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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무협물
후계자는 네가 해
작가 : 박시인
작품등록일 : 2020.8.4

묻혔던 비밀과 얽히고설켰던 사연들이 드러난다. 그 엉킨 매듭을 풀어내라고 등 떠밀렸는데, 맞서는 대적자가 전혀 뜻밖의 인물이라.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으니……. 이 검왕의 아들과 그를 제자로 삼았던 천마의 후예는 결국 대립할 수밖에 없다. 음모에 빠졌을 때에도 갖가지 기연을 만나게 되는 제법 운이 좋은 사내. 또 고난을 겪을지라도 끝까지 의리와 헌신의 관계성을 발전시켜 나가려 애쓰는 올곧은 의식의 소유자, 그런 주인공의 이야기.

 
#15. 이 번뇌를 누가 알랴?
작성일 : 20-09-15 09:58     조회 : 259     추천 : 0     분량 : 5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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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이 번뇌를 누가 알랴?

 

 

 

  “에구, 녀석아. 궁금할 것도 많다.”

  냉추하가 살짝 웃었다.

  엄낭랑은 사랑스럽다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 이어가는 말은 신신당부였다.

  “남붕치가 손을 쓰면 호불호는 분명히 너를 지켜줄 것이다.”

  “상대하지 말라고요?”

  “그렇다. 대응수단은 그 뒤로 피한 다음에 찾아보도록 해라.”

  냉추하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알겠어요.”

  “그때는 절대 망설이면 안 된다. 알겠느냐?”

  신신당부가 끝나자 돌아서서 앞장섰다.

  엄수수는 이미 중년을 넘긴 사람이었다.

  일 처리와 언행이 늘 신중했다. 그러나 지금은 평상시와 다른 모습이었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서두르는 기색이었다. 동시에 그것을 망설이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움켜쥐는 손과 앙다무는 입술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위로 질끈 동여맨 짙은 흑갈색의 머리. 등에 쌍검을 교차해서 맨 훌쩍하게 큰 키. 열두 개의 단검이 꽂힌 칼집을 두른 잘록한 허리. 왼 어깨에서 오른쪽 허리까지 비단 주머니를 이어서 묶은 하늘색 긴 보자기.

  마치 전쟁에 나가는 장수가 무장한 모습 같았다.

  그렇다고 그 모양새가 거칠게 우악스럽지는 않았다. 겉치장뿐인 것처럼 만만해 보이지도 않았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이국적 미모를 소유한 전사처럼 보였다.

  그 뒤태를 바라보는 소녀의 눈빛이 아스라해졌다. 사문의 대선배에게 마음의 막연한 기대를 품은 눈빛이었다.

  자신은 사문의 소문주로서 풀 수 없는 문제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 막막함을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다는 슬픈 눈빛이었다.

  놀랍게도 먼 곳에 있는 별의 형상을 바라보는 듯한 눈매는 세상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곱고 예뻤다.

  그때 또 엄낭랑의 전음입밀이 전해졌다.

  “너는 본문의 비전절기(秘傳絶技)인 비설관죽(飛雪貫竹: 날아간 눈송이가 대나무를 뚫는)의 성취가 어디까지 이르렀느냐?”

  소녀가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제자가 미욱하여 육성(六成: 약60%)을 겨우 넘겼나이다.”

  “오, 정말로 그러하냐? 장하다!”

  엄낭랑의 눈빛에 놀랐다는 기색이 나타났다.

  그 열두 초식 중에서 제자들에게 허락된 수련의 범위는 여덟 초식까지였다.

  육성(六成)을 넘겼다는 말은 자신에게 허락된 모든 부분을 이미 숙달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소녀는 대답한 다음 울상이 됐다.

  “더 이상의 성취를 이루지 못하는 제자를 꾸짖어주소서.”

  “아니다, 아니야. 그 일은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자기 사문의 대선배가,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자 소녀는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엄낭랑은 조금 전까지 망설였던 그 일을 결심했다.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것은 비도문의 절기인데, 너 아니면 누구에게 전하랴.

  사람 생애(生涯)의 갖가지 사연들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인지. 어떤 사무침을 빌미로 우연처럼 미묘하게.

  엄낭랑은 비도문 전대 문주의 첫 번째 제자였다. 당시 강호에는 후기지수 중에서 재질과 성품이 단연 돋보이는 인물은 비도문의 대제자 엄수수 뿐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재질은 화산파의 장문인 풍청양에 뒤지지 않고 성품의 선량함과 자존감은 오히려 그를 능가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문주의 자리를 이을 수 없었다. 교묘하게 자기 사저를 음해한 현 비도문주 이청하 때문이었다.

  그랬으니 제자도 거두지 못했다.

  더구나 엄낭랑은 사문의 구차한 이해타산에 결부되는 걸 지나칠 정도로 싫어했다.

  이런 엄수수를 파문(破門)한 뒤에도 비도문은 여전히 제도와 명분에 얽매어있었다. 사문의 제자들은 누구도 이 절기를 익힐 기회를 얻지 못했다. 결국 실전(失傳)될 게 뻔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문파의 치명적 손실이었다.

  내세울 절기가 사라진 문파는 약육강식의 무림에서 차츰 망해갈 수밖에.

  엄낭랑은 이런 고뇌의 응어리까지도 속에 감춰두고 있던 사람이었다.

  말투에 그 응어리가 사락, 사락 서리처럼 돋아나왔다.

  “너는 내 마음을 알 것이다.”

  “저는, 저는.”

  “두려우냐?”

  “소녀는 갑자기 큰 죄를 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다. 이건 오히려 네 사부의 올무를 벗겨주는 일이다.”

  “아아, 어쩌면 좋아.”

  “너는 염려할 것 없다. 네 사부는 내게 한을 심어준 사람이다. 그러나 내가 또 아끼고 아끼던 사매이기도 했으니…….”

  “저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괜찮다. 책임은 내가 진다. 두려워하면 아무것도 손에 쥘 수 없어! ”

  말을 마친 엄낭랑의 표정이 점점 활달해졌다.

  그런 표정이 될 까닭이 없는데도 그랬다. 말이나 태도에 아무 망설임이 없었다.

  마음만 바빠진 듯했다.

  “지금부터 내가 전하는 구결을 잘 외어두어야 하느니.”

  “네.”

  “우리가 아주 천천히 걷는다면 일식경(一食頃: 밥 한 끼 먹을 시간)의 여유가 있겠구나. 너는 먼저 구결을 외어라.”

  냉추하는 즉시 구결을 따라 외우기 시작했다.

  첫 구절 낙설안접(落雪顔接: 떨어지는 눈을 얼굴에 맞으며)은 발성하여 외웠으나 그다음부터는 속으로 외웠다.

  세 번 되풀이해서 외운 후 마지막 구절 비설관죽(飛雪貫竹: 날아간 눈송이가 대나무를 뚫는다)을 소리 내어 발성했다.

  “다 외웠나이다.”

  “그래, 잘했다. 너는 이미 일기관통(一氣貫通: 모았던 힘을 한 번에 내보내 목표물을 꿰뚫음)의 이치를 깨닫고 있구나.”

  “과찬이십니다.”

  “네 사부가 아주 잘 가르쳤어. 좋은 일이다, 좋은 일이야!”

  사부를 들추자 냉추하의 얼굴빛이 다시 어두워졌다.

  그러나 엄낭랑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 대청에 닿기까지는 반 식경(半 食頃: 한 끼 식사를 반 정도밖에 할 수 없는 짧은 시간)밖에 안 남았구나. 내 손속을 잘 봐두어라.”

  냉추하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 동작을 주시했다. 얼마나 집중했는지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다.

  잠시 후 엄낭랑이 마치 추궁하듯 물었다. 냉정한 음성이었다.

  “알겠느냐?”

  “네.”

  뜻밖에도 소녀는 즉시 대답했다.

  무엇인가 크게 깨달은 표정이었다.

  하나를 배워 열을 깨닫는다는 말은 허풍에 가깝다. 그러나 하나를 배워 그 이치를 헤아릴 수 있다면 뛰어난 오성(悟性)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냉추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대답하는 말에도 확신이 넘쳤다.

  “앞에 날아간 비도가 공기의 저항을 받으면 속도가 늦춰집니다.”

  “호오, 그래서?”

  “그러면 돌아 나와 다시 뒤에 날아간 비도를 추돌합니다.”

  “그런데?”

  “비록 순식간이지만 그때 속도와 방향에 예측하지 못할 변화가 생깁니다.”

  “그렇다! 그게 비결이다! 아이야, 너는 정말 가르칠 만하구나!”

  엄낭랑의 갈색 눈빛에 만족감이 드러났다.

  그러나 곧 감춰졌다. 나머지 부분을 설명하는 억양도 냉정했다. 음색에 따뜻함을 다 지우지 못하면서도 그랬다.

  “이 네 초식에는 한 수법마다 일곱 가지의 변화가 일어난다.”

  “네.”

  “발도(拔刀: 칼을 뽑아서 베거나 던짐)의 속도 조절에 그 성취의 크기가 달렸다. 이를 명심해라.”

  그렇게 대청의 문 앞에 도착하는 순간이었다.

  안에서 씁쓸한 웃음소리와 함께 억양이 없는 음성이 들렸다.

  “좋소! 그럼, 어디 한 번 더 말해보시오.”

  “내가 못할 줄 아시오?”

  “그런데 왜 머뭇거리냐? 어린 거지야!”

  “호부(虎父: 뛰어난 아버지를 빗댄 은유) 밑에 견자(犬子: 모자란 자식이라는 뜻)는 없는 법. 그러나 남붕치, 나는 당신 가친(家親: 아버지를 일컬음)의 이름을 모르오.”

  개방 방주 호불호가 내뱉은 말은 지독한 욕설이었다.

  ―남붕치, 네가 여태껏 해온 악한 행위는 개보다도 못한 것이다. 그러니 당신 아버지는 오죽하겠느냐?

  그가 얼마나 악한 짓을 했는지는 누구도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호불호는 이런 기가 막힌 야유로 부자를 싸잡아서 메어꽂아 버렸다.

  그 체면을 땅바닥에 패대기쳐 짓뭉개 버렸으니 듣는 당사자로서는 옳고 그름을 떠나서 치가 떨릴 일이었다.

  그러나 철골서생 남붕치는 그 심리를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흥! 코웃음을 쳤을 뿐 가타부타 대꾸하지 않았다.

  벽에 걸린 그림만 다시 노려봤다. 표정이 그림 속 사내를 흉내 내고 있었다. 분노의 기색이었다.

  개방 방주 호불호의 안색이 곤혹스러워졌다. 허리에 두른 아홉 구결 매듭 끈만 문질렀을 뿐이었다.

  이 도발로 철골서생의 속내를 떠보려 했는데 소용없었던 것이었다.

  그때였다. 크고 작은 흰 그림자 둘이 대청에 날아들었다.

  흰색 장삼을 입은 미소년이었다. 그 어깨에 털이 희고 주둥이가 붉으며 몸집이 제법 큰 앵무새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

  통보도 하지 않고 경공술을 펼쳐서 남의 집 대청 안에 날아 들어오다니.

  그 행위가 기발하기도 했고 독특하다면 독특할 수도 있겠으나 분명 예절에서는 벗어난 짓이었다.

  말하자면 안하무인이며 시건방진 태도.

  손님의 신분에서 남의 집을 방문하는 정상적 방식은 아니었다.

  이런 작자들 대부분은 어렸을 때부터 고생이나 통제에는 거리가 멀다. 그렇게 자랐으니 모든 일을 제멋대로 하는 게 습관이다.

  그런데 짐승도 자신을 키우는 주인을 닮는 것인지.

  이 소년의 어깨에 내려앉은 흰 앵무새 역시 제멋대로 지껄였다.

  “냄새나는 놈들이 다 모였구나, 어디 보자! 어디 보자!”

  분명 버릇없는 어린아이의 말투였다.

  듣는 사람 모두 기분 나쁠 수도 있었다.

  그런데 하는 짓이 너무 귀엽고 깜찍했다.

  사람들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떠올려졌다.

  그때였다.

  “앗! 저 시커먼 놈이?”

  남붕치가 허리에 찬 가죽 주머니를 열려는 순간이었다.

  흰 앵무새가 지껄이며 날아올랐다.

  동시에 또 하나의 흰 물체가 철골서생을 향해 쏘아갔다. 흰색 장삼을 입은 젊은이가 섭선을 날려 보낸 것이었다.

  검은 섭선이 날아오는 흰색 섭선을 맞받아쳤다. 두 부채가 허공에서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남붕치가 한 걸음 물러났다.

  흰색 부채는 빙글빙글 회전하여 젊은이의 손에 회수됐다.

  순식간에 교환된 일 합의 겨루기였다.

  “이기어물지술(以氣御物之術)? 아직 어린 것이?”

  이기어물지술의 수법은 어검술을 펼치는 원리와 같다.

  남붕치가 혼자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흔들며 한 걸음 더 물러났다. 손을 거두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았던 의자에 다시 앉았다.

  정말 속을 알 수 없었다.

  몰래 수단을 부려보려던 자신을 상대가 막아버렸으니 자존심 때문에라도 한 번쯤 더 도발하겠다는 격정에 휩쓸리지 않았다.

  일반적 상식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심리상태이며 언행 태도였다.

  그때 맑고 고운 목소리가 들렸다.

  “이 오라버니, 괜찮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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