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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난초꽃향기
작가 : 판도라
작품등록일 : 2020.9.6

나에게는 세 가지 한(恨)이 있다.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서 태어난 것, 그리고 남편의 아내가 된 것...그런데, 그 남편이 나를 찾으러 왔다. 무려 400여년후의 세상으로. 난초꽃 한가지로 이어진 전생의 인연, 그리고 난설헌 허초희의 소원...그 소원의 뿌리를 찾으러 떠난 내 눈앞에 왜란을 앞둔 400여년전의 조선시대가 열린다.

 
제6회
작성일 : 20-09-16 00:18     조회 : 177     추천 : 0     분량 : 5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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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교교한 달빛이 처마끝에서 춤추고 삼라만상이 깊이 잠든 시각, 나는 김첨(金瞻)대감집 대문을 몰래 빠져나왔다.

 

 도포자락이 살짝 거추장스럽긴 하였으나, 짧은 머리에 상투를 틀고 잠을 꽂은후 깊숙히 갓을 눌러쓴 내 모습은 영낙없는 조선시대 일류 선비의 모습이었다.

 

 "머리카락이 짧으니 나중에 가체를 몇개 만들어 드리리다. 마님께서 보기 흉하다 지청구를 하시기전에..."

 

 여현서방님이 전에 입었던 옷이라며 내 옷차림을 꼼꼼히 점검해주던 향단이 다시 신신당부를 했다.

 

 "해가 뜨기전엔 꼭 돌아오셔요. 마님께선 워낙 아침잠이 없는 분이시라 묘시(아침5-7시)를 넘기시면 아니되십니다."

 "이미 네번째 듣는다."

 

 나는 입안으로 투덜거리며 갓끈을 단단히 조였다. 흰색 치마 저고리보다는 퍽 마음에 드는 차림이었다. 품과 길이가 조금 크긴 했지만 허리끈으로 조여주니 그런대로 커버가 되었다. 이럴땐 여자치고 큰 내 키도 새삼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무사히 다녀오마."

 

 향단에게 인사를 하고 방문을 나선후 마당쇠의 눈을 피해 대문을 빠져나올 때까진 순조로웠다. 하지만 눈앞의 어두컴컴한 밤길에서 나는 주춤할수밖에 없었다.

 

 "가로등이 없다는 걸 깜빡했군."

 

 숙소의 위치는 대략 북쪽이니 지금 나더러 북극성이라도 찾아 방향을 가리라 하는 건가. 한참 고개를 들고 밤하늘을 쳐다보며 걷느라 나는 그만 앞에서 오는 사람과 정면으로 부딪치고 말았다.

 

 "윽..."

 

 어둠속에서 낮은 신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급히 뒤로 물러서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되었소."

 

 부딪친 사람은 잠시 멈춰서더니 가던 길을 계속 가려고 했다. 이때 문득 뇌리를 스치는 그 무엇에 나는 홀린 듯 입을 열어 그 사람을 불렀다.

 

 "여현?"

 

 그 사람이 다시 걸음을 멈추었다. 금세 심장이 벌렁거렸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이렇게 쉽게 그를 만날 수 있을줄이야...

 

 "...뉘시오."

 "정녕 여현이 맞습니까."

 

 나는 흥분을 눅잦히며 한번 더 확인했다. 그 사람은 고개를 돌려 찬찬히 나를 훑어보았다.

 

 "내 자를 알고있으니 외인은 아닐터."

 

 그가 옳다. 진중한 그의 목소리가 틀림없다. 내 눈에 바로 눈물이 그들먹히 차올랐다. 무사하구나...혹은 아직...무사했구나. 그도 나처럼 타임워프를 한 걸까? 아니면 그는 애초에 여기에 있었던 걸까.

 

 "혹시...균이요?"

 

 그가 다시 물어왔을 때 나는 이미 마음을 진정하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균이라면...혹시 허난설헌의 동복동생인 교산 허균을 말하는 것일까. 그 유명한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 억울하게 역모죄로 처형당한 이 시대의 이단아...

 

 "균이 맞군. 어찌 오셨소. 누님은 만나보셨소?"

 

 남장차림의 내 모습이 허균을 쏙 빼닮은 모양이다. 그의 확신에 찬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아니면 나를 문죄하러 온 건가."

 

 어둠속에서 그가 차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오래동안 침묵하고 있는 내 모습이 그리 호의적으로 보이지 않았나보다. 내가 알고있는 역사사실을 떠올려봐도 허균과 김성립은 사이가 좋지 못했다고 했다.

 

 "문리(文理)는 모자라도 능히 글을 짓는 자."

 

 허균이 김성립에 대한 평가였다. 자신의 눈에 그렇게 못마땅한 김성립이 그나마 글을 짓는 게 신기해보였던 모양이다. 그만큼 누나에 대한 사랑도 극진했으리라. 그렇다면 지금의 그가 취할 행동은...

 

 "퍽..."

 

 역시 내 주먹은 내 머리보다도 움직임이 빨랐다. 다만 예상했던 일이었는지 여현의 반응이 오히려 담담해서 나는 다음 행동을 어떻게 취해야 할지 잠시 막막했다.

 

 "이것으로 되겠소?"

 

 여현의 목소리에 빈정거림이 섞였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그를 잠시 노려보았다.

 

 "누님한테 무슨 짓입니까."

 "..."

 "집에 아예 들리지도 않는다면서요. 과거에 급제하기전엔 공부때문이라 칩시다. 지금은 급제도 하고 벼슬도 하사받았겠는데 이젠 또 무슨 이유로 사람을 소박 주는 것입니까."

 "누님이 그러던가요. 내가 소박을 준다고."

 

 어둠속에서 그의 목소리가 한껏 쓸쓸해졌다.

 

 "나도 눈이 있고 귀가 있습니다. 누님 얼굴을 보면 다 압니다."

 

 맹세컨데 이러려고 그를 찾은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허균의 배역에 열연했다. 그토록 걱정했던 그가 이렇듯 멀쩡하고, 또 멀쩡한데도 나를 알아보지 못한 것에 살짝은 섭섭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나에게는 과거지만 그에게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가 될수도 있으니까. 만일 그에게도 과거였다면 그는 지금 이리 멀쩡한 모습으로 내앞에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런 나를 향해 그가 조용히 말했다.

 

 "세상일은 그렇게 겉면으로만 보지 마시오. 나중에 꼭 큰 코를 다칠 일이 있을 것이오. 누님 면목을 봐서 내가 충고를 하는 것이오."

 "필요없습니다, 그런 충고따윈."

 

 나는 소매를 떨치고 되돌아섰다. 숙소로 가던중 우연히 여현을 만났고 그가 비단 무사할 뿐만아니라 내가 현대에서 만났던 여현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했으니 일단은 돌아가야 했다. 향단이 걱정하는 것도 마음에 걸렸고 따로 갈곳도 마땅치 않았으니까.

 

 "털썩"

 

 등뒤에서 그가 갑자기 쓰러지지만 않았으면 말이다.

 

 ......

 

 "이젠 정신이 듭니까?"

 

 나는 불퉁한 기색으로 맞은켠의 사람을 보았다. 어느 몰락한 가문으로 보이는 텅 빈 집 마당의 한구석에서 나는 뻣뻣해진 사지를 놀렸다. 어제 그가 쓰러지지만 않았어도, 조선시대로 온 첫날 이런 스산한 곳에서 밤을 새지 않아도 되었는데 말이다.

 

 "예나 제나 예고없이 쓰러지는 것 하고는..."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후 다시 그를 향해 말을 건넸다.

 

 "이번은 또 어디를 다쳤습니까."

 

 무심히 물어보았음에도 그는 퍼그나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그렇지 않으면 왜 픽픽 쓰러집니까..."

 "..."

 "집까지는 도저히 끌고갈 수 없더이다. 옷에 피자국이 없는 걸 보아 몸에 상처가 난 건 아닌듯 한데, 의원을 부르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되었소."

 

 그가 하도 깔끔하게 거절하자 나는 그만 부아가 치밀었다.

 

 "그럼 난 이만 가보겠습니다."

 "잠깐만."

 

 걸음을 멈춘 나에게 그가 말했다.

 

 "오늘 일 누님한텐...비밀로 해주시오."

 "무슨 일 말입니까. 나랑 만났던 일, 아니면 기혼했던 일입니까."

 "둘 다."

 

 영문은 알수 없었지만 나는 금세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죠."

 "어디로 갈 예정이시오."

 "나야 워낙 부평초같은 몸이니 상관 마시고 누님이나 잘 돌보세요."

 

 나는 그를 뒤로 하고 서둘러 대문을 나섰다. 날이 희붐히 밝아오기 때문이었다. 송씨 마님이 깨기전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어떤 불편한 일이 발생할지 모를 일이었다.

 

 향단이 조급해할까봐 부랴부랴 김대감댁 대문을 들어서는데 이미 안쪽으로부터 근엄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마당쇠는 어디 갔느냐! 대체 대문 간수를 어떻게 하기에 이렇듯 외간 사내가 드나드는 것이냐."

 

 피할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당쇠와 향단이 안에서 달려나오는게 보였다. 나는 이왕 이렇게 된바엔 정면돌파를 감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마님 그간 무양하셨습니까. 소생 허균 무례함을 무릅쓰고 문안 드리옵니다."

 

 나는 허리를 급히며 목소리를 돋우어 인사를 했다. 마당쇠는 멍한 표정이었고 향단은 손으로 입을 막으며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곧이어 정교한 가체를 쓰고 옷차림을 정제한 여인이 그뒤로 천천히 걸어나왔다.

 

 "균도련님이 이른 아침부터 웬 일이시오."

 "실례가 되는줄 압니다만 워낙 급한 사안이라 이렇게 외람되이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나는 말을 마치고 고개를 들다가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뻔 했다.

 

 "최여사..."

 

 흰 얼굴과 정밀한 오관, 깔끔한 옷차림에 예리한 눈매를 가진 미색의 중년 부인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아름다움을 유지한 그 얼굴은 놀랍게도 현대의 내 엄마, 최여사의것이었다.

 

 "접때 봤을 때보단 많이 굳건하셨구려. 가문의 중책을 떠메느라 어깨가 많이 무겁겠소."

 

 내 엄마, 최여사를 닮은 송씨마님이 건조한 얼굴로 의례적인 인사를 건네왔다. 나는 시선을 아래로 떨구고 생각을 정리했다.

 

 "집안 사정때문에 본의아니게 여러모로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합니다."

 

 잠시 표정을 가다듬은 후 내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헌데 마님께선 접때 뵈었던 때보다 퍽 강녕하시니 소생이 한시름 놓았습니다."

 

 내 말을 들은 송씨마님의 얼굴에 언뜻 웃음기가 스쳤다.

 

 "균도련님이 이 사람 걱정을 다해주시니 의외이긴 하나 듣기 나쁘진 않소."

 

 그렇게 말을 던지고 나서 송씨마님은 안채쪽으로 몸을 돌렸다.

 

 "향단아, 아씨한테 일러 친정에서 식구가 오셨다고 나오라 하거라."

 "아...아씨는 몸이 쾌차치 않으시니 제가 도련님을 안으로 뫼시는 건 어떨까요?"

 

 향단은 방금전의 당황하던 모습을 빠르게 갈무리하고 평소처럼 기민한 반응을 보였다. 송씨마님은 눈살을 찌푸리다가 내가 보고 있는 것을 의식하자 마지못해 머리를 끄덕였다.

 

 ......

 

 "아씨때문에 간이 떨어질뻔 하였습니다!"

 

 향단의 지청구에 나는 도포와 갓을 벗어 그녀를 넘겨주며 혀를 홀랑 내밀어 보였다.

 

 "어쨌든 무사히 넘겼잖아."

 "그래도 어쩌면 그렇게...다행이 마님께서 눈치를 못챘으니 망정이지..."

 "여현을 만났어."

 

 내 말에 그녀의 잔소리가 뚝 끊겼다.

 

 "숙소까지 잘 찾아가셨나 보네요."

 "아니, 길에서 우연히."

 

 내 말에 향단이 고개를 숙이며 쿡 웃었다. 나는 의아해졌다.

 

 "왜 웃어?"

 "송구합니다. 다만 아씨와 서방님은 원래 우연이 많은 분들이어서 말이죠."

 "우연이...많다고?"

 "혼례도 그래서 치르셨잖아요. 우연히 아씨님의 시 한수에 서방님이 마음이 움직이셔서 이도련님을 졸라서..."

 

 향단은 멍해진 내 얼굴에 그만 말을 중단했다.

 

 "에구, 쇤네가 또 말실수를..."

 "아니야...내가 말했잖아. 난 전혀 기억이 안난다고."

 

 향단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내 눈치를 흘끔 보았다.

 

 "그럼...이도련님도...기억..."

 "응, 누군지도 기억이 안나. 그러니 그렇게 조심스러워하지 않아도 돼."

 

 나는 일단 향단을 안심시켜놓고 그녀가 꺼내놓은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런데, 이도련님은 대체 누구야?"

 "그분은..."

 

 향단은 언제 만들었는지 가체를 꺼내어 내 머리에 능숙하게 얹어주기 시작했다.

 

 "아씨께서 본가에 계실 때 스승으로 모셨던 분이세요."

 "스승? 혹시...손곡 이달선생?"

 "어머...기억나세요?"

 

 손곡 이달(李达)이라면 허난설헌이 규방에 있을때 스승으로 모셨던 시인으로서 최광훈, 백경창과 더불어 조선중기 삼당시인(三唐诗人)으로 불렸던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여현 하나로도 충분히 머리가 아픈 상황이라 허난설헌의 다른 인간관계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내가 머리를 가로젓자 향단은 내 가체를 바로잡아준 후 내가 입을 겉옷을 가지러 나갔다. 바로 그때 문밖에서 기침소리가 들렸다. 내가 누구냐고 묻기도전에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 옷 이리 다오."

 

 여현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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