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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난초꽃향기
작가 : 판도라
작품등록일 : 2020.9.6

나에게는 세 가지 한(恨)이 있다.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서 태어난 것, 그리고 남편의 아내가 된 것...그런데, 그 남편이 나를 찾으러 왔다. 무려 400여년후의 세상으로. 난초꽃 한가지로 이어진 전생의 인연, 그리고 난설헌 허초희의 소원...그 소원의 뿌리를 찾으러 떠난 내 눈앞에 왜란을 앞둔 400여년전의 조선시대가 열린다.

 
제2회
작성일 : 20-09-13 04:42     조회 : 184     추천 : 0     분량 : 5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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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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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 엔진소리가 귀청을 먹먹하게 하는바람에 나는 그만 풋잠에서 깨고 말았다. 자세를 바로하느라 무릎에 놓았던 무엇이 털썩 바닥에 떨어졌고 나는 서둘러 그것을 주었다. 아까 읽다만 [난설헌집]이었다. 책갈피 속에서 빠져나온 마른 난초가지를 책속에 정히 끼운 후 나는 무심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거의 착륙하는 비행기 날개가 밤하늘의 별들과 스치면서 무수한 불꽃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다시 눈여겨보니 그것은 점점 가까워오는 익숙한 땅의 네온싸인이었다. 나는 책을 가방에 넣은후 안전벨트를 느슨히 했다.

 

 인파가 붐비는 인천공항을 빠져나온 후 나는 곧바로 택시터미널로 향했다. 내게 목적지를 들은 기사아저씨의 의아한 시선을 무시한채 나는 택시 뒷자석에 깊숙히 몸을 파묻고 모자를 눌러썼다. 택시는 그대로 조용한 밤길을 달렸고 나는 잠시 눈을 감고 비행기에서 내리느라 끊겼던 사색을 이어나갔다.

 

 그러니까 3년동안 생각했던, 그리고 계획해왔던 일을 막상 행동에 옮기려니 절로도 피씩피씩 헛웃음이 나오는걸 어쩔수 없었다. 3년전,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일찍부터 나는 가족에게 버려진 존재였다. 가족이라 해봤자 항상 걱정과 불안에 쌓여있는 엄마와 그런 엄마보다 훨씬 먼저 걱정과 불안에 쌓여 평생을 살아오신 외할머니 이렇게 세식구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그런 두분에게서 내가 제일 많이 들은 한마디...

 

 "저주야...이건 분명 우리 집안에 내려진 저주라고. 그러니 넌 절대, 절대 여기서 살면 안돼. 되도록이면 여길 떠나 영영 돌아오지 말아."

 

 나는 날이 갈수록 그 두 불행한 여인이 곱씹는 이 한마디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분들이 말하는 저주라면 외할머니가 일찍 외할아버지와 사별한 것, 그리고 아빠가 일찍 돌아가신 것 이 두가지 우연한 일치를 빼고는 아무것도 없었으니 말이다. 외할아버지와 아빠가 물려준 부동산 재산은 어마어마했고, 그 두 미망인은 그로부터 오는 사회적 압력과 주위 사람들의 질투에 분명 피해망상증에 걸린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왜 하나밖에 없는 자신들의 피붙이를 해외로 몰아내려고 그토록 애를 쓰고있는 걸까.

 

 엄마가 나를 보러 가서 국내에 없다 해도 나는 집에 먼저 들어가서는 안되었다. 비록 도심 번화가에 내 명의로 따로 되어있는 아파트가 있긴 해도, 멋모르고 집에 들어갔다간 아파트 경비원이며 이웃들에게 뻗쳐있는 엄마의 영향력을 무시한 대가는 항상 엄청났기 때문이다. 나는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가야만 했다. 내가 확인해야 할 일만 마무리 되면.

 

 목적지에 도착하자 날이 이미 밝고 있었다. 택시기사는 내가 내미는 택시요금 두배가까이 되는 돈을 받은후 깍듯이 머리를 숙이며 작별인사를 했다. 나는 백팩을 메고 고개를 젖혀 멀리 눈앞을 응시했다. 날씨가 음침한데 어느새 작은 비까지 내려 안개가 자욱한 앞쪽에 희미하게 한 여인의 동상이 보였다.

 

 나는 천천히 동상 가까이로 걸음을 옮겼다. 동상이 가까워 올수록 나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설마 이번 걸음이 허사로 되려는 건가...그동안 내가 계획해왔던 일이 결국은 이렇게 간단하게 끝나고 말아야 하는 것인가...

 

 드디어 동상앞에 이르자 나는 이미 허무감으로 할말을 잃고 말았다. 닮지 않았다. 전혀 닮지 않았다. 그렇게 기대해왔던 일이 일순간 와르르 무너지는감을 느끼며 나는 맥이 풀렸다. 최대한 원래 인물의 형상을 살려 부각했을 동상이 이렇게도 닮지 않은 모습이라면, 그날...3년전 내가 본 그 여인은 허초희가 아니라 대체 누구란 말인가.

 

 허초희...난설헌....그렇다. 나는 지금 강릉의 허난설헌 생가에 와있는 것이다. 내가 3년전 만났던 그녀를 난설헌 허초희라 단정 짓는 이유는 그날밤 들었던 그 시가 난설헌의 시 [感遇]였다는 것을 떠올린 것이 결정적인 한몫을 했다. 게다가 난향[兰香]과 함께 나타난 그녀가 내게 건네준 난초꽃가지...

 

 "닮지 않았어. 조금도 닮지 않았어. 전혀 이런 모습이 아니었지 않는가..."

 

 누군가 나의 마음을 대신해 옆에서 중얼거렸다. 나는 지기라도 만난듯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또 한번 기대가 무너지는 감을 느끼며 나는 머리를 숙여 허하게 웃어버렸다.

 

 "왜 웃소?"

 

 옆사람의 의아한 질문에 나는 곧 웃음을 거두었다. 그리고는 다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여기 직원분이세요?"

 "..."

 

 그는 대답대신 나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숙여 자기 옷차림을 내려다 보았다.

 

 "직...원...?"

 "아니면 대역배우? 스텝? 오늘 무슨 촬영 있는가봐요?"

 

 그는 여전히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수려한 얼굴 한쪽에 거뭇하게 먼지가 묻어 있었고, 옷차림도 사극 무관 복색이어서 무심코 물어봤던건데 그의 어정쩡한 반응에 나 또한 적잖이 무안해졌다. 그냥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이고 자리를 뜨려는데 그가 문득 입을 열었다.

 

 "이 분을...아시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나도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죠. 그런데 또 모르겠네요. 대체 어느것이 진실한 그녀의 모습인지...대체 어떤 것을 믿어야 하는지..."

 

 나로서는 혼잣말에 불과했는데, 내 말에 그는 전기에라도 닿은 듯 흠칫 놀라며 나를 보았다. 그런 그의 눈빛이 하도 괴이해보여서 나는 갑자기 호기심이 동했다.

 

 "그러는 그쪽은 이분을 아십니까."

 "모르겠소...나도 모르겠소...어쩌면 이런 일이...그러니 어쩌면 내가 이렇게...여기가 어딘지, 지어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소. 더이상...묻지 마시오..."

 

 참으로 괴이한 사람이다 싶었다. 아까까지 닮았다느니 말았다느니 혼자 중얼거리고서는 지금 와서 왠 오리발인가 싶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불퉁한 기색으로 홱 돌아서는데 그만 메고있던 백팩이 그를 스쳤는지 그가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휘청했다.

 

 "윽..."

 

 무슨 남자가 저렇게 맥을 못추는가 싶어서 고개를 돌려보던 나는, 그의 옷소매에서 흘러내리는 선명하게 붉은 액체를 보자 그만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피..."

 

 어느새 그의 옷소매를 흥건히 적시며 붉은 피가 그의 손끝 아래로 떨어지는게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앞으로 다가가 그의 팔을 부축했다. 주위를 둘러봐도 너무 이른 시간이라 한사람도 보이지 않았다.잠시 그를 버려두고 사람들을 찾아올까 생각하는데 그가 손을 내밀어 나를 제지했다.

 

 "되었소. 가지 마시오..."

 "어디 다치신거 같네요. 하지만 절대 제가 그런 건 아닙니다. 제 가방이 흉기도 아니고..."

 "알고...있소."

 "어쩌다 이렇게 다치셨습니까. 대역배우라면 촬영장에서 상하신 거 같은데...가서 스탭분들이라도 불러올까요?"

 "가지...마시오."

 "안가면 어떡합니까. 가서 사람이라도 불러와야 지혈시키지 않겠습니까!"

 

 급한 마음에 소리를 질러놓고 금세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나는 목소리를 눅잦혔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내가 당신을 버려두고 이대로 가려는게 아니라 사람을 불러 병원에라도 데려가려고 그러는거란 말입니다. 이젠 이해 하시겠습니까?"

 "병원...그런건 모르겠고...아무튼 가지 마시오..."

 "그러면 이 상처는..."

 "지혈을 할 무명천이라도 있으면 내주시오..."

 

 나는 급히 가방을 벗어 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그는 손수건을 받아쥐더니 한손으로 익숙한 솜씨로 팔을 동여맸다. 그랬더니 과연 피가 멎었는지 더이상 아래로 흘러내리진 않아서 나는 잠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큰일날뻔 했습니다. 만일 여기서 쓰러지기라도 하면 난 옴짝달싹 하지도 못하게 될거니까요."

 "쓰러지지 않아도 어디 가지 마시오."

 "네? 왜요?"

 

 의아한 눈길로 그를 쳐다보자 그는 내 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아까...그쪽이 상처를 스쳐 덧친건 맞소."

 

 그가 눈짓으로 내 백팩을 가리켰다. 나는 억이 막혀 그를 빤히 노려보다가 몸을 돌렸다.

 

 "이젠 됐죠? 지혈도 되었으니 전 이만..."

 "잠시만..."

 

 그의 부름에 나는 슬슬 화가 동했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있던 나는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해 고개를 돌렸다.

 

 "또 뭡니까?"

 "닮았소, 그 사람을..."

 "누굴 말입니까."

 

 나는 그와의 대화에 갑갑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신경 쓰이긴 했지만 그는 분명 사극에나 나올법한 이상한 말투를 쓰면서 내 약을 올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조금만 더 이상한 소리를 하면 더이상 가만있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 주먹을 말아쥐는데 그가 주저하며 말했다.

 

 "내겐 아주 중요한 사람을...닮았소. 분명 그 사람을 닮았소. 하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퍽...

 

 나는 금세 후회했지만, 내 주먹은 머리의 지휘를 듣지않고 그의 복부에 정확한 일격을 가했다. 그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러던 그의 입가에 쓸쓸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뒤이어 툭 하고 그의 머리가 내 어깨에 떨어졌다.

 

 나도 안다. 내 주먹이 몇년간 녀석과의 태권도 연습에서 꽤 단단하게 굳어져 있음을...하지만 무슨 남자가, 185센치도 넘어보이는 훤칠한 남자가 복부에 타격을 받았기로 아예 기절을 해버린단 말인가. 나는 그야말로 억이 막혔다.

 

 아까보다 한결 촘촘해진 비가 남자의 얼굴에서 거뭇한 먼지를 씻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남자의 반듯한 미간에 서린 슬픈 표정에 생에 처음으로 어이없는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

 

 아늑한 방안, 창문가에 서린 뽀얀 서리에 내 입김이 보태졌다. 서리가 녹은 창문 밖으로 도심 한복판의 번화한 모습이 내려다 보였다. 분명 이상하게 기웃거리는 사람이 없음을 꼼꼼히 확인한후 나는 몸을 돌렸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금세 창문쪽으로 돌아서고 말았다.

 

 "깼습니까."

 

 혼절한건지 잠든건지 알바 없지만 남자는 분명 내가 사람을 불러 이 호텔로 데려오기까진 인사불성이었다. 그런 사람을 침대에 눕히고 잠시 내려가서 그의 신장에 맞을만한 옷들을 사 올때까지 깨지 않은것을 내 눈으로 확인했는데, 지금의 그는 벗은 웃몸으로 망연하게 침대에 앉아있었다.

 

 "뭐합니까. 빨리 옷을 입지 않고."

 

 내가 손으로 가리키는 옷가지들을 그는 멍한 기색으로 내려다 보았다. 참다못해 몸을 돌린 나는 그 옷들을 침대위에 던져버렸다.

 

 "그쪽이 입던 옷들은 이미 다 찢어져서 버렸으니 이젠 이걸 입으세요. 설마 아까 그 사극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고싶진 않겠죠?"

 "이걸..나더러 입으라는 것이오?"

 

 그가 옷들을 보면서 망연하게 물었다. 나는 후우 한숨을 내쉰후 그에게로 다가갔다.

 

 "일단은 씻고 새옷으로 갈아입으세요. 피묻은 그런 옷을 입고다니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테니까."

 

 그가 다시 시선을 들어 나를 보았다. 나는 고개를 흔든 후 화장실쪽을 가리켰다.

 

 "일단 씻고 오세요. 그러면 왜 그쪽을 여기로 데리고 왔는지 알려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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