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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난초꽃향기
작가 : 판도라
작품등록일 : 2020.9.6

나에게는 세 가지 한(恨)이 있다.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서 태어난 것, 그리고 남편의 아내가 된 것...그런데, 그 남편이 나를 찾으러 왔다. 무려 400여년후의 세상으로. 난초꽃 한가지로 이어진 전생의 인연, 그리고 난설헌 허초희의 소원...그 소원의 뿌리를 찾으러 떠난 내 눈앞에 왜란을 앞둔 400여년전의 조선시대가 열린다.

 
제5회
작성일 : 20-09-16 00:03     조회 : 184     추천 : 0     분량 : 4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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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현..."

 

 입안이 타는듯 말라서 발음이 입속에서만 맴돌고 있었다. 머리가 으깨어지는 듯한 통증에 미처 눈을 뜰수 없었다. 하지만 기억 깊은 곳에 자리잡은 그 이름을 나는 몇번이고 곱씹어 되뇌였다.

 

 "여현..."

 "지금 뭐라고 했느냐? 감히 여인네가 남정네 자(字)를 불러대다니, 이건 또 무슨 경망한 작태더냐."

 

 뭐지...유난히도 각박하고 냉랭하게 들리는, 4,50대 중년의 여인의것으로 추정되는 이 목소리는...나는 입술을 달싹거려보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옆에서 누군가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정하셔요. 마님...아직 정신이 들지 않아 헛것을 부른 모양입니다."

 "머리는 그게 또 무슨 꼴이냐! 아무리 친정이 몰락했다고 하나 엄연한 사대부 가문 여식인데 이 정도 법도도 모른단 말이냐? 감히 저런 꼴로 말도 없이 집을 나가다니!"

 "친정이 갑자기 그리 된데다 갑작스러운 친정 오라버니 부고에 경황이 없어서 그렇게 하신 걸로 보여집니다."

 "부고가 오면 사람을 보내어 연고를 묻고 시부모 허락을 받은 후에야 친정에 다녀올 일이거늘..."

 "객사를 하시어 정상적인 부고 절차가 없은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아씨 충격이 크신듯 하니 너그러이 살펴주시어요. 의원 말로는 이번 충격으로 태기마저 사라졌다 하오니..."

 "뭣이? 금쪽같은 내 손자손녀를 보낸지 어제같은데...이제 겨우 태기가 있다 싶더니 또 이런 변고가 생긴단 말이냐!"

 

 중년 여인의 추상어린 목소리에 그동안 나를 대변해 말하던 목소리가 잠잠해졌다. 중년 여인은 잠시 화를 눅잦히는 듯 싶더니 이번에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었다.

 

 "좌우간 집안엔 여자가 잘 들어와야 하는 법이거늘, 안동 김씨 가문에 이런것이 들어와 가문을 어지럽히다니...여현이 과거에 급제하고도 집을 안들어오는 이유도 내 이제야 알겠다."

 

 휭하고 중년 여인이 가버린 모양으로 방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제서야 욱신거리는 미간을 구기며 천천히 눈을 떴다. 단아하고 예쁘장한 작은 얼굴의 여인이 내 시선안에 들어왔다.

 

 "이제야 기운을 차리시나봐요, 아씨."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소박하게 꾸몄지만 정갈하고 아담한 방이었다. 내 시선이 하얀 종이로 발라놓은 창호지와 장지문, 방바닥에 펴놓은 비단 이부자리, 방 한켠에 놓인 작은 서안상, 눈앞의 여인의 댕기머리와 무명 치마저고리를 차례로 훑었다. 괴기스럽게도 이 모든 것이 내가 알고있는 지식과 해당되는 사항은 단 하나뿐이었다.

 

 "...이게 촬영세트장은 아니죠?"

 "..."

 "조선시대인가요?"

 "네...네?"

 

 내 물음이 괴이했는지 여인이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방금 들은 중년여인의 말을 꿰어맞춰보면 굳이 여인의 대답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사대부, 안동김씨...그리고 여현...여현?

 

 "여현은 누구죠? 그는...괜찮은가요?"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나는 여인의 두 팔을 움켜쥐었다. 여인은 놀라 몸을 움찔했다.

 

 "여...여현서방님 말씀이신가요?"

 "서방님?"

 "서방님은 아직 접(과거공부를 하기 위한 숙소)에 계시세요. 오늘도 못들어오신다고 쇤네에게 말씀을 전달하시라..."

 "그러니까, 그 여현서방님이 무사하시단 말씀이죠?"

 "네...아까 저자거리서 잠깐 뵜었어요..."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팔을 놓아버렸다.

 

 ......

 

 여인의 이름은 향단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신분은 이 가문의 지체높은 몸종인 듯 했다. 내가 아는 역사지식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조선시대의 몸종이나 하녀들은 대개 이러루한 비슷한 이름을 가진 듯 했다.

 

 향단의 입에서 나는 이 가문이 한때 조부때 영의정까지 지낸적 있는 김홍도(金弘道)의 집안이라는것을 알수 있었다. 지금의 바깥대감님은 김홍도의 아들 김첨(金瞻)이었고, 아까 나간 부인은 이 댁 마님으로서 본가의 성은 송씨였다. 둘에게는 이제 막 과거를 치른 아들이 있었고 이름은 바로 김성립(金诚立)이라고 했다.

 

 "김성립이면 바로 그 무능하고 속좁기로 소문난 허난설헌의 남편..."

 

 다행이도 향단은 이런 내 말을 금방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환자의 헛소리로 취급한것이 분명했다.

 

 "쇤네 아씨께서 알고싶어 하시는 건 다 여쭤드렸어요. 그런데 정말로 이 모든 것이 기억나지 않으세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의 눈에 금세 맑은 이슬이 맺혔다.

 

 "세상에...어떤 험한 일을 당하셨기에 이렇게나..."

 "그럼 여현서방님은 또 누구죠?"

 

 내 말에 향단은 고개를 들어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도련님의 자(字)가 바로 여현이여요. 호는 서당이구요. 이것까지 잊으셨다면 빨리 기억해두셔요. 아까처럼 마님께 혼나시지 말고..."

 

 여현, 여현이라...하필...혹시 우연일까? 설마 하는 생각에 머리를 흔들고나서 나는 향단에게 마지막 질문을 했다.

 

 "그럼, 난 누구죠?"

 

 ......

 

 내 황당한 질문에 끝내는 억이 막혔는지 향단의 표정은 아예 울먹거림 그 자체였다. 사실 굳이 그녀에게서 답을 듣지 않아도 나는 알수 있었다. 그녀가 나를 아씨라고 부른다면, 내가 이 시대에서의 신분은 바로 그 유명한 허난설헌이라는 것을. 그저 난 이 모든것을 믿기 어려워서 향단에게 재차 확인을 하고싶었던 것이다.

 

 현대 수도권의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차사고가 왜 하필 나를 여기로 보냈을까. 이 모든것이 설마 3년전 눈속에서 만난 그녀-허초희때문일까? 그녀는 3년전 그날 왜 하필 나를 찾아왔을까. 나는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어쩌면 그녀는 3년후 내가 이런 황당한 타임워프를 할 것이라고 미리 알고 찾아왔을 지도 모른다. 그녀를 생각하니 자연적으로 그녀의 시집과 그녀가 넘겨준 난초꽃가지가 머리에 떠올랐다. 의식을 잃기전 나는 분명 그것들을 보았었다. 그렇다면 나를 여기로 보낸 불가사의한 능력의 정체는...그리고 여현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자리에 누워서 머리만 부여잡고 있는 내가 걱정되어서인지 향단은 좀처럼 방을 떠나지 않고있었다.

 

 "아씨...의원을 뫼셔올까요?"

 "..."

 "아씨...미음이라도 한술 뜨시와요."

 "..."

 "아씨...차라리 아까처럼 뭔가 말씀이라도 하셔요..."

 

 향단의 목소리에 드디어 물기가 어렸다. 나는 시선을 돌려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단아한 얼굴에 맑은 눈물방울을 달고있는 그 모습은 같은 여자가 보기에도 가슴이 뭉클한 느낌이었다. 이리 예쁜 아이가 한낱 몸종이라니...

 

 "울지...마세요."

 "아씨...정녕 아무것도...기억하지 못하는 건가요?"

 "솔직히 내가 왜 여기 와있게 된 건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향단님이 좀 잘 설명해줘요."

 

 내 말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건지 향단은 손을 내저으며 뒤로 물러앉기까지 했다.

 

 "아씨! 지금 존대도 버거운데 님이라니요!"

 "그럼...뭐라고 불러야 하는데...요."

 "그냥 향단아 하시어요, 제발. 아래것들에게 존대를 한다고 마님께 하도 혼나셔서 겨우 말을 고치는 중이셨지만. 향단님은 너무하셔요."

 "아...그래...?"

 

 뭐, 일단 반말 하지 뭐. 나는 입속말로 작게 중얼거렸다. 그녀가 기억을 더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아씨께서 친정 부고를 받고 가신지 달포만에 이상한 남장 차림으로 대문앞에 쓰러져 계신 걸, 다행이도 마당쇠가 발견하고 사람을 불러 안으로 뫼신 거에요."

 

 나는 한참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드디어 사색을 정리하고 그녀를 불렀다.

 

 "향단...아."

 "네, 아씨."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 잘 들어."

 "네에."

 "우선, 마님께 내가 기억을 잃었다는 말은 삼가해줘."

 "그야 당연한 말씀을...아씨께서 또 혼나시는 걸 쇤네는 원치 않습네다."

 

 여러모로 보나 참으로 심성이 착한 아이다. 나는 머리를 끄덕인 후 말을 이었다.

 

 "그리고 언제 서방님 뵙거들랑 말 좀 전해줘. 할말이 있으니 집에 잠깐 들려달라고."

 "네에."

 "아니다, 그게 언제가 될지 알고. 아까 숙소에 계신다 했지? 차라리 내가 가서 찾아볼께. 어딘지 위치만 알려줘."

 

 이렇게 말한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향단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아내가 남편을 찾아가 보겠다는데 그게 그렇게도 이상한 일인가. 아, 조선시대였지.

 

 하지만 나로서는 언제 집에 들어올지도 모를, 하필이면 여현이라는 자(字)를 가진 이 댁 도련님을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나는 빨리 현대로 돌아가야만 했다. 사고를 저지른 차량은 도주했을 것이고, 여현은 아직도 그곳에서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을 지도 모르니까.

 

 향단이 말하는 여현서방님이 만일 내가 현대에서 만났던 그 여현과 같은 사람이라면, 그는 어떻게 되어 현대로 가게 되었을까. 하긴 현대의 나도 지금 조선시대에 와있는데 조선시대의 사람이 현대로 가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렇다면 그가 현대로 간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현대의 여현은 내게 소중한 사람을 찾으러 왔다고 했다. 그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아마 허초희일 가능성이 제일 큰데, 그녀는 3년전 그날 내게 꽃가지를 건네준 후에 한번도 다시 나타난 적이 없었다. 그리고 3년후인 지금은, 내가 허초희의 신분으로 조선시대에 덜컥 와버린 것이다.

 

 만일 이 모든 것이 누군가가 정해놓은 일이라면, 허초희가 날 만나러 온 그날부터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여현을 만나서 물어봐야 할 것들이 있었다. 우선은 그가 현대에서 만난 여현과 동일인이라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현재의 나로서는 제일 시급한 일이었다.

 

 나는 앞으로 둬걸음 내딛다가 문득 손으로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향단이 부축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 자리에 다시 쓰러졌을 지도 몰랐다.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고 옷매무시를 살펴본 나는 다시 놀란 시선을 들었다.

 

 "내 옷들은..."

 "마님께서 추하다 꺼리시어 마당쇠를 시켜 당장 내다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그거 비싼건데..."

 

 흰색 속적삼과 단속곳 차림의 나는 맥없이 투덜거렸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가 방 한구석에 놓인 면경을 발견하고 나는 그앞에 다가갔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 뿌리 내린 채 한참동안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머리카락이 짧다 뿐이지, 하얀 속옷차림의 낭창한 여인이 면경속에 서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3년전 소복차림을 한 허난설헌-허초희를 완벽하게 닮아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때 그녀의 얼굴이 익숙해보였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 면경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동안 단단히 속박해왔던 봉긋한 가슴과 수려한 허리곡선이 얇은 속옷사이로 언뜰거렸다.

 

 그랬다....나는, 여자였다.

 

 그리고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지금, 조선중기 유명한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신분으로 무려 400여년전의 조선시대에 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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