죽었는데 저 여학생이 울지?'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빨간색 포르쉐 자동차를 탄 남자는 울고 있는 여학생 앞에 가서
미안하다고 보상해 드리겠다고 했다.
"보상해 주겠다고요? 우리 로마 살려낼 수 있나요?"
나는 로마의 뻗뻗해진 몸을 안으면서 대답했다.
그 남자는 울고 있는 여학생을 가리키면서
"이분이 주인 아닌가요?" 하는 것이었다.
"우리 로마 살려낼 수 있냐고요?"
나의 격양된 소리에 그사람은
'남의 일에 웬 참견?'하는 표정으로
"그것은 불가능한 일 아닌가? 그래서 보상해 주겠다고 하는 건데.."
그러면서 원한다면 성대하게 장례식을 치루게 해 줄 것이고 정신적 보상도 충분히
해주겠다고 하였다.
"이봐요!!! 아저씨! 피도 눈물도 없는 싸이보그예요?"
울던 여학생이 소리를 꽥 질렀다.
그 남자는 이 난관을 어떻게 뚫어야 할지 모르겠는 표정을 지었다.
'나보고 어쩌라구!!!'
"이봐 학생들 지금 상황을 감상적으로만 보지 말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자구!
어차피 고양이는 죽었어! 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아저씨 정말 싸이보그 맞네요!!"
그 남자는 여학생의 말에 할말을 잊은 듯 했다.
아니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 남자는 변호사에게 전화를 하였고, 내게 명함을 주고 떠났다.
여학생과 나는 로마를 안고 우리집으로 왔고, 카페 '마이클' 앞 정원에 로마를 묻어 주었다.
"나 장미고등학교 3학년 양동이야"
"난 장미예고 3학년 이여름이야"
우리는 자기 소개를 하였다.
"이 가게 이름이 왜 마이클이야?"
여름이가 가게를 둘러 보면서 말했다.
"어 엄마가 가수 마이클 팬이셨거든"
"우리 엄마도 그런데.. 우리 엄마 가게 이름은 너를 기다리며야. 마이클 선생님 팬 카페 회장이셨어"
"그래? 와! 멋지다!!"
"왜 멋져?"
"어떤 가수를 오랫동안 좋아하는 일 멋진 일이잖아. 난 좋아하는 가수가 없거든"
"난 싫었는데 멋진 일이기도 하구나? 근데 왜 가게가 썰렁해? 우리 가게랑 똑 같네?"
"어 엄마가 여행중이시거든"
"어디?"
"히말라야"
"우리 엄마도 히말라얀데 왜 엄마들이 다 히말라야로 떠났지?"
여름이가 시니컬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쓸쓸해 보였다.
"엄마들이 미쳤나봐!"
내가 말하자 여름이가 하하하! 웃었다.
"맞아 맞아! 미쳤어!"
여름이는 ‘두달 째 방학 중’이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는 창문에 눈길을 주었다.
"우리 엄마는 5년챈데..."
"5년째 안돌아오셨어? 그럼 넌 어떻게 살았어?"
"아빠네 집에"
나는 더이상 묻지 않았다.
더 물어보면 여름이가 힘들어 할 것 같았다.
"왜 아빠네라고 하는지 안물어봐?"
"우리 엄만 나 혼자 놔두고 글쎄 히말리아 가셨어. 그전엔 또 두달 동안 산티아고 갔다
오시고 맨날 면역력 연구한다고 돌아만 다니고 난 로마랑 라면으로 배 채우다가
영양실조까지 걸렸다니까"
내가 밝게 말하자 유라도 재미있어 하면서 엄마 흉을 봤다.
"아이러니하다. 면역력 요리 연구가 아들이 영양실조라니 웃픈 현실이네"
"그렇지? 웃프고 고픈 현실이야. 우리 엄마 타도 하기 할까?
"엄마 타도하기?
나는 여름이를 데리고 옆 가게 게임기 앞으로 갔다.
그리고 권투 글로브를 끼고 펀치를 날렸다.
"엄마! 나 좀 혼자 놔두고 다니지마!!!
유리도 펀치를 날렸다.
"엄마 전화 좀 해!!! 내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지도 않아?
내가 다시 날렸다.
"내 밥 좀 챙겨줘 엄마!! 엄만 맨날 다른 사람 건강만 챙기고 다니지? 난 영양실조라구!!
그리고 엄마 로마한테 고양이탕 끓여 먹어 버린다고 했지? 그말 사과해!
로마한테 사과하라구! 로마가 떠났어 엄마!! 떠나버렸다구!!
나는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로마를 땅에 묻을 때까지도 괜찮았는데 왜 이제와서 바보같이 눈물이 날까?
나는 그만 엉엉 울고 말았다.
여름이는 울고 있는 나를 지켜만 보고 있었다.
여름이 말고 또 하나의 눈동자가 나를 지켜봤다.
파란 눈을 가진 고양이 봄이였다.
로마가 친구하고 싶어서 뛰어 갔던 고양이 봄이 눈동자랑 내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얼어 붙어 버렸다. 위풍당당한 모습이 멋졌다. 어쩐지 봄이 앞에서는
이런 슬픔조차 별것 아니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비록 로마의 몸이 만져지지 않고 부드러운 털의 감촉조차 느낄 수 없지만
기억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리고 또 로마가 떠나면서 주고간 아주 특별한
선물 여름이와 봄이가 소중한 친구가 될 것 같았다.
이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던 소중한 친구 로마가 떠나면서 인연 맺어준 여름이랑 봄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