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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El Tango de Lady Evil
작가 : 아사찬빈
작품등록일 : 2020.1.7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피해자의 이야기

 
제36화 <함정>
작성일 : 20-09-16 01:33     조회 : 345     추천 : 0     분량 : 4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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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외네요.”

 “그런가?”

 

 오래된 골목의 허름한 식당 겸 술집이었다. 나름 분위기를 살려본다고 뒤틀린 나무와 초가지붕으로 인테리어가 되어 있었지만, 건물의 낡아 버린 내외장을 숨기기에는 무리였다.

 

 “이런 곳도 좋아하시리라곤 생각 못했습니다. 워낙 고급 취향이시잖아요.”

 “취향에는 기준도 다양하지만, 방향도 다양한 법이지.”

 

 성혁이 도현에게 고개짓으로 앉을 것을 권했다. 도현은 스스럼없이 테이블 맞은편의 의자에 앉았다. 역시나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의자는, 도현이 앉자 아귀가 맞지 않는 듯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도현이 자리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맥주가 담긴 커다란 유리잔을 가져왔다. 짙은 색깔을 보아하니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맥주는 아니었다.

 

 “구석에 숨어 있는 집 찾느라 고생했을 텐데, 일단 한잔하지.”

 

 맥주잔이 부딪히며 청량한 소리를 냈다. 거품이 풍부한 맥주에서는 홉이 많이 섞인 듯, 거칠고 씁쓸한 맛이 났다. 꽤 수준 높은 수제 맥주였다.

 

 “외관만 보고 혹시나 했는데, 제가 성급했네요. 역시 의원님 안목은 대단하십니다.”

 “그건 내가 아니라 여기 사장님께 드려야지.”

 

 성혁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주인아주머니가 이번에는 역시 직접 만든 듯한 수제 소시지를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도현은 싱긋 웃으며 주인아주머니와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고는, 찬찬히 가게 내부를 둘러보았다. 건물만 낡은 것이 아니라 식당 자체가 오래되었는지, 손때 묻은 골동품들이 적지 않았다. 천정에는 전선들이 주렁주렁 늘어져 있었는데, 고릿적 남포등까지는 아니었지만 최소 30년 전에 사용되었던 은박지로 마감한 형광등이 설치되어 있었고, 심지어 기둥 한쪽에는 언제 설치된 것인지 모를 110V짜리 콘센트도 붙어 있었다.

 

 “이런 곳은 어떻게 아셨어요?”

 “어릴 적에 우연히 알게 됐지. 뭐, 그때는 이 정도로 낡지는 않았었지만.”

 “맥주도 그렇고 안주도 그렇고 굉장히 훌륭한데요? 전에 독일에 갔던 적이 있는데, 그 때 생각이 나네요.”

 “여기 사장님이 한때 파독 간호사였거든. 그래서 한국 음식보다 그쪽 음식을 더 잘하신다네.”

 “아... 어쩐지.”

 “분위기도 분위기고, 맛도 맛이지만, 사장님이 굉장히 유쾌하시지. 멋을 아신달까? 가끔 사람이 없을 땐 기타도 쳐주시는데, 정말 괜찮아.”

 

 어차피 술 마시는 자리, 바쁠 것도 없겠다 도현은 사장에게 기타 연주를 청했고, 사장은 흔쾌히 자신의 노래를 곁들여 연주를 들려주었다. 자기 흥에 취한 노래와 연주는 프로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의 운치가 있었다. 짧은 연주가 끝나자 도현은 크게 박수를 치며 너스레를 떨었다.

 

 “잡지사를 운영하면서 웬만한 예술 공간은 다 안다고 떠들었는데, 여길 몰랐다니 부끄럽네요.”

 “에이~ 대한민국에 멋있는 곳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구석진 곳까지 알겠수? 그냥 혼자 흥에 겨워 노래하는 곳이니 공치사할 것 없다우. 어디, 음식은 입에 맞나?”

 “너무 좋습니다. 독일 여행하면서 먹었던 딱 그 맛이에요.”

 “오늘 우리 의원님이 손님 데리고 온대서 솜씨 좀 부려봤다우. 괜찮다니 썩 다행이네.”

 

 꽤나 넉살이 좋은 주인이었다. 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씨익 웃었다.

 

 “그런데 아미쉬 피클이 있지 않았나? 오늘은 없습니까?”

 

 맥주를 홀짝이던 성혁이 무심코 주문을 던졌다. 주인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피클도 사람이 와야 만드는 거지, 백만 년 만에 한 명씩 오는데 어찌 만드누. 한 달 전엔가 만들어뒀는데 손님이 하도 안 온 탓에 시큼해져서 버렸지.”

 “아쉽네요. 그걸 먹고 싶었는데.”

 “있어 봐. 혹시 대신할 건 없나 찾아보고 올 테니. 혹시 알어? 창고 구석탱이에 쳐박혀 있던 동치미라도 찾아질지?”

 

 농담을 던지며 자리에서 일어선 주인은 부엌 옆의 작은 문을 열고 나갔다. 그쪽에 창고가 있는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며 도현은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시고는 성혁을 바라봤다.

 

 “그래서... 여기 술이나 마시자고 절 부른 건 아닐 테고... 무슨 일이실까요?”

 

 성혁이 기본 안주로 나온 과자를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뭐, 별건 아니고... 그때 우리가 다 못한 이야기나 할까 했지.”

 “다 못한 이야기라면...”

 “자네 동생 이야기.”

 

 성혁의 말에 도현이 입꼬리를 올렸다. 역시 효과가 있는 미끼였다.

 

 “제 동생 이야기라... 그때 말씀 드린 게 다입니다만...”

 “내 작은 아버지인 인경철을 살해한 진짜 범인이 자네 동생이다. 그게 진짜 이야기의 끝인가?”

 “다른 게 더 필요한가요?”

 

 뻔뻔스러운 도현의 대꾸에 성혁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그럼 그 곁다리의 이야기들을 시작해보지.”

 “곁다리라고 한다면...”

 “자네 동생 때문에 누명을 쓴 그 사람 말이네. 강경식.”

 

 강경식이라... 어쩌면 이 이야기의 시작이자 끝인 사람이었다. 자신의 가족이 몰살되었을 때도, 수연의 가족이 몰살되었을 때도, 그 사람이 사건 현장에 있었다.

 

 “당신 동생은 왜 그 사람의 담당을 맡은 거지?”

 “담당을 맡은 게 아니라, 맡겨진 거죠.”

 

 성혁이 피식 웃었다.

 

 “선수끼리 말 돌리지 말자고. 강경식이 교도소에서 자신의 담당 심리학자 때문에 마음 고생 했던 건 비밀도 아니니까.”

 “그래요?”

 “둘 사이에 무슨 사연이라도 있나?”

 “글쎄요...”

 

 도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수연의 진짜 정체를 모르더라도 자신이 안평그룹의 자식이라는 걸 기억한다면 절대 모를 수가 없는 일이었다.

 

 “아마 부모님 때문 아닐까요? 제 동생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게 그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자네 부모님?”

 

 성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네 부모님은 자살하신 게 아닌가?”

 “뭐... 세간에는 그렇게 알려져 있죠.”

 

 이 정도면 자신이 줘야 할 암시는 모두 준 셈이었다. 하지만 성혁은 도현의 기대와 다르게 고개를 한 번 휙 털어버릴 뿐이었다.

 

 “뭐 짐작 가시는 게... 없으실까요?”

 “짐작 가고 말고 할 게 있나. 난 그때 순 공부만 하던 샌님이었다네. 유명한 기업의 총수 부부가 죽었다는 것만 기사로 봤을 뿐,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네. 우리 어머니라면 모를까.”

 “아... 그래요...?”

 “그리고 강경식 그 친구가 밑바닥에서 구른 터라 돈만 된다면 청부 살인도 마다 안 했던 사람이라, 만약 자기 부모가 누군가에게 살해 당했다고 생각한다면 꽤나 합리적인 의심이긴 하군.”

 

 결국 안평그룹의 몰락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성혁에게 물을 것도 없었다. 차라리 더 확실한 증거를 들이대지 않는 한은.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군.”

 “뭐가요?”

 “자네 동생이 지금 오피스텔에 살고 있잖나. 그런데 그 옆집에 사는 아이 말일세.”

 “그... 유진군이던가요?”

 “그래, 그 아이. 알고 있나?”

 “저도 오며 가며 봤습니다.”

 

 도현의 대답에 성혁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실은 그 아이가 강경식의 아들이거든.”

 

 쨍그랑. 도현이 들고 있던 맥주잔이 힘없이 테이블 위에 떨어졌다.

 

 “아, 몰랐나?”

 “그게... 사실인가요?”

 “내가 이런 걸로 거짓말을 왜 하겠나.”

 

 성혁이 도현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쐐기를 박았다.

 

 “전에 자네 동생과 잠깐 이야기했었지. 자네 동생은 이미 알고 있던데. 자네에겐 말하지 않았나 보지?”

 

 순간, 어떤 기억이 도현의 머리를 스쳐갔다.

 

 

  “혹시 강경식 그 놈이요. 자식이 있었나요?”

  [잠시만... 아니. 주민등록상에 확인되는 사람은 없어.]

  “그럼... 자식이 없는 건가요?”

  [정확히는 강경식의 아들이나 딸로 출생신고 된 아이가 없다는 거지.]

  “부인이나 다른 가족은요?”

  [부모는 예전에 사망했고, 부인도 몇 년 전에 사망한 걸로 나오는데?]

  “아... 네...”

  [그건 왜?]

  “아... 별 건 아녜요. 전에 강경식이랑 이야기 할 때 자식이 어쩌구 가족이 어쩌구 하면서

  동정심을 사려고 들었거든요. 거짓말인 거 알았으니 됐어요.”

 

 

 점점 굳어가는 도현의 표정을 보며, 성혁은 도현의 어깨를 톡톡 다독였다.

 

 “진짜 몰랐나 보군. 뭐 어떤가. 가족 간에도 말하기 힘든 비밀은 있는 법이지.”

 

 남아있던 맥주를 단숨에 비운 성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구로 향했다.

 

 “아, 참...”

 

 성혁이 밖으로 나가던 걸음을 멈추고 도현을 바라보았다.

 

 “그거 말일세. 당신 동생이 인경철을 죽인 진범이라는 거. 자네 말고 또 누구누구가 알고 있나?”

 “글쎄요...”

 

 도현이 자못 고민하는 척 말꼬리를 흐렸다.

 

 “딱 제 동생과 저만 알고 있죠.”

 

 도현의 대답에 성혁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알았네.”

 

 그리고는 유유히 식당을 떠났다.

 

 도현은 남은 맥주를 단숨에 들이 마셨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문을 향해 걸어나갔다.

 그런데 그때.

 

 [펑!]

 

 엄청난 굉음과 함께 천정의 전등이 폭발했다. 폭발로 만들어진 불꽃이 삐쩍 마른 나무 기둥과 인테리어용 초가지붕에 옮겨붙었다. 그리고 이내 식당은 불길에 휩싸였다.

 

 

 

 

 “어때, 좀 마음에 드슈?”

 “시어빠진 동치미를 기대했는데, 이건 많이 신선하네요.”

 “볼멘소리는, 에잉...”

 “아무튼 이번에도 신세졌습니다.”

 “늘 그만큼 두둑히 챙겨주잖수.”

 

 주인이 성혁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꾸욱 찌르며 함박 웃음을 지었다.

 

 “아무튼 끝낼 일은 깔끔하게 끝내는 게 좋을 거요. 특히 당신이 지 어머니까지 속여가며 어머니의 수족과 숙부까지 처리하려 들었다는 건 말이요.”

 

 주인은 알 수 없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건물 전체를 휘감는 화마를 잠시 지켜보던 성혁도 이내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불꽃은 다른 건물까지 삼켜버릴 기세로 커져 있었고,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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