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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이사님~ 제발 그것만은...
작가 : 라미루이
작품등록일 : 2020.8.1

일년전 사별한 남편이 꿈속에 나타나기만 하면 분위기가 요상해져..이를 어쩌지..잠을 안 잘 수도 없고..남보다 생생한 꿈을 꾸는 시아 엄마
"정이수"의 꿈과 현실을 오가는 처절한 생존 육아 분투기. 얼마 전부터.. 귀가 간질간질.. 아이들 속마음까지 들리는데. 과거 계약연애를 했던 이사님은 늘찬 아빠가 되어 나타나고. 이사님과의 좌충우돌 티키타카는 현실이라네~
#꿈환상공포호러판타지 #여주히어로 #여주사이다 #이사님은엉뚱찌질집착파트너 #무궁무진스토리 #로코물 #재회물 #육아물 #이세계모험물
ramilui5058@gmail.com

 
38. 첫 만남부터 꼬여 버렸어
작성일 : 20-09-13 21:11     조회 : 334     추천 : 0     분량 : 5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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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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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덜커덩대며 앞으로 확 쏠리는 지하철 안의 승객들은 저마다 짜증 섞인 신음 소리를 뱉는다.

 

 그 와중에도 간밤에 나눈 스킨십이 부족했는지, 아침부터 열띤 애정 공세를 주고받는 커플이 있는데..

 

 그리스 신전의 기둥처럼 우뚝 선 남자는 그윽한 눈길로 자신의 품에 포옥 안긴 여자를 내려다본다.

 

 주위를 겹겹이 둘러싼 사람들은 그들을 에워싸는가 싶더니 이내 슬금슬금 피하기 시작하고,

 

 (이, 이게 무슨 야리꾸리한 냄새지? 마치 십 년 묵은 정화조 안에 들어온 느낌이야.)

 

 사람들은 이리 킁 저리 킁 대더니, 쓰레기통을 푹 삭힌 냄새의 발원지를 찾아내고야 만다.

 

 발 디딜 틈 없는 지옥철에서 빈틈없이 밀착한 그 커플이 바로 범인이었다.

 

 이수는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첫 역류를 주먹을 입에 틀어박아 간신히 막았지만,

 

 쓰나미처럼 목구녕 위로 밀어 올리는 두 번째 파도를 막을 수는 없었다.

 

 "크웩! 끄웨에에엨~"

 

 지하철 안에 아침부터 배 터지도록 과식해 미쳐 날뛰는 멧돼지의 울부짖음이 힘차게 퍼지고..

 

 군중들은 곧 사태를 파악하고는 그 커플 주위로 둥그렇게 비워진 원을 점점 넓히며 뒷걸음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눈만 꿈벅대는 사내를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차더니 놀라워한다.

 

 (남자가 성인군자 예수 보살이네. 저 꼴을 당해도 여자를 보듬어 주다니.)

 

 (저렇게 가녀린 여자의 속에서 저런 폐기물 폭탄이 터져 나올 줄이야.)

 

 이수는 마주 선 그 사내의 빳빳한 슈트 앞자락을 양 손으로 붙잡고는 뱃속에 든 것을 말끔히,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수처럼 게워냈다.

 

 순식간에 그의 하얀 셔츠는 두툼한 육전과 김치전 반죽이 천천히 흘러내리는,

 

 음식물 쓰레기가 내버려진 수채 구녕 신세가 되었다.

 

 위급에 처한 한 여자를 토사물의 수렁에서 구해 낸,

 

 살신성인을 몸소 실천한 공자, 맹자와 장자가 삼단 변신에 이어 합체하여

 

 현생에 재림한 듯한 그 사내가 마침내 말문을 연다.

 

 "다, 당신 뭐야?"

 

 그의 물음에 화들짝 놀라는 정이수, 고개를 치켜들다가 살짝 숙인다.

 

 "죄, 죄송해요. 속이 안 좋아서.."

 

 "속 안 좋으면.. 내가 무슨 변기통이라도 되나?"

 

 "제, 제가 세탁비 드릴게요."

 

 "세탁비고 뭐고.. 아침부터 이게 뭐냐고? 완전 재수 옴 붙었네."

 

 말하는 본새로 보아 그는 환생한 성인군자가 아니라 밴댕이 소갈딱지를 가진 일개 소인에 불과한 듯 하다.

 

 "오전에 중요한 일이 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

 

 희번덕대며 노려보는 사내의 눈자위가 미친개처럼 그녀를 사정없이 물고는 놔주지 않을 것 같다.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도 그 커플 아니 개싸움 붙을 듯한 남녀를 흥미롭게 관전하는데..

 

 이수는 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한다. 사전에 약속된 T 사 면접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난데없이 봉변을 당한 이 사내가 신경 쓰이긴 하지만..

 

 이 상태로 마냥 굽신거리거나, 되도 않는 말다툼을 해 봤자.. 100% 밑지고 들어가는 싸움 이리라.

 

 "제가 이, 입덧 중이라서요. 죄송합니다."

 

 (오! 정이수. 순발력 넘치는데..)

 

 최대한 불쌍하고 가련하게.. 두 손을 기도하듯 마주 잡더니, 금방이라도 눈물이 넘쳐흐를 듯 눈망울을 글썽인다.

 

 어디서 그런 턱도 없는 쌩거짓말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면접장에 일 초도 늦으면 안 되고,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다시

 

 T 사의 높은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는 장담을 못 하니까.

 

 지면 밑지고, 이겨도 본전 치기.. 이판사판 승부를 걸어 본 것이다.

 

 "그, 그럼.. 임신부?"

 

 통했다! 궁지에 몰린 끝에 둔 악수가 제대로 통했다.

 

 성난 사내의 표정이 금세 풀어지고 당황해한다.

 

 "우.. 우웩!"

 

 그의 온몸에서 풍기는, 박 여사가 아침에 차려 준 진수성찬이 산산이 뒤엎어진 내음과

 

 폭탄주 냄새가 못내 역한 지 다시 (입덧으로 위장한) 헛구역질을 한다.

 

 "워어, 워~"

 

 기겁하며 한 발짝 물러서는 사내와 군중 무리들.

 

 "어, 어지러워요."

 

 휘청대는 그를 녹다운시킬 결정타 아니 필살기다!

 

 볼록 내민 자신의 참외 배꼽을 감싸 안고 이마 위로 다른 손을 올리더니 한쪽 다리에 맥이 풀려 휘청대는 (척하는) 이수.

 

 깜짝 놀라 다가오더니 그녀를 부축하는 남자의 아름드리 통나무처럼 튼튼한 팔뚝.

 

 그의 포근한 품에 더 안겨있고 싶다만 그녀는 갈 길이 바쁘고, 자신의 토사물로 오염된 그의 가슴팍도 신경이 쓰인다.

 

 "고, 고마워요. 연락처 알려주시면 제가 세탁비라도.."

 

 "아, 아닙니다."

 

 그는 뭔 말이냐며 손을 저어대고는 다음 역에 도착하자 황급히 내린다.

 

 엉망이 된 그의 꼬락서니를 보고는 홍해가 좌우로 좌악 갈라지듯 게걸음으로 비켜서는 사람들.

 

 플랫폼에 선 채 망연히 자신을 바라보는 그 사내에게서 눈을 돌리는데.. 지하철의 문이 닫히고 서서히 출발한다.

 

 "으, 크웩!"

 

 얼마 후 그 남자도 허리를 움츠리곤 허겁지겁 뒤쪽으로 달려가더니,

 

 지난밤 회식 때 돌린 폭탄주가 뒤늦게 터졌는지..

 

 간신히 참고 있었던 오바이트를 승강장 한 구석의 쓰레기통에 한바탕 쏟아붓는다.

 

 그녀의 험난한 연애사를 궁금해할 후대를 위해 개인 실록에 반드시 기록되어야 할 명장면 중의 하나다.

 

 다만 결정적인 클라이맥스에 아직 도달하기 전이라는 게 문제긴 하지만..

 

 

 ***

 잠시 후, T 사 8층 면접장에 도착한 정이수.

 

 화장실 거울을 마주 본 그녀는 입 안을 헹구고, 옅어진 화장을 손 보고, 옷매무새를 정리한다.

 

 푸른색 블라우스에 방금 전 대참사의 흔적이 방울방울 남긴 했지만 옷을 갈아입어야 할 정도는 아니다.

 

 (좋아. 아까 돌발 상황은 액땜한 걸로 치자. 심호흡하고 침착하게.. 홧팅!)

 

 아침부터 거시기한 횡액이 덮친 그 사내의 연락처라도 받았어야 했나 보다.

 

 (영 꺼림칙하네.. 뒤통수가 뻑적지근하고, 귓가가 간질간질한 게..)

 

 안타깝게도 이수의 불길한 예감은 곧잘 들어맞곤 했는데.. 이번에도 그럴 것인가?

 

 [정이수 님, 차희경 님, 조대기 님 들어오세요!]

 

 "네!"

 

 대기실에 앉아있던 이수는 옆 테이블의 대기자들과 함께 몸을 일으킨다.

 

 자신도 모르게 '꿍덕 쿵떡' BPM을 높이는 심장 박동을 간신히 누그러뜨리며 면접장이 마련된 대회의실로 들어서는데..

 

 이수를 포함한 응시자 3명이 철제 의자에 앉아 정면을 응시하는 가운데 오른편에 앉은 면접관이 말문을 연다.

 

 "T 사에 지원한 동기를 짧게 말해 보세요."

 

 "자신의 내세울 만한 특장점이 대체 뭔가요?"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무난한 질문이 이어지는 가운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더니, 훤칠한 키의 잘 생긴 사내가 젖은 머리를 휘날리며 면접장에 들어선다.

 

 듣던 대로 T 사에 미남들이 많다더니 사실이었어.

 

 입을 헤 벌리고 그를 바라보던 이수의 흐뭇한 표정이 바닷가 모래성처럼 급 허물어지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허걱... 저 인간은!)

 

 "하태오 실장. 왜 이리 늦었어?" 가까이 지내는 강 실장이 그를 보고 한마디 한다.

 

 "아침부터 황당한 일이 터져서.."

 

 틀림없었다. 하 실장이라 불리는 저 인간은 이수가 지하철에서 마주친,

 

 10년 치 횡액을 한번에 뒤집어쓴, 재수 옴 붙은 그 사내다.

 

 어느새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는지 생지 데님에 하얀 피케 셔츠를 걸친 그는

 

 다소 굳은 표정으로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머리칼을 이마 위로 넘기며 빈 의자에 앉는다.

 

 그를 알아본 그녀는 면접이고 뭐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고..

 

 반면에 면접관들이 나란히 앉은 의자들 가운데 비어있는 상석을 차지한 그는 매의 눈으로 면접자들을 둘러본다.

 

 총기가 가득한 서글서글한 눈매가 그녀 주위에 머물더니 흠칫 놀라는 표정이 스쳐가고..

 

 곧이어 입꼬리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며 핏 실소를 머금는다.

 

 (저 자식, 기분 나쁘게 왜 웃어?)

 

 이수는 바짝 긴장하며 허리를 곧추세우고 양 무릎이 닿도록 다리를 모은다.

 

 그는 이력서 더미를 뒤적이다 마음에 안 드는 듯, 한쪽으로 확 밀어버리고는 그녀를 슬쩍 바라본다.

 

 "저랑 구면이네요."

 

 "네. (확실히 초면은 아니죠.)" (이 바닥.. 너무 좁은 거 아니야?)

 

 "정이수 씨, 미혼 맞나요?"

 

 "마, 맞아요. 미혼."

 

 "이력서 허위 기재하면 최종 합격해도 채용 취소되는 거 알죠?"

 

 "네."

 

 예상치 못한 그의 깜짝 등장에 넋이 반쯤 나간 이수는 자신이 결혼했는지 안 했는지도 긴가민가하다.

 

 가만 보자. 난 웨딩드레스를 입어본 적도 없고, 학교에 다니는 현 남친과 연애 중이잖아.

 

 정신 차리자. 정이수! 저 인간이 호시탐탐 네 약점을 노리고 있어.

 

 "그래요. 누구나 입덧은 할 수 있는 거니까.

 

 그렇게 입덧이 심해서 회사 출근할 수 있겠어요?"

 

 그녀는 작정한 듯 찔러보는 송곳 같은 압박 질문에 움찔한다.

 

 (저 자식이.. 감추고 싶은 약점을 사정없이 쑤셔대네?)

 

 졸지에 미혼의 (상상) 임신부가 되어버린 이수는

 

 '저 인간'을 여기서 마주친 이상 배수진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T 사에 대한 한 가닥 미련을 깔끔히 접고는, 홀가분해진 마음 한편으로..

 

 여기서 밥을 짓다가 폭망해서 꿀꿀이죽이 쑤어지면 저 작자에게 처먹이는 한이 있더라도,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다는 독기를 품고 면접에 임하는데..

 

 "기, 기어서라도 출근하고, 자리 지킬 겁니다."

 

 잠시 멍 때리고 있던 다른 면접관들이 '허어' 헛웃음을 짓는다.

 

 "저, 저한테는 궁금한 거 없으신가요?"

 

 가슴에 '차희경'이라는 명찰을 차고 있는,

 

 무료하다는 듯 발꼬락을 꼼지락대던 다른 면접자가 궁지에 몰린 이수를 홀깃 쳐다보고는

 

 '당신의 마니또는 바로 나!'라는 표정으로 분위기 전환을 시도한다.

 

 하지만 이수는 하고 싶은 말은 기어이 해야겠다는 듯, 그를 똑바로 응시하며 야무지게 말을 이어간다.

 

 "아까 일은 죄송합니다. 연락처 꼭 알려주세요. 세탁비 물어드릴 테니.."

 

 "딱히 돈이 궁한 건 아니거든?"

 

 쪼잔하게 돈을 바라는게 아니라면 이 자가 원하는 답은 뭐지?

 

 그녀는 잠시 창 밖에 펼쳐진 빌딩 숲을 바라보다 다시 정면을 바라본다.

 

 "출근길에서 토악질을 하고, 피를 토한다 해도.. 전 포기하고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어떻게든 회사로 기어들어와.. 제 데스크 아래에 쓰러질 겁니다. 오늘처럼요."

 

 미간을 찡그린 채 이수를 뚫어질 듯 바라보는 사내의 날카로운 시선.

 

 면접장에 모인 사람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한결같이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일방적으로 기울어져 보이던 전세가 서서히 역전되기 시작한 걸까?

 

 

 그때였다.

 

 아침부터 터진 돌발 이벤트로 속이 휑하게 비어버린 데다 예상보다 더한 압박 면접 탓에 기력이 다한 탓일까?

 

 아니면 그녀가 말한 대로 아직 입사도 하지 않은 회사에 뼈를 묻으려는 작정일까?

 

 이수는..

 

 속이 미식거리고, 눈 앞이 어질하더니.. 의자에 앉은 자신의 몸이 서서히 기울어진다.

 

 맞은편 테이블에 앉은 '그놈'의 얼굴이 따라서 옆으로 기울더니 눈동자가 휘둥그레지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는 것이 보인다.

 

 주인 없는 의자가 넘어져 나뒹굴고, 그 옆에 풀썩 쓰러진 그녀의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드는데..

 

 오늘따라 자주 마주치는 '하 실장'이라 불리는 그 사내가 성큼 다가와

 

 망설임 없이 양 팔로 자신을 번쩍 안아 올리더니

 

 면접장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웅성웅성대며 쓰러진 그녀를 걱정하는 사람들.

 

 사실 이수는 사지에 힘이 빠졌을 뿐, 정신은 말짱했지만 차마 깨어날 수 없었다.

 

 

 (이 회사는 나와 악연인 거 같아.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 치고, 천운이 따라서 합격한다 쳐.

 

 뒷수습을 어찌 할 거냐고.. 거짓 임신에 토덧에 그리고 자신의 토사물로 샤워를 한 이 자와 마주쳐야 한다니..

 

 첫 면접부터 단단히 꼬여 버렸으니 이를 어쩐다.)

 

 그녀는 첩첩이 쌓인 난관을 헤치고 T사의 높은 문턱을 넘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부담감을 못 이기고 중도에 포기할 것인가?

 

 차라리 회사가 자신을 불합격시키는 게 지금 상황에선 최선의 수일지도 모른다.

 

 하 실장의 탄탄하고 너른 품에 안겨 T 사의 어딘가로 실려가는 이수의 고민이 깊어진다.

 

 

 

 

 - 38회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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