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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서로가 서로뿐인
작가 : 오르막알파카
작품등록일 : 2020.9.12

"다... 당신이 천년 제왕. 샤를리에 엘리어스 대공님이신가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반역의 죄로 마계에서의 천년형을 선고 받은 자. 그 형벌을 이기고 돌아온 자. 그녀의 스산한 붉은 눈빛에 압도당한 그는 습관적으로 고개를 떨궜다. "그대는 제마이어 오펜이 맞는가?" "네, 네 맞아요. 제가 바로.... " 대공비가 될 자. 그렇지만 애정없는 형식적인 결혼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구실이 되는 관계. 그러나 그들 서로에게는 서로뿐이었다

 
2화. 지옥에서 돌아온 자 (2)
작성일 : 20-09-12 19:47     조회 : 208     추천 : 0     분량 : 3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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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화. 지옥에서 돌아온 자 (2)

 

 “엘리어스...”

 

 아까 그녀가 애타게 찾던 골드레이어의 황제 아발로드. 마계 천년형. 엘리어스 후작가. 키워드를 토대로 과거 읽었던 두꺼운 역사서의 기억을 뒤진 황제는 그 이름을 기억해 내고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그녀를 다시 바라보았다.

 

 밤하늘보다 어두운 검은 머리카락. 대단한 위압감을 풍기는 붉은 눈동자. 마계의 어둡고 비릿한 특성을 담아놓은 듯한 외모는 그녀가 정말로 천 년 동안 그곳에서 살아왔다는 증거였다. 황제와 대마법사는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기둥이 열렸을 당시 그 거대했던 마력의 흐름. 천 년 동안이나 마계에서 버틴 힘. 그리고 현재는 목적을 잃어버린 그 힘의 주체. 아군이 되어 나라를 지켜준다면 큰 힘이 되겠지만 반대로 생각하여 타국으로 가버린다면 크나큰 손해이자 곧 재앙이 될 터였다.

 

 한 나라의 군주로서 냉철히 생각을 마친 황제와 그 뜻을 이해한 대마법사는 이번만큼은 체면이 아니라 미래의 이익을 위해 한 수 굽히기로 결정했다.

 

 “그, 그럼 이제 어떻게 할건가. ... 천년 제왕이여.”

 

 아까 그녀를 뒤따라온 샹포드가의 말을 새겨들은 황제가 제 앞에서 꺼내긴 오만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그 칭호를 입에 담았다.

 

 “아이 참. 부관참시 하러 가...”

 

 “조용.”

 

 데샤의 말은 데카의 손에 의해 저지되었다. 샤를리에는 자신을 천년 이나 지옥에 처박아 두었으면서 고작 몇백년도 버티지 못한 그들에게 더 이상 시간쓰기에는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사색에 빠져있을 때 기회를 포착한 황제가 그녀와의 동질감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이곳, 보스아 제국의 역사는 모를 테지. 우리도 골드레이어와 지독하게 얽혀있는 가문이니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어떠한가?”

 

 명령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허락을 구하는 말이었다. 기둥이 있다는 것은 이곳이 옛 골드레이어 황가의 터가 맞다는 것. 그리고 그녀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흐릿한 황궁의 이미지와 이곳의 이미지는 거의 일치했다. 황제의 말에 수긍한 그녀는 순순히 그를 따라 나섰다.

 

 *

 

 샤를리에는 책상에 올려진 하얀 김이 올라오는 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계에서는 무언가를 먹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기 전에 인간이 먹을 것이 아예 없기도 했지만 말이다. 빵 같은 음식 말고도 깨끗한 물도 찾기 어려웠다. 차는 영주들이나 가끔 마시는 사치품으로 샤를리에 역시 그곳에서 몇 번 먹어보기는 했으나 인계에서 맛보는 홍차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크흠, 이제 본론에 들어가도 되겠소?”

 

 “그리하시게.”

 

 샤를리에는 눈앞의 상대가 황제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말을 높이지 않았다.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이깟 황궁은 일주일도 안 돼서 함락하리라는 사실을 그도 그녀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피차 그 부분을 지적하지 않았다.

 

 샤를리에의 자리 앞 테이블에는 황제가 준비한 두꺼운 역사서가 놓여 있었다. 또한 미리 대륙 지도를 준비한 황제는 한 술 더 떠 학자까지 데려와 역사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곳 보스아 제국은 보다시피 대륙의 동쪽에 큰 영토를 가지고 있습니다. ....골드레이어 제국 출신분이라 들었습니다만, 그렇다면 골드레이어때와 비슷한 영토임을 아시겠지요?”

 

 샤를리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타국과의 경계부분은 약간 달랐지만 전체적인 특은 골드레이어와 다르지 않았다. 비슷한 영토, 변하지 않은 황궁.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한가지. 내부 싸움이다.

 

 “골드레이어 제국일 당시. 보스아 가문은 그저 작은 백작가였지요. 조심스럽지만 엘리어스가가 멸... 멸문한 이후 백작가로써 이름을 올렸으니 모르시는게 당연합니다.”

 

 “개의치 않으니 신경쓰지말고 하시게.”

 

 “예, 예 감사합니다. 골드레이어의 폭정은 백년이 넘게 이어져 왔지요. 황가의 변덕은 날로 심해져 처음에는 위대한 황가라고 지지하던 자들도 점차 지쳐갔습니다. 그 와중에 큰 뜻을 품고 능력을 펼치기 시작한 보스아 백작가는 이후 후작가로 상승하였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개혁의 뜻을 시행하였습니다. 반황실파인 가문들과 결탁하여 힘을 모으고 유능한 인재들을 모아 가문을 꾸렸습니다. 그렇게 준비하기만은 십년이 넘었지요. 골드레이어의 방탕한 치세 아래 그들의 강력한 마법은 쇠약해졌고 그것은 곧 보스아의 기회로 넘어왔습니다. 그렇게 이 나라는 보스아 제국이 되었지요. 그 탓에 귀하께서 아시는 가문도 몇 남아있을 겁니다.”

 

 “설명 감사하군.”

 

 “....따지면 우리는 공동의 적을 둔 사이라 말이네. 지금은 사라진 적이지만 목표가 같았지.”

 

 “골드레이어를 없애준 것은 아쉽기는 하나 좋은 일임은 분명하군.”

 

 황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 말을 할까 말까. 잘 되면 좋지만 못 도면 죽도 밥도 안된다. 그 즉시 이 황궁이 날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고지식한 부분을 이용하고자 하였다.

 

 “물론 우리 보스아의 큰 뜻은 아니었다고 하나 어쨌든 엘리어스 가문의 복수를 도운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비록 그대의 손으로 처결하지는 못했으나 우리라고 해서 관대한 처사를 배푼 것이 아니네. 골드레이어의 씨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잘라내었으니.”

 

 “....그렇군.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감사를 표하지.”

 

 “빚을... 졌다고 생각해도 되나?”

 

 “....”

 

 샤를리에의 침묵에 그 방에 있던 모두가 긴장했다. 여기서 수틀리면 다같이 죽는거다. 황제는 아직 그녀에게 과거 관습의 고지식한 면이 남아있기를 바랐다. 지금에야 많이 흐려졌다지만 과거 전통, 특히나 귀족들은 사소한 일을 도와도 큰 감사를 보였다.

 

 “원하는게 뭔가.”

 

 파악이 빨랐다. 황제의 노림수가 있다는 것을 알아챈 샤를리에는 직설적으로 물었다. 좋은 한 수였다. 황제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까보다 밝은 얼굴로 지도 한 부분을 가리켰다.

 

 대륙 최서단. 대륙의 또다른 강자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 곳. 그리고 현재 주인을 잃은 땅이기도 했다.

 

 “이곳은 과거 한 변경백의 땅이었으나 지금은 주인을 잃었네. 애석하지만 과거 엘리어스의 토지도 오랜 시간이 흐르고 행정이 개편되면서 사라진 바. 그대에게 이곳의 변경백이자 대공 작위를 주겠네. 어떠한가.”

 

 “지금 보스아 황제의 밑으로 들어오란 소린가?”

 

 “그런... 강압적인 말은 아니었네. 그대가 원한다면 나와 동등한 지위를 가져도 좋아. 다만 이 나라를 위해 힘을 빌려달라는 뜻이었네. 그대의 지위도 권세도 재물도 보장하지. 저 영토는 경계에 있기는 하지만 서쪽에 가까워 농사가 아주 잘되는 비옥한 땅이지. 변경백이 된다면 이곳에 올 일도 얼마 없네. 그냥 나의 작은 부탁하나 들어주면서 살고 싶은데로 살면 된다네.”

 

 “작은 부탁이라 함은?”

 

 “보스아 제국의 대공으로서 영지를 관리하고 국경선을 잘 지켜주는 것.”

 

 샤를리에는 즉답하지 않고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황제에게 찾아온 두 번째 고비였다. 시곗바늘이 째깍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이미 황가에게 크게 데인 적이 있던 샤를리에였기에 결정을 내리기는 더 어려웠다. 마침내,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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