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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서로가 서로뿐인
작가 : 오르막알파카
작품등록일 : 2020.9.12

"다... 당신이 천년 제왕. 샤를리에 엘리어스 대공님이신가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반역의 죄로 마계에서의 천년형을 선고 받은 자. 그 형벌을 이기고 돌아온 자. 그녀의 스산한 붉은 눈빛에 압도당한 그는 습관적으로 고개를 떨궜다. "그대는 제마이어 오펜이 맞는가?" "네, 네 맞아요. 제가 바로.... " 대공비가 될 자. 그렇지만 애정없는 형식적인 결혼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구실이 되는 관계. 그러나 그들 서로에게는 서로뿐이었다

 
1화. 지옥에서 돌아온 자 (1)
작성일 : 20-09-12 19:47     조회 : 208     추천 : 0     분량 : 3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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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지옥에서 돌아온 자 (1)

 

 뜨거운 열기가 지글지글 올라오는 검붉은 황무지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잔해의 산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올라선 한 사람. 괴상한 소리를 내며 포효하는 숨이 끊기지 않은 마물에 긴 검을 박아넣고는 한숨을 돌렸다.

 

 “하아....”

 

 “역시 주군!”

 

 “저희가 도울 것도 없었군요.”

 

 산의 정점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는 샤를리에의 밑으로 똑닮은 두 남매가 잔해들을 이리저리 관찰하며 그녀를 슬쩍 올려다보았다.

 

 처음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인계의 소녀였다. 마계로 통하는 문 앞에 보초를 세워두고 관리하는 인계와 다르게 마계는 그 정도의 철저한 경비를 서지 않았다. 그저 대략 알 수만 있게 감시하는 정도. 그마저도 영주들만 했기에 모두 어린 소녀의 입장을 느꼈으나 달려온 이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계 한복판에 던져진 귀족 영애다. 검을 잡는 태를 보아하니 교육은 받은 것 같았지만 무언가를 죽인 경험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영지가 아닌 드넓은 황무지에 떨어진 인간은 곧 하급 마물의 밥이 되리라 여겼다. 그러나 그들 중 누가 알았겠는가. 그 소녀가 마계에 피를 몰고 올 줄은.

 

 하찮고 평범한 검 한 자루를 쥐고 몇 날 며칠을 정신력으로 버텼다. 그런 과정 속에서 엘리어스가 특유의 밝은 갈색 머리카락은 검게 물들었고 하늘을 비춘 듯 푸르렀던 눈동자는 루비처럼 붉게, 스산한 기운을 내뿜으며 상대를 관찰했다. 마계의 햇빛을 받은 피부는 투명할 정도로 창백했고 반면 입술은 피로 적셨기에 앵두처럼 붉어졌다.

 

 영지가 아닌 황무지에서 떠도는 하급, 중급, 마물들을 말 그대로 도륙하고 다닌 그녀는 고위 마물과 대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영지 단위로 그녀에게 맞서려 했던 곳도 있었으나 그 결과는 멸문이었다. 그렇게 온 대지를 붉게 적실만큼의 피를 흘리고 그녀가 얻은 칭호는 ‘천년제왕’

 

 “천년이 다 되었는가...”

 

 “그럼요, 우리의 천년 제왕님. 이제 곧 바라시던 그날이에요.”

 

 샤를리에는 그날의 약속을 잊지 않았다. -마계에서의 천년형에 처한다. 방탕한 사욕을 위해 무고한 가문을 멸문시키고 자신을 지옥으로 던져넣은 자. 그 가문. 절대로 용서치 않으리라 하는 분노의 마음만으로 오롯이 천년을 버텼다.

 

 “너희 정말로 따라올건가?”

 

 “물론이죠. 이참에 인계 구경도 하고 좋습니다.”

 

 “주군을 따라 어디든 가는 것이 신하의 도리 아니겠어요?”

 

 샤를리에의 수족을 자처한 샹포드 가家의 데카, 데샤 남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맞추어 고개를 끄덕인 샤를리에는 마물의 산에서 가볍게 뛰어올라 착지했다. 몇 발자국 가지 않아 허물어져가는 커다란 기둥이 보였다. 4개의 돌기둥, 길게 쓰인 고대어. 마력을 흘려 넣자 그때와 마찬가지로 하얀 빛을 내뿜으며 기둥 가운데에 동그란 통로를 만들기 시작했다.

 

 “.....가자.”

 

 굳은 의지로 발을 내딛는 샤를리에의 뒤를 샹포드 남매가 뒤따랐다. 마계에서 죽지 않고 오히려 괴물이 된 자. 인간의 몸으로 마계의 학살자가 된 자.

 

 천년 제왕이 저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인계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

 

 

 그날 황궁의 오전은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대륙 동쪽에 위치한 보스아 제국은 최근 서쪽의 나라와 마찰을 빚고 있어 황제는 그 건에 대해 골치아파했지만 그것또한 평범한 업무의 일환일 뿐, 일상적인 하루였다. 한 마법사가 헐레벌떡 들어오기 전까지는.

 

 “폐... 폐하! 크, 큰일 났습니다!”

 

 “음? 무슨 일이기에 대마법사인 그대가 다 달려오는 건가.”

 

 과거에는 마법사가 흔했다지만 골드레이어 제국의 몰락과 함께 그 수는 점차 사라졌고 지금은 간단한 마법만 부릴 줄 알아도 황궁에서 일 할 수 있을 정도로 희귀하고 고위 직종이 되었다. 그런 시대에 제국의 대마법사는 예사 인물이 아니었다. 황제만큼이나 엉덩이가 무거운 인물. 그러나 지금 그 인물이 직접 나서 황제의 집무실로 뛰어 들었다.

 

 “황궁 앞 정원에 있는 기둥이.....!”

 

 “그 고대 기둥 말인가?”

 

 “그 기둥에서 갑자기 빛이 나더니 거대한 마력의 소용돌이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뭐라?”

 

 놀란 황제는 펜을 놓치는 바람에 서류에 잉크가 다 묻은 것은 신경 쓰지도 않고 곧장 기둥이 있는 정원으로 향했다. 마법 기둥이라고는 하나 어마어마한 마력을 요구로 하는 데다가 마계로 이어지는 문이기 때문에 보스아 황실에서 그것을 가동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문이 열리는 건가!”

 

 “예, 그런 것 같습니다...”

 

 대마법사와 제자들이 문을 닫으려 시도해보았으나 이미 열리기 시작한 문은 쉽게 닫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마력을 빨아들인 듯이 문은 더 커져만 갔다. 현장에 도착하니 기사들은 물론이고 시녀, 시종들도 주위에 몰려들어 수근거리고 있었다.

 

 “신전의 사람은 불렀나?”

 

 “대신관에서 기별을 넣었으니 곧 올것입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기둥에 다가간 황제가 거대한 마력의 흐름을 온 몸으로 느끼며 하얗게 빛나는 기둥의 글씨에 손을 얹은 그 순간.

 

 “아아, 돌아왔다. 드디어.”

 

 “....!?”

 

 “그리웠다, 골드레이어여.”

 

 “골드레이어....?”

 

 갑자기 마력이 요동치더니 불쑥 나타난 사람에 깜짝 놀란 황제가 붉은 눈과 마주보았을 때, 그 위압감에 자신도 모르게 힘이 빠진 황제가 털썩 주저앉았다. 황제 뿐만 아니었다. 기둥 근처에 있던 모두가 커다란 마력에 짓눌려 몸을 움츠렸다.

 

 “네가 황제구나.”

 

 황제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샤를리에는 그의 복장만 봐도 직책을 알 수 있었다. 펄럭이는 망토, 장신구가 가득한 옷, 잘 손질받은 윤기있는 머리. 천천히 그에게 다가간 샤를리에는 창백한 손으로 그의 턱을 잡아 고개를 올렸다.

 

 “음? 사생아인가? 금안이 아니군. 골드레이어의 자부심일진데.”

 

 “다... 당신은 누구인가.”

 

 “나를 잊었단 말인가 골드레이어여.”

 

 샤를리에는 한심한 눈빛으로 황제를 바라보았다. 누구는 마계에서 천년 동안 오로지 그 약속만을 바라보며 살아왔건만 정작 그 후손들은 아무 사실도 모른다는 것이 원망스럽고 화나게 했다. 황제가 그 압박을 이겨내고 재빨리 입을 열지 않았더라면 황궁 정원은 폐허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자, 잠깐! 나는 골드레이어가 아니다!”

 

 “뭐? ...황제 아닌가?”

 

 “황제는 맞으나 골드레이어는 아니다. 이곳은 제국 보스앙. 골드레이어는.... 200년도 전에 멸망한 황족이 아닌가.”

 

 물론 마계의 시간이 흐른 만큼 인계의 시간도 흘렀을 것이라는 건 샤를리에도 짐작한 바였다. 그러나 고작 200년. 천년에 비하면 반도 안 되는 시간이다. 그렇게 오랜 권세를 누려보자고 눈에 거슬리는 것들은 다 치우더니 몇 백년도 못 버티고 멸망이라니. 허탈함이 가득했다.

 

 “그럼 아발로드 피에 사니아 골드레이어는. 그가 죽은 지 얼마나 되었지?”

 

 “.... 못해도 300년은 넘었다.”

 

 “하!”

 

 허망함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마에 손을 짚고 실소를 터트린 샤를리에를 뒤늦게 넘어온 데카와 데샤가 위로했다. 물론 또 다른 인물의 등장에 주위 사람들은 기함을 터뜨릴 뿐이었다.

 

 “주군....”

 

 분위기 파악이 이루어지고 차츰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그들의 관심이 멀어져 있는 사이 그 장소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황제와 대마법사가 주위를 물릴 필요도 없이 불필요한 인물들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

 

 “망할 골드레이어 놈들... ”

 

 “주군, 이렇게 된 거 시체라도 찾아올까요?”

 

 “아서라. 그럴 가치도 없는 작자들 아니냐.”

 

 그렇게 답을 잃은 샹포드 남매는 조용히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대로 고개를 돌려 동시에 황제에로 눈을 돌렸다.

 

 “그럼 저건?”

 

 샤를리에만큼은 못 되었지만 그 또한 강한 압박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경계하고 있던 황제와 대마법사가 태세를 갖추었기에 주저앉는 일은 없었다.

 

 “...되었다. 골드레이어도 아닌 목을 가져서 뭐하겠니.”

 

 “그대는 누구인가...?!”

 

 황제는 두려움을 앞서고 물었다.

 

 “이분? 이분은 마계의 학살자.”

 

 “인간의 몸으로 천년 제왕의 칭호를 받은 위대한 우리의 군주.”

 

 “반역죄로 마계 천년 형에 처해진 자. 들어본 적 없는가? 골드레이어의 멸문가 출신, 샤를리에 엘리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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